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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38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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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238화

 

238화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여! 마도의 무리를 쳐라!”

 

“위지창화! 너도 우리가 당했던 기분을 느껴봐라!”

 

소주의 밤하늘을 뒤흔드는 함성!

 

소천장의 몰락을 알리는 외침이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과 항주의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상황이 급변했다.

 

중앙의 별동대를 공격하던 자들도 더 이상 별동대만을 상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 중 반 이상이 뒤에서 밀려드는 자들을 향해 도검을 틀었다.

 

바라던 상황이 벌어지자, 이무환이 소리쳤다.

 

“좋았어! 영감님들, 조금만 더 힘내쇼!”

 

영감님들, 호연청을 비롯한 밀천회의 절대고수들과 우내혁은 송충이를 씹은 표정을 지은 채 상대를 공격했다. 마치 상대가 이무환이라도 되는 것처럼.

 

―빌어먹을 놈! 저놈의 주둥이는 지치지도 않나?!

 

속마음이야 그랬지만, 그럴 힘으로 상대를 향해 한 번 더 손을 썼다.

 

그사이 위지창화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뭐 하느냐?! 놈들을 막아라!”

 

하지만 전세는 이미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였다.

 

밀려드는 해일 앞의 모래성 같은 상황이었다.

 

“아버님! 일단 식구들부터 피신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위지호천이 악을 쓰듯이 외쳤다.

 

그의 눈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 끄떡없을 것 같던 소천장이 무너진다. 절강을 거머쥐고 천하를 향해 웅비하려던 때가 엊그제 같거늘, 그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백 년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냐?!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죽을 것이니라! 너도 이 아비와 함께 죽을 각오를 해라!”

 

위지창화가 분노의 눈으로 위지호천을 노려보며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위지호천의 정신은 이미 공포에 삼켜져 버린 상태였다.

 

한 팔을 쓸 수 없는 이상 살아날 길이 없다. 적의 검에 심장이 뚫리고 목이 잘린 채 처참하게 죽어갈 게 분명했다.

 

그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어떻게 합니까?! 저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위지호천은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을 치더니 몸을 돌리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호천!”

 

위지창화는 노성을 내지르며 위지호천을 불렀다. 하지만 위지호천은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고 별원 쪽으로 사라졌다.

 

절정신룡이라 불리던 아들이 겁에 질려 도망친다.

 

위지가의 평생 숙원을 이루리라 생각했던 아들이!

 

노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그 분노를 정천무림맹과 항주의 연합 세력을 향해 터뜨렸다.

 

“크하하하! 오냐, 이놈들! 어디 끝장을 보자!”

 

위지창화가 검을 든 채 전장을 향해 뛰어들자, 소천장과 묵운방의 무사들도 마지막 불길을 태웠다.

 

 

 

순식간에 대연무장이 혼전 양상으로 변했다.

 

이무환은 하얗게 웃으며 묵린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별동대의 앞을 막던 자들 중 태반이 뒤에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린 상태.

 

남은 자는 삼십여 명. 이들로서는 자신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제 끝내죠! 마음대로 움직이세요!”

 

이무환이 말이 떨어진 순간, 호연청 등 밀천회의 고수들이 일제히 방어진을 풀고 공격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빨리 광룡의 곁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듯.

 

콰과광! 쩌저저정!

 

“크억!”

 

“허어억!”

 

십여 명이 비명과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지고, 구멍이 뻥 뚫렸다.

 

호연청과 황보광과 소천득이 먼저 원진을 깨고 혼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뒤이어 우내혁과 헌원숭과 모용상명이 당황해 주춤거리는 상대를 쓰러뜨리고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나마 남았던 자들 반이 무너지자, 포위를 하고 있던 자들도 포위망을 풀고 별동대에게서 멀어졌다.

 

이무환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남아 있는 별동대는 순우경과 사마강을 빼고 모두 광룡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밀천회의 절대고수들보다 훨씬 내외상이 심했다.

 

특히 영호승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멋쟁이,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겨, 견딜 만합니다.”

 

“괜찮기는…… 다 죽게 생겼고만…….”

 

이무환은 영호승을 째려보더니,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무지 아까운 표정으로 대나무통을 꺼내서 폭령잠마영단을 한 알 내밀었다.

 

“이거 먹고, 싸움에 끼어들지 마.”

 

영호승은 재빨리 영단을 받아 챙겼다. 와중에도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단주… 감사합니다.”

 

이무환은 대나무통을 품에 넣으려다 영단을 한 알 더 꺼냈다.

 

“이거 먹으쇼.”

 

순우경은 이무환이 내민 손을 바라보고 멈칫했다.

 

무슨 약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영호승이 감격하며 복용하는 걸 보니 제법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가 막 이무환의 손에서 영단을 받아 들 때다.

 

“으음…….”

 

“후우, 아무래도 혈맥이 몇 군데 막힌 거 같은데…….”

 

“나도…….”

 

무설강과 제갈신걸과 공손척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사실이 그랬다. 내상을 입고 혈맥도 막힌 것 같았다. 문제는 그동안 꾹 참고 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의 부상을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무환이 그들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가자미눈으로 세 사람을 흘겨보았다.

 

‘쳇, 무 형님까지 저러니…….’

 

대나무통에 몇 개나 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대충 생각해도 스무 개는 더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이무환은 대나무통을 탈탈 흔들었다. 정확히 세 알이 굴러 나왔다.

 

‘이것도 몇 번 해보니까 느는군.’

 

어차피 주기로 한 것. 이무환은 손을 내밀고 어깨를 쫙 폈다.

 

“하나씩 드쇼. 내 특별히 주는 거요.”

 

 

 

이무환이 영단을 나누어 주는 동안에도 근처로 다가오는 미친놈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무환은 대나무통을 품속에 넣고 사마강에게 말했다.

 

“끼어들지 말고, 멋쟁이하고 한쪽에서 몸부터 다스리쇼.”

 

영호승만큼은 아니어도, 사마강 역시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어차피 끼어들어 봐야 큰 도움도 안 될 것이었다.

 

사마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솔직히 영호승을 제외하면 자신의 실력은 별동대의 누구보다도 약했다.

 

검운장에서 고혼이 된 형제, 동료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태였다.

 

이무환은 그런 사마강을 향해 씩 웃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자, 이제 마무리를 지어볼까요?”

 

무설강 등에게는 그 말이 꼭 약값 제대로 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비록 지쳤다 해도 절대고수들이다.

 

그들이 합세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천태도장을 막던 위지창준이 참담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라!”

 

기다렸다는 듯 묵운방과 소천장의 살아남은 무사들이 장원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남은 자들은 모두가 위지가의 무사들이었다. 개중에는 가주인 위지창화도 있었다.

 

위지창준은 전력을 다해서 천태도장을 떨치고는 위지창화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형님!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위지창화는 처음부터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네가 먼저 가라! 어서!”

 

“형님!”

 

“호천이가 식구들을 데리고 빠져나갔을 것이다! 어서 가봐!”

 

위지창준은 그제야 위지창화의 마음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남아 있으면 죽음뿐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신형을 뽑아 올렸다.

 

위지창화는 위지창준마저 떠나자 검을 세우고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도 완벽히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위지가의 가주로서 적에게 등을 보일 순 없었다.

 

“내가 바로 위지창화니라! 누구든 위지가를 무너뜨리려면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그는 정천무림맹의 고수들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모두 쏟아냈다.

 

그러다 제갈도와 백혜대사의 합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백여 초 만에 무릎을 꿇었다.

 

“크으윽!”

 

위지창화는 무릎을 꿇은 채 검을 짚고 겨우 몸을 세웠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천둥처럼 귀청을 울렸다. 결코 정상적인 고동 소리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혈맥이 터지고, 가슴이 길게 갈라진 상태였다.

 

“그르르……. 이, 이럴 수는… 영광이 저 앞에 있거늘…….”

 

입을 열자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는 검병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천하를 잡을 것 같던 손에 겨우 피 묻은 검병만이 잡혀 있을 뿐. 이제는 그것마저도 버겁게 느껴졌다.

 

“뭐… 뭐가… 잘못된… 거지?”

 

그는 자문하듯 허공에 대고 물었다.

 

이무환이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옛날부터 우리 아버지가 그랬지. 되지도 않는 욕심 부리면 벼락 맞는다고. 근데 사실 욕심은 아버지가 나보다 더 부렸거든? 그래도 지금까지 멀쩡해. 왜 그런지 아슈?”

 

위지창화의 고개가 힘들게 돌아갔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도 궁금하다는 듯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잘난 아들을 두어서요.”

 

이무환을 가까이서 겪은 사람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괜히 들었다는 듯.

 

위지창화는 눈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이무환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위지호천은 부친인 그를 놔두고 도망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무환이 정상으로 보인다는 말은 아니었다.

 

“미친… 놈.”

 

그는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긴 채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무환이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걸 이제 알았나?”

 

그러고는 돌아서며 소리쳤다.

 

“뭐 하쇼? 이대로 날 샐 거요! 빨리빨리 주위를 살펴봐요! 다친 사람이 어디 구석에서 도움을 기다릴지도 모르잖아요!”

 

사람들은 그제야 사방으로 흩어지며 부상당한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였다.

 

이무환의 눈에, 저만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건물을 돌아 나오는 게 보였다.

 

“어? 저 양반은……?”

 

얼굴에 걸쳐진 면사는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면검마임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본래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었으니까.

 

“무 형님, 이 사람 좀 부탁할게요.”

 

이무환은 옆에 있는 무설강에게 위지창화를 부탁했다. 중상을 입고 쓰러지긴 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에게 들을 말이 많았다. 해결할 일도 있었다. 아직 죽어서는 안 되었다.

 

 

 

이무환이 다급히 다가가자, 주광천은 가슴을 움켜쥔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어떻게 된 거요?”

 

이무환의 질문에 주광천은 웃기만 했다.

 

어느 때보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환비. 아니, 운비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먹먹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다가왔다.

 

“아버지……. 당신이 내 아버지란 말입니까? 그런데 왜 그동안 숨긴 겁니까?”

 

“어쩔 수 없었다. 네 외조부가 원치 않았으니까.”

 

“외조부가 원치 않았다고요? 그래서 아들인 저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미안하다, 운비야.”

 

“왜, 왜! 미안할 짓을 한 겁니까?”

 

자신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서 운비가, 아들이 다가오는 것만 바라보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운비가 떨리는 손을 뻗은 채 품으로 안겨들었다. 가만히 그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간난아이 때 이후 처음으로 안아보는 아들이 아닌가.

 

가슴이 복받쳤다.

 

바로 그 순간, 가슴에 불꼬챙이가 꽂힌 듯 화끈한 충격이 전해졌다.

 

품 안에서 아들이 말했다.

 

“그럼 계속 숨기고 살 것이지, 왜 나타났습니까?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내 아버지라는 걸.”

 

그러고는 품을 벗어나 뒤로 물러났다.

 

자신은 가슴에서 핏물이 솟구치는데도, 뒷걸음치며 멀어지는 아들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운비야…….”

 

“그 이름은… 영원히 잊힐 겁니다. 누구도 모를 테니까…….”

 

아들은 그 말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광천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 이무환의 질문에 대답했다.

 

“조금… 다쳤네.”

 

“이게 조금이오?”

 

주광천의 피로 물든 가슴에선 말하는 중에도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광천 같은 고수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을 정도면 절대 단순한 부상일 리가 없었다. 아니, 단순한 부상이기는커녕 중상도 당장 죽을 정도의 중상일 것이었다.

 

하지만 주광천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네.”

 

“어디, 상처 좀 봅시다.”

 

이무환이 당장 달려들 것처럼 손을 뻗자 주광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부탁할 게 있네.”

 

“부탁?”

 

“비아를 만나거든… 원망하지 않는다고 전해주게나.”

 

이무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환비를 만난 거요?”

 

“만났네. 다 말해주었지. 이제는 숨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까…….”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하나. 

 

이무환이 이를 악물고 물어보았다. 목소리가 어금니에 갈려 어눌하게 흘러나왔다.

 

“혹시… 혹시 말이오. 당신 상처, 환비가 한 짓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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