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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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26화
226화
제1장. 광룡은 그런 놈이었다
1
신기영이 항주에 도착한 것은 축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단주, 신기영이 왔습니다.”
이무환은 영호승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라고 해.”
방으로 들어온 신기영은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은 상태였다.
“찾았나?”
“예, 찾았습니다, 단주님.”
신기영은 유철상에게 들은 말을 빠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유철상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도.
“…그 바람에 유 대협은 대웅과 함께 천천히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유철상의 정보는 완벽했다. 더구나 적의 공격 시간까지 알아내고, 잠풍련 무사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뜻하지 않은 성과였다.
그러나 유철상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말에 즐거운 기분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놈들을 발견했으면 그냥 물러나지…….’
이무환은 입맛을 다시며 영호승을 불렀다.
“멋쟁이, 사람들을 깨워서 모이라고 해.”
“예, 단주.”
“꼬챙이와 단칼은 검운장에 가서 상황을 알려.”
혁수린과 단우경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이무환이 그 뒤에 대고 한마디 더 했다.
“가거든 우리 꼬맹이에게도 말해주고, 놈들을 상대할 좋은 대책이 있으면 다 꺼내놓으라고 해.”
이각 후.
유철상이 알아낸 정보가 검운장에도 전해졌다.
검운장이 발칵 뒤집히고, 간부들이 검신전에 모여들었다.
“그게 사실이오, 나 령주?”
백혜대사의 눈이 나철위를 향했다.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오전 중에 적의 공격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공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시오?”
“지금으로 봐서는 팔구 할가량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허어, 이거 큰일이로군.”
숫자가 일천이 넘는다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적의 지원무사들이 도착했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는 말.
물론 사실인지 아니면 과장된 인원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래도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다.
문제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과연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서 검운장의 현 인원만으로 적을 막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그것은 백혜대사만이 아니라 장내의 간부들 대부분이 같은 마음이었다.
“일단 항주의 각 문파에 사람을 보내서 무사들을 최대한 지원받도록 합시다.”
제갈도는 백혜대사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호연청과 밀천회의 고수들이 악귀와 함께 있다.
그들이 있는 이상 비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수 없으니 목구멍이 근질거려 미칠 것 같았다.
‘끄응, 그냥 다 말해 버려?’
그때 검신전 밖에 서있던 위사가 안에 대고 외쳤다.
“천태도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나.”
문이 열리고 천태도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혼자만 온 것이 아니었다. 나이 어린 소녀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남궁산산이었다.
“그대들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 왔네.”
천태도장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남궁산산을 향했다.
함께 온 사람은 어린 소녀뿐이다. 왜 저 소녀를 소개하겠다는 걸까?
천태도장이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남궁산산이라고 해요.”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은 남궁산산이라는 이름에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구양진이 반문하듯이 물었다.
“남궁세가의 빙심소혜?”
“맞아요, 구양 어르신.”
“허어, 남궁세가의 자랑이라는 네가 여긴 무슨 일이더냐?”
“소녀에게 적을 상대할 방법이 있어요. 물론 여러 어르신이 도와주셔야 하겠지만요.”
몇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빙심소혜의 혜지가 뛰어나다 해도 이제 겨우 열대여섯의 어린 소녀다.
그런 소녀를 믿고 수백 명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예상했다는 듯 천태도장이 힐난조로 말했다.
“일단 들어보시게. 적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면 어린아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 아닌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람들이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자, 백혜대사가 불호를 외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좋습니다, 그럼 일단 여시주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지요.”
곧 남궁산산이 자신의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입을 연 지 반 각도 되지 않아서 몇 사람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비겁한 행동이 아닌가?”
“정도를 걷는 사람이 어떻게…….”
웅성거리며 흘러나오는 말투에 비아냥거림이 가득하다.
남궁산산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정천무림맹의 수뇌들을 둘러보았다.
“동료들이, 제자들이 죽어가도 보고만 있을 건가요? 이건 비무가 아니에요. 전쟁이에요. 저들도 여러분들처럼 정당한 대결을 할 거라고 보는 건가요?”
우내혁이 눈살을 찌푸린 채 반문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느냐? 하나 그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운다면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그럼 밖으로 나가서 저들과 정면으로 싸우지 그러세요? 왜 여기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는 거죠?”
“그거야…….”
“전쟁에서 적을 기만하는 것은 당연한 병법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적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의 병법 중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인데, 그럼 그 병법들이 모두 사마도의 병법이던가요?”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어린 소녀에게 일침을 맞은 게 기분 나쁜 듯 대놓고 이마를 찌푸리는 사람도 있고, 내심 그 말이 옳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자도 있었다.
그때 남궁산산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것.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가만히 보고만 있던 천태도장이 물었다.
“네 생각대로 했을 경우 승산은 얼마나 되느냐?”
“적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하는 만큼 당장 승산을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승산이 훨씬 높아진다는 걸요.”
천태도장의 깊게 가라앉은 시선이 우내혁과 구양진을 거쳐 백혜대사에서 멈췄다.
그리고 선언이나 다름없는 강한 어조가 천태도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결정하시게. 만일 이 아이 말대로 하지 않을 거면, 검운장 밖으로 나가서 싸우게나.”
2
그 시각. 이무환도 혁수린에게서 남궁산산의 계획을 들었다.
“그래? 꼬맹이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예, 단주. 그러니 차라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흠, 그것도 나쁘지 않군.”
항주 외곽의 넓은 곳에서 놈들을 상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좁은 곳보다는 넓은 곳이 움직이기 나을 거라 본 것이다.
그런데 남궁산산은 자신과 반대로 검운장으로 끌어들이자고 한다. 좁은 곳이라면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이 있다면서.
물론 남궁산산의 계획대로 할 경우 당장은 피해가 많을지 몰랐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희생을 줄이는 길일 수도 있었다.
‘꼬맹이가 독하긴 독하단 말이야.’
그때 혁수린이 남궁산산의 말을 마저 전했다.
“그리고 단주의 아버님과 노장주님을 이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외조부님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계획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그건 그렇게 하고……. 멋쟁이, 가서 뒷방 영감들 다 오라고 해! 형님도 오라고 하고. 계획을 다시 짠다!”
이무환이 제법 큰 소리를 내지른 순간, 객잔의 건물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흔들리고, ‘뒷방 영감’들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놈.”
“끄응, 좌우간 주둥이하고는…….”
“아직 손자도 안 봤는데…….”
2
새벽 어스름이 어둠을 밀어낼 무렵.
십여 척의 커다란 배가 전당강을 타고 내려와서 항주 서쪽 십 리 지점에 사람들을 쏟아냈다.
묵운방과 마도의 연합세력이었다.
위지호천과 경충문 등 묵운방과 마도 연합의 수뇌들은 그중 다섯 번째 배에서 내렸다.
그들이 내린 순간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이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묵운방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비운당의 무사로, 항주에 파견된 정보원들을 이끌고 있는 자였다.
“비운당의 장소안이 삼공자를 뵙습니다.”
위지호천은 무릎을 꿇은 장소안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놈들의 움직임은?”
“항주의 문파들이 백오십 명의 무사를 지원했습니다만, 그 일을 빼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
만족한 듯 위지호천의 눈에 진한 살기가 떠올랐다.
흥분한 듯 붉은 기운마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이럴 때는 계집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피를 보며 여인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아름다운 계집일수록 더 좋을 것이었다.
‘별수 없지. 검운장을 무너뜨린 후 마음에 드는 계집을 찾는 수밖에.’
위지호천은 혀로 입술을 슬며시 핥으며 명을 내렸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 안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시라도 거치적거리는 놈들이 없는지 세세히 살피도록 해라.”
“예, 삼공자!”
위지호천은 장소안이 떠나자 담담해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가시지요, 태상.”
삼십 리에 걸쳐 퍼져 있던 흑도 방파의 정보원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일반 무사들은 몸을 숨기고, 천마교 마월당의 무사만이 전력을 다해 항주로 달렸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이무환은 그들의 도착 소식을 듣고 곧바로 검운장에 사람을 보냈다.
검운장의 모든 무사들은 언제든 적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은 이무환에게서 사람이 오자, 즉시 계획했던 대로 움직였다.
칠백 무사가 각오를 다지며 각자의 자리를 찾아갈 무렵, 묵운방과 마도의 연합세력이 항주로 들어섰다.
그들은 고요한 항주의 새벽길을 달려 검운장으로 접근했다.
쏴아아아아…….
검은 안개가 바람에 밀려 몰아닥치는 듯했다.
그 시각, 검운장의 무사들은 담장에 바짝 붙어 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모두가 살얼음을 밟고 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놈들이 온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동시에 수백 명이 까마귀 떼처럼 담장을 날아 넘었다.
장원 안에는 군데군데 깃발이 꽂힌 곳이 있었는데, 담장을 넘은 자들 중 상당수가 그 안으로 내려섰다.
순간이었다.
깃발이 꽂힌 곳에 내려선 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안개가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남궁산산이 펼친 진세로 인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진세 안으로 내려선 자는 이삼할 정도. 나머지는 진세를 벗어난 곳에 내려선 상태였다.
담장에 바짝 붙어 있던 정천무림맹과 검운장의 무사들은 그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놈들을 쳐라!”
“공격해!”
와아아아아!
정천무림맹의 무사들로서는 상대의 등을 공격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승부를 가리기 위한 비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었다.
갑자기 동료들이 우왕좌왕하자 진세 밖에 있던 묵운방과 마도 연합의 무사들도 당황했다.
그러던 차에 이어진 후면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쓰러지며 검운장 안이 비명과 신음으로 뒤덮였다.
“사정 봐주지 말고 쳐라!”
“마도 놈들을 죽여라!”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적을 몰아쳤다.
묵운방과 잠풍련의 최정예고수들이 날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위지호천이 냉랭히 코웃음 치며 외쳤다.
“흥! 제법 준비를 했는가 보다만, 그 정도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모두 쓸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