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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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6화
216화
“삼십 년간 호광과 안휘, 절강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약조를 해주시죠.”
그 일이라면 굳이 약조까지 할 것도 없었다.
잃어버린 힘을 찾으려면 십 년도 더 걸릴 듯했다. 오히려 구룡성이 강서로 들어오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광룡이 있다는 절강은 더더욱 갈 마음이 없었다.
“걱정 말게, 약속하겠네.”
“그리고 황금 만 냥의 금전적 보상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뭐 나중에 확인해보면 아시겠지만, 구룡성도 그 정도 돈을 내놓았죠.”
물론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황금 일만 냥. 천마교의 재건에 엄청난 돈이 들어갈 걸 생각하면 부담이 전혀 없는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주지 않으면 더한 요구를 할지도 모르니까.
상대가 광룡 아닌가 말이다.
“알겠네. 그리하지.”
순우천이 깎지도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자, 이무환은 쫙 찢어지려는 입에 힘을 주었다.
‘우흐흐흐흐. 죽은 사람들을 위해 쓴다고 해도 많이 남을 거야. 집을 좀 더 크게 지을까?’
그때 순우천이 말했다.
“항주로 갈 때 저 아이도 데려가게.”
이무환은 순우천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거기에 순우경이 있었다.
“왜요?”
“그쪽이 하도 시끄러워서 본 교의 사람들이 제법 가 있네. 물론 정보를 얻기 위해서지. 저 아이를 보내서 그 사람들을 철수시킬 생각이네.”
굳이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냥 전서만 보내면 될 텐데?
이무환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순우결이 재빨리 한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이 기회에 세상을 구경하고 오라 했네. 항주라면 구경할 것이 많잖은가? 검운장이 어렵다는데 어쩌면 자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겸사겸사 보내는 걸세.”
세상 구경을 못해봤다고 했다. 한 번쯤 세상 구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순우결의 말대로 무공이 강해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이리저리 주판을 두들겨 본 이무환은 순우결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경비는 따로 주는 거죠?”
순우천은 물론이고, 순우결과 순우진성, 구마신 중 세 사람의 눈에 지독한 놈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십만 냥이나 뜯어가면서 경비를 달라고?
오직 순우경만이 묘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7장. 악귀대형, 항주에 돌아오다
1
만겁궁과 황산검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무환은 구룡성 사람들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설강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는 그렇군. 우리도 항주까지 따라가겠네.”
이무환은 속으로 기분이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았다.
“뭐, 그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고는 철우평을 돌아다보았다.
“철 대협은 부상자를 데리고 먼저 돌아가시죠.”
“알겠네. 그렇게 하지!”
철우평은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러진 것쯤은 이제 다 잊은 듯했다.
“아, 그리고 이것. 한장씩 받으세요.”
이무환은 만겁궁과 황산검문, 구룡성에 황금 천 냥의 전표를 나누어 주었다.
짜디짠 이무환이 엄청난 거금을 내놓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정말 미친 것 아닌가, 가짜 전표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이무환은 호탕하게 웃으며 빨리 받으라며 전표를 건넸다.
“하하하하, 제가 쏠 때는 쏘는 사람입니다. 함께 고생했으니 받을 자격이 있잖습니까? 더구나 돌아가신 분들도 계신데.”
솔직히 아까웠다.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닌가 몇 번이나 망설였다. 하지만 본래부터 자기 돈도 아니고, 사망자까지 난 만큼 아낌없이 쏘았다.
그래도 안 받으면 회수하려고 했는데, 이무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잽싸게 낚아챘다.
“뭐 자네 마음이 그렇다면 받겠네.”
“어쨌든 고맙군.”
‘음, 빠르군.’
그때였다.
“우리는 안 주나? 우리도 목숨을 걸고 싸웠네만.”
이무환이 구룡성과 만겁궁과 황산검문만 주자 호연청이 넌지시 물었다.
돈이 욕심나서가 아니라 차별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사실 그쪽은 안 줘도 되는데,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여기 있수.”
이무환은 무지 아깝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일천 냥을 주었다. 어쨌든 그들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안 주면 불만이 쌓일 터, 검운장을 위해서라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실컷 부려먹으면 되지 뭐.’
사천 냥을 이무환은 나머지 육천 냥은 물구나무를 서도 빠지지 않도록 품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다행히 일만 냥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순우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 아예 이 길로 빠져도 되겠어.’
2
천마교를 떠난 이무환은 곧장 무이산을 벗어났다.
일행은 밀천회에서 호연청과 황보광, 소천득, 헌원숭, 모용상명, 하후영, 원효종 등 일곱 명. 구룡성에선 무설강, 제갈신걸, 공손척, 유철상, 엽상, 종리난경, 신기영, 화무결, 동방현, 혁무기, 나후령, 금철광 등 열두 명.
그리고 이무환과 남궁산산과 광룡사위에 순우경까지 모두 스물여섯 명이었다.
그런데 막 무이산을 벗어난 후 작은 고개를 넘어갈 때였다.
고개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명위종이었다.
“어? 웬일이오?”
이무환이 반색하며 묻자 명위종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다는 말쯤은 해야 할 거 같아서 왔소.”
그는 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공을 인정받아서 명가의 장원을 되찾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석이 된 천마교 간부 자리가 어디 한두 개인가? 아마 그 자리 중 하나는 그의 몫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상당한 고위직 자리로.
그 모든 것이 이무환 덕분이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하하하, 그거야 명 형이 생각을 바꿔서 그리된 건데, 뭐.”
“우리 명가는 영원히 당신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오.”
“잊으면 안 되죠. 그렇죠?”
명위종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잘 가시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찾아갈 테니 술이라도 한잔 나눕시다.”
“무이산에 좋은 약초가 많이 나온다던데, 기왕 선물을 가져올 거면 그런 걸로 가져오쇼.”
끝내 명위종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리다.”
그냥 장난처럼 한 말이었다. 하지만 명위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이산을 뒤지다 보면 광룡의 마음에 드는 괜찮은 약초가 있겠지.’
누가 알았으랴. 훗날 그가 무이산을 뒤지다가 기연을 얻게 될 줄을.
어쨌든 그렇게 이무환은 명위종과 헤어지고, 곧장 절강으로 향했다.
3
무이산을 떠난 지 사흘 후, 난계(蘭溪)에 도착한 이무환 일행은 배를 한 척 통째로 빌려서 전당강을 타고 항주로 내려갔다.
항주까지 뱃길로 사백 리.
쉬지 않고 흘러간 배는 하루 반이 지나 어둠이 깔릴 무렵, 일행을 항주의 선창에 내려주었다.
배에서 내린 이무환은 곧장 선창을 빠져나갔다.
그때 저만치서 눈치를 보며 지나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이는 이십대 중반 정도였는데, 얼굴에는 ‘나 건달이요’라고 쓰여 있었다.
‘저것들이 겁먹고 다니는 거 보니까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군.’
그들을 본 이무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차피 밤이 되어가는 시각. 식사를 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거기다 정보까지 얻으면 더 좋고. 검운장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무환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어이, 우리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
두 청년은 힐끔 이무환 일행을 보고는, 창백해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무환이 좀 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달랬다.
“두어 가지 물을 테니 그것만 대답해 주면 돼.”
이번에는 조금 먹혔는지 두 청년 중 키가 작은 청년이 물었다.
“뭘 말입니까요?”
“혹시 칠도회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치, 칠도회요?”
“어. 전에는 돌아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안 보이네?”
“항주의 흑도 방파는 요즘 활동을 거의 접었는데요?”
“접어? 왜?”
“정천무림맹이 접으라고 해서…….”
“정천무림맹이? 별 웃기는 것들이네. 지들이 뭔데 남의 동네 와서 영업을 방해하는 거야?”
이무환의 말에 뒤쪽의 밀천회 사람들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정천무림맹이 졸지에 길거리 건달패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무환은 그들의 반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접었어도 사람은 있겠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어디 있지? 안내해 봐.”
키가 작은 청년이 키 큰 청년을 바라보았다.
키 큰 청년이 말했다.
“저희가 알려 드릴 테니 그냥 공자님들만 가시면…….”
이무환이 키 큰 청년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빨리 앞장서. 시간없으니까.”
“고, 공자님, 잘못하면 저희가 죽습니다요.”
“걱정 마. 어떤 놈이든 당신들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이무환이 그렇게 말해도 두 청년은 울상이 된 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영호승이 나섰다.
“자네들, 검운장의 악귀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
키 큰 청년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검운장의 풍운대 십삼조장 악귀 말입니까요? 항주에서 흑도물 먹고사는 놈치고 악귀대형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요?”
“그래? 그런데 왜 저분 말을 씹는 거지?”
“예? 뭘요?”
“자네가 방금 악귀대형의 말을 씹었잖아?”
순간 두 청년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 그, 그럼… 저분이…….”
이무환이 키 큰 청년의 어깨를 턱 짚었다.
“나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어. 그러니 어서 가기나 하자고.”
두 청년이 안내한 곳은 항주의 서문로에 있는 천당객잔이었다. 그곳은 본래 칠도회의 일곱 개 지부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총단이 문을 닫은 바람에 임시 총단처럼 사용하는 곳이었다.
이무환은 ‘천당객잔(天堂客棧)’이라 쓰인 깃발을 보고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깃발의 글씨체가 국자상체였다.
“쯔쯔, 돈 좀 주고 다른 사람에게 써달라고 하지, 하여간 고집은…….”
한참 번잡해야 할 시간인데도 객잔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흑도의 무리들이었다.
그런 객잔에 이십여 명의 손님이 들어가면 반겨야 당연했다. 한데도 점소이나 객잔 주인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이봐, 여기 손님 안 받아?”
이무환이 소리치자 점소이 하나가 멈칫거리며 다가왔다.
이무환은 일행을 향해 손짓하며 자리를 권했다.
“뭐 하쇼? 우리 여기서 밥이나 먹고 갑시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점소이들이 여전히 머뭇거리며 주문을 받았다.
이무환이 길게 칼자국이 난 점소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 뺨에 난 자국을 보니까, 칼자국의 얼굴이 떠오르는군.”
“칼… 자국요?”
“뭐, 만복루에서 사팔뜨기하고 죽었다고 하니까 이제 볼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점소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 어떻게 그분들을 아십니까요?”
“전에 나를 대형이라고 부르면서 따랐거든.”
“대… 형이요?”
이무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 검운장의 악귀야.”
점소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으허허헝! 악귀대형!”
독사눈이 철퍼덕 엎어지더니 통곡을 했다.
“뚝!”
그러다 이무환의 한마디에 눈물을 뚝 멈췄다.
이무환은 독사눈이 째진 눈에서 눈물을 감춘 다음에야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천무림맹에서 수상한 자들이 항주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면서 흑도의 활동 정지를 명령했습니다요. 보이면 무공을 폐지시킨다고 하면서 말입니다요.”
흑도가 괜히 흑돈가?
―그럼 우리는 굶어 죽으란 말인가? 농담이겠지.
그렇게 반항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정천무림맹의 명령은 빈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쌍도회하고 귀부방의 무사들 이십여 명이 술에 떡이 되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정천무림맹의 순찰에 걸렸다. 그리고 그날부로 모두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날뿐이 아니었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은 수상한 무리들이 보이면, 보이는 족족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개중에는 풍운의 꿈을 안고 항주에 들린 삼류무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흑도의 건달들이었다.
“그 후부터 항주의 흑도 문파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요.”
“흠, 그래? 회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