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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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07화
207화
이무환이 날아들자, 사령동의 사대주 중 하나인 귀살대주 오수종이 냉소를 지었다.
수하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적이 너무 강해서 달려들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애송이 하나가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오냐! 너라도 죽여서 화를 풀어야겠다!’
그는 마주 몸을 날리며 검을 뽑았다. 지옥에 한 발을 내딛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일순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이 장 이내로 가까워졌다.
그는 이무환의 심장을 향해 검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이무환이 손을 내밀었다.
오수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을 흔들었다. 단숨에 상대의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 버리겠다는 듯!
이무환은 흔들리며 가슴으로 파고드는 검을 뇌정갑을 낀 손으로 후려쳤다.
팡!
검이 만월처럼 휘어졌다.
‘흐읍!’
오수종은 이를 악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팔목이 시큰거리고, 벼락같은 통증이 어깨까지 치달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네가 저놈들 대장이지?”
이무환이 질문을 던지며 오수종의 가슴을 향해 좌수를 활짝 펼쳤다.
퍼버벅!
둔중한 망치가 가슴을 후려치는 충격!
입을 쩍 벌린 오수종이 뒤로 튕겨지자, 이무환은 거리를 좁히며 손을 뻗었다.
오수종은 튕겨지는 와중에도 억지로 검을 들어 앞을 막았다. 그러나 절대의 능력이 담긴 일수를 막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미약했다.
이무환은 우수로 검을 덥석 움켜쥐고 좌수로 오수종의 목울대를 거머쥐었다.
“컥!”
순간 오수종의 몸이 허공을 날더니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퍼억!
이무환은 몸 반쪽이 땅속에 파묻힌 오수종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날 샐 때까지 패려고 했는데, 바빠서 일찍 끝낸 거야. 지옥에 가더라도 고맙다고 생각해.”
2
이무환은 날이 새자마자 순우결을 만났다.
씩씩거리며 달려온 이무환을 보고, 순우결은 시비에게 커다란 찻주전자를 가져오게 했다.
이무환은 차를 넉 잔이나 마신 다음에야 기분을 가라앉혔다.
“빌어먹을 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오는 바람에 잠만 설쳤수.”
물론 그보다 더 성질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은 자신과 꼬맹이, 둘만의 비밀이니까.
“새벽의 일은 나도 들었네. 피해가 없었다니 다행이군.”
“그놈들 정도야 뭐…….”
이무환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하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죠, 일을 좀 앞당겨서 처리할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일을 앞당긴다? 놈들을 본격적으로 치겠다는 건가?”
“바로 그겁니다. 천마령주가 공격당했으니 화를 낸다는데, 어떤 놈이 막겠습니까?”
순우결의 눈이 반짝였다.
“흠, 명분은 충분하군. 한데 괜찮겠나? 어제도 고생을 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틈을 보이면 거꾸로 저놈들이 반격을 해올 겁니다.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 맞는 거보다야 먼저 치는 게 낫죠.”
그 말도 옳았다.
‘단순하고 사람 속이나 긁는 놈인 줄 알았더니, 잔머리가 제법이군.’
속으로야 그런 마음이지만, 순우결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야……. 그래, 내가 해줄 일은 없나?”
“당연히 있죠.”
“뭔가? 말해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주지.”
“방문(榜文)이나 몇 장 써서 붙여주쇼.”
“방문?”
“될 수 있는 대로 격하게 써서, 놈들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순우결의 눈에서 기광이 반짝였다.
“놈들을 끌어낼 생각인가?”
“명분만 있다면 놈들의 수하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 번에 솎아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가능하겠나?”
“광룡단의 면면에 대해서 듣지 못한 것은 아니겠죠?”
순우결도 어젯밤에 찾아온 순우경에게 자세하게 들었다.
순우경은 그에게 놀라운 말을 했다.
“저보다 강한 자가 네 명 이상 있어요. 그리고 제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사람도 대여섯 명은 돼요. 아버님께 알려주세요. 이들은 너무 위험한 자들이라고 말이에요.”
그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세운 계획 하나를 슬그머니 구석에 처박았다. 미친개를 잘못 건드리면 물릴 수도 있는 것이다.
“험, 경아에게 들었지. 좋네. 교주님께 그리 말씀드리지. 자넨 놈들을 확실하게 처리할 준비를 해주게나.”
“걱정 마십쇼. 빨리 끝내서 싶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빨리 끝낼 수 있다면 우리도 좋지.”
“아참. 그리고 방문이 붙고 난 후의 반응을 바로바로 전해주쇼. 아무래도 최대한 피해를 주려면 적시에 놈들을 쳐야 할 테니 말입니다.”
“알겠네. 바로바로 조사해서 알려주지.”
순우결이 흡족한 표정으로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더니 잠시 시간을 두고는, 넌지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경아는 어떤가? 잘하고 있는가?”
“얼음꽃이야 뭐, 그런대로 제 몫을 해주기는 하는데…….”
이무환은 말을 흐리며 찻잔을 들었다.
순우결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걸렸다.
“얼음꽃? 훗! 그 아이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군.”
“근데 말이죠. 왜 그렇게 차가운 겁니까? 여름이라면 몰라도, 겨울에는 함께 다니는 게 겁날 정도던데요.”
순우결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직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아이가 익힌 무공 때문이네. 생각해 보게. 십오 년 동안 수백 년간 아무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무공과 싸우다 보면 심성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것도 마공을, 사람과 일체 만나지 못하고 사흘에 한 번 햇빛을 볼 뿐, 일 년의 대부분을 지하석실에 갇힌 채 익혔다면 말이야.”
말을 끝맺는 순우결의 표정이 착잡하게 흐려져 있다.
이무환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자신도 그녀와 비슷하게 살아왔다. 비룡도에서 죽어라 무공만 익히면서.
하지만 순우경과 비교해 보니 자신은 천국에서 산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바다의 친구들이라도 있었지 않은가.
거기다 나중에는 정한도를 오가며 옥이와 만나 놀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순우결의 말을 듣고 나니 순우경을 아무렇게나 대한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쳇, 누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줄 알았나?’
이무환이 순우결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언제 나온 겁니까?”
“어제로 딱 일 년이 되었네. 그나마도 대부분을 천마궁에서만 지내서 아직 세상에 적응이 안 된 아이지. 그러니 자네가 잘 좀 다독거려 주게.”
왠지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표정.
이무환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정들면 안 되는데. 큰일 나는데…….”
순우결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네. 쌀쌀맞아도 그냥 보통 여자아이처럼 대해주기만 하면 된다네.”
속마음이야 조금 달랐지만.
‘바로 그걸 바라는 거라네! 흐흐흐흐…….’
거처로 돌아온 이무환은 조장들과 주요 단원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진시 말까지 다 모이쇼!”
밤새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가지 않으면 더 피곤해질 터. 사람들은 반 시진의 운기로 피곤함을 털어내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거의 다 되자 이무환의 방으로 찾아갔다.
순우경이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반쯤 찼을 때였다.
“하, 하. 이리 앉으쇼.”
이무환은 순우경을 위해 특별히 의자까지 내어주었다.
눈을 크게 뜬 사람들은 온갖 상상을 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광룡이 사람이 되어가나?’
‘너무 급하게 변하면 불안한데.’
‘설마 저 얼음덩이 같은 여자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남궁 소저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나쁜 놈. 얼굴 예쁜 여자는 다 노리는군.’
‘신기영을 시켜서 나하고 난경을 떼어놓은 것도 혹시……?’
하지만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순우경이 더욱 어리둥절했다.
마지못해 자리에 앉긴 하지만, 의자가 가시방석 같은 기분이었다.
‘이 자가 무슨 꿍꿍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만 해도 자신을 돌덩이 보듯 하던 이무환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 달라진 것일까?
‘흥! 만일 엉큼한 생각을 품은 거라면…….’
이무환이 입을 연 것은, 순우경의 가슴에서 얼음칼 한 자루가 날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쯤은 터럭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 다들 모였으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쇼.”
뻔뻔한 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3
봄바람이 부슬비까지 몰고 온 그날. 근 일천에 이르는 무사들이 항주로 들어섰다.
그들은 입을 꾹 닫은 채 검운장을 향해 치달렸다.
강호인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지 오래.
“강호의 무사들이 항주로 들어왔다!”
항주 외곽에서 들려온 소문이 들불처럼 퍼졌다.
항주의 일반 양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항주를 지키는 관병들조차 항주로 들어선 무사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걸 알고 막기를 포기했다.
텅 빈 거리.
일천의 무사들은 오직 한곳을 향해 질주했다.
“놈들이 온다!”
“모두 자신이 맡은 구역을 철저히 막아라!”
검운장의 담장 위에서 밖을 주시하던 무사들이 악을 쓰며 적의 공격을 알렸다.
정천무림맹과 항주의 오대세력에서 모인 무사 팔백은 무기를 빼 들고 이를 악물었다.
부슬비에 몸이 젖었지만, 누구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닦지 않았다.
곧 사방에서 일천의 적이 솟구치며 담장 위로 날아올랐다.
쉬쉬쉬쉭!
미리 준비한 활이 그들을 향해 튕겨졌다.
수백 발의 화살이 허공에 뜬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화살로 위협할 수 있는 적은 기껏해야 흑마련과 혈해방의 무사들 정도에 불과했다.
묵운방의 이백 무사는 거침없이 화살을 튕겨내며 검운장 안으로 날아내렸다.
동시에 악다구니가 검운장을 뒤덮으며 울려 퍼졌다.
“모두 쓸어버려라!”
“정천무림맹도 별거 없다! 오늘 항주를 접수하자!”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전면으로 나서며 그들을 막았다.
“마도사파의 놈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마라!”
“살계를 열어라! 무림맹의 의혈지사들이여!”
“정의는 이긴다! 놈들을 쳐라!”
순식간에 양쪽의 세력이 뒤엉키며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검운장을 뒤흔들었다.
“으아악!”
“그쪽을 막아! 뚫리지 마라!”
“크억!”
잠깐 사이, 촉촉하게 젖은 땅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옆구리가 뚫린 채 상대의 검을 피하다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 헐떡이는 숨소리, 귀청을 찢는 고함 소리.
검운장 전체가 전쟁터로 변해 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묵운방의 진정한 고수들이 나타난 것은, 전쟁이 벌어진 지 반 각가량 지났을 때였다.
숫자는 팔십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광풍폭우였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찢기고 부러진 시신들만이 남았다.
정천무림맹의 고수들 중 삼십여 명이 그들을 막았다.
그들 중에는 우내십존에 속한 두 사람이 끼어 있었다. 그들의 위세는 묵운방의 뭇 고수들조차 치를 떨 정도로 강했다.
단 삼십여 명이지만, 팔십여 명의 묵운방 고수들도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했다.
바람이 불고 피비가 내렸다.
천둥벼락 같은 굉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한편, 이충량은 천태도장과 함께 검운장의 무사들을 이끌었다.
“개자식들! 모조리 죽여주마!”
이충량의 칼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흑마련과 혈해방의 무사들이 피비를 뿌리며 쓰러졌다.
일각 동안 그의 칼에 쓰러진 자만 오십 명이 넘었다. 밀려들던 자들도 겁에 질려 이충량의 곁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검운장 쪽의 절대고수는 이충량만이 아니었다.
천태도장의 쌍장이 허공에 휘둘러질 때마다 대여섯 명의 무사가 사방으로 튕겨졌다.
이충량이 미친 듯이 적을 상대한다면, 천태 도장은 사위를 살피며 적절하게 적을 막았다.
두 절대고수의 엄청난 위세에 검운장 무사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어!”
“힘을 내라! 놈들을 쳐라!”
“와아아아!”
그때 정체불명의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무작정 이충량과 천태 도장을 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