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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0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05화

 

205화

 

 

 

 

 

 

 

 

이무환은 멍하니 손화련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입에서 침이 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

 

그 모습을 보고 순우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흥, 한심한 놈.’

 

그때였다. 이무환이 손화련에게 불쑥 물었다.

 

“왜 그런 토끼 눈깔로 날 보는 거요? 다 늙은 할망구가.”

 

손화련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토끼 눈깔이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다 늙은 할망구라는 말은, 그녀에게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모욕적이었다.

 

‘이, 이 새카만 애송이 새끼가!’

 

그런 한편 순우경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미미한 변화가 일었다. 입꼬리가 비틀린 것이 꼭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그런 눈으로 보면, 확! 눈알을 뽑고 이야기할 거요. 명심하쇼.”

 

일그러진 손화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이 미친 새끼가!”

 

그녀는 더 참지 못하고 두 손을 휘둘렀다.

 

후우웅!

 

찰나였다.

 

이무환이 스윽 나서는가 싶더니 우수를 내밀었다.

 

순간 허공에 수십여 개의 수영이 흩날렸다.

 

손화련이 가소롭다는 듯 두 팔로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미친놈이 펼친 손 그림자쯤이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깃든 수법이었다.

 

하지만 손화련은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나자마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이었다.

 

떵! 떠더덩!

 

대여섯 번의 충돌이 찰나의 순간에 연이어지면서 손화련의 얼굴이 고통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흐읍!’

 

그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앞에서 소용돌이가 맴돌며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각주!”

 

“선랑!”

 

옆에서 지켜보던 여섯 명의 여인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방 안에는 그녀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연청과 무설강, 철위평과 염환이 유령처럼 움직여 그녀들을 막았다.

 

순우경은 그들이 손을 쓰자 지켜보기만 했다. 이 기회에 그들의 정확한 무위를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특히 그녀는 이무환과 손화련의 박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무환의 손짓은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초식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형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다. 상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한다. 아니, 흐른다.

 

꿈처럼 흐르는 손짓.

 

과연 자신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흉내조차 버거울 거 같다.

 

‘뭐, 뭐야? 저 인간이 저런 정도의 고수였단 말이야?’

 

순우경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눈썹에 맺힌 고드름이 녹아 우수수 떨어지는 듯했다.

 

이무환만이 아니었다.

 

몸서리처지는 기운이 옆에서 일렁인다.

 

홱 고개를 돌린 순우경의 눈에 호연청이 가볍게 쌍장을 내지르는 것이 보였다.

 

콰광!

 

황염선자와 주염선자가 훌훌 날아간다.

 

그리고 곧 무설강이 두 여인을 제압하고, 나머지 여인들도 견디지 못한 채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두가 삼 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우경은 이를 악물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손화련은 이미 대항할 힘을 잃고, 핏물을 머금은 채 탁자에 기대며 억지로 서 있었다.

 

“사우천에 몸을 담으면 세상이 다 당신 것이 될 줄 알았나?”

 

싸늘한 조소를 입가에 매단 이무환이 손화련에게 다가갔다.

 

손화련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탁자를 짚고 서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

 

“나? 천마령주라니까?”

 

이무환은 대충 대답하고 손화련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부터 당신을 심문할 것이야.”

 

“내, 내가 대답할 거라 생각하느냐? 차라리 죽여라, 이놈.”

 

“대답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해. 당신이 아니라 해도 대답해 줄 사람은 많으니까. 나는 그냥 당신이 대답을 안 할 때마다 당신 팔다리를 주먹으로 쳐서 하나씩 부술 거야. 톱하고 망치 같은 것을 안 가져와서, 그냥 힘으로 해야 할 거 같아. 그러니 좀 아파도 이해해.”

 

“이, 이 미친… 새끼.”

 

“아마 나중에는 얼굴도 좀 험하게 다룰지 몰라.”

 

이를 갈며 이무환을 노려보던 손화련의 눈이 폭풍을 만난 낙엽처럼 출렁였다.

 

그때 이무환이 물었다.

 

“첫 번째 질문. 당신, 사우천과 한패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대답 못할 것도 없었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것이냐?”

 

이무환이 유난히 큰 목소리로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 하! 좋아. 순순히 대답해 주는군. 그럼 두 번째 질문. 당신만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거 있어?”

 

“미친… 놈. 내가 그걸…….”

 

순간, 쾅!

 

탁자가 부서질 듯이 들썩였다.

 

그리고 손화련의 입이 딱 벌어졌다. 

 

탁자에 올려놓은 손가락 두 개가 이무환의 주먹에 부서진 것이다.

 

“끄으으…….”

 

“그러게 그냥 말하라니까? 죽어도 곱게 죽고 싶지 않아? 태군사가 협조하면 살려준다고 했다던데, 벌써 잊었어?”

 

“끄으, 나, 나는…….”

 

미처 손화련이 입을 다 열기도 전이었다.

 

이무환이 혀를 차더니 고개를 돌리고 영호승을 불렀다.

 

“쯔쯔쯔, 안 되겠군. 그냥 여기서 해결하려고 했더니, 뇌옥으로 끌고 가야겠어. 어이, 멋쟁이! 들어와 봐!”

 

방문이 열리더니 영호승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단주!”

 

“이 여자, 뇌옥으로 끌고 가. 가서 눈발에게 목숨만 붙이면 되니까 맘대로 하라고 해. 톱질을 하든, 망치질을 하든. 집게로 이와 손발톱을 다 뽑고 얼굴 가죽을 벗겨도 상관없어. 대답만 들으면 되니까.”

 

“예, 단주! 아마 그가 좋아할 겁니다!”

 

손화련이 언제 이런 경우를 당해봤던가? 지난 삼십 년간 풍요와 환락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아닌가!

 

영호승이 거칠게 손화련의 뒷덜미를 잡아채자,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올려 입을 열었다.

 

“하, 할 말이…….”

 

“어? 멋쟁이, 잠깐만. 할 말이 있나 봐. 말하면 굳이 데려갈 것 없지, 뭐.”

 

“그냥 뇌옥으로 데려가는 게…….”

 

“시간이 아깝잖아.”

 

“하긴……. 엽 형이 많이 아쉬워하겠군요.”

 

하도 해봐서 그런지 박자가 잘 맞았다.

 

호연청이나 무설강 등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일각 정도가 흐르자 손화련의 목소리가 듣기 어려울 만큼 약해졌다.

 

어느 정도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상황. 이무환은 다음 목표를 찾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득, 노응사에게 들었던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무환이 손화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당신하고 사우천의 수뇌 중 한 사람하고 배가 맞았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뜻이지?”

 

숨도 쉬기 힘들 것 같던 손화련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저런 멍청한 놈에게 당하다니!

 

그녀는 복수를 한다는 심정으로 티끌만큼 남은 기운을 쥐어짜서 이무환을 비웃었다.

 

“너… 여자하고… 자보기나 했냐?”

 

“웃기는 할망구네. 여자하고 자는 거하고, 배 맞은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

 

이무환이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따라 웃지 않았다.

 

 

 

요마각을 나서며 이무환이 영호승에게 물었다.

 

“멋쟁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예, 단주.”

 

“그래? 그러고 보면 멋쟁이도 아는 게 많단 말이야. 어디 말해봐. 무슨 뜻이지?”

 

‘아마 단주 빼고는 다 알 겁니다!’

 

영호승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고 나직이 대답했다.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 그대로입니다. 배끼리 마주친 거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니까?”

 

영호승이 참지 못하고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 그 말이 뭔 뜻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럼 알면서 묻겠어? 말하기 싫으면 관둬. 우리 꼬맹이에게 물어볼 테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그건 말이죠…….”

 

그때였다. 영호승은 뒤통수가 따가워 말문이 막혔다.

 

전음이 귓전을 때려 귀도 멍멍해졌다. 한두 사람이 보낸 전음이 아니었다.

 

<그냥 놔두는 게 낫지 않겠나?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순진한 것도 그럭저럭 볼만한데, 그냥 놔두지 그래?>

 

<말하지 않는다면, 내 자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하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게 놔두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하는 말들이 아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있을 거라는 위협처럼 들리는 말투다.

 

‘그러니까… 남궁 소저에게 창피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건가?’

 

세상에, 천하의 고수들이 그런 야비한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묘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자신도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광룡이 창피당하는 모습을.

 

게다가 작은 선물을 준다고 한 사람은 분명 호연청이었다.

 

무슨 선물을 주겠다는 걸까?

 

영호승은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제가 설명해 드리기 뭐하니까, 남궁 소저에게 들으십시오.”

 

“킁, 알았어. 그럼 다음 목표인 사령전으로 가자고.”

 

이무환이 콧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걸어간다.

 

뒤따라가는 사람들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맺혔다. 정말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3

 

 

 

천마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홍살당을 시작으로 요마각이 무너지고, 사령전이 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십팔마종 중 셋이 녹초가 되어서 뇌옥으로 끌려갔다.

 

사우천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 십 년간 벌어진 일보다 그날 반나절 만에 벌어진 일이 더 많았으니, 천마교가 뒤집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했다.

 

그렇게 천둥벼락을 동반한 폭풍은, 떠오른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진로를 멈추고 고요해졌다.

 

하나 진로가 멈추었을 뿐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소멸되지 않은 이상 또다시 불어올 것은 자명한 일.

 

언제 어느 곳으로 휘몰아칠지 모르는 폭풍이 천마교를 휘감은 채 맴돌았다.

 

천마교의 오천 교도는 마월전을 주시한 채 숨을 죽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석양이 질 즈음, 천마교 내의 한 전각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꼭 오늘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진궁의 일이 이제야 전해진 것이다.

 

“뭐야? 흑우령이 무너지고 노응사가 미쳐?”

 

“속하도 믿을 수가 없어서 급히 조사할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빌어먹을! 한 사람이 아쉬운 판이거늘! 그래, 어떤 놈들인지는 밝혀졌다 하던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합니다.”

 

“명위진은?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진현에서 천응표국의 표물을 공격하다 적에게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천응표국이라면 바로 저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더냐? 한데 그가 당했다고?”

 

“예, 전주. 명위종이 보내온 소식이니 정확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내부의 일도 급박하게 흘러가는 판에…….”

 

적포초로인은 청삼중년인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홍살당에 이어 요마각과 사령전이 너무 어이없이 무너졌어. 대체 그러한 일이 벌어질 동안 뭘 했는가? 그냥 구경만 했단 말인가?!”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대처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더구나 놈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인데다, 움직이면 놈들에게 명분을 줄 것 같아서 전력을 이동시키지 못했습니다.”

 

적포인도 모르지 않았다. 순우결은 분명 자신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몰랐다. 알고도 움직일 수가 없다니.

 

“젠장! 도대체 그놈이 누군데 그들이 손도 못 써보고 당했단 말인가?”

 

“그놈이 누군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놈이 교주님의 신패인 천마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게 진즉 쓸어버렸어야 하거늘. 끄응…….”

 

“순우결이 눈을 치켜뜨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모르지 않았다. 

 

젠장할!

 

“끄응, 그건 그렇다 치고, 놈의 망동을 막을 방책은 세웠는가?”

 

청삼중년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에는 이, 검에는 검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단호한 목소리. 적포초로인의 눈에서도 한기가 스멀거렸다.

 

“하긴, 어차피 끝장을 낼 생각이었으니……. 좋아, 최대한 사람들을 동원해서 놈들을 제거해. ‘천’의 사람들을 쓰는 한이 있어도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야.”

 

“예,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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