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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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2화
212화
“이, 이보게, 대체 무슨 일인데……?”
순우결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이무환은 그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고저 없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 때 가더라도 일은 완전히 끝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간다? 광룡이? 어딜?
순우결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항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곳의 사정을 듣더니 사람이 확 변해 버렸다. 특히 이충량이라는 이름에.
결론은 하나다.
광룡이 항주로 가려고 한다. 그것도 지금 바로!
그제야 순우결은 항주에 대해 알려준 걸 후회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광룡단이 떠나면 약간의 우세가 한순간에 틀어질 터. 절대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일을 끝내고 가겠다며 다시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건가?”
“사람을 다 모아주십시오. 시간이 없으니 단번에 끝장을 내죠.”
순우결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었다.
너무 급박하긴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뿐.
‘어쩔 수 없군. 그 아이를 써먹어야겠어.’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이 있다. 말리고 싶었지만, 잘하면 최후의 순간에 반전을 꾀할 수 있어 못 이긴 척 방관했다.
그런데 마침내 그가 원한 순간이 다가온 듯했다.
“알겠네. 내 최대한 빨리 사람들을 모으지.”
이무환은 그 말만 듣고 바로 몸을 돌렸다. 그도 광룡단을 모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순우결은 이무환이 방을 나가려 하자 다급히 물었다.
“이보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 대체 이리 서두르는 건가?”
이무환은 방을 나서며 나직이 말했다.
“이충량이라는 멍청한 분이 제 아버지거든요.”
순우결은 이무환이 나간 뒤로도 멍하니 방문만 바라보았다.
검운장의 이충량이 광룡의 아버지?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빌어먹을! 절강에 가 있는 놈들에게 절대 허튼짓 하지 말고 정보만 모으라고 해야겠군.’
5
갑자기 이무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타나자 광룡단도 잔뜩 긴장했다.
저놈이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거의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무환은 그 어느 때보다 정상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곳의 일을 끝내고 곧바로 절강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남궁산산은 물론이고, 영호승 등 광룡사위와 엽상, 종리난경, 무설강, 제갈신걸 등은 이무환이 왜 항주로 가려는가 하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말을 하는 걸까?
모두가 궁금해 할 때다. 이무환의 눈이 엽상을 향했다.
“눈발, 혹시 나에게 숨기는 거 없어?”
“예?”
“있어, 없어?”
엽상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제가 뭘…….”
“항주에서 벌어진 일. 알고 있었어, 모르고 있었어?”
담담히 묻는다. 그래서 엽상은 더 겁이 났다.
그러나 거짓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항주의 일을 듣고 온 듯했다.
“잘은 모르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언제?”
엽상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무, 무령에서… 얼핏 들었습니다.”
“근데 왜 말 안 했지?”
“말씀드리면… 갑자기 떠나 버릴 것 같아서…….”
이무환은 엽상의 이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엽상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에 입도 뻥긋 못했다.
하지만 무설강은 이무환의 의형이다. 그는 갑자기 변한 이무환의 태도를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아우,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건가?”
이무환은 느릿하니 엽상에게서 시선을 떼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다치셨다고 합니다. 부상이 상당히 심한가 봅니다. 해서 이곳의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가볼 생각입니다, 형님.”
“아버님이?”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몇 사람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광룡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강소에 웅크리고 있던 묵운방이 절강을 욕심내고 있는데, 그 바람에 정천무림맹까지 항주에 와서…….”
이무환은 말꼬리를 늘이며 호연청을 바라보았다.
호연청이 불길한 생각을 할 즈음, 이무환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사백의 정천무림맹 고수 중 반 이상이 죽고 검운장 역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오래 머물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호연청을 비롯한 밀천회의 사람들이 모두 이를 악물었다.
호연청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그게 사실인가?”
“제가 아버지의 부상까지 꾸며서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하도 정색을 하고 말하니 호연청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사이 이무환이 무심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순우 군사께는 사람들을 모으라 했습니다. 늦으면 그냥 떠나겠다고 했지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모일 겁니다. 모두 모이면… 정면으로 놈들을 칠 겁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마음이 다급한 것은 밀천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싸움은 천마교에게 맡기고 곧바로 항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오히려 이무환이 시간을 끌면 다그쳐서 서두르자고 해야 할 판.
오랜만에 호연청이 진심으로 이무환의 계획에 찬성했다.
“자네 말대로 하세.”
황보광과 소천득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서 찬성을 표했다.
“이곳을 그냥 놔두고 갈 수도 없으니 하는 수 없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마도 놈들인데, 까짓 거 한바탕 뒤집어놓고 가세.”
그때 이무환이 마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끝까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적의 졸개들은 천마교에 맡길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우천의 수뇌들입니다. 사우천의 수뇌들만 처리되면, 바로 떠날 것입니다.”
“그건 더 마음에 드는군.”
6
“뭐야? 그게 사실인가?”
순우천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순우결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합니다. 해서 지금 놈들과 정면으로 붙을 생각인가 봅니다.”
순우천은 마도의 지존답게 금방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승산은?”
“반반입니다.”
“반반이라……. 훗, 그래도 많이 늘었군.”
순우진성이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숙부, 자칫하면 이겨도 빈껍데기만 남을 수 있습니다.”
“왜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광룡이 그냥 떠나면… 천마교는 사우천의 손에 들어가네.”
“꼭 그런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동안 저희들이 몰래 길러온 힘이 있는데…….”
나름대로 자신이 넘치는 순우진성의 말에, 순우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것까지 다 해서 반반이라고 한 거네. 다만 한 가지 희망은… 광룡이 아직 자신의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네.”
순우진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말… 광룡단의 힘이 그 정도로 대단하단 말입니까? 어제 그들이 백 명이 넘는 적을 해치웠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대장간에 모여 있는 일반 무사들이었습니다. 설마 그걸 가지고 저희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순우결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광룡단에 있는 자들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았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들 중에는… 절대고수가 무려 다섯 명이나 끼어 있다네. 물론 광룡을 빼고 말이야. 그래서 그들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것이야.”
순우진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농담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나도 농담이면 좋겠네. 사실 처음에는 명부신사 헌원숭과 절수 소천득만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개천신권 황보광도 있더군. 문제는 그들이 한 사람을 따른다는 거야. 그리고 그는 또 광룡의 명을 따르고. 후우,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네. 그들의 관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순우진성은 물론이고 순우천조차 어이가 없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순우결이 머리 아플 만했다. 그리고 그들이 빨리 천마교를 떠나기만 바라야 할 판이었다.
한숨을 쉬고 마음을 가라앉힌 순우결이 말을 이었다.
“좌우간 중요한 것은, 광룡단이 지금 떠나면 우리에게 치명적인 손실이라는 거지.”
이제는 순우진성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순우결이 그런 일로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을까.
그때 순우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광룡의 자신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겠군. 좋아,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마다할 것도 없지. 진성아.”
“예, 아버님.”
“내 주위에 사람을 남길 것 없다. 모두 데리고 가라.”
“아버님!”
순우천의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쏟아졌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볼 때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법이니라. 진정한 패자는 한 번에 모든 것을 건 싸움에서 지지 않아야 한다. 알겠느냐?”
순우진성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7
“놈들이 미시에서 신시 사이에 전면 공격을 한다 합니다.”
소요홍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황수인을 노려보았다.
“그게 사실인가? 어제처럼 또 헛된 정보가 아닌가?”
“방금 요랑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천마궁에서 비밀리에 공격 결정이 났다 합니다.”
“그래? 음, 이번에는 확실히 믿을 수 있겠지?”
“어차피 우리 측에서도 전면 공격을 생각하고 있잖습니까? 설령 엉터리 정보여서 그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 해도 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 좋아, 일단 천주께 말씀은 드려보지.”
모용장호는 소요홍의 말을 되뇌며 팔걸이를 쓰다듬었다.
“미시에서 신시 사이라…….”
나이답지 않게 주름살 하나 없는 손에는 두 개의 굵은 녹색 옥가락지가 끼어져 있었는데, 옥가락지 안쪽에는 자그마한 해골이 들어 있었다.
해골은 모용장호가 팔걸이를 쓰다듬을 때마다 괴이하게 모습이 변했다.
소용홍은 최대한 옥가락지에게서 시선을 두지 않으려 했다. 오래 바라보면 자신의 혼이 천주에게 제압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이었다.
‘탈혼사령고루(奪魂邪靈骷髏)……. 저 빌어먹을 것 좀 안 보면 좋겠군.’
그때 모용장호가 말문을 열었다.
“놈들이 미시에 공격한다는 말은 점심을 먹고 시작한다는 말이겠지?”
순우천의 둘째 아들인 순우진혁은 제 부모형제보다 요랑을 더 믿는 어리석은 놈이다. 그런 놈이 요랑의 품속에서 한 말이니 틀림없다고 봐야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훗, 좋아. 사람은 먹을 것을 앞에 두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긴장이 풀어지지. 배가 고픈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야. 잘하면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겠어.”
조용히 듣고만 있던 고후량이 모용장호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언제가 좋겠습니까, 천주?”
“점심 먹기 바로 직전, 오시가 시작되자마자 공격한다.”
제6장. 간단하고, 화끈하게!
1
전면전이 벌어지면 천마교 전체가 전쟁터가 된다. 하기에 이무환은 광룡사위와 엽상, 종리난경, 신기영에게 남궁산산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임무를 맡겼다.
“기문진을 펼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오지 마.”
“알았어요, 오빠.”
남궁산산은 자신 있게 대답하고 이무환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빨리 끝내고 와요.”
광룡사위와 엽상 등은 고개를 돌리고 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쪽.
“최대한 정신없이 몰아쳐야 해요. 알았죠?”
쪽.
“어. 오늘 제대로 미쳐 볼 거야.”
이무환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층의 거처를 나와 일층으로 내려갔다. 진시가 막 넘어가 사시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부상이 심한 사람을 뺀 광룡단의 나머지 인원은 이미 일층의 대전에 모두 모여 있었다.
“다 나왔수?”
이무환은 한마디 툭 던지고 광룡단을 둘러보았다.
평상시와 달리 제법 신중한 표정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더 불안했다.
‘제기랄, 멀쩡해 보이는 게 더 불안하군.’
이무환은 사람들이야 어떤 생각을 하든 말든 뇌정갑을 끼고 묵린도를 툭툭 쳤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수. 그냥 일직선으로 쳐들어가서 놈들의 수뇌를 때려잡는 거요.”
그것만 말하고 입을 다무는 이무환이다.
호연청이 한참만에야 물었다.
“그게… 끝인가?”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그러고는 몸을 돌려 대전을 나섰다.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후드득 떨었다.
‘지미, 내 신세가 어쩌다가…….’
‘오늘만 버티면 제 명을 다 살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갖자,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