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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3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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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234화

 

234화

 

 

 

 

 

 

 

 

3

 

 

 

양주(揚洲)의 서쪽 야산 자락에는 십여 채의 제법 큰 장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장원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옆과 뒤쪽으로 겹겹이 이어진 십여 채의 대장원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었다면 말이 달라진다.

 

양주 사람들은 그곳을 십오형제장이라 불렀다. 열다섯 채가 붙어 있어서 생긴 이름이었다.

 

그러나 항주 사람들도 열다섯 채의 장원이 하나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곳이 묵운방의 총단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고.

 

그중 가장 중앙에 있는 장원이 어느 곳보다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웠는데, 늦은 봄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던 날, 중앙의 장원에 나머지 열네 채 장원의 주인들이 모여들었다.

 

 

 

“절강의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고풍스럽게 꾸며진 방 안에서 잔잔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쪽에 앉아 있던 열네 사람은 침중하게 굳은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상석에 앉은 노인은 나이를 짐작키 힘들 만큼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

 

길게 뻗다가 축 처진 하얀 눈썹, 주름이 자글자글한 입술.

 

언뜻 보면 수십 년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한 장사꾼 같았다. 그러나 주름진 눈꺼풀 속의 두 눈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안개가 낀 듯 모호한 눈빛. 사람의 마음을 제압하는 기묘한 힘이 담긴 눈빛을 지닌 사람이 어찌 평범한 장사꾼이랴.

 

“기 장로는 죽고, 경충문도 내상을 입고, 게다가 셋째도 한쪽 어깨가 박살나고……. 허어…….”

 

그들만 당한 것이 아니다. 묵운백령 사십칠인 중 서른둘이 죽었고, 삼백오십 무사 중 살아난 사람은 기껏 백 명도 채 안 되었다.

 

좌태상 사종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밀천회의 고수가 상당수 나타났다 들었습니다. 그들의 출현을 미처 몰랐던 게 실수였습니다, 방주.”

 

“광룡이란 놈도 나타났다고 했지?”

 

“하오나 그놈은 아직 애송이라…….”

 

“종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방주…….”

 

노인, 우문적태는 잔잔한 눈빛으로 사종위를 바라보았다.

 

사종위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구룡성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야율 늙은이가 죽었어. 그 일을 한 사람이 누구더냐?”

 

“광룡입니다.”

 

“맞아, 바로 그 자지. 그런데도 너는 단지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으로 무시하는구나. 쯔쯔쯔…….”

 

우문적태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고는, 사종위가 미처 모르는 사실을 하나 더 말해주었다.

 

“어제 무이산의 모용 늙은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고개를 번쩍 든 사종위의 눈이 커졌다.

 

“예? 하면 사우천은 누가……?”

 

우문적태가 다시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우천도 완전히 풍비박산 났다.”

 

사종위는 아연한 표정을 지은 채 무심결에 물었다.

 

“그럼 순우천이 회복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순우천이 아니다. 상황은 그가 회복되었다 해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어.”

 

사종위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우문적태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왜 지금 그런 말을 하겠는가.

 

“하오면… 설마……?”

 

우문적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는 그의 눈에서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안개에 쌓인 것처럼 희미해졌다.

 

“설마가 맞다. 광룡이 한 짓이다.”

 

“마, 맙소사…….”

 

앉아 있던 열세 명도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을 지었다.

 

광룡.

 

소문으로만 들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잠풍련뿐만이 아니라 사우천까지 정리해버렸다. 그것도 눈 깜짝할 새에.

 

진정 경천동지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광룡과 정천무림맹이 힘을 합쳤다. 힘을 아낄 생각하지 마라. 적을 얕봐서도 안 된다. 모든 힘을 끌어내고, 쓸 수 있는 방법은 뭐든 써야 할 게야.”

 

“존명!”

 

“명심하겠나이다!”

 

우문적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풍련이나 사우천은 그놈을 제대로 몰라 당했지만, 우리는 놈을 알고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지.’

 

돌아서는 그의 입가에 잔주름이 그어졌다.

 

‘게다가… 나에게는 조현이가 있지 않은가? 천하의 주인이 될 손자가. 흘흘흘흘. 야율모궁, 모용장호, 너희들은 죽어서도 모를 것이다. 그날, 너희들이 버리고 간 상자의 덮개에서 내가 뭘 얻었는지…….’

 

인연은 우연히 다가왔다. 그는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감췄다. 심지어 제자들과 심복들에게조차.

 

그리고 그 인연은 손자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했다. 잠풍을 가라앉히고 사우를 멈추게 한 광룡을 자신의 손자가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손자가 광룡을 처리하기만 한다면, 묵운은 천하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었다.

 

‘너는 반드시 이 할아비가 못 이룬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니라!’

 

 

 

4

 

 

 

비가 멈추고 구름이 걷혔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아 쪽물이 든 듯했다.

 

호주에 머문 지 이틀째 점심 무렵. 몸을 추스른 무사 백오십여 명이 호주의 객잔에 도착해서 이무환 일행과 합류했다.

 

그들 중에는 영호승과 남궁산산도 끼어 있었다.

 

“꼬맹아!”

 

“오빠아아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극적인(?) 상봉을 보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거의 끌어안다시피 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외조부님은?”

 

“어제 깨어나셨어요. 항주제일의 의원을 불러 맡겼으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유 대협도 이제 정신을 차렸어요.”

 

이무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정말 다행이네.”

 

“근데 오빠 몸은 괜찮아요?”

 

“음하하하, 나야 뭐… 여기저기 조금 아프지만, 견딜 만해.”

 

이무환이 진짜 아픈 것처럼 어물거리자 남궁산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무리해서 쫓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 그냥 쫓으려고만 했는데, 놈들이 너무 뭉그적거리고 늦게 가잖아. 그래서 한판 붙었지, 뭐. 너무 걱정 마. 많이 다치진 않았으니까.”

 

“남자는 허리 다치면 안 된다던데, 허리는 안 다쳤죠?”

 

“그러엄! 봐! 끄떡없지?!”

 

도저히 더는 못 듣겠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객방으로 들어갔다.

 

광룡과 싸울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았다.

 

남은 사람들은, 하도 봐서 무덤덤한 구룡성의 사람들과 순우경뿐이었다.

 

순우경은 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으니 기이하게도 가슴 한쪽에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무환과 남궁산산은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팔을 붙들고 생긋 웃었다.

 

“우리도 들어가요.”

 

이무환이 넌지시 말했다.

 

“꼬맹아, 어… 내 방으로 갈까?”

 

남궁산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이, 그래요, 오빠.”

 

끝내,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어물거리며 일어났다. 

 

 

 

항주의 무사들이 도착한 지 한 시진이 지날 즈음, 무호에서 온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호주 외곽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어차피 안휘의 무사들이 도착해야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터. 이무환과 남궁산산은 방 안에서 노닥거리다 그제야 나왔다.

 

“전숙과 무호에 있던 육백무사 중 사백은 남경으로 움직이고, 이백 명만 이곳으로 왔다고 하네.”

 

호연청의 말에 이무환이 홀짝이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천강문을 치겠다는 건가요? 사백이면 위험한데…….”

 

“그쪽에서 천강문을 치는 척하면 양주에 있는 놈들도 당장은 소주에 지원을 보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정천무림맹의 지원무사까지 합하면 호주의 인원은 총 사백.

 

위지가만 상대한다면 걱정할 것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양주의 묵운방 총단이 소주 쪽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계획은 좋은데, 인원 배치가 좀 잘못되었어요.”

 

그 말에 정천무림맹의 간부들과 우내혁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덕분에 검운장의 싸움에서 피해가 줄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녀가 한 번의 성공에 스스로를 과신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백혜대사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 듯했다.

 

“험, 여시주, 그 일은 본 맹의 군사께서 직접 계획한 것이라네.”

 

남궁산산은 백혜대사의 말에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분이 적과 싸우는 것을 직접 보셨을까요?”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그럼 이곳의 사정을 이곳 사람보다 세세히 알고 계실까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네. 우리가 전말을 적어 보냈으니 말이야.”

 

“들은 것과 본 것은 분명히 달라요. 저는 적의 강함을 직접 보았어요. 여러분도 겪었고요. 하지만 안휘에 계신 분들은 아니지요. 그러니 적을 판단하는 것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안 그런가요?”

 

우내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그 정도는 충분히 생각하고 계획을 짰을 거라고 보네.”

 

“소주로 접근하면 우리의 움직임이 저들에게 낱낱이 전해질 거예요. 천강문의 경우완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 제대로 계획을 짰다면, 이쪽으로 사백, 남경으로 이백을 보냈어야 했어요.”

 

우내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백으로 천강문을 칠 수 있다고 보나?”

 

“누가 치랬나요? 그리고 사백이 가도 정말 칠 생각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백 명만 움직이면 양주에 있는 자들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네.”

 

“어차피 싸울 것이 아니라면, 인근의 무사들을 대충 끌어모아서 인원만 늘려도 되요. 이백 정도는 쉽게 모을 수 있을 테니까요.”

 

우내혁이 입을 닫았다.

 

백혜대사가 어렴풋이 남궁산산의 말을 알아듣고 불호를 외며 물었다.

 

“아미타불, 그럼 우리의 힘만으로는 소주를 칠 수 없다고 보는 건가?”

 

“쉽지는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이무환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뭔데? 말해봐.”

 

남궁산산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대답했다.

 

“간단해요. 우리 측의 고수들이 단체로 미쳐 버리는 거죠.”

 

호연청이 스멀거리는 불안감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예요. 최강의 절대고수들이 적의 중심부를 완전히 휘저어서, 저들로 하여금 싸울 의욕을 잃게 만드는 거죠. 그런 다음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외부를 치면, 아마 저들은 도망갈 길을 먼저 생각하게 될 거예요.”

 

이무환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씩 웃었다.

 

“흠… 제대로 미쳐 보라, 이 말이지? 그것도 단체로?”

 

“바로 그거예요, 오빠. 중심부로 들어간 분들은 조금 힘들겠지만, 그로 인해 모자란 인원만큼의 공백이 메워질 수 있을 거예요.”

 

이무환은 둘러앉은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보다 호연청에게서 멈추었다.

 

“어떻수? 까짓 거, 정의를 위해서 한번 미쳐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죠.”

 

‘썩을 놈. 왜 하필 나를 보고 말하는 거야?’

 

호연청은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어쩌랴, 못한다고 하면, 하다못해 인상만 찌푸려도 분명 두고두고 씹어댈 텐데.

 

죽어도 그 소리는 듣기 싫었다. 

 

차라리 한번 미친 짓을 하고 말지.

 

그는 굳은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를 위한 일인데, 못할 것도 없지!”

 

이무환의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황보광, 소천득, 헌원숭은 건너뛰고 우내혁…….

 

무설강과 제갈신걸 등 구룡성의 사람들은 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자신을 따라올 사람들이니까.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도 못하면서 정의를 어찌 논하겠나?”

 

“허험, 나도 젊은 때는 성질 좀 있었다네.”

 

천중십마, 우내십존에 속한 사람들이 반론도 못하는 상태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무환은 반대하는 사람이 없자, 아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물었다.

 

“꼬맹아, 대장은 누가 하지?”

 

“그야 당연히 오빠죠.”

 

 

 

5

 

 

 

신시 말, 이무환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호주를 출발했다.

 

호주를 벗어나 십 리가량을 가자 갈대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이무환의 눈이 커졌다.

 

“어? 저 사람들은 황산검문 사람들이잖아?”

 

그랬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 속에는 황산검문의 무사들이 삼십여 명 섞여 있었다.

 

이무환이 바라보는 사이, 공은효와 담환과 전상휘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사이가 가까운 공은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있었소, 이 공자?”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님께서 항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우리를 파견하셨소.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하시면서 말이오.”

 

“하하하. 그거 참, 고마우신 분이군요.”

 

“그런데 오다가 저분들을 만났지 뭐요. 마침 이 공자가 이곳에 있다 하기에 함께 왔소. 상황을 제대로 알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왔을 텐데… 그게 아쉬울 뿐이오.”

 

“하, 하. 이 정도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무환은 밝게 웃으며 황산검문의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개중 대여섯 명은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함께 검을 들고 사우천과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때 문득, 이무환의 눈이 황산검문 제자들의 뒤쪽을 향했다.

 

‘저게 누구야?’

 

한 사람이 좌우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유소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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