광룡기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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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9화
219화
남궁산산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이충량의 침상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급히 약 한 알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집어서 이충량의 입에 대었다.
“이걸 드세요. 아주 좋은 약이에요. 아마 두세 알만 드시면 내상이 다 나으실 거예요.”
“으음, 그러냐? 고맙구나.”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허허허, 내가 말년 복은 있나 보구나. 이렇게 예쁘고 마음씨 착한 며느리를 얻다니…….”
남궁산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아이, 아버님도…….”
“그래, 우리 며느리,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소녀는 남궁산산이라고 해요, 아버님.”
“허허허. 우리 며느리, 이름도 예쁘구나.”
말끝마다 아버님, 며느리다.
처음 본 두 사람이 어쩌면 그 소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잘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무환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속이 울렁거려서 저녁 먹은 것이 넘어올 것 같았다.
‘아주 딱딱 맞네, 딱딱 맞아!’
이무환은 도저히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어 번만 더 들으면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
“꼬맹아, 외조부님에게 다녀올 테니까, 박자 열심히 맞추고 있어라.”
“예, 오빠. 여기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그놈, 애기도 낳을 수 있을 만큼 다 큰 며느리구만, 꼬맹이가 뭐냐, 꼬맹이가?”
“호호호. 아버님, 아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으이그!’
속이 느글거린 이무환은 더 듣지 못하고 바로 방을 나와 사마추경에게로 갔다.
“무환입니다, 들어가도 돼요?”
이무환은 사마추경의 방문 앞에서 안에 대고 물었다.
전호의 대답이 들렸다.
“들어와라, 무환아.”
안으로 들어가자, 전호와 나이를 알 수 없는 노도장이 사마추경의 침상 앞 탁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노도장은 머리와 수염은 물론 눈썹까지 눈처럼 하얬다. 신선이 정말로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분이 검운장의 최고 어른이라는 천태도장이신가? 부상을 입으셨다더니, 다행히 심해 보이지는 않는군.’
이무환은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사마추경의 숙부가 된다면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광룡처럼 대충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무환입니다.”
천태도장은 하얀 눈썹을 들어 올리고 담담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눈빛이 경악으로 물결쳤다.
‘허어, 어찌 이런 아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절대의 경지에 이른 그다. 그런 자신의 능력으로도 이무환이 지닌 경지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최소한 자신과 같은 경지라는 말.
이제 스물이 갓 넘은 이무환을 생각하면 열 번을 경악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천태도장이 바라보기만 하자 이무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외조부님의 몸을 좀 보고 싶은데요.”
“네가?”
“예, 마침 괜찮은 약이 있거든요.”
어지간한 약으로는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그러나 건너편 방에서 벌어진 일을 얼핏 들은 터였다. 그토록 좋은 약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마음대로 해라.”
이무환은 천태도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마추경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회칠을 한 듯 하얗게 변한 사마추경의 얼굴이 코앞에 보였다.
손을 뻗어 손목을 잡아보았다.
그토록 따뜻했던 외조부의 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의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반드시 일어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외조부님.’
이무환은 폭령잠마영단을 한 알 꺼내서 사마추경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영단은 침과 섞이며 조금씩 스며들 것이었다. 아직은 약효를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몸이 쇠약한 상태. 차라리 그렇게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 나을 듯했다.
사마추경의 입안에 영단을 넣은 이무환은 맥문을 잡고 사마추경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런…….’
사마추경의 상태는 생가가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그나마 죽지 않고 버틴 것도 천태도장 덕분인 듯했다.
사마추경의 손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혈맥이 일곱 군데나 막혔다. 그나마도 너무 약해서 강제로 뚫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폭령잠마영단의 약효뿐.
‘최소한 약해진 혈맥 정도는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리만 된다면 막힌 혈맥을 강제로 뚫을 수 있을지 몰랐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사흘 정도면 일단 혈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호오, 그래?”
“예. 본격적인 치료는 그 후에 하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
“혈맥만 강해진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이무환은 폭령잠마영단 한 알을 꺼내 천태도장에게 내밀었다.
“도장님도 드셔보세요. 약한 내상도 오래두면 좋지 않아요.”
천태도장은 흥미가 인 눈빛으로 단약을 받아 들었다.
증손자뻘인 이무환이 주는 거라 그런가?
기분이 좋아진 천태도장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고맙구나.”
“드시고 운기를 해서 약효를 퍼뜨리세요.”
이무환의 재촉에 천태도장은 단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일각 후.
간단히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뜬 천태 도장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어떤 약인데 이리 효과가 좋단 말이냐?”
“아마 이틀 정도 지나야 본격적인 약효가 나타날 거예요.”
“허어…….”
단지 복용하고 한 번 소주천 한 것만으로도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겨우 초기 약효라니.
연단에 대해 전혀 무지하지 않은 천태도장으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이무환이 궁금해하던 것을 하나 물어보았다.
“저, 혹시 성하루의 용아라는 아이 아세요?”
“용아라고? 물론 알다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아이를 아는 것이냐?”
“섬에서 나올 때 성하루를 들렀었거든요.”
문득 용아가 준 옥패가 떠올랐다. 용아는 그것을 천태산에서 얻었다고 했었다. 천태도장이라면 알지도 몰랐다.
“아, 그리고 용아가 준 옥패가 하나 있는데…….”
용하게도 옥패는 아직도 그의 품에 있었다.
이무환은 옥패를 꺼내서 유지를 벗기고 천태도장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세요? 용아가 천태산의 동굴에서 얻었다고 하던데요.”
천태도장은 옥패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쯔쯔쯔,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질기기도 하구나. 지 어미가 남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감춘 것을 아들이 찾다니…….”
이무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이게 용아의 어머니 것이란 말이에요?”
천태 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그 아이가 목숨만큼이나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한데 용아가 커가는 걸 보더니, 며칠을 고민한 끝에 몸에서 떼어놓더구나.”
“이상하네. 분명 용아가 자기 어머니에게 이걸 보여주었을 텐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요?”
천태도장은 옥패를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주 똑똑한 아이야. 어쩌면… 보여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지 어미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제야 이무환은 용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신에게 청부를 하면서 옥패를 내놓을 때 말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단순히 금전적 가치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듯했다.
‘자식, 그럼 그냥 말하지…….’
이무환은 옥패를 다시 유지로 쌌다. 아무래도 상산에 가면 돌려줘야 할 것 같았다.
2
설검원을 나온 이무환은 광룡사위와 함께 풍운대를 찾아갔다.
남궁산산은 이충량과 찰떡처럼 붙어 있어서 굳이 따로 떼어낼 궁리를 할 것도 없었다.
이무환이 광룡사위와 함께 풍운대로 가자, 그러잖아도 조용하던 풍운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악귀가 나타났다!
일백이 넘는 풍운대원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삼십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이무환이 떠나기 전부터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무환을 알아보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나마 그들은 이무환이, 악귀가 구룡성을 들어서 뒤집어 버린 광룡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일 그것마저 알았다면, 굳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들 어디 갔나?”
이무환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하며 걸어나왔다.
“전부 저세상에 갔다네.”
풍운대 삼조 조장 한초강이었다.
“그래도 한 조장은 살아남았군.”
“제길, 나야 운이 좋아 살았지만…….”
대답하던 한초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복승이 나를 살리려다 죽었지. 빌어먹을, 그 자식 내가 꽤나 욕했는데…….”
그 욕심 많은 차복승이 한초강을 살리려다 죽었다니. 의외라면 의외였다.
‘하긴, 세상에는 가끔 의외의 일이 일어나는 법이지. 겉으로만 보이는 게 전부 진실이 아닐 때도 있고…….’
이무환도 입맛이 썼다.
사실 그도 차복승을 싫어했다. 그런데 그가 한초강 대신 죽었다는 말을 듣자, 혹시 자신도 겉으로만 보고 남을 평가한 것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주는?”
“안에 계시네.”
“아직도 풍운대를 맡고 있나?”
한초강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 마음이 있나 보더군.”
“흥, 그래야겠지.”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조용히 처리하기는커녕 검운장을 전쟁의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당연히 책임을 통감해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는 나철위가 보였다. 이미 호위에게 말을 들었는지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이무환은 터벅터벅 걸어가 나철위의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왔나?”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거죠?”
이무환이 대뜸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나철위가 자조의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 내 잘못이네. 적을 너무 얕보고 쉽게 덤볐어.”
“처음에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바로 고쳤어야죠.”
“그럴 여유가 없었네. 다 변명에 불과하지만.”
“모두 몇 명 와 있죠?”
“삼차에 걸쳐 육백이십 명이 와서 이백칠십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네. 남은 사람은 삼백오십 정도지.”
“검운장과 다른 문파에서 보낸 무사들까지 모두 합쳐야 육백이 겨우 맞춰지겠군요.”
“아마 그 정도 될 거네. 해서 항주 인근의 나머지 문파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네. 아마 일이백은 더 모여들 거라고 보네.”
“그 인원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나요?”
나철위가 떫은 땡감을 베어 문 표정을 지었다.
“겨우 방어나 할 수 있을 뿐이네.”
“맹에서의 지원은요?”
“당장은 힘들 것 같네. 놈들이 금천신문과 손을 잡고 안휘를 위협하는 바람에……. 후우, 그나마 제때에 이백의 지원을 보내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네.”
“흥, 그럼 이곳 사람들은 몰살을 각오해야겠군요. 저들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수들이라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네.”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요? 설마 저들이 적의 일부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네만, 저들도 강소를 비우고 대대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네.”
강소를 비우면 안휘에 있는 정천무림맹 고수들이 움직일 것이다. 적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일견 옳은 말인 듯했다. 그러나 이무환의 생각과는 그 근본부터가 달랐다.
“대대적으로 움직이지 못할진 몰라도, 최고의 정예가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무환이 계속 몰아붙이자, 나철위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도 몇 명의 가세로 뒤집힐 정도로 약하진 않네.”
쾅!
이무환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젠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꼴이 되죠!”
문가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이 조장!”
“지나치지 않소?!”
하지만 이무환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나철위를 다그쳤다.
“상대편에 절대고수 둘만 있었어도 저번에 끝장났을 걸요? 안 그래요?”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절대고수가 어디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하던가?
“설령 그런 고수가 있다 하더라도 쉽게 빼낼 수 없을 거네.”
“아주 만사태평이시군.”
이무환은 나철위를 째려보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제야 나철위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단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일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네.
“정천무림맹이 주도해서 말이죠?”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검운장을 무시하면 안 되죠. 만일 계속 그럴 거면 밖으로 나가서 객잔을 잡든지 말든지 하쇼.”
“이보게, 이 조장.”
이무환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무시하지만 말란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으음, 그 점은 최대한 조심하도록 하겠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해주쇼. 안 그러면…… 제가 화를 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