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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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1화
211화
청삼중년인, 황수인이 다급히 소요홍을 말렸다.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소요홍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날이 밝은 후 공격이 있을 줄 알고 천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공격을 받았다.
자신이 아무리 서열 삼위의 지위에 있다 해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쳐들어온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
“이미 늦었다.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야! 너는 가서 사령동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내!”
황수인은 어쩔 수 없음을 알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전주!”
2
사방에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충 세어 봐도 백 구가 넘을 듯했다.
그에 비해 광룡단원들은 십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죽은 자는 한 명도 없었고.
흥건한 핏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호연청이 이무환을 바라보며 다그치듯 물었다.
“왜 소리를 쳐서 위험을 자초한 것인가?”
이무환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 바람에 오십 명은 손쉽게 처리했잖습니까? 만약 그들을 먼저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 중 몇 사람은 죽었을 겁니다.”
호연청은 입만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잔머리를 굴리다니.
광룡단 전체의 목숨이 걸린 일만 아니었다면 박수라도 쳐주었을 절묘한 계책이었다.
‘저 자식은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거야?’
그때 이무환의 입꼬리가 묘하게 틀어졌다.
“자, 끝난 것 같으니 그만 갑시다.”
사람들은 돌아간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이무환은 벌써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이무환이 역부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령전이 여기서 얼마 안 되는 거 같던데, 안내하쇼.”
옷을 찢어 팔을 감싸고 있던 역부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령전은 왜?”
“왜는 무슨 왜입니까? 나온 김에 거기까지 정리하려는 거지.”
순간 몸을 추스르던 광룡단원들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무설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그곳을 칠 생각인가?”
“부상자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만 가죠, 뭐.”
“놈들이 대비하고 있을 텐데,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이무환은 냉소를 지으며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네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다급해진 저들은 가까운 곳에 먼저 지원 무사들을 보냈을 겁니다. 아마 사령전에서도 지원 무사들을 보냈겠죠. 그럼 적의 주력 중 하나인 사령전도 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악에 바친 놈들이 전열을 정비하면 더 싸우기 힘들어집니다. 그전에 하나라도 더 무너뜨려야죠.”
무설강은 입을 꾹 닫고 어깨만 으쓱했다.
이무환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역부산을 재촉했다.
“뭐 하쇼? 빨리 가자니까.”
호연청 등 밀천회 사람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반면에 광룡십조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감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마교를 삼키려는 사우천의 무리들을 상대하면서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강하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천하의 누가 한순간에 광룡과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무설강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그것도 제수씨가 말해준 건가?”
“당연하죠. 그 꼬맹이, 진짜 여우라니까요.”
남궁산산이 해준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것까지 말해주면, 그러잖아도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뒤로 돌아설지 몰랐다.
사령전까지는 이 리 정도의 거리였다.
가는 도중에 적을 만나지는 못했다. 제일 외곽에 있다 보니 미처 보낼 여력이 없었던 듯했다. 아니면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든지.
어쨌든 그 바람에 사령전까지 가는 길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광룡단은 거침없이 사령전의 담장을 넘어갔다. 몇 사람이 소리치며 막아섰지만, 그들은 애초에 광룡단의 적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예상했던 대로 사령전에는 평소에 비해 사람이 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지원을 나간 듯했다.
이무환과 광룡단은 단숨에 남아 있던 무사들을 제거하고 사령전을 완전히 난장판을 만들어 버렸다.
그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 데는 반 각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무환은 사령전을 지탱하는 건물 기둥 여덟 개 중 네 개를 부러뜨리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우리도 가서 좀 쉬자고!”
광룡단은 안도의 한숨과 환호를 속으로만 내지르고 재빨리 사령전을 빠져나왔다.
우르르릉…….
사령전의 거대한 건물이 한쪽으로 기운 것은 그들이 떠난 직후였다.
3
한밤의 대급습은 교주파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희생이 적었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광룡단이야 십여 명의 부상에 그쳤지만, 나머지 세 곳에선 삼십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더구나 와중에 구마신 중 독귀마가 죽고, 십팔마종 중 개세마종도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삼백이 넘는 적을 제거한 것에 비하면 희생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날이 밝자 천마교 총단이 통째로 살얼음판에 올려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살기가 안개와 함께 가라앉아 사람들은 입을 여는 것조차 조심했다.
쾅!
팔걸이를 내려친 소리에 거대한 대전이 뒤흔들렸다.
건물을 휘돌던 안개가 출렁이고, 바람이 숨을 죽인 채 신마전을 비켜갔다.
“그따위 놈들에게 이게 무슨 꼴인가?”
핏빛 금포노인의 노성이 울리자 대전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이루어놓은 힘의 이 할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는데도 왜 입을 닫고 있는가?”
그때 고후량이 송곳 같은 눈빛을 쏘아내며 입을 열었다.
“천주, 이렇게 된 거, 한 번에 끝내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번에? 어디 방법을 말해봐라, 고후량.”
“놈들은 지금 기고만장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현저히 약해졌다고 생각하겠지요. 하나 상당한 피해를 보긴 했어도 우리의 힘은 아직 저들에게 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놈들의 마음이 풀어져 있을 때,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보도록 하지요.”
좌중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으음, 부교주의 계획도 괜찮긴 합니다만, 그리되면 양패구상 할 가능성이 다분하외다. 그리되어선 얻는 게 없잖소이까?”
구마신 중 부교주 편에 선 단양마도신(斷陽魔刀神) 장휘의 질문에 금포노인이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함께 죽는 걸 두려워해선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게 본좌의 생각이네. 지금은 전쟁 중이야. 죽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어!”
잠풍련의 야율모궁이 그러한 상황을 염려하다 비참하게 죽었다. 자신은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 모용장호는 야율 늙은이처럼 당하지 않아!’
속으로 각오를 다진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소요홍을 바라보았다.
“요홍, 놈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알아내서 시시각각으로 보고하도록 해라!”
“예, 천주!”
금포노인, 모용장호는 소요홍의 대답을 들으며 고후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놈들의 눈을 걱정할 것 없다! 모두 밖으로 끌어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라고 해! 오늘, 끝장을 본다!”
4
세상이 아무리 심각해도 이무환만은 예외였다.
“우흐흐, 이제 마지막 마무리만 지으면 비룡도로 돌아갈 수 있다, 꼬맹아.”
“자신 있어요?”
“그러엄? 내가 누구냐? 음, 하, 하, 하!”
“호호호, 빨리 가서 옥이 언니랑 오빠 아버지를 뵙고 싶어요.”
옥이 이야기가 나오자 한껏 부풀었던 꿈이 확 쭈그러들었다.
‘끄응, 그러고 보니 옥이가 이해해 줄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제 와 어쩌랴. 꼬맹이가 가슴속에 콱 박혀 버렸는데.
‘쩝, 별수 없지. 당분간 우는 소리 좀 들어주는 수밖에…….’
그때 문득, 엽상을 통해 항주의 소식을 알아보라던 일이 떠올랐다.
‘가만, 천마교도 항주의 소식 정도는 알고 있겠지?’
“단주, 순우 군사께서 지금 바로 오시라 합니다.”
때마침 영호승이 순우결의 말을 전했다.
이무환은 찻잔에 남은 반 정도의 차를 한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우결은 이무환이 맞은편에 앉자 바로 입을 열었다.
“저들의 그동안 감춰져 있던 비밀 무사들이 모조리 밖으로 나온 것 같네.”
그런 일이라면 대환영이었다.
처음부터 천마교의 희생이야 관심 밖이었다. 자신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우천의 괴멸이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군요.”
“저들이 정말 정면 대결을 택할 거라고 보나?”
“그 방법밖에 없을 겁니다.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저들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음, 하긴…….”
순우결은 이마를 찌푸린 채 깊은 생각을 하더니 슬쩍 이무환을 떠보았다.
“설마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밤에 일을 벌인 것은 아니겠지?”
“에이, 제가 뭐 귀신입니까?”
‘귀신은 아니지. 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도 분명하네.’
순우결은 그렇게 생각하며,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듯 이무환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때 이무환이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뭔가?”
“천마교의 정보력이면 항주의 소식에 대해 아는 것쯤 일도 아니겠죠?”
“그야 당연하지. 정천무림맹이 절강에 들어온 것 때문에라도 매일 소식이 들어오고 있을 거네.”
매일 소식이 들어온다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무환은 잔뜩 기대를 가지고 검운장에 대해 물었다.
“혹시 검운장의 소식도 알 수 있을까요?”
“검운장? 그야 당연하지. 요즘 절강을 뒤흔드는 풍운의 중심인데 왜 모르겠나?”
풍운의 중심?
왠지 모르게 느낌이 이상했다.
“그럼… 군사님도 알고 계십니까?”
순우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자네,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내가 누군가? 천마교의 군사가 아닌가? 당연히 모든 정보는 내 손을 통해서 걸러진다네.”
“그럼 말씀 좀 해주시죠. 조금 전에 절강 풍운, 어쩌고저쩌고 하신 것 같은데 말이죠.”
아마 순우결이 이무환과 검운장의 관계를 알았다면 절대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니면 슬쩍 돌려서 말했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그는 있는 그대로 모두 말해주었다.
“아, 그 일? 아직 우리 쪽도 다급해서 손을 못 쓰고 있는데, 항주의 일이 제법 심각하다고 하더군.”
심각!
이무환의 표정도 서서히 심각해졌다.
하지만 순우결은 기억을 더듬느라 미처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정천무림맹에서 오백에 이르는 인원이 왔다고 하네. 그런데도 상대를 이기지 못하고 고전을 하고 있다더군.”
“검운장은요?”
“피해가 많다고 들었네. 적어도 세력의 반은 잃었을 거네. 그나마 예상치 못한 고수들이 몇 있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는 않는 것 같네만, 강소에서 나타났다는 묵운방이 워낙 강해서…….”
“예상치 못한 고수요?”
“우내십존 중 한 사람인 천태도장이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검운장의 큰어른이라는 소문이네. 그리고 이… 뭐라더라? 양충이랬나, 충량이랬나…….”
순간 이무환이 멍하니 순우결을 바라보았다.
‘내,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아니지, 아버지가 비룡도에서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순우결은 이무환의 마음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랜만에 광룡에게 뭔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게 즐겁다는 듯.
“좌우간 그들 덕분에 겨우 버티기는 하는가 본데, 며칠 전 벌어진 대접전에서 그들도 심한 부상을 입었나 보더군.”
찰나, 대경한 이무환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순우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왜 그러는가?”
이무환은 당장 순우결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몸을 바짝 내밀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충량이라는 분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죠?”
“그렇네만.”
순간이었다. 눈앞에서 갑자기 이무환이 사라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쾅!
홱 고개를 돌린 순우결의 눈에 사람 모양으로 뚫린 벽이 보였다.
“뭐, 뭐야? 왜 저러는…….”
그때였다.
휙, 바람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무환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장난기는 조금도 없고 전신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데, 두 눈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모습이 완전히 미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