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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1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17화

 

217화

 

 

 

 

 

 

 

 

독사눈이 힐끔 이무환을 올려다보았다.

 

“회주님은 누워 계십니다요. 의원 말로는 내장이 터졌다고…….”

 

“맞았어?”

 

“예, 만복루에서 죽은 형제들의 복수한다고 놈들을 찾아다니다가, 거꾸로 놈들에게 걸려서 그만…….”

 

독사눈이 이를 으드득 갈고 째진 눈에서 새파란 살기를 뿜어냈다. 눈빛으로만 따진다면 뒤쪽에 앉아 있는 절대고수들도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지금 칠도회는 누가 이끌지?”

 

“봉화 형님이 이끌고 있습니다.”

 

봉화라면 칠도회주 국자상의 오른팔로, 이무환도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나이는 이제 서른이 갓 넘었지만, 냉철한 판단력과 제법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서 국자상이 아끼는 자였다.

 

그라면 손발을 맞추는 데 머리를 두 번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칼눈 말이지? 가서 불러와라. 내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 음식 좀 가져다주고.”

 

독사눈이 스무 명이 넘는 광룡단원들을 둘러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요즘 장사가 안 되어서 좋은 재료가 별로 없는데요.”

 

“있는 대로 가져와. 설마 요깃거리 할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

 

“예, 악귀대형. 그럼…….”

 

이무환이 손을 들어 독사눈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그냥 대형.”

 

“예, 대형.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아, 잠깐만.”

 

이무환은 돌아서려는 독사눈을 세워놓고, 품속에 손을 넣어 한참을 뒤진 다음에 전표 한 장을 꺼냈다.

 

“이거, 음식값이다.”

 

독사눈은 이무환이 내민 전표를 받아 들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항상 현찰로만 거래하던 그다. 전표라는 것은 말로만 들었을 뿐. 

 

그로선 이무환이 준 전표가 정말 돈인지 의심부터 들었다.

 

이게 진짜 전표라는 걸까? 혹시 위조한 것 아닐까?

 

“저기… 여기에 금(金)… 일백(一百)… 이라고 쓰였는데요?”

 

독사눈이 한참 만에 물었다. 그 세 글자 외에 다른 글자는 알 수가 없었다.

 

이무환이 목에 힘을 주고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커험, 황금 백 냥짜리다. 금안전장에 가면 바꿔줄 테니, 보태 써.”

 

독사눈의 째진 눈이 한껏 커졌다.

 

그는 전표와 이무환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은자도 아니고, 황금 백 냥? 악귀가 그렇게 큰돈을 우리에게 준다고? 내가 속을 줄 아나? 지미, 힘없는 게 죄지.’

 

그래도 일단은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맙습니다, 대형. 바로 칼눈 형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음식이 나왔을 즈음, 독사눈이 봉화라는 자를 데려왔다.

 

그는 실눈에 입술까지 얇았는데, 전보다 볼도 말라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봉화, 칼눈은 이무환을 보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악귀대형.”

 

이놈이나 저놈이나 보는 사람마다 악귀대형이라고 한다.

 

광룡단원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이무환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광룡이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으면 흑도 놈들이 저렇게 벌벌 길까?’

 

‘어쩐지… 하는 짓거리가 꼭 흑도 놈들이랑 닮았다 했더니…….’

 

‘아버지란 자도 흑도 인물인가?’

 

하지만 이무환은 뒤쪽의 눈길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앉아.”

 

칼눈은 이무환의 옆에 앉으며 남궁산산과 광룡사위를 실눈으로 쓱 훑어보고, 가느다란 눈을 조금 크게 든 후 그 뒤쪽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광룡십조 중 두어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몸이 떨렸다.

 

‘어, 엄청난 고수들이다. 어, 어디서 저런 고수들이……. 악귀가 어떻게 저런 자들과 함께 있는 거지?’

 

그때 이무환이 물었다.

 

“모두 몇 명 남았지?”

 

칼눈은 이무환의 말뜻을 알아듣고 곧바로 대답했다.

 

“다친 사람 빼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칠십사 명입니다.”

 

이무환은 칼눈의 대답을 들으며 엽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엽차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까지 합하면 딱 백이군.”

 

“예?”

 

칼눈의 실눈이 반쯤 벌어졌다.

 

독사눈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백은 되게 좋아하시네.’

 

‘백’을 좋아하는 이무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칼눈에게 물었다.

 

“이 객잔에 방이 몇 개 있지?”

 

“스무 개 정도 있습니다만……?”

 

“흠, 그럼 우리가 지내기에 부족하지 않겠군. 혹시라도 손님이 있으면 다 내보내.”

 

뒤쪽에서 음식을 먹던 광룡단원들은 사레라도 들린 듯 컥컥거렸다.

 

검운장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곳에서 머물겠다고 하는 걸까? 그것도 흑도의 무리가 운영하는 객잔에서 말이다.

 

왠지 불안해진 광룡단원들은 음식 먹는 것도 멈추고, 귀를 바짝 세운 채 광룡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칼눈이 난색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있긴 합니다만…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제대로 대접할 수 있을지…….”

 

“그건 걱정 마. 독사눈에게 선불로 전표를 주었으니까, 일단 그걸 쓰고 모자라면 말해.”

 

칼눈이 의아한 표정으로 독사눈을 쳐다보았다.

 

독사눈이 돌아서더니, 품에서 전표를 꺼내 재빨리 가슴에 대고 문질렀다.

 

진짜든 가짜든, 그냥 내밀 수는 없었다.

 

가짜라 생각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 확 움켜쥐었다. 악귀의 얼굴을 움켜쥐듯이!

 

만일 구겨진 것을 본다면, 이제는 자신의 얼굴이 전표보다 배는 더 이지러진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전표가 얇지 않아서 많이 구겨지진 않았다. 몇 번 문지르자 그럭저럭 반쯤 펴졌다.

 

독사눈은 이무환의 눈치를 보며 칼눈에게 슬쩍 전표를 내밀었다.

 

전표를 보는 순간, 칼눈의 실 같은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황금 일백… 냥?”

 

독사눈의 손이 조금씩 떨렸다.

 

“저… 정말… 입니까, 칼눈 형님?”

 

“그래, 그것도 강남제일의 전장인 금봉전장에서 발행한 것이다. 현금이나 마찬가지야.”

 

독사눈은 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걸 대형께서 주셨단 말이지?”

 

귀가 막혔는지 칼눈의 질문도 들리지 않았다.

 

쿵!

 

독사눈은 털썩 무릎을 꿇고는, 머리로 바닥을 찧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크허헝! 대형! 어리석은 동생이 대형의 큰 뜻도 모르고……. 크허헝! 저는 죽어도 쌉니다요, 대형!”

 

이무환이 독사눈에게 째려보며 웃었다.

 

“크크크, 가짠 줄 알았지?”

 

“으허헝! 예, 대형!”

 

 

 

질질 짜던 독사눈이 울음을 그칠 즈음 이무환이 칼눈에게 말했다.

 

“그 정도면 당분간 지내는 데 부족하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대형.”

 

황금 백 냥이면 은자 이천 냥이다. 한 사람당 하루에 반 냥을 잡아도, 육 개월을 머무를 수 있다.

 

그것도 선불 아닌가.

 

하지만 칼눈은 돈보다 악귀와 악귀의 일행이 자신들의 객잔에 머문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저들만 머물면 누구도 건들지 못한다.’

 

반면에 이무환이 흑도 무리들의 객잔에 머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대표로 호연청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왜 검운장으로 가지 않고 굳이 이곳에 머물려고 하는 것인가?”

 

이무환은 가느다란 냉소를 입가에 매단 채 호연청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가 검운장에 들어가면 적이 알 거 아뇨?”

 

“그러겠지.”

 

“적이 우리의 존재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쇼?”

 

그제야 이무환의 뜻을 깨달은 호연청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남궁산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과연 오빠야. 그건 나도 생각 못했는데.”

 

호연청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반박했다.

 

“하지만 적이 곧 우리의 존재를 알아낼 거네. 사람들이 우리를 봤잖은가?”

 

이무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봤다고 해도 누군지는 모를 거 아뇨? 그 정도만 되어도 검운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적어도 며칠의 여유는 있을 테니까.”

 

그도 그렇다. 호연청은 다시 입을 닫고 이무환과의 말다툼을 포기했다.

 

광룡이 말하는 며칠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며칠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잠풍련과 밀천회가 결정적으로 당한 시일이 몇 달이던가?

 

사우천이 무너진 게 몇 달이던가?

 

아니다. 겨우 며칠 만이다.

 

‘젠장, 그러면 검운장의 무림맹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하면 안 된단 말인가? 수뇌부에만 알리면 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자신이 누군가? 정천무림맹의 총령주다. 검운장에 누가 왔든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광룡에게 끌려 다닐 것인가. 아니면 광룡과 한판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박차고 나가서 정천무림맹을 이끌어야 할 것인가.

 

그가 고민할 때다. 이무환이 몇 마디 덧붙였다.

 

“기왕이면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십쇼. 나 자신부터 속여야 적을 속일 수 있지 않겠수?”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말.

 

호연청은 꿍한 표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광룡과 싸워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니 일단은 참아주마.’

 

‘흥, 누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알고? 당장 가서 어깨에 힘주고 싶겠지?’

 

이무환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는, 상냥한 표정으로 순우경에게 물었다.

 

“지금 마월당의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겠수?”

 

마월당. 순우결이 총괄하는 천마교의 정보 조직을 말함이다.

 

순우경은 당연히 순우결에게 그들을 만나는 방법을 듣고 온 터였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순우경이 이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봐야 고드름에 물기가 맺힌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이무환은 그 차이를 느끼고 마음에 든다는 듯 콧소리까지 내가며 말했다.

 

“흠, 그럼 당신은 식사를 마친 후 그들과 은밀히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쇼.”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절강의 일을 그 정도 상세히 알고 있다면 적지 않은 숫자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들과 칠도회를 비롯한 항주의 흑도 방파를 움직일 경우, 최소한 정보 싸움에서 밀리지는 않을 듯했다.

 

‘개자식들! 어디서 검운장을 치고 아버지를 다치게 해? 내가 왜 악귀라고 불리는지 철저히 알게 해주마!’

 

 

 

이무환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광룡단원들을 방 안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칼눈을 불러 검운장에 대한 것을 자세히 물었다.

 

칼눈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정천무림맹이 흑도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칠도회도 자세한 상황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무환은 칼눈의 이야기가 끝나자, 몇 가지 명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4

 

 

 

이무환은 남궁산산과 광룡사위만 데리고 검운장으로 향했다.

 

원래 남궁산산은 남겨두려 했는데, 그녀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버님이 아프시잖아요. 그럼 제가 옆에서 보살펴 드릴 게요, 오빠.”

 

 

 

물론 이무환도 남궁산산의 속셈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옥이 때문에라도 미리 선보여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을 헤치고 여섯 사람이 나타나자, 정문 앞에 서있던 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온 분들이신가?”

 

정문위사는 둘이었다.

 

검운장의 무사가 아니었다. 가슴에 ‘정(正)’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걸로 봐서 정천무림맹의 무사인 듯했다.

 

이무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댁은 누구쇼?”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문을 해?

 

정문위사는 버럭 소리 지르며 이무환을 다그쳤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정체를 밝혀라!”

 

“정체? 나는 풍운대 십삼조 조장이오. 당신은 누군데 검운장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거요?”

 

풍운대라면 검운장의 오대 중 하나다. 그것도 동안령주 나철위가 대주로 있던 곳.

 

정문위사는 두 눈을 좁히고 이무환을 살펴보았다.

 

“사실인가?”

 

이무환은 품속을 뒤적이더니, 작은 철패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보쇼.”

 

정문위사는 이무환의 손에 들린 철패를 자세히 바라보더니,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함께 온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우리 조원이고, 저 꼬맹이는 내 동생이오.”

 

“훗, 사람이 수백이나 죽었는데 동생이나 데리고 놀러 다니다니. 검운장도 이제 다되었군.”

 

“내가 뭘 하든,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닌 것 같은데?”

 

정문위사는 이무환을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조장이 대단한 지위라도 되는 줄 아나?”

 

“대단한 지위는 아닐지 몰라도, 남의 집에서 문이나 지키는 사람보다는 낫지. 이제 좀 비켜주겠수?”

 

정문위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못 비키겠다면?”

 

그때 정문위사 중 다른 자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장쯤 되면 하찮은 문지기야 힘으로 누를 수 있겠지? 어디 우리를 누르고 들어가 보지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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