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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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8화
제8화. 은운곡(2)
‘대단하구나.’
낭인들과 함께 은운곡 입구에 도착한 비강은 산기슭을 따라 보이는 돌계단과 여러 전각을 둘러보았다.
소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전각의 기와지붕과 산 위에서부터 쏟아지고 있는 계곡의 폭포는 감탄을 자아내게 할 만큼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후아!
“참 아름다운 경치란 말이야. 평생 이곳에서 살고 싶을 정도야.”
낭인들도 넋을 놓고 은운곡을 둘러보다가 서둘러 계단이 시작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돌계단을 밟고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첫 번째 작은 전각이 나타났다.
전각 앞의 넓은 마당에는 무릎 높이 정도 되는 둥근 바윗돌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저것이 시무석인 모양이었다.
삐걱.
“은운곡의 낭인이 되기 위해 찾아오셨소?”
전각의 문이 열리고 희끗희끗 하얀 머리카락이 섞여 있는 초로인(初老人)이 걸어 나왔다.
비강은 초로인이 평범한 고수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허리에 느슨하게 차고 있는 장검이 언제든 검집에서 빠져나와 상대방의 목을 벨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만사가 귀찮다는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저희들은 멀리 하남에서부터 이곳을 바라고…….”
“소개는 됐으니 시작해 보시오. 저 바윗돌을 한 치만 움직이면 되오.”
초로인은 말을 끊으며 바윗돌을 가리켰다.
이에 낭인 한 사람이 바윗돌을 향해 걸어가 자세를 취했다.
끄으으으…….
첫 번째 낭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바윗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초로인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실패를 말했지만 두 손으로 바위를 잡고 있는 낭인은 조금도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으으으…….
“움직일…… 겁니다. 보…… 십시오.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됐고, 다음.”
크으으…….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집에서는 분명히, 분명히 움직였었는데…….”
바위를 밀던 낭인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허탈해했다.
첫 번째 낭인이 물러나고 두 번째 낭인이 바위를 밀었다.
그러나 그 바위는 여전히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끄으으…….
다섯 번째 마지막 낭인이 두 손으로 바위를 잡았다.
아주 조금이나마 흔들리던 바위가 움직임을 멈췄다.
끄아아아아…….
다섯 번째 낭인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었다.
“다음.”
결국 다섯 낭인 중에 성공한 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초로인의 말에 바위 앞에 선 비강이 두 손을 뻗었다.
스르…….
바위는 부드럽게 땅의 흙을 밀며 한 치가량 움직이더니 멈춰 섰다.
앞선 낭인들과 다르게 비강은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순간 초로인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당신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돌아가시오.”
다섯 낭인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비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늘어뜨렸다.
“수고 많으셨소. 조심히 내려가시오.”
비강의 인사에 낭인들은 어깨가 축 처진 채 손을 들어 마주 인사를 해 주었다.
“축하하네. 꼭 은운곡의 낭인이 되게.”
* * *
낭인들이 떠나고 나자 초로인은 비강을 위쪽으로 이끌었다.
그가 이끌고 간 곳에는 굵은 팔뚝만 한 나무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다음 시험이오. 저 나무 중에 하나만 베든 부수든 해 보시오.”
세워 놓은 나무 앞으로 걸어간 비강은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잡았다.
딸깍.
기묘한 소음과 함께 비강이 뒤로 물러나자 세워 놓았던 나무가 비스듬히 잘려 땅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봤다면 검조차 뽑지 않았는데 나무가 쓰러지니 의아해할 것이다.
흐음……!
초로인의 눈빛에 다시 한번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흐릿한 검영이 나무를 통과해 지나갔다가 검집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처음부터 전부 눈으로 확인했다.
뛰어난 고수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저 나무를 베어 낼 수 있겠으나 문제는 아무런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묘하군, 묘해. 상급은 넘어서는 것 같은데 특급은 아닌 것도 같고. 내 눈에 검영이 너무 확실하게 보였단 말이지.’
초로인은 눈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사내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중급 낭인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베어 넘긴 나무의 결만 확인하면 알 수 있었다.
한데 이 젊은 사내가 베어 넘긴 나무의 결은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내는 분명히 상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따라오시오.”
초로인은 비강을 조금 더 위쪽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돌계단을 밟아 올라가다 보니 큰 소나무 아래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의자에는 나이 든 노파가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노파는 초로인과 비강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급으로 분류했습니다, 구모.
초로인의 전음을 전해 들은 노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라.”
노파의 목소리는 마치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온화하고 포근했다.
비강은 말없이 의자에 가 앉고 초로인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
탁자 위에 놓인 빈 잔에 차를 따라 비강의 앞에 내려놓은 노파는 차만 음미할 뿐 말이 없었다.
비강도 맛조차 모르는 차를 비우며 노파가 말문을 열길 기다렸다.
이윽고 거의 일각 동안이나 말이 없던 노파가 입을 열었다.
“차를 음미하는 것을 보니 맛을 아는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언제 질문을 할지 몰라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하하…….
비강의 대꾸에 노파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런 점잖은 대답이라니, 수많은 낭인을 만나 본 노파로선 눈앞의 남자가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집은 어디더냐?”
“어려서부터 이리저리 떠돌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거짓을 입에 올려서는 안 돼.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기본공은 같이 떠돌던 아저씨에게 배우고 나머지는 스스로 익혔습니다.”
“아저씨의 이름을 밝힐 수 있느냐?”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말씀을 않으셨습니다.”
대답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고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노파는 눈앞에 앉아 있는 젊은이가 의심스럽기는 했으나 거짓말은 하지 않고 있음을 본능과 경험으로 느꼈다.
“굳이 이곳으로 들어와 낭인이 되려는 이유가 뭐냐?”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름을 말해 주겠느냐?”
“비강, 연비강입니다.”
“그렇구나. 나는 구한량이라고 한단다. 여기서는 구모라 불리고 있지.”
자신의 이름을 밝힌 노파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산 위로 발을 내디뎠다.
“따라오너라. 너의 거처를 정해 줄 테니.”
구모는 비강과 나란히 산을 오르며 전각들과 건물들을 소개했다.
“저 전각은 중급 낭인들의 거처이고, 그 밑에 있는 전각은 하급 낭인들의 거처란다. 계약이 끝나고 다시 일을 맡기 전까지는 저곳이 그들의 집이나 마찬가지이지.”
조금 더 위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구모는 숲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전각을 가리켰다.
“저곳은 바로 상급 낭인들의 거처란다.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지. 그리고 저기 저 거각은 총관의 거처이니 어지간하면 얼씬거리지 말거라. 성질머리가 아주 더러운 놈이 앉아 있으니.”
구모의 안내를 받아 더 위쪽으로 올라가니 특급 낭인들과 초특급 낭인들의 거처가 나타났다.
“이곳까지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으나 계곡 너머에 있는 산으로는 넘어가지 말거라. 행여 그곳으로 넘어갔다가 발각이 되면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게야.”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구모였으나 말속에는 날카로운 살기를 품고 있었다.
“중요한 곳인 모양이로군요?”
하하하하…….
“곡주와 나의 거처가 있어 그리 조처한 것이니 너무 섭섭해 마라.”
비강이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구모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자, 이제 너의 거처로 가 보자꾸나.”
“혹시 홀로 떨어져 지낼 만한 거처는 없습니까?”
푸근한 미소가 가득했던 구모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이유가 무엇이더냐?”
“원래 남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합니다.”
흠.
구모는 잠시 흔들림 없는 비강의 눈을 주시했다.
뜻밖의 대답으로 자신을 감탄케 하는 자도 처음이었고 이런 요구를 하는 자도 이 젊은 놈이 처음이었다.
‘묘한 녀석이야.’
“강호에서 뭔가 요구하려는 자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단다. 네게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구모는 말을 끝내자마자 특급 낭인들의 거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중악!”
나이 많은 노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곧 특급 낭인 거처의 문이 열리고 삼십 대 중후반의 털북숭이 사내가 뛰어나왔다.
“찾으셨는지요, 부곡주.”
급하게 달려온 사내는 구모를 향해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 녀석을 상대해 보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게야.”
구모의 말에 털북숭이 사내는 비강을 흘깃 쳐다보고는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명을 받듭니다, 부곡주.”
* * *
산을 뒤흔든 구모의 외침 소리에 특급 낭인들은 물론이고 초특급 낭인들까지 문을 열고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모중악이오.”
적당한 공터를 찾아 자리를 잡은 모중악이 자신을 소개했다.
“연비강이오.”
비강도 공터로 들어가 마주 서자 구모가 모중악의 무공을 소개했다.
“강호에서는 십광검(十光劍)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별호로 불리고 있지. 잘해 보아라.”
“시작하겠소.”
갑작스레 시험 상대가 된 것이 불만인지 구모의 소개가 끝이 나자마자 모중악이 빠른 속도로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쉬아악―
빠르게 다가드는 신형과 함께 검은 열 개로 나뉘었다.
상단으로 내려찍는 검로가 다섯, 하단에서 위로 올려 치는 검로가 셋.
정면에서 뻗어 오는 검로는 두 개였다.
변화가 많은 뛰어난 검법이었으나 비강의 눈은 단번에 자신의 어깨를 노리며 날아드는 진검을 알아보았다.
땅! 턱.
어느새 비강은 봉을 빼어 들어 날아드는 검을 쳐 날려 보내곤 모중악의 목 앞에 봉 끝을 들이밀었다.
모중악의 놀란 눈을 마주하던 비강은 철봉을 거두고 손을 모았다.
“이게 무슨…….”
철봉이 언제 어떻게 자신의 검을 쳐 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구모 또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꽤나 놀란 상태였다.
‘초특급.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모르겠구나.’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모중악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연 소협! 어찌 내 검을 그리 쉽게 파훼한 거요?”
“검의 변화가 많은 만큼 속도는 느려질 것이 아니겠소. 두 번의 변화를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 번의 변화는 검법을 화려하게 보이려는 쓸데없는 곁가지일 뿐이었소.”
“……그랬구려. 감사하오, 연 소협. 덕분에 제 눈이 뜨였소이다.”
‘정말 묘하구나.’
구모는 무공의 기본을 말하는 비강의 모습에 작게나마 경탄성을 흘렸다.
“실력을 보았으니 너의 요청을 수락하마.”
구모가 먼저 걸음을 옮기고 비강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곳이 있기는 하나 워낙 낡고 허름한 곳이라 네가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많을 것이니라.”
“괜찮습니다.”
“그럼 따라오너라.”
구모는 산길을 따라 계곡 반대편으로 계속 걸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둘러싼 한가운데 낡은 초옥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은운곡의 시작이 바로 저곳이었단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사용하도록 해라.”
“고맙습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초옥으로 거처를 정한 비강은 소나무 가지를 꺾어 안을 쓸어 냈다.
비강이 열심히 청소를 하는 와중에 낯선 여인 서너 명이 비와 걸레를 들고 찾아왔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부지런도 하셔라. 벌써 청소를 하고 계셨네.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 밖에 나가 계세요.”
“고맙습니다, 부인.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괜히 멋쩍어진 비강은 밖으로 나와 넓은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당 너머에는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로는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목을 축이고 바위 위에 앉아 있으려니 초옥을 바쁘게 들락거리는 여인들이 보였다.
‘괜찮은 곳이야.’
이 은운곡에 들어오기를 잘한 것 같았다.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 비밀까지 파헤쳐 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렸다 방으로 돌아가니, 여인들이 이불보와 이불보를 가져와 단장까지 해 준 상태였다.
제법 사람이 살 만한 방이었다. 비강은 봇짐에서 무복 한 벌을 꺼내 벽에 걸고, 금붙이는 대들보 위에 숨겨 놓았다.
* * *
“오늘 조금 특별한 아이가 들어왔어요.”
“부곡주의 관심을 끌 정도라면 꽤 대단한 무공을 소유한 자이겠구려.”
“모르겠어요.”
구모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노인의 외모는 참으로 특이했다.
얼굴은 다른 나이 든 노인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머리카락은 새치 하나 없는 짙은 검은색이었다.
“모른다? 부곡주가 말이오?”
“예, 무공은 초특급 낭인을 넘어서는 것 같은데 출신도 짐작하지 못하겠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병기는 어떤 것이었소?”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고 등에는 철봉을 메고 있었는데 철봉의 무늬가 참으로 특이했어요. 물결무늬가 철봉을 휘감고 있더군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잠시 고심하는 것 같더니, 안으로 들어가 크게 휘어진 큰 칼 한 자루를 가지고 나왔다.
“그건…… 장문지보로 보이는군요.”
“맞소. 전진파에서 받은 비보(秘寶)인지라 부곡주께도 보이지 못하였소. 한번 뽑아 보시구려.”
노인에게서 도를 건네받은 구모는 천천히 도병에 힘을 주었다.
바깥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도신은 촛불을 받아 흐릿한 백광을 뿌리고 있었는데 도신에는 흐릿한 물결무늬가 가득했다.
“전진파에선 새외에서 가지고 온 도 한 자루를 장문지보로 삼았다고 하였소이다.”
“……그렇군요. 그 아이는 새외에서 넘어온 것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