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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3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33화

 

233화

 

 

 

 

 

 

 

 

휘이이잉!

 

바람이 불며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백여 명의 적 중 쓰러진 자는 구십여 명. 겨우 일백이삼십 명만이 도주했다.

 

반면 이무환 일행은 여섯 명이 죽고 이십 여 명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저들을 쫓아야 하지 않겠나?”

 

우내혁이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이무환은 후퇴하는 적의 꼬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우내혁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왜? 생각이 바뀌었나? 쫓아가면 자네 말대로 끝장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무환이 묵린도를 도집에 넣으며 우내혁을 째려보았다.

 

“도망갈 길도 없는 구석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에게 대드는 법입니다. 함께 죽자고 달려들면 우리 중 반은 죽을 텐데, 그러면 남는 게 없죠.”

 

적을 쫓아도 도망갈 길을 한 군데쯤은 터줘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는다.

 

저들을 죽인다고 묵운방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공연한 피해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우내혁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격전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좀 쉬었다가 천천히 쫓아가죠. 강서까지 말입니다.”

 

나직이 입을 여는 이무환의 눈빛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가워졌다.

 

우내혁은 한마디 더 하려다가 이무환의 눈을 보고 입을 닫았다.

 

 

 

6

 

 

 

정천무림맹의 안휘성 임시 거점인 무호의 호영장(湖影莊)에 전령이 도착한 것은 신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전령이 도착한 지 일각도 되지 않아 십여 명의 간부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무당의 장로이자 정천무림맹 부맹주인 원화 도장은 간부들이 모두 모인 다음에야 전령이 전해온 소식을 전했다.

 

“묵운방과 절강의 마도연합이 검운장을 공격했다고 하오. 전보다 훨씬 강한 전력으로 말이오.”

 

순간 만 근 바위 같은 침묵이 방 안을 내리눌렀다.

 

이삼 일 간격으로 지원을 바라는 전령이 왔다. 그런데도 지원을 보낼 여력이 없어 총단에서 사람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적도 피해가 많은 상황. 당분간은 공격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자신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적이 항주를 쳤다고 한다. 그것도 전보다 훨씬 강한 전력으로.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묵을 참지 못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으음, 어찌 되었다 합니까?”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양이었다. 그는 적은 인원이라도 보내자며 줄기차게 지원을 찬성한 사람 중 하나였다.

 

질문을 던진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원화도장의 답을 기다렸다.

 

원화 도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적을… 물리쳤다고 하오.”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궁양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오오, 그거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그렇지! 우 대협과 구양 대협까지 있는데 어찌 패할 리가 있겠소?”

 

“이 기회에 놈들을 제거해야 하외다! 부맹주, 명을 내리시구려!”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은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마치 자신들이 승리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했다.

 

원화도장은 웅성거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역시 기뻤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씁쓸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정천무림맹 덕분에 이긴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전령에게 들은 바로는 결코 정천무림맹의 힘으로 적을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방 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남궁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승리한 것은 기쁩니다만, 뭔가 좀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오?”

 

“놈들의 전력이 전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군요.”

 

원화도장은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는 듯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놈들의 전력이 전보다 훨씬 강해서 패색이 짙었는데, 뜻밖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쳤다고 하오.”

 

“뜻밖의 사람들이라니요?”

 

“정천총령주인 호연청 령주가 밀천회의 사람들과 함께 검운장에 나타났다고 하는구려. 그리고… 구룡성의 천외광룡도…….”

 

원화도장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간부들의 입도 점점 크게 벌어졌다.

 

밀천회의 고수들이 나타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거늘, 구룡성을 뒤집어놓았다는 광룡까지 나타나다니!

 

대체 그들이 왜 모조리 항주의 검운장에 나타났단 말인가?

 

사람들이 기쁨과 의아함으로 웅성댈 때다.

 

원화도장이 정색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사들을 이동시켜 달라고 하는구려. 곧장 강소의 본진을 칠 모양이오.”

 

사위가 다시 조용해졌다.

 

조금 전과는 다른 뜻의 침묵이었다.

 

열기가 피어나는 침묵. 정천무림맹 간부들의 가슴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제4장. 정의를 위해서라면 미친 짓인들 못하랴

 

 

 

 

 

 

 

1

 

 

 

얕은 구릉을 넘어서자 좌측으로 호주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태호가 보였다. 그리고 호숫가를 달리는 수백 명의 무사도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사오백 장 정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백가위가 소리쳤다.

 

“본 방의 무사들입니다, 태상! 어어어이!”

 

그의 목소리를 들은 듯, 호주를 향해 달리던 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곧 구릉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제야 죽을상이던 사람들의 얼굴이 펴졌다.

 

경충문이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어깨를 펴고, 위지호천의 창백한 얼굴에도 희망이 떠올랐다.

 

“광룡, 정말 지독한 놈이었어.”

 

경충문이 이무환을 떠올리고 진저리를 쳤다.

 

위지호천은 그 이름만 듣고도 이가 딱딱 부딪쳤다.

 

하루 종일 악몽을 꾼 기분.

 

아직도 악몽에 붙잡혀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원 무사대를 만난 이상 곧 악몽에서 깨어날 것이었다.

 

‘개자식, 내 반드시 그 자식의 살을 씹고 피를 마셔 버리겠어!’

 

 

 

위지가의 무사는 모두 삼백.

 

그들을 이끌고 온 자는 위지창화의 바로 아래 동생이자, 묵운방의 주력인 삼단 중 하나, 적운단(赤雲團)의 단주인 위지창준이었다.

 

그가 비록 동생이라지만, 누구도 그를 위지창화의 아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위지창화가 위지가의 가주라면, 그는 묵운방의 실세였다.

 

게다가 무공 역시 절대경지에 이르러 묵운방의 서열 십위에 올라 있었다.

 

“태상,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지창준의 인사에 경충문이 자조의 표정을 지었다.

 

“사정은 나중에 설명하지. 일단 이곳을 떠나세.”

 

위지창준은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고 위지호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얼굴, 축 처진 어깨. 위지호천의 모습에선 그 어떤 기백도 보이지 않았다.

 

‘저 아이가 저런 모습이라니. 항주에서 무슨 일을 당했기에 저런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은근히 분노가 솟구쳤다.

 

적에게 패한 것만 해도 치욕이거늘, 기백마저 잃어버리다니!

 

대위지가문의 장손으로서 저런 꼴을 보이다니!

 

그는 분노가 끓었지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방주의 양팔 중 하나인 우태상 경충문마저도 내상을 입어 십 년은 더 늙은 듯했다. 위지호천을 나무라면 결국 경충문마저 나무라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 문득, 조금 뒤로 처져 따라오는 자가 보였다.

 

나이는 위지호천보다 어린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위지호천이 정상이라 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저자가 잠풍련의 환비인가?’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환비를 훑었다.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이었다.

 

 

 

호주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을 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지창준은 경충문이 왜 호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소주로 가자는지 의아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부상자가 많았다. 소주까지 가느니 호주에서도 치료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했다.

 

“태상, 호주에서 치료하고 가시는 게…….”

 

경충문이라고 해서 왜 그러고 싶지 않을까.

 

삼백의 무사가 왔다. 그것도 묵운방의 정예들이. 비록 절대경지에 이른 고수는 위지창준 하나지만, 삼백이면 추격대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상대는 할 수 있으되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경충문은 당장 모험을 하는 것보다 나중을 기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견딜 만하네. 지금 추격대와 부딪쳐 봐야 이익 될 게 없으니 일단 소주까지 가세.”

 

“그렇게 강한 자들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네만, 십중팔구 이길 거라 생각했던 싸움에서 패한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네.”

 

위지창준도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밀천회의 고수, 그리고 광룡에 대한 것까지.

 

그래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경충문에게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태상도 이제 나이 먹었군. 한때는 공포의 존재였거늘.’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투기가 끓어올랐다.

 

‘좋아, 내가 직접 놈들을 잡아보지.’

 

 

 

묵운방 무리들이 멀어지는 것을 한 사람이 지켜보았다.

 

눈 아래로 검은 면사를 걸친 중년인, 무면검마였다.

 

‘비아야, 내 비록 네 앞에 나설 자격은 없다만, 네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만큼은 필히 막을 것이다.’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렀다.

 

면사도 젖어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그의 눈은 멀어지는 환비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랑, 이제 확실히 알고 있다오. 당신보다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걸. 저승에서나마 당신의 아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구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호숫가에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끝이 보이지 않던 태호가 더욱더 넓게 느껴졌다.

 

무면검마는 묵운방 무리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2

 

 

 

남북으로 이백 리, 동서로 백오십 리의 광대한 호수가 물안개 자욱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본래 바다였던 곳이 장강의 삼각주에 막혀 호수로 변했다는 곳, 태호(太湖)였다.

 

“으아! 시원하다!”

 

이무환은 두 팔을 벌린 채 태호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기분이 무지 좋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뒤에 서 있는 사람 누구도 기분 좋은 사람은 없었다.

 

비가 온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 기분이 좋기는커녕 짜증이나 안 나면 다행이었다.

 

호연청은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자신의 짐작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역시 광룡이 비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군.’

 

그때 홱 몸을 돌린 이무환이 물었다.

 

“여기서 소주까지 얼마나 되죠?”

 

사마강이 대답했다.

 

“백이삼십 리 정도 될 거네.”

 

“가깝군요.”

 

이무환의 한마디가 떨어진 순간, 사람들은 불안한 눈으로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그런 표정이었다.

 

호연청은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넌지시 물었다.

 

“설마… 당장 소주까지 놈들을 쫓아가자는 건 아니겠지?”

 

이무환이 호연청을 흘겨보았다.

 

“미쳤습니까?”

 

한마디 툭 내뱉은 이무환이 한쪽을 바라보았다. 적수방의 무사 하나가 잔뜩 겁을 먹은 채 굳어 있었다.

 

“지원 무사가 얼마나 왔다고 했죠?”

 

적수방의 무사는 하늘의 부름이라도 받은 듯 얼어붙은 입을 열었다.

 

“사, 삼백입니다, 대형!”

 

“들었죠? 지원 무사가 삼백이나 왔다는데 우리끼리 쫓아가서 뭘 어쩌자고요?”

 

호연청은 갑자기 뒷골이 당겼다.

 

그러나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자꾸 상대하다 보니 그것도 면역이 된 듯 금방 가라앉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일단 호주에 가서 지원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죠, 뭐.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제가 사죠.”

 

나도 돈 있어, 이놈아!

 

호연청은 그 말을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생각해 보니 품속에 있는 돈이라고는 황금 백 냥짜리 전표 열 장이 전부였다. 그것도 이무환에게 받은 것 말이다.

 

그걸 내고 음식을 먹으면 이무환의 얼굴에 잔뜩 비웃음이 떠오를 게 분명했다. 

 

그런 꼴을 볼 수는 없지!

 

“그럼… 가세.”

 

호연청이 막 돌아서는데, 이무환이 중얼거리며 옆을 스쳐 갔다.

 

“좌우간 영감님들이 공짜는 되게 좋아한다니까.”

 

작게 말했다지만, 당연히 들렸다.

 

아마 비가 오지 않았다면, 호연청의 끓는 가슴이 그날 터져 버렸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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