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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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37화
237화
대연무장의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던 무사들이 수장들의 지휘를 받으며 장원을 빠져나갔다.
“비격당의 무사들은 나를 따라와라!”
“놈들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빨리 따라와!”
순식간에 삼백의 무사가 장원을 빠져나갔다.
장원 안에 남은 사람은 이백오십여 명. 대부분이 묵운방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이무환 일행을 상대했다.
그사이 장원 밖에서 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일차 저지선이 무너지고 있는 듯했다.
환비가 나서며 위지창준을 향해 외쳤다.
“위지 대협! 저희가 이쪽을 맡을 테니 밖을 지원해 주십시오!”
환비의 강함에 대해서는 이미 경충문과 위지호천에게 들었다. 그들은 숫자가 적으니 바깥쪽의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안쪽을 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위지창준은 황보광과 격전을 벌이다 말고 뒤로 몸을 뺐다.
“그럼 부탁하겠네! 적운당의 무사들은 뒤로 빠져라!”
이무환은 환비가 잠풍련의 고수들과 함께 합세하자 속으로 무면검마를 욕했다.
‘빌어먹을 인간! 책임진다고 했으면 확실히 해야 할 거 아냐?’
은근히 화가 났다.
그의 묵린도가 그의 마음을 알고 도명을 터뜨렸다.
지이이잉!
이무환은 어둠보다 더 검은 빛이 번뜩이는 묵린도를 들고 전면을 향해 내려쳤다.
“환비! 아예 오늘 끝장을 내자!”
환비는 혼자서 광룡과 맞붙을 생각이 없었다.
“광룡을 공격하시오!”
기다렸다는 듯 잠풍십마 중 살아남은 넷이 달려들었다.
광룡에게 죽어간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서!
이무환은 그들 사이로 뛰어들며 우수로는 묵린유성도를, 좌수로는 천광수뢰공을 펼쳤다.
묵광이 휘돌며 다섯 사람을 휘감았다.
콰과과광!
굉음이 연이어 터지며 강기의 파편이 주위 오 장을 휩쓸었다.
절대경지의 고수인 환비와 초절정고수인 잠풍십마 넷의 합공이다.
제아무리 이무환이 강하다 해도 단숨에 그들을 제압할 방법은 없었다. 더구나 그는 공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
‘제길! 시간을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는데…….’
반면 환비 역시 잠풍십마 넷과 합공하면서 조금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자 이가 갈렸다.
‘무식할 정도로 강한 놈!’
무식한 것만이 아니다. 여우보다도 더 교활했다.
광룡을 죽이지 않고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황.
환비는 이가 갈리는 한편으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상황을 주시하던 위지창화가 마침내 검을 빼 들었다.
“놈들이 지쳤다! 쉴 새 없이 몰아붙여라!”
위지창화가 나서자, 그를 호위하던 아홉 명의 호법과 장로들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무환은 상황이 다급해지자 지체없이 천광지령을 끌어올렸다. 내력 소모가 심해지더라도 상황을 바꾸어야만 했다.
좌수에 주먹만 한 빛의 구슬이 맺혔다.
순간, 이무환은 환비를 향해 천광주를 쏘아내고 잠풍련의 고수들을 향해 묵린도를 휘둘렀다.
환비의 눈이 홉떠졌다.
“헉!”
눈앞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가공할 기운이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대경한 그는 천풍장을 전력으로 내쳤다.
콰앙!
거센 충격을 받은 환비가 다섯 치 깊이의 고랑을 남긴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윽…….”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짓눌린 신음!
“사형!”
무설강과 격전을 벌이던 광유가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무설강의 검세에 눌려 환비를 도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수비에 급급하던 그가 환비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무설강의 검세가 그의 검과 몸을 한꺼번에 휩쓸고 지나갔다.
떠덩! 퍼벅!
“허억! 컥!”
광유의 몸뚱이가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쩍 벌어진 그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무설강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악물고 신형을 날리더니 광유의 가슴에 검을 틀어박았다.
“크억!”
그사이 이무환은 잠풍련의 고수 중 하나의 허리를 반쯤 베어버렸다. 그러고는 급급히 물러서는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친 악귀가 따로 없었다.
“끝장을 보자!”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세 사람은 멈칫하며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그들이 멈칫한 순간, 이무환은 수류보를 극성으로 펼치며 묵린도를 휘둘렀다.
둘이 빠진 셋만으로는 반쯤 미친 이무환의 도세를 막지 못했다.
환비가 흔들린 내력을 가라앉히고 합세하려 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이 이무환의 도세에 쓰러진 후였다.
이무환은 남은 한 사람을 놔둔 채 환비를 향해 공격 방향을 돌렸다.
“개자식! 너는 죽어도 싼 놈이다! 네놈의 머리를 내가 떼어주마!”
그의 좌수 위에서 천광주가 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휘돌았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 환비는 입술을 깨물고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콰광!
다시 한번 두 사람의 기운이 격돌하며 환비의 몸뚱이가 일 장가량 튕겨졌다.
“크윽!”
환비는 참지 못하고 신음이 터뜨렸다.
신음이 터진 그의 입가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상당히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말.
이무환은 당장 환비를 죽이고 싶었지만, 무면검마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지미! 이번에도 처리 못하면 진짜 죽여 버릴 테니 알아서 하쇼!’
그는 아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다른 적을 찾아서 움직였다.
환비가 아니어도 상대할 적은 아직 이백여 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위지창화와 소천장의 노고수들마저 끼어든 터였다.
“빨리 좀 들어오지!”
이무환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순우경과 영호승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안쪽으로 들어와서 숨이라도 골라!”
순우경은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적잖은 내상을 입은 듯했다.
영호승의 상태는 더욱 심했다. 창백한 안색, 입가에는 핏줄기마저 보였다.
게다가 몸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어서 남색 장포가 묵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죽었을지 모를 정도.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황보광과 호연청을 비롯해 절대고수라는 사람들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장포가 찢어지고, 펼쳐 내는 무위는 전만 못하다.
하긴 적이 약하다 해도 일류 이상의 무사들이다. 개중에는 절정의 고수도 있고, 두어 사람은 절대고수다.
그런 무사 수백에 둘러싸여 일각 이상 싸우고, 그들 중 이백이 훨씬 넘는 적을 죽이지 않았는가.
그들이 무한한 진기를 소유하지 않은 이상 내력이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제길, 일단 물러섰다가 다시 올까?’
끝까지 싸운다면 지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나 일각만 지나도 반 이상을 잃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 묵운방 총단과의 전쟁이 남은 상황. 그래선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손실이 더 커지면 안돼!’
이무환이 내심 후퇴를 할 것인지 망설일 때였다.
멀리서 들리던 격전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함성소리도 점점 커졌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버릇처럼 외치는 소리.
정의! 협의! 목숨을 바쳐 정의를 실현하자!
그들이 악을 쓰며 외치는 소리에 고막이 먹먹할 지경이었다.
‘왔군!’
이무환은 묵린도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얼마 안 남았수!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쇼!”
한 소리 내지른 이무환은 전면을 향해서 묵린도를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살벌한 도강이 그물처럼 펼쳐졌다.
쩌저저저저적.
다른 사람들도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었다.
수그러들던 광풍이 다시 기세를 되찾고 대연무장에 휘몰아쳤다.
당황한 위지청화는 일단 몸을 뺐다.
적들이 담을 넘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까지 들어오면 끝장이었다.
“그대들은 즉시 바깥쪽의 적을 상대하시오!”
위지청화는 급한 대로 아홉 명의 호법과 장로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공세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소천장의 무사들은 모두 밖을 막아라!”
이무환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이백오십의 무사 중 백여 명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남은 자가 백수십 명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앞이 환하게 트인 것만 같았다.
전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편해진 상태 .
별동대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한편, 환비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자 뒤쪽으로 물러났다.
검운장에서 한 번 부딪쳐 봤다. 광룡이 강하다는 것을 그가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잠풍십마 중 넷과 합공을 했거늘, 단 두 번의 충돌로 심각한 부상을 입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대체 그 무공이 어떤 것인데 천풍으로도 막을 수 없단 말인가!’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광룡의 손에 형성된 빛의 구슬이 천광주고, 천광주가 바로 자신이 익힌 천풍과 극성이라는 것을.
사부인 천세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사우천주를 죽인 것이 바로 천광주를 이용한 파천삼법이라는 것을.
그는 이를 악문 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한 줄기 전음이 고막을 흔들었다.
“후원으로 와라, 운비.”
환비는 호흡을 가다듬다 말고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단순히 갑작스런 전음 때문이 아니었다. ‘운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누굴까? 전음의 주인이 누군데 사부밖에 모르는 자신의 본명을 알고 있단 말인가!
환비는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아, 오라면 가지.’
어차피 내상이 심해 적과 싸우기도 힘든 상태였다. 여차하면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는 뒤로 몸을 뺀 후 처마 밑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대연무장의 싸움과 바깥에서 벌어지는 격전에 신경을 곤두세운 사이, 건물을 돌아 후원으로 갔다.
대연무장이 폭풍우 속에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라면, 후원은 천 장 깊이의 심해였다.
화톳불도 없어 달빛만이 쏟아지는 곳. 건물 두어 개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일만 같다.
환비는 아무런 말이 없는데도 후원의 정원 구석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모든 사람이 전면으로 몰려가 있어서 후원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만 같았다.
“이제 나오시지.”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소리 없이 검은 그림자 하나가 맞은편 지붕에서 날아들었다.
눈 아래로 쓴 검은 면사를 쓴 자, 무면검마였다.
무면검마는 환비의 이 장 앞에 내려선 후 말없이 환비를 응시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마침내 만났구나, 운비.’
뒤로 주춤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선 환비가 괴이한 표정을 지으며 무면검마를 바라보았다.
이마가 그물처럼 갈라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
그런데 눈빛은 어디선가 본 듯했다.
그때 문득, 자신을 스쳐 가던 누군가의 젖은 눈빛이 떠올랐다.
환비는 아연한 표정으로 무면검마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무면검마는 경악한 환비를 바라보며 음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환비는 경악을 가라앉히고 조소를 머금었다.
“당신이 살아 있었다니. 어이가 없군. 그런데 당신이 왜 나에게 그걸 묻는 거지?”
“너에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흥, 웃기는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걸 묻는 거지? 아직도 잠풍십삼마의 수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무면검마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마음에 응어리진 것을 털어버리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면검마라면 자격을 논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내 이름이 주광천이라면 조금은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주… 광천?”
환비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난파선처럼 흔들리는 눈빛으로 무면검마 주광천을 직시했다.
“서, 설마… 당신이……?”
주광천이 계속 환비를 몰아쳤다.
“천세도인이 네 외조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느냐?”
“무, 무슨 말이지? 사부님이 내 외조부님이라고?”
주광천은 착잡한 어조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긴, 네가 그걸 알았다면 그 양반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겠지.”
환비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무슨 말이냐니까! 말해봐!”
주광천은 고개를 들어 서쪽으로 기울어진 달을 바라보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악몽과 같았던 지난 이십오 년간의 이야기를.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네가 태어나면서부터였지…….”
주광천이 환비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소주혈전은 막바지를 향해 치달렸다.
비슷한 숫자라면 정천무림맹 측도 밀릴 것이 없었다.
묵운방과 소천장의 최정예들 중 상당수가 별동대에게 죽고,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에게 붙잡혀 있는 판이었다.
반면 정천무림맹과 항주의 연합 세력에는 별동대를 제외하고도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남궁산산이 말한 전법에 따라 움직였다.
덕분에 진행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며 방어막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최소한의 피해. 그 효과는 장원의 담을 넘으며 확연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뚫렸다! 밀어붙여라!”
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