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0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04화
204화
“어? 어, 왜?”
“이곳도 홍살당처럼 다 때려 부술 겁니까?”
“일단 어떻게 나오는지 봐서.”
두 사람의 목소리는 상당히 컸다. 내공이 일정 수준에 오른 일류고수라면 수십 장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 그러니 십수 장 거리에 있는 절정고수가 듣지 못할 리 없었다.
막 요마각의 건물에서 나오던 두 명의 여인은 이무환과 영호승이 나누는 말을 듣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홍살당을 때려 부쉈다는 것만도 놀라운데, 요마각도 그렇게 할 것처럼 말한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몰려온 자가 사십 명이 넘고, 거기다 천마령이라는 말을 들은 이상 함부로 대꾸할 수도 없었다.
두 여인 중 녹의를 입은 여인이 눈에 힘을 주고 물었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
이무환은 손에 들린 천마령과 녹의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순우경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대단한 것이라 들었는데, 별거 아니었나 보네? 왜 저렇게 뻣뻣하지?”
순간 순우경의 맑은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흘러나왔다.
눈발이 눈에 힘을 주고 아무리 용써봐야 반도 못 따라갈 정도의 한기였다.
그녀는 녹의여인을 향해 눈발이 펄펄 날릴 것 같은 목소리를 흘려냈다.
“천마령을 보고도 무슨 일이냐고 물은 것이냐?”
녹의여인도 지지 않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가 순우경을 향해 소리쳤다.
“네년은 누군데 감히 이곳에 와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찰나, 순우경이 스윽 앞으로 발을 내딛는가 싶더니, 녹의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분명 사오 장의 거리였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녹의여인 앞에 당도해 있었다.
대경한 녹의여인은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정면으로 달라붙음과 동시였다.
쩌적!
두꺼운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녹의여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커헉!”
입에서 피화살을 내뿜은 녹의여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일 장가량 옆에 서 있던 홍의여인이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짧은 순간에 순우경이 펼친 무공을 알아본 것이다.
“천녀소수마령공(天女素手魔靈功)……!”
또한 순우경이 누군지도 알아보았다.
하늘 아래에서 천마교 삼대마공 중에 하나인 천녀소수마령공을 익힌 여인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녀는 감히 대항할 생각도 못한 채 벌벌 떨었다.
순우경이 홍의여인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도 천마령이 우습게 보이느냐?”
홍의여인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처, 천녀가 어찌……. 홍염이 대공녀를 뵈옵니다!”
동시에 주위에 서 있던 요마각의 여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엎어졌다.
“천녀들이 대공녀를 알현하옵니다!”
순우경이 오연한 눈으로 그들을 쓸어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두려워진 것이더냐? 계속 천마령의 위엄을 부정해 보지 그러느냐?”
“천녀가 죽을죄를…….”
“천마령을 부정하는 죄가 어떤 것인지, 요마팔염 중 하나인 네가 모르지는 않겠지?”
“하, 한 번만 용서를… 대공녀시여…….”
때마침 구원의 사자가 나섰다.
“어이, 여자. 그만하고 볼일 보자고.”
순우경이 홱 고개를 돌려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분노가 담긴 한광이 일렁였다.
하지만 이무환은 왜 그렇게 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쩍 얼굴을 손으로 쓸어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얼굴에 뭐 묻었어?”
순우경의 얼음장 같은 얼굴이 파르르 떨리고, 가늘어진 눈에서 한광이 출렁였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그래도 이무환은 연신 고개만 갸웃거리며 광룡단과 순우경을 재촉했다.
“뭐 해? 들어가자니까요? 여자, 가지?”
그러고는 홍염의 옆을 지나가며 물었다.
“안에 각주 있죠?”
과정이야 어떻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아닌가. 홍염은 이무환이 천하제일의 미남자보다 더 잘생긴 것처럼 보였다.
“계십니다, 공자.”
“공자가 아니고, 단주요, 단주. 하, 하.”
“예, 단주.”
“그럼 앞장서쇼.”
“예?”
“각주를 만나러 가게 앞장서라니까요? 왜, 싫어요? 안에 백 명쯤 있는 거 같은데, 다 죽이고 나서 만날까요?”
이무환은 그 말을 하며 빙긋 웃었다.
홍염은 천하제일미남 같던 이무환이 갑자기 악귀처럼 느껴졌다.
“아, 아닙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요마각으로는 광룡단원 중 반만 들어갔는데, 그들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었다.
요마각의 본 건물에는 백여 명의 여인이 기거했다. 전체 여인들이 삼백 명 정도 되니 삼 할 이상이 한 건물에 기거한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여인들이 건물 안에서는 대부분 속옷만 입고 지낸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가자, 방에 있는 여인들이 덜컹덜컹 문을 열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한 방에 기거하는 여인들의 숫자는 대여섯 명 정도. 거의 모든 여인이 속살이 비치는 옷을 입고 있었다.
눈을 돌리면 남들이 오해할지도 모르는 일. 눈에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손안에 땀이 고였다.
―젠장!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거의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홍염의 뒤를 바짝 따라가는 이무환은 정신이 없었다.
눈 둘 곳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너무 볼 것이 많아서 탈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절대 안 그런 것처럼 행동했지만.
“음, 왜 겉옷을 안 입었지?”
순우경이 그런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눈빛이 진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면, 지금쯤 이무환의 살이 다 발라지고, 뼈마디가 완전히 분해되었을 터였다.
‘흥! 더러운 속물!’
그러던가 말던가,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연신 눈알을 굴렸다.
‘음, 저거 우리 꼬맹이 하나 사줘야지. 어? 저건 너무 얇잖아? 우아, 속이 다 보이네. 어이구, 부끄럽지도 않나?’
그러면서도 볼 것은 다 봤다.
“단주!”
옆에서 영호승이 부른 후에야 이무환의 눈알 굴림이 멎었다.
“왜, 멋쟁이?”
“그만 보고 가죠.”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영호승의 용기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이무환의 표정이 굳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럴까? 그럼… 나머지는 내려오면서 보지, 뭐. 이보쇼, 뇌고자 형. 그만 보고 갑시다.”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건물의 형태를 살피던 제갈신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이무환의 말뜻을 깨닫고 얼굴이 벌게졌다.
“내가 뭘 봤다고…….”
이무환은 잽싸게 홍염의 뒤를 쫓아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말이야, 젊은 사람이나 나이를 먹은 사람이나……. 쯔읍.”
네 명의 조장을 비롯한 광룡단원들은 송곳 같은 눈빛으로 이무환의 뒤통수를 쪼아댔다.
철위평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무환이 듣던가 말던가.
“차라리 단주 혼자 갔다 오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호연청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한이라는 듯 대답했다.
“나도 그러고 싶네만…….”
나후령이 한숨을 쉴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 배에 탔으니 일단 가보지요.”
어쩔 수 없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슬쩍 여인들을 훔쳐보았다.
그들도 남자였다. 아름다운 꽃이 있으면 보고 싶어 하는……. 늙으나 젊으나…….
각주인 요화선랑의 방 안으로는 이무환과 순우경과 광룡단의 조장들만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는 각주의 방으로 이어진 통로를 지켰다.
이무환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 나중의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단단히 말해두었다.
“누구든, 통로로 나오는 사람은 다 때려눕히세요. 얼굴 예쁘다고 봐주지 말고. 정 귀찮게 굴면 팔다리를 부러뜨려 버리고.”
그렇게 이무환 등 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가자, 세 명의 여인이 광룡단을 시험하기라도 하려는 듯 통로로 나왔다.
“호호호. 이봐요, 거기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저희들이 즐겁게 해드릴게요.”
“들어가라. 들어가지 않으면 제압하겠다.”
한 여인이 슬며시 유철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이, 그렇게 냉정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
순간 유철상이 여인의 팔을 잡더니 그대로 꺾어버렸다.
“아악!”
“들어가라고 했다. 한데도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다른 두 여인은 악독한 눈빛을 빛내며 유철상에게 달려들었다.
“이 악랄한 놈! 네놈은 고자인가 보구나!”
“이 무식한 자! 여인의 팔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부러뜨리다니!”
동시에 금철광과 철운평이 두 여인을 공세를 막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두 여인이 복부와 목을 강타당하고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유철상은 특유의 철갑을 두른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내민 여인들을 훑어보았다.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앞으로는 죽일지 모르니 각오를 하고 나와야 할 것이야.”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 조금은 과하다 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도 본산의 마도인들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말투다.
그러나 광룡단원들 대부분이 생사투의 경험이 풍부한 자들. 처음에 기선을 제압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누구도 세 사람을 뭐라 하지 않았다.
물론 광룡에게 뒷소리를 듣기는 더 싫었다.
홍염의 안내로 방에 들어간 이무환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한번 희한하게 꾸며놨군.’
요화선랑이 거주하는 방은 어지간한 방 대여섯 개를 합친 것만큼이나 컸다.
그 커다란 방의 사방이 색색의 휘장과 꽃 문양, 그리고 사이함이 느껴지는 음란한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보는 사람의 얼굴이 절로 붉어질 정도였다.
요화선랑(妖花仙郞) 손화련은 바로 그 방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데 나이 쉰둘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녀의 옆에 있는 여섯 명의 여인도 이제 갓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알고 보면 삼사십대의 중년 여인들이었다.
이무환은 통로에서 일어나는 일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방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요마각의 모든 사람이 달려든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렇게 이무환과 순우경과 네 명의 조장이 다가가자, 손화련이 묘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주 굉장한 수하들을 데리고 오셨군요, 대공녀.”
순우경이 빙판에 얼음 구슬 구르는 목소리로 손화련의 말을 받았다.
“잘못 알았어요, 선랑.”
“내가 잘못 알았다? 뭘 말인가요, 대공녀?”
“이 사람들은 내 수하가 아니에요.”
손화련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이번 일을 순우경이 주도한 일이라 생각한 듯했다. 당금 천마교에서 대공녀 순우경을 이끌 사람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잘못된 생각도 아니었다.
“그럼 누가 이번 일을……?”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조장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이무환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당신이 요화선랑이라는 사람이오?”
“그렇다, 내가 바로 요마각의 주인인…….”
이무환이 손을 척 들어 손화련의 말을 잘랐다.
“아아,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해 주쇼. 가야 할 곳이 또 있으니까.”
손화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마 이무환이 조금만 못생겼어도 당장 손톱으로 눈알을 파내 버리겠다고 달려들었을지 몰랐다.
“네놈은 누군데, 버르장머리없이 감히……!”
“거기까지!”
이무환이 또 한 번 손화련의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으로 손화련의 두 눈을 직시했다.
“묻는 건 나요. 그러니 당신은 대답만 하면 된다, 이거요.”
이무환의 눈과 손화련의 눈이 마주쳤다.
은연중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손화련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녀는 그제야 이무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너는… 누구냐?”
이무환은 품 안에서 천마령을 꺼내 들었다.
“교주에게서 이것을 받은 사람. 우선은 그렇게만 아쇼. 많이 알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손화련의 눈이 한껏 커졌다. 반면에 마음 한구석으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남자. 그것도 이제 새파란 젊은 남자라면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는 그녀인 것이다.
“호호호, 미처 몰랐군요. 당신처럼 젊고 잘생긴 공자가 천마령의 주인이었다니.”
“내가 젊고 잘생겼다는 적쯤은 다들 아는 사실이고. 당신은 그냥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주쇼.”
왠지 상황이 삐딱하게 흐른다. 그래도 자신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 뭘 묻고 싶은 건가요?”
이무환은 고개를 모로 비틀고 손화련을 쏘아보았다.
“천마령을 보고도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이 법도에 맞는 일인가?”
순우경이 짧게 설명해주었다.
“사전사각의 주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지.”
“그래? 그럼 뭐, 그 일은 그렇다 치고…….”
이무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화련을 바라보았다.
손화련도 눈웃음을 치며 이무환을 응시했다.
기이한 열기가 떠오른 눈빛, 옆에서 보는 사람조차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이한 눈빛이었다.
환희염정소(歡喜艶精笑)라는 절정의 마공이 펼쳐진 것이다.
‘호호호호! 네깟 놈 정도 녹이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