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9화
제9화. 북림에 들어가다(1)
비강은 일부러 조금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혼자가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한 젊은 여인이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왔다.
“가까이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네? 반가워, 나는 염화영이야.”
“……연비강이오.”
“알아. 이미 은운곡은 너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어. 새로운 초특급 낭인이 들어왔다고 말이야. 바깥에 나가 있는 은운곡의 초특급 낭인을 다 합쳐 봐야 오십여 명밖에 안 되거든.”
“그랬구려.”
관심 없다는 듯, 비강은 짧게 답할 뿐이었지만, 염화영은 굴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들어온 지 올해로 삼 년째야.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나는 스물셋쯤 되는 것 같소.”
“역시 내가 누나였어. 앞으로 누님이라고 불러. 친하게 지내자고.”
염화영은 성격이 밝을 뿐만 아니라 외모도 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짙고 긴 눈썹 아래의 조금은 큰 눈은 맑은 광채를 뿌리고 있었고 왼쪽 뺨의 검상은 묘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흐흠, 동생을 위해 충고 하나 해 주지. 좀 웃어, 잘생긴 얼굴 아끼지 말고. 그래야 동생을 구해 줄 친한 동료들도 생기지.”
“혹시라도 나중에 당신을 구해 달라고 내게 살갑게 구는 거요?”
“맞아.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듣다니, 눈치가 엄청 빠르네.”
“그러는 그쪽은 눈치가 조금 없는 듯하오.”
염화영과 마주 앉아 밥을 먹기가 조금 껄끄러웠던 비강은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섰다.
염화영은 사라져 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보며 밝게 웃었다.
“시간 있을 때 놀러 갈게!”
* * *
식당을 나온 비강은 총관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총관의 거처는 낭인들의 숙소보다 규모가 더 컸는데 그 이유는 은운곡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비강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앞에 도착해 방문을 알리자 심부름꾼 아이가 문을 열고 머리를 꾸벅 숙였다.
“마 총관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총관 마태관은 은운곡의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매일 잠이 모자랐다. 그렇기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화를 잘 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다음에 찾아오게.”
비쩍 마른 얼굴을 하고 있는 신경질적으로 생긴 오십 대 초반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는 비강을 쏘아보았다.
“가죽신 한 켤레와 무복 두 벌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무복과 가죽신도 쓸 만해 보이구먼……. 정 그러면 저 안에 들어가 찾아보게.”
다 해진 비강의 무복과 가죽신을 흘깃거리던 총관은 방 뒤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총관의 말에 따라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무수히 많은 무복과 가죽신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창고가 나타났다.
비강은 그곳에서 검은색 무복 두 벌과 노루 가죽으로 지은 가죽신 한 켤레를 골라 나왔다.
총관은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다 말고 비강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은자가 남아도는 모양이로군. 구색을 갖추느라 구해 놓은 노루 가죽신을 골라 나오다니 말이야. 전부 다 해 은자 넉 냥일세.”
“여기 있습니다.”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 넉 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곤 밖으로 나갔다.
끄응…….
총관은 비강이 놓고 간 은자 넉 냥을 내려다보며 뭔가 마땅치 않은 듯 신음 소리를 흘렸다.
사실 무복과 가죽신을 다 합쳐 봤자 은자 석 냥이 안 된다.
일부러 과하게 값을 부른 후에 꼬투리를 잡아 성질을 한번 부려 보려던 것인데 아예 시도조차 못 하게 되었다.
“막삼아, 얼른 뛰어가 은자 한 냥 돌려주고 와.”
“예, 총관 어른.”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은자 한 냥을 던져 준 총관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요상한 놈이 들어왔다고 하더니 역시 만만치가 않네. 기선 제압이 안 되네, 기선 제압이.”
원래 낭인 대부분은 거친 삶을 살아온 자들이라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고생하게 된다.
특히 무공이 뛰어난 낭인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뭐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없을까?’
* * *
저녁 식사를 끝낸 비강은 서고로 향했다.
요즘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무공 비급을 소장하고 있는 서고였다.
삼류 무공비급과 여러 잡다한 서책들만 모아 놓은 곳이었지만 무공비급이란 것을 처음 접해 본 비강으로서는 하나하나가 새롭기만 했다.
촛불에 의지해 무공비급을 읽고 있는 비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난해한 글귀가 가득하지만 이 초식의 요지는 태산압정과 횡소천군의 변형일 뿐이로군. 그것도 곁가지를 많이 붙여 제법 그럴싸한 형(形)을 만들어 냈어.’
무공비급 한 권을 다 살펴본 비강은 다른 무공비급을 집어 들었다.
호오…….
‘이건 좀 의외야. 허초를 전부 제거하고 형(形)과 공(功)을 조금만 변형시킨다면 제법 그럴듯한 무공이 되겠어.’
비강이 무공비급에 빠져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염화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에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네?”
그러나 무공에 깊이 빠져 있는 비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뭐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심통이 난 염화영은 비강이 들고 있는 비급을 낚아채더니 겉표지를 살폈다.
“칠전도해결(七典刀解結)? 이 삼류무공을 보고 있었던 거야?”
“주시오.”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염화영은 손에 들고 있던 무공비급을 비강의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그녀는 맞은편에 앉아 다시 무공비급에 정신 팔고 있는 비강의 얼굴을 주시했다.
“차라리 밖에 나가 검이나 한 번 더 휘둘러. 그게 낭인에게는 남는 장사야.”
“염 소저나 많이 하시오.”
건성으로 염화영의 말을 받아넘긴 비강은 또 다른 서책을 펼쳤다.
그 서책은 무림의 고수들에 관해 정리해 놓은 것이었는데 근래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전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서책에서는 천마(天魔)를 이 세상에 다시없을 천하제일인이라 평하고 있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천하제일인이라…….’
문득 처음 들어 보는 천마라는 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비강은 그에 대해 물었다.
“천마를 아시오?”
“당연히 알지. 육십 년 전에 천하의 날고 기는 고수들을 모두 꺾은 사람이야. 특히 흉악한 죄를 저지르거나 부정을 저지른 자라면 정사를 가리지 않고 다 죽였었지.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어.”
“그렇군, 그렇다면 천마는 지금도 살아 있소?”
염화영은 관심을 보이는 비강의 모습이 기뻐 천마에 대해 아는 대로 고하기 시작했다.
“흐흥, 아마 죽었을걸? 정파와 사파가 연합해 그를 공적으로 삼아 대대적인 추격에 나섰다고 해. 다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의 흔적조차 찾진 못했지만 말이야.”
“그럼 아직 찾지 못했을 뿐, 살아 있을 수도 있겠구려.”
“그렇긴 하지만, 이제 와서 천마를 어떻게 찾겠어. 얼굴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데.”
염화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누구는 나이 든 늙은이라 했고, 또 누구는 젊은 사내라 했고, 또 누구는 사십 대의 중년인이라 했어. 어찌 되었든 지금쯤이면 천마도 나이를 많이 먹어 이미 땅속에 들어갔거나 땅속에 들어가기 직전일 거야.”
“천마의 이름은 뭐요?”
“성은 몰라. 다만 자신의 이름은 일(日)이라고 했대.”
“고맙소.”
천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비강은 다시 무공비급 한 권을 펼쳤다.
“그만 보고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무라도 한번 하자.”
“됐소. 나는 이곳에서 밤을 새울 거요.”
“이런 삼류 무공비급을 살펴서 뭐 할 건데?”
“무공을 만들어 보려 하오.”
“응?”
염화영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비강을 주시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토해 냈다.
하하하하…….
“아주 재미있는 농담이었어. 이제 봤더니 비강 동생이 천하의 고수였을 줄이야.”
서고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웃음을 토해 냈던 그녀는 비강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열심히 해, 동생. 혹시라도 무공을 만들게 되면 내게도 알려 주고.”
* * *
무공 수련을 마치고 깊은 계곡물에 몸을 맡긴 비강은 가볍게 팔다리를 저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기는 하지만 복수는 해야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버지였다. 분명 아이였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터였다. 다만 결과가 좋지 못했을 뿐.
그러니 그 복수는 아들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던 비강은 계곡으로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라? 선객이 있었네? 이게 누구야, 비강이 아니야?”
잠시 후 비강의 귀로 꺼림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이 여자가 나타날 줄이야.
“금방 나갈 것이니 안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시오.”
“괜찮아. 천천히 해. 나는 여기서 기다리면 되니까.”
염화영은 놀리듯 기묘한 미소를 지어내며 물 밖으로 드러난 비강의 알몸을 요리조리 살폈다.
“몸에 흉터가 많은 것을 보니 그동안 험하게 살아왔나 봐?”
“그쪽도 만만치 않은 것 같소.”
하하하.
“언제 내 알몸이라도 봤어? 안 봤으면 지금이라도 보여 줄까?”
“됐소. 얼른 다른 데로 가시오.”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그동안 지켜본 이곳의 분위기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계약 주체에 따라 서로 적이 될 수도 있는 낭인들이라 오가다 마주칠 때면 가볍게 인사만 할 뿐 살가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 염화영이라는 여자와 첫날 비무 상대였던 모중악만은 멀리 비강의 얼굴만 보여도 뛰어와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정작 비강은 그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동생은 무슨 무공을 배웠어? 다른 강호인과는 다르게 검과 봉을 함께 가지고 다녀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병기에 구애를 받지 않소.”
병기에 구애를 받지 않으나 백파만큼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하…….
염화영은 비강의 말이 허풍이라 생각했는지 꺄르르 웃어 댔다.
“하핫, 동생이 무슨 사천존이라도 되는 거야? 병기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니…….”
얼마나 웃어 젖혔는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이고 있었다.
“사천존이 별거요? 그들도 어차피 똑같은 인간들일 터인데.”
웃음이 가득했던 염화영의 얼굴과 목소리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동생,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돼. 세상의 모든 강호인이 적으로 돌변할 테니까.”
“그럼, 모든 강호인을 물리칠 만큼 강해지면 되겠군.”
비강은 그녀의 다음 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옷을 다 걸칠 때까지 고개를 돌려 하늘만 멀뚱히 바라보는 염화영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혹시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고, 얼굴은 사내답게 잘생긴 사람을 이곳 은운곡에서 보지 못했소?”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차라리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
“덩치는 그리 크지 않는데 무공이 아주 강하오.”
무공이 강하다는 비강의 말에 염화영이 관심을 보였다.
“도대체 무공이 어느 정도인데?”
‘천하제일.’
사천존이라는 자들을 겪어 보지 못했으나 아저씨의 무공은 천하제일이었다.
“사천존을 꺾을 수 있을 만큼.”
하하하하하…….
“농담에 소질이 다분해. 이봐, 동생.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설사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씨익―
비강은 미소 지으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일수에 공간을 가르던 아저씨의 무공이 머릿속에 각인된 듯 아직도 눈에 선했다.
비강이 눈을 빛내며 염화영에게 답했다.
“아니, 있소이다.”
* * *
거처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비강의 눈에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이제 열 살에서 열한 살쯤 되었을까.
총관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아이였다.
‘의욕은 넘치는데 손과 다리에 힘이 없어.’
비강은 저 나이 때 약한 상대와 실전을 치르고 있었다.
무공을 수련하고 실전을 치르며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팔과 다리는 여느 장정보다 더 강하고 굳건했으며 몸놀림은 들짐승보다 더 빠르고 민첩했다.
자신은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다.
“열심히 해라.”
한참 동안 무공 수련을 지켜보던 비강은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헤헤…….
몸을 꼬며 쑥스러워하던 아이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비강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저기…… 아저씨, 혹시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있어요?”
흐흠.
“열심히 해라.”
비강은 다시 한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멀어져 갔다.
* * *
“어서 오십시오, 부단주.”
“또 뵙소이다, 총관.”
총관 마태관은 비단 무복을 잘 차려입은 중년 사내를 정중히 맞이했다.
아이를 시켜 차를 내오게 하고 자리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북림은 여전히 편안해 보입니다만.”
“크고 작은 사건이 없으면 심심한 곳이 강호가 아니겠소. 은운곡의 낭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소이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야 그저 쓸 만한 낭인들을 선별해 보냈을 뿐입니다.”
평소 미소 한 번 보이지 않았던 총관이었지만 북림의 부단주 앞에서는 해보다도 더 환한 웃음을 지어냈다.
“이번에도 솜씨 좋은 낭인들로 부탁드리겠소.”
“아무렴요. 북림이 어떤 곳인데 제가 허투루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차를 내오자 두 사람은 잠시 차 맛을 음미했다.
“섬서 흑곤마(黑棍魔)라는 자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소림의 제자로 있던 자라 그런지 무공이 대단했소. 때문에 흑견조(黑犬組)와 은계조(銀鷄組) 백원조(白猿組)의 희생이 컸소.”
“하면 희생된 낭인들의 숫자만큼 보충을 해야겠군요.”
“그렇소. 초특급 낭인 둘, 특급 낭인 셋, 상급 낭인 여섯이오. 특히 이번 초특급 낭인들은 신경을 조금 더 써 주셔야 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아주 뛰어난 젊은 고수 하나가 이곳에 들었으니 그자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막삼아, 얼른 뛰어가 염 여협과 연가 녀석을 불러오너라.”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킨 총관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 낡은 서책 몇 권을 꺼냈다.
“이번에는 이것밖에 없어 송구스럽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오. 매번 고맙소.”
서책을 건네받은 부단주의 눈에 놀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한 권은 소림, 또 한 권은 화산,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남궁세가의 무공비급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