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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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8화
218화
비록 정문을 지키고 있다지만, 그들은 정천무림맹의 정예, 천의단의 단원이었다.
구파오가와 비교도 안 되는 세력인 검운장의 일개 조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이 침중하게 가라앉은 터, 그들은 잘되었다는 듯 이무환을 자극했다.
이무환은 턱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후회할 텐데?”
“우리 걱정 말고 자신 있으면 해보게. 대신 이기지 못하면 이 앞에 무릎 꿇고 있어야 하네.”
“그렇게 원한다면야…….”
이무환은 피식 웃으며 슬쩍 고갯짓을 했다.
“멋쟁이, 힘으로 열고 들어가라는데? 어디 혼자 열어봐.”
“예, 단주.”
영호승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앞으로 나선 후에야 두 명의 천의단원은 영호승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표정이 굳어졌다.
영호승이 이무환을 조장이라 부르지 않고 단주라 부른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영호승은 앞으로 나섬과 동시 검을 뽑지도 않고 두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처음에 막아섰단 자가 소리쳤다.
“헛! 조심하게, 정오!”
그사이 영호승은 초연십이식을 맨손으로 펼치며 정오라는 자를 덮쳤다.
영호승과 정오의 손이 얽혀들었다 싶은 순간, 영호승의 주먹이 찰나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퍼벅! 우당탕!
튕겨진 정오의 몸이 정문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영호승은 정오를 튕겨내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서 신형을 돌리며 나머지 한 사람, 허종목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대경한 허종목이 두 손을 휘두르며 영호승의 공격을 막았다.
이무환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한 영호승이다. 그에게 허종목의 방어는 온통 허점투성이였다.
단 세 번의 주먹이 오가기도 전.
퍼억!
“컥!”
옆구리와 가슴을 맞은 허종목이 입을 딱 벌리고 뒤로 나뒹굴었다.
영호승은 널브러진 채 버둥거리는 두 사람을 놔두고 쪽문을 밀었다.
“열었습니다, 단주.”
“이곳에서는 조장이라고 불러, 멋쟁이.”
“예, 조장.”
그때 정오가 기둥을 잡고 일어서며 영호승을 올려다보았다.
“당, 당신은 누구요?”
영호승이 목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풍운대 십삼조 조원 영호승.”
이무환은 곧장 검정당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그의 찌푸려진 이마는 펴질 줄을 몰랐다.
적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했다. 정천무림맹과 항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 겨우 적의 공격을 막아냈는데, 그 와중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런데 말로만 들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안 좋게 느껴졌다.
고색창연하던 건물들이 여기저기 부서지고, 심한 건물은 반파되어 흉한 몰골을 드러낸 상태였다.
‘개자식들, 집은 왜 부숴?’
신룡부의 원로원 건물이나, 천마교의 사령전과 신마전을 부술 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검운장의 건물이 부서진 것을 보니 부아가 끓었다.
이무환은 황폐한 광경이 보일 때마다 이를 갈며 걸음을 옮겼다.
밤이어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보이는 자들 중 반 이상이 정천무림맹의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얼굴이 펴진 사람이 없었다.
하긴 수백 명이 죽었다. 피비린내도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고. 상을 치러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했다.
그때 누군가가 이무환을 알아보고 아는 척했다.
“어? 혹시… 악귀?”
고개를 돌리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자가 보였다. 철검대의 우청학이었다.
“안녕하쇼?”
이무환은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청학은 내상을 입었는지 창백한 얼굴이었는데,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아, 안녕하셨소? 임무 때문에 멀리 갔다고 들었는데……. 언제 돌아온 거요?”
“방금 돌아왔죠. 근데 분위기가 별로군요.”
우청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며 잇새로 불만을 토로했다.
“젠장. 꼴도 꼴이지만, 정천무림맹이 완전히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소. 검신각과 검향각은 물론이고, 이당, 삼대의 거처까지 그들 차지가 되었소. 도대체가 이곳이 검운장인지, 정천무림맹의 지부인지 모를 지경이오.”
그 정도면 검운장의 건물 반 이상을 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
검운장의 실권이 정천무림맹에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칼눈에게 대충 듣기는 했지만, 막상 코앞에서 대하자 짜증에다가 화까지 났다.
‘제길, 당장 확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그나마 검운장이 망하지 않은 게 정천무림맹 덕이란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무환은 화를 속으로 삭이며 우청학에게 물었다.
“노장주님과 장주님이 그대로 놔두고 있단 말이오?”
우청학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대답했다.
“장의 어른들이 거의 다 부상을 입은 판인데 그럼 어떻게 하겠소? 정천무림맹마저 떠나면 당장 끝장인데 말이오.”
검운장의 무사 중 반이 넘게 죽었다. 나머지도 부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고. 정천무림맹의 행태가 아니꼽긴 해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무환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들에게는 검운장이 하찮게 보이겠지. 곧 달라질 테지만.’
우청학은 갑자기 밀려드는 정체 모를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빠.”
남궁산산이 이무환을 부르며 슬며시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무환은 그제야 무형의 기운을 거두고 우청학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막을지도 모르니까, 우 조장이 앞장서시오. 검정당으로 갑시다.”
“거, 검정당으로?”
반문을 하고서야 이무환과 검정당의 관계를 떠올린 우청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소, 이 조장.”
생각대로 정천무림맹의 무사 몇이 이무환 일행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철검대 조장 복장을 한 우청학이 앞서가자 별다른 질문 없이 그냥 돌아섰다.
이무환은 검정당 앞에 도착해서야 우청학에게 몇 마디 일렀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몇 모아놓으쇼.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가 바로 알아야 되니까.”
우청학도 안휘혈로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터였다.
절정고수들이 악귀 손에 박살났다 하지 않던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일 것 같았다.
“알겠소이다, 이 조장.”
우청학은 오랜만에 활짝 펴진 표정으로 대답하고 철검대로 돌아갔다.
이무환은 우청학이 돌아간 후에야 검정당 안으로 들어갔다.
검정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단순히 조용한 것이 아니라, 어둠에 눌린 것마냥 분위기마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무환은 일행과 함께 곧장 전호의 거처로 갔다.
전호가 안에 있는 듯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무환은 숨을 들이쉬고 전호를 불렀다.
“전 숙부, 무환입니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는데도 목소리가 살짝 떨려나왔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우당탕탕!
“누구라고?!”
전호가 방문을 부술 듯이 밀치며 나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무환이 그런 전호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여전하시네요.”
“이, 이, 이런… 정말 네가 왔구나.”
더듬거리는 전호의 커다란 눈에서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무환도 눈에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늦기는……. 아직 안 늦었다. 아암, 안 늦었고말고.”
전호는 먹먹한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허둥거리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참, 네 아버지. 여기에 왔다.”
“알고 있어요.”
“그럼… 다친 것도 아냐?”
“예, 그런데 어디 계시죠?”
전호의 방 안에는 없었다. 아니, 전호의 방뿐만이 아니라 검정당 안에서 아버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설검원에 있다.”
설검원이라면 사마추경이 머무는 별원을 말함이다.
“그럼 외조부님과 같이 계십니까?”
순간 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긴 한데… 후우, 노장주님도 많이 다치셔서…….”
“외조부님도 다쳤다고요?”
“천태도장께서 응급처치를 해주신 덕에 위급한 경우는 넘겼다고 하더구나.”
마음이 다급해진 이무환은 전호에게 물어보려던 것을 잠시 미루었다.
“지금 가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제8장. 뿔난 광룡
1
“아버지!”
이충량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상이 낫지 않아 내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조차도 이무환의 등장으로 인한 충격만은 못했다.
‘와, 왔다! 무환이가 왔어! 이거 큰일이군!’
얼마 전, 사마강이라는 외조카가 돌아와 말했다. 옥이가 상산에 있다고.
그걸 듣고 얼마나 안도했던가.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옥이의 행방이 아니었다.
과연 무환이가 자신과 옥이 엄마의 관계를 인정해 줄까?
그냥 아버지의 위치로 밀어붙여?
정 안 되겠으면 둘이서 도망가 버릴까?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이무환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무환은 이충량이 침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휴우, 내상이 심하긴 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군.’
누워서 일어나기도 힘들다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 듯했다. 폭령잠마영단 한 알이면 거뜬히 나을 것처럼 보였다.
본래는 그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안정되자 이무환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천하에 적수가 몇 없다는 분이 그게 뭐예요?”
울면서 안겨들지는 못할망정 핀잔을 주는 아들이다.
이충량은 조금 전까지의 불안을 싹 날려 버리고 한 소리했다.
“이놈아, 그게 지금 아파 죽게 생긴 아버지에게 할 소리냐?”
“죽긴 왜 죽어요? 별것도 아닌 내상인데. 저는 그 정도 내상은 만날 달고 살았다고요.”
“흥, 그거야 무공을 익히다 입은 내상 아니냐? 나는 적과 싸우다 입은 거고.”
“나는 뭐 적과 싸우다 다치지 않은 줄 알아요? 아버지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요!”
“좌우간 내 덕분에 강해져서 멀쩡하게 돌아왔잖아!”
“그게 어디 아버지 덕분인가요, 뭐?”
“그럼 내 덕분이지! 이놈아, 이제 크니까 전부 네놈이 잘나서 그런 줄 아냐?”
“쳇, 이렇게 멀쩡한 줄 알았으면 천천히 올 건데, 괜히 정신없이 왔네.”
이무환은 구시렁거리며 이충량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이충량이 움찔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차, 이놈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데…….’
그때 남궁산산이 안으로 들어오며 이무환에게 한 소리 했다.
“오빠, 아프신 아버님께 왜 그래요?”
“내가 뭘?”
“사실 아버님 말씀이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아버님이 계시니 오빠도 있는 거구요.”
“너는 잘 몰라, 내가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물론 저도 들어서 알아요. 그래도 너무 그러면 아버님이 섭섭해 하시죠.”
이무환의 눈이 가자미눈처럼 변해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요 여우가…….’
남궁산산은 이무환을 더 다그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약, 줘봐요. 아버님 드려야죠.”
어차피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이무환은 머뭇거리며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단약 한 알을 꺼내 남궁산산에게 주었다.
하지만 남궁산산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다섯 알 드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무환은 구겨진 얼굴로 주머니를 털었다.
“세 알이면 충분해.”
두 알이 더 쏟아져 남궁산산의 작은 손바닥을 채웠다.
그제야 남궁산산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충량을 향해 걸어갔다.
이충량은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신없이 계산을 했다.
‘저 아이가 무환이에게 오빠라고 했지? 분명 내가 난 아이는 아니니까, 강호에서 만났다는 말? 우흐흐흐, 그럼 계획이 성공한 건가?’
더구나 자신의 편을 들고 아들을 나무란다.
나이가 조금 어려 보이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의 눈에는 남궁산산이 천상의 선녀보다 예뻐 보였다.
“끄응…….”
이충량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넘어갔다. 약간은 과장도 있었지만, 아픈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어머,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