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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0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4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06화

 

206화

 

 

 

 

 

 

 

 

4

 

 

 

명위종은 이를 악물었다.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때 명가의 주인과 호형호제하던 팔수마종(八手魔宗) 웅효를 몰래 찾아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명위종이 알고 있던 모든 사실을 송두리째 뒤집고도 남았다.

 

“그래서 아버님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단 말입니까?”

 

“맞다. 그는 자신의 죽음만이 놈들의 음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왜 그동안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보다 완벽해야 놈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것이다. 네 아버지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아버지가 그랬다고?

 

“빌어먹을! 최소한 형님에게라도 말씀을 드려야 했을 것 아닙니까?”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네 형의 성격상 가만있을 것 같지가 않았지.”

 

그랬을 것이다. 아마 형님은 사실 확인을 위해 혈안이 되어 놈들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이 지경이 되다니, 대체 교주께선 왜 침묵하신 겁니까?”

 

“그분은… 이미 십여 년 전에 놈들에게 당해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나마 네 아버지 덕분에 놈들의 야욕을 늦출 수 있었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시간을 늦춘 덕에 구룡성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게 되었느니라.”

 

한때 명가의 주인과 호형호제했던 팔수마종 웅효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후우우, 그간 가슴 속에 쌓여서 바윗덩이가 된 진실을 너에게 말하고 나니 이제야 속이 시원하구나.”

 

명위종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오롯이 진실이라 생각했던 게 모두 거짓이 되어버렸다.

 

원수가 원수가 아니라니.

 

그럼 그동안 자신들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제길, 결국 그자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방법이 그뿐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명위종은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웅효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명위종은 잇새로 나직이 말했다.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일만 해주고, 형과 동생을 데리고 이 지겨운 곳을 떠나 버릴 겁니다.’

 

명가의 명예 회복도, 가문의 부흥도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형도 사실을 알면 반대하지 않을 듯했다.

 

 

 

5

 

 

 

남궁산산은 이무환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물어봤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이다.

 

남궁산산은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이무환이 그녀의 속도 모르고 대답을 재촉했다.

 

“말해봐, 무슨 뜻이야?”

 

남궁산산이 이무환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두 손을 뻗어 이무환의 허리를 감았다.

 

“왜, 왜 이래?”

 

“멍청한 오빠야, 봐봐요. 지금 산산이하고 오빠하고 배가 붙었죠?”

 

“어? 그러네?”

 

“그럼 다음에 뭐 해요?”

 

“어… 입술을 부딪친다든지…….”

 

“그 다음에는요?”

 

“이 숫자를 센다든지… 가슴 크기를 잰다든지…….”

 

순간 이무환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아하! 그럼 손화련하고 사우천의 수뇌하고 우리처럼 했다는 거야?”

 

남궁산산은 열기가 오른 눈으로 이무환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예, 그리고 아마…….”

 

“거긴 왜 만져? 기분이 이상하잖아?”

 

“……바보…….”

 

 

 

제3장. 중요한 일을 방해한 자들에겐 그만한 대가를…….

 

 

 

 

 

 

 

1

 

 

 

밤새들의 울음소리가 커져 가는 축시 무렵.

 

모처에서 오십여 명의 무사가 밤을 만난 박쥐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서너 명씩 흩어져서 한곳으로 향했다.

 

일각 후. 그들은 이 장 높이의 담장에 난 작은 문을 통해 천마교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약조가 되어 있는지, 경비무사들은 못 본 척 그들을 통과시켰다.

 

때마침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머리를 내밀었다.

 

 

 

이무환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싱숭생숭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광룡사위를 불러서 수련이나 하자고 할까?

 

아니면 어디 깊은 계곡에 가서 파천삼법 중 세 번째인 천광무무동천(天光無無動天)의 완성에 도전해 볼까?

 

천광회회탄과 천광폭멸주는 거의 완성이 된 상태였다.

 

마지막 천광무무동천도 곧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천광무무동천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두터웠다. 천마교까지 오는 중 몇 번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위한 운기를 해보았는데도, 아직 멀었다는 듯 쉽게 깨달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몇 번만 더 해보면 그럭저럭 흉내는 낼 것 같은데……. 에이,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

 

이무환은 내심 마음을 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침상 한쪽에서 잠을 자던 남궁산산이 몸을 뒤집었다.

 

이불이 젖혀지고, 하얀 다리가 이불 위로 올라오더니, 이무환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비음.

 

“아응…….”

 

순간 시간이 정지되기라도 한 듯 이무환의 몸이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창틈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에 하얀 다리가 허벅지까지 보였다.

 

상아빛 살결이 눈부실 정도로 반짝인다. 만지면 하얀 분이 그대로 묻어날 것만 같다.

 

이무환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다리를 만져 보았다.

 

우유가 묻은 듯 매끈거리는 살결이 손끝에 느껴진다.

 

‘음, 음…….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입술을 닦을 때도 그렇고, 가슴 크기를 잴 때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이 뛴다.

 

꼬맹이가 아래쪽을 슬쩍 만진 후부터 더 그런 것 같았다.

 

이무환은 슬며시 손을 더 위쪽으로 뻗어보았다. 엉덩이가 만져지자 심장 울리는 소리가 귀청에서 콩닥거렸다.

 

옷 위로 만질 때와는 천양지차의 느낌이었다.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몽롱한 기분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누워봐, 오빠…….”

 

이무환은 말 잘 듣는 강시처럼 스르르 몸을 뒤로 눕혔다.

 

동시에 남궁산산이 한밤의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위로 올라왔다.

 

봉긋 솟은 하얀 박이 가슴에 포개지며 짓이겨지는 게 그대로 보였다.

 

또다시 아래쪽에 힘이 들어가며 불길이 타올랐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입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이무환은 떨리려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누르고 겨우 입을 열었다.

 

“꼬, 꼬맹아…….”

 

“쉿…….”

 

“뭐, 뭘… 어떻게… 하려고…….”

 

“나도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뭔가가 된다고, 유모가 그랬어요. 그러니 그냥…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꼬맹아…….”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꼭 끌어안았다. 남궁산산의 입술이 제자리를 찾듯이 이무환의 입술에 포개졌다.

 

“으음…….”

 

그때였다!

 

쿠당!

 

바로 아래층에서 뭔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크진 않았다. 그러나 워낙 주위가 조용한데다, 바로 아래쪽이다 보니 제법 크게 들렸다.

 

이무환과 남궁산산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런데 그 바람에 잠시 동안 둔해졌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찰나였다.

 

스산한 기운이 마월전으로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 선인은 찾아오지 않고, 온 자는 선하지 않다 했던가?

 

오늘 온 자들도 결코 반가운 손님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반가운 손님이 살기를 띠고 오지는 않을 테니까.

 

이무환은 입술이 붙은 상태에서 심어로 말을 전했다.

 

<어, 꼬맹아, 적이 왔나 보다.>

 

남궁산산은 슬그머니 입술을 떼고는,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으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무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히죽 웃었다.

 

온기라고는 개미의 발톱에 낀 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웃음이었다.

 

‘어디 한번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 정도로 맞아봐라, 이놈들!’

 

뭔가는 몰라도, 인생의 중대한 고비를 방해한 놈들이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아주 철저히!

 

“잠깐만 기다리면 될 거야. 온 놈들부터 족치고… 다시 해보지, 뭐.”

 

돌아누운 남궁산산도 하얀 눈빛을 쏟아냈다. 그녀 역시 이무환과 같은 마음이었다.

 

“아주 단단히 혼내줘요, 오빠.”

 

‘당연하지!’

 

장포를 걸친 이무환은 묵린도를 옆구리에 꽂고 방을 나섰다. 

 

광룡단원 대부분이 그보다 먼저 통로로 나와 있었다.

 

잠을 자지 않은 듯 대다수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흠, 긴장되어서 잠들이 안 왔나?’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일조가 남쪽을, 이조가 북쪽, 삼조가 서쪽, 사조가 동쪽을 맡으쇼. 단, 잘근잘근 두들겨 팬 다음에 죽이든 말든 하쇼.”

 

담담한 말투였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광룡단원들은 그 이유를 알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훼방 놔서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군.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웃음을 억누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분명 웃는 것처럼 보였는데……. 왜 웃지?’

 

이무환은 내려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적이 온 게 그렇게 즐거운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광룡단원들은 전각의 문과 창가에 몸을 붙인 채 적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담장과 건물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저히 조직적인 행동.

 

그들의 움직임은 바람에 몸을 숨긴 것처럼 은밀했다.

 

자객의 전형적인 움직임.

 

휘이잉.

 

바람 소리가 울림과 동시, 그들의 신형이 전각을 향해 쇄도했다.

 

“시작하죠.”

 

그때 계단을 내려온 이무환이 지나가는 말처럼 명을 내렸다.

 

전각의 문과 창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마흔 명이 넘는 인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룡단과 사우천의 사령동(死靈洞) 살객(殺客)들과의 접전은 단 한마디의 외침도 없이 진행되었다.

 

누가 따로 명을 내려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 음침한 살기가 일대를 뒤덮자, 입을 열면 사신이 등을 덮칠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서걱! 퍽! 쉬쉬쉭! 와직!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피륙의 절삭음,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밤공기에 스미며 흘러나왔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혈전!

 

등에 소름이 돋았다.

 

신경이 한 올 한 올 곤두섰다.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사령동의 살객들은 강했다. 그들은 개개인이 능히 절정고수들을 암살할 수 있을 정도의 살법을 익힌 자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도 않았고, 합공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초절정의 고수라 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만큼 악랄하고 철저한 살수만 펼치는 초일류의 살객. 그게 바로 사령동의 살객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광룡단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숫자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고, 정면 대결인 상황.

 

몇 초의 접전이 벌어지기도 전이었다. 살객들은 무위의 차이를 느끼고 얼굴이 납색으로 변했다.

 

마월전을 피로 뒤덮겠다고 왔거늘, 그것은 한낮의 꿈같은 망상일 뿐이었다.

 

쓰러지는 사람은 살객들뿐, 적은 단 한 명도 쓰러지지 않은 듯했다.

 

이건 싸움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걸 어찌 싸움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살객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적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은 고수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광룡단은 그들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이무환은 살객 둘의 뼈를 산산이 부수어놓고 침입자들의 수뇌를 찾아보았다.

 

저만치, 뒤로 처져서 전세를 살피는 자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그 이상의 고수는 보이지 않았다.

 

‘저놈인가?’

 

그가 수뇌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일단 때려잡으면 알 수 있을 텐데, 왜 골치 아프게 미리 머리를 굴린단 말인가?

 

이무환은 훌쩍, 그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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