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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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29화
229화
익숙한 목소리.
이무환은 전음의 주인을 떠올리고 표정이 굳어졌다.
슬쩍 눈을 돌리자, 저만치 담장 근처에서 묵운방의 무사들을 공격하는 자가 보였다.
검은 면사로 눈 아래가 가려진 자. 이마에 그물 같은 상처가 가득 나 있는 자.
무면검마였다.
‘제길! 들어달라는 부탁이 이거였나?’
이무환은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환비를 쫓지 않았다. 대신 환비의 뒤를 따라 도주하는 위지호천을 향해 무영뢰를 날렸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공격. 더구나 이십여 장의 거리다.
이무환은 무영뢰에 처음으로 십성의 공력을 실어보았다.
고오오오!
세 줄기 벼락같은 광채가 그림자도 없이 허공을 단축했다.
다른 때와 달리 귀곡성조차 들리지 않았다.
위지호천은 가공할 기운이 등 뒤에서 엄습하자 본능적으로 몸을 솟구쳤다.
고막이 먹먹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
그 자리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느낌!
‘아, 안 돼!’
공포에 질린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신형을 틀었다.
그러나 십성 공력이 실린 무영뢰는 이름 그대로 그림자 없는 벼락이었다.
무영뢰 하나가 호선을 그리며 선회하더니, 위지호천의 비파골을 부수며 어깨를 뚫었다.
퍽!
피분수가 허공에서 뿌려지며 위지호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크억!”
비명을 지르는 그를 향해 다시 두 개의 무영뢰가 선회하며 날아들었다.
‘흥! 당장 죽이지는 않으마.’
사실 머리나 심장을 노렸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영호승에게 맡길 생각이었기에 목숨만은 남겨두었다.
대신 이무환은 위지호천의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뒤따라가던 기정교가 멍청하게도 무영뢰의 동선으로 끼어들었다.
퍼벅!
“끄억!”
기정교의 심장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위지호천은 입을 쩍 벌린 채 쓰러지는 기정교를 보며 공포에 휩싸였다.
‘멈추면 죽는다!’
오직 그것만을 생각한 그는 혼신을 다해 담장을 넘었다.
이무환은 무영뢰를 거두고 그들을 쫓아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담장을 넘기도 전에 돌아와야만 했다. 영호승의 대경한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막위! 수린아!”
아무래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이무환은 담장을 박차고 신형을 뒤로 날렸다.
저만치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막위가 보였다. 그의 앞을 피로 물든 혁수린이 막고 있었다.
영호승과 단우경이 다급히 혁수린을 보호하며 도검을 휘두르는데, 잠풍련의 고수 넷이 그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영호승과 단우경의 실력으로는 일대일로도 쉽지 않은 자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상황이다.
“저 때려죽일 것들이!”
이무환은 눈을 부라리며 좌수에 들린 무영뢰를 날렸다.
세 발의 무영뢰가 이십 장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세 명의 몸통을 뚫어버렸다.
남은 한 사람은 대경하며 급급히 뒤로 물러섰다.
순간, 허공에서 빙글 선회한 무영뢰가 물러선 자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쒜에에엑!
퍼벅!
피할 틈도 없이 세 발의 무영뢰는 물러서는 잠풍련 무사의 목과 옆구리와 어깨를 사정없이 뚫어버렸다.
이무환은 무영뢰를 회수하고는, 쓰러진 막위와 혁수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끼! 꼬챙이! 괜찮아?!”
이미 수뇌들이 모두 도주한 상황. 게다가 후퇴 명령마저 떨어진 상태다.
묵운방과 마도연합의 무사들은 정신없이 검운장을 빠져나갔다.
수백 명이 일제히 메뚜기처럼 튀어 올라 검운장을 빠져나가는 사이, 무면검마도 담장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검운장에 남은 광룡단과 정천무림맹과 항주의 연합세력 무사들은 숨을 헐떡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넋이 반쯤 빠진 사람들 같았다.
그때 이무환의 목소리가 검운장을 뒤흔들었다.
“도끼! 정신 차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누군가가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부상자들부터 돌봐라!”
제2장. 아버지는 먼저 떠나고…….
1
적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시뻘건 선혈로 뒤덮인 시신과 부상자만이 남았다.
무려 구백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였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묵운방과 마도연합 무사들의 사상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적다고 해도, 정천무림맹과 검운장과 항주 세력의 연합 무사들 역시 삼백수십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통곡할 정신도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상자들이 사방에 널린 상황.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찌르고, 깊고 깊은 신음이 장원 전체를 짓눌렀다.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부상을 입은 것처럼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오가며 악다구니를 써댔다.
“사, 살려줘!”
“으아아! 내 팔!”
“이봐! 정신 차려! 자넨 살 수 있다니까!”
“피부터 막아!”
“누구 금창약 없어?!”
“아파도 참게! 상처를 묶어야 하네!”
적의 살수는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우내십존에 속한 우내혁과 구양진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정천무림맹의 간부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절강에서 제법 알려진 고수들도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시신으로 변한 채 널브러져 있고, 개중 목숨을 구한 자도 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전쟁이 끝난 곳. 그곳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막위는 가슴이 갈라져 갈비뼈가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검기에 당한 것이어서 심장 근처의 혈맥이 막혔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장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무환은 막위를 한쪽으로 데려간 후 막힌 가슴의 혈맥을 뚫기 위해 진기를 불어넣었다.
다행히 막위는 예상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이무환이 진기를 흘려 넣은 지 반의반 각가량이 지날 무렵 눈을 뜬 것이다.
“이제 정신 들어?!”
“다, 단주…….”
“바보야! 부상을 입었으면 도망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잖아! 그러다 진짜 죽으면 유 낭자만 불쌍해지잖아!”
왜 유소경이 불쌍해지는 거지?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막위는 그런 생각이 들자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그때 옆구리를 칭칭 동여맨 혁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막 형님이 그렇게 된 것은 저 때문입니다, 단주. 제가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다 그만…….”
“지금 누구 잘잘못 논할 때야?”
이무환이 혁수린을 흘겨보고는 막위의 명문에서 손을 떼었다. 조금은 안심한 표정이었다.
“죽지는 않겠네, 뭐.”
뜻은 그렇지 않은데, 죽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다.
막위는 쓴웃음을 지으며 떨리는 손을 가슴에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뭔가가 잡혀 나왔다.
“그거 뭐지?”
막위가 품에서 꺼낸 것은 옥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노리개였는데, 손바닥만 한 것이 주머니와 함께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유 소저 주려고…… 저번에 산 것…….”
그냥 쪼개진 것이 아니다. 검기에 의해 매끈하게 갈라졌다.
검기가 심장 부위를 스쳤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난 것과 연관이 있는 듯했다.
“뭐야? 그럼 그 노리개 때문에 살아난 건가?”
이무환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노리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막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꼭 자신과 유소경도 노리개처럼 될 것만 같았다.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부서지면 화가 닥친다 하지를 않던가.
‘유 소저…….’
그때 이무환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꿈은 반대라고 하던데… 노리개 갈라진 것도 반대로 나타나면 좋을 텐데…….”
‘정말 그럴까? 그랬으면…….’
2
“멋쟁이, 단칼. 가서 사람들을 모이라고 해.”
이무환은 막위와 혁수린을 방 안으로 옮겨놓자마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놈들을 몰아낸 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내야 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월당과 흑도 방파에 따로 지시도 내려놓은 터였다.
검운장의 상황이 지옥처럼 변해 있지만, 언제까지 뒷마무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곧 정천무림맹과 검운장, 광룡단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검신전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무환은 그동안 백혜대사가 앉아 있던 최고 상석에 천태도장을 앉게 했다. 그리고 부상당한 검운장의 장주 사마성운 대신 사마성안과 사마성한을 앞자리에 배치했다.
상석은 전체 상황을 이끄는 자리다. 정천무림맹의 수뇌들 중 몇 사람의 얼굴에 불만을 내비쳤다.
이무환은 그들을 한마디로 눌러 버렸다.
“천태도장님보다 나이 많은 분 계십니까?”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다. 우내십존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정천무림맹의 수뇌들은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표정을 감추었다.
이무환이 한마디 더했다.
“집안의 최고 어른이 상석에 앉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걸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거고…….”
천태도장도 이무환의 뜻을 알고 있기에 별다른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흥! 그대들은 손님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라구!’
그때 우내혁이 물었다.
“부상자를 치료하기에도 바쁜 지금, 무슨 일로 우리를 불렀는가?”
이무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모이시라 한 것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하기 위해섭니다. 놈들이 도망쳤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내상으로 인해 얼굴이 창백해진 백혜대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 쪽도 부상자들이 엄청나네. 그 일은 일단 이곳부터 정리하고 생각해 보세.”
“물론 부상자들이야 보살펴야죠. 하지만 언제까지 부상자만 치료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놈들이 재정비를 해서 또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입니까?”
“아미타불, 물론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겠지. 하나 우리 역시 피해가 막심하니 일단 부상자들이 나은 후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네. 수신제가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정천무림맹 군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이 수백이다. 살아난 사람도 내외상을 입은 자가 태반이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
더구나 적의 남은 힘은 아직도 만만치 않았다. 무작정 나섰다가는 오히려 적에게 당할지도 몰랐다.
우내혁 역시 백혜대사의 의견에 찬성했다.
“비록 패해서 물러났다지만, 저들은 아직도 우리보다 숫자도 많고, 남은 자들도 대부분이 고수들이네. 자칫하면 역공을 당할 수도 있네.”
“물론 저도 그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회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죠. 놈들이 재정비를 마치면 그만큼 상대하기가 힘들어진다니까요?”
“성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다 합쳐도 백이 조금 넘을까 말까 한데, 그들을 모두 동원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네. 적들 중 일부가 우회해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건가?”
이무환이 씩 웃었다. 차가운 눈빛이 번뜩였다.
“많은 사람이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오십 명 정도면 충분합니다.”
현재 검운장에는 사백여 명의 무사가 있다. 그중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은 백수십.
사오십 명 정도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 정도의 숫자만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적의 숫자는 사백이 넘네. 게다가 지원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 하거늘, 사오십 명으로 뭘 한단 말인가?”
“왜 사오십 명이 전부라고 여기십니까?”
“자네가 방금 사오십 명이면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단지 먼저 출동할 사람들일 뿐, 전체 인원이라고는 볼 수 없죠. 나머지는 먼저 간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놓은 후 움직이면 됩니다.”
우내혁의 얼굴에 약간 조롱이 깃든 표정이 떠올랐다.
“그 숫자로는 기껏해야 순찰 임무 정도나 맡을 수 있을 거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순찰무사를 따로 파견해서 놈들의 동태를 살피며 사나흘 기다린 후, 부상자들이 회복되면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군.”
정천무림맹의 군웅들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운장과 항주 연합세력의 수뇌들도 은근히 우내혁의 생각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무환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 앉아 있으면 올 기회조차 날아가 버린다.
그것이 광룡의 생각이었다.
“사오십 명을 최강의 고수로만 채운다면, 숫자는 일 할에 불과해도 적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죠. 설마 자신이 없는 건 아니겠죠?”
“누가 자신이 없다 했는가?”
“그럼 왜 무조건 반대하는 건데요?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이무환이 자존심을 긁어대자, 우내혁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목소리도 높아지고.
“아무리 고수들로만 뽑는다 해도 사오십 명으로 저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강소에 있는 자들이 대대적으로 내려올지도 모르는데, 그에 대한 대책도 없잖은가?”
순간,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이무환이 정색하고 군웅들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