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화
제7화. 은운곡(1)
서안에 도착할 동안 여러 사람에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 물었으나 제대로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협의 성은 연이고 이름은 서문이에요.”
여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연서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요동에서 건너왔기에 이협이란 별호가 붙었어요. 의협심이 강하고 무공이 높아 당대의 정파 최고수들이라는 오천왕과 친분을 맺을 정도였지요.”
여인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이십이 년 전, 정파 무림이 황곡을 치려 이협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고, 그 일로 인해 정파와 척을 지게 되어 참살되었습니다. 소문에는 이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지만, 다른 자의 손에 죽은 게 확실해요.”
“하면 정파 무림이 합공으로 그분을 살해했다는 거요?”
“……이협은 정파 무림과 맞서려 하지 않았어요. 저항하지 않는 이협을 그의 장인인 약추완이 직접 살해했다 합니다.”
비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장인이라 하셨소?”
“네. 그때 이미 이협은 아내인 약하림이 풀어놓은 독에 의해 중독된 상태였고 약추완이 직접 그의 목을 베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라 말조차 잇지 못했다.
‘그래서…… 그래서 아저씨가 내게 가족에 관한 일을 말하지 않으셨던 거야.’
비강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차분하게 마음을 추슬렀다.
“오천왕이라는 자들은 어떻게 되었소?”
“이협을 참살하고 황곡으로 쳐들어간 오천왕(五天王)과 이무후(二武后), 사무성(四武星) 대부분은 그곳에서 전사했어요. 뿐만 아니라 황곡에서 쏟아져 나온 무인들은 소림과 전진, 개방을 위시한 구파일방은 물론 남궁가, 당가를 위시한 육대세가까지 전부 무릎을 꿇리고 해산시켰어요. 죽은 사람도 많았지요. 지금 강호 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사패는 바로 황곡의 무인들이에요.”
강호에 들어서 이곳까지 올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사패의 주인 사천존(四天尊)이었다.
북림(北林)의 풍천양, 남선(南線)의 도운패, 그리고 동천(東天)의 남궁악과 서패(西覇)의 당백요.
강호 무림은 그들 한마디에 생과 사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일과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이나마 알게 된 비강은 이쯤에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혹시 중원전도(中原全圖)를 구할 수 있겠소?”
“그런 지도를 함부로 소지하고 다녔다가는 첩자로 의심을 받게 될 거예요. 하지만…… 필요로 하신다면 내드리지요.”
“고맙소.”
비강은 다음 질문을 잠시 망설였다.
사실 하오문을 찾아온 이유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도 묻고 싶었다.
아저씨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강호 어딘가에 살아 계실 것만 같았다.
“혹 손으로 하늘을 가르는 무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소?”
“……천하제일인 사천존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곤 하나 아직 하늘을 갈랐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라바나께선 그런 자를 아십니까?”
사천존이라는 자들을 만나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아저씨는 그들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일수파천(一手破天).
비강은 어릴 때 보았던 아저씨의 그 일수에 일수파천이라는 무공명을 붙였다.
“아니오. 강호의 무공이 뛰어나다 들어왔기에 꺼내 본 말이오.”
이런 곳에서 아저씨에 대한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이곳은 정보를 사고파는 곳이다.
볼일을 마친 비강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여인의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더 물으시지요. 거래를 위해 내놓으신 단검은 엄청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에요. 우리는 그 물건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만큼의 정보를 전해 드려야 합니다.”
몸을 일으키던 비강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묻겠소. 사천존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사천존을 만나려면 그에 걸맞은 명성을 쌓아야 해요. 새외에서 ‘라바나’라 불리고 있으니 충분히 자격은 될 것이나 아쉽게도 강호 무림은 새외의 일에 어두워요.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패로 들어가 공을 세우는 것이에요.”
“사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연이 없는 자는 은운곡에 들어가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를 겁니다. 은운곡은 가장 유서 깊은 낭인 조직이기에 사패에서 종종 필요로 하니까요.”
은운곡(隱雲谷).
강호인들에게 몇 번이나 들어 본 단체였다.
사패는 물론이고 분쟁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은운곡의 낭인들이 존재한다고 했었다.
‘은운곡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옥돈조는 어떤 조직이오?”
문득 며칠 전에 만났던 공손황을 떠올린 비강은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옥돈조는 북림 순찰조 중 하나의 조직이에요. 십이지(十二支)를 기본으로 조직의 명칭을 부여했는데, 대표적인 순찰조로 청마조(靑馬組)와 적룡조(赤龍組)가 있어요. 그들의 임무는 강호 무림을 순찰하며 흉적들이나 마인들을 색출하는 거예요. 흥미로운 점은 북림을 제외한 나머지 삼패도 같은 조직이 있고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 사패 사이의 관계는 어떻소?”
“강호 무림에 이 정도의 태평성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워요. 하지만 서로 간에 싸움을 벌여 죽고 죽이기도 하죠. 요즘은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고요.”
“사패 간에 싸움을 하는 이유가 뭐요?”
“여러 가지 이유로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상대방을 모욕했다거나 허락 없이 영역을 넘어왔다거나 하는 일로…….”
“평화롭군.”
“흉적들과 마인들의 숫자는 아직도 많아요. 사패의 손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 상당수가 마인으로 변해 사패와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그리고 사패엔 금지(禁地)가 정해져 있는데 그곳에는…….”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강호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 중에는 비강이 알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처음 듣는 것들도 있었다.
‘하오문을 만나 다행이야. 사패에 들어갈 방법을 알았으니.’
이윽고 이야기를 끝낸 여인은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비강은 이쯤에서 그만 자리를 파하고 싶었다.
“고맙소. 이제 그만 가 봐야겠소.”
“……연서문에게는 연월이라는 두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그 아이 또한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세상일이란 오직 하늘만이 알겠지요.”
여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입에 올렸다.
그러나 비강의 눈빛은 고요하기만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오.”
* * *
하남으로 넘어온 비강은 호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없을 때는 경공을 사용하고 사람이 있을 때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길가에는 풀이 돋고 작은 노란 꽃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이제 곧 봄이 오려나 보다.
“대협, 우리 객잔은 요리 솜씨가 정말 좋아요. 안으로 들어가 식사라도 하시고 가세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비강의 앞을 가로막으며 길 왼쪽에 서 있는 객잔을 가리켰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구나, 꼬마야.”
“요리를 직접 보시면 대번에 달라질 거예요. 마침 방이 비었으니 조용하게 식사를 하실 수 있어요.”
“……그래, 조용하다니 그건 마음에 드는구나.”
비강은 아이의 눈빛이 워낙 간절해 보여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객잔으로 들어갔다.
“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이는 비강을 객잔 안쪽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어떤 요리를 잘하느냐?”
“양고기구이요.”
“가져오너라.”
비강이 철전 몇 닢을 쥐여 주자 아이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잠시 방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이는 양구이를 내왔다.
그리고 품에서 둘둘 말은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공손히 건넸다.
역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고맙구나.”
비강은 단번에 이 종이 뭉치가 하오문에서 약속한 지도임을 알아차렸다.
종이 뭉치를 행낭에 넣은 비강은 내키지 않는 대로 양구이 하나를 집었다.
입에 넣기 전부터 누린내가 풍기는 것이 이 객잔의 요리 솜씨는 시원치 않았다.
쯧.
‘이왕이면 요리 솜씨가 좋은 객잔을 통해 전해 줄 것이지…….’
대충 식사를 끝낸 비강은 객잔을 나오며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쓸어 주었다.
“또 들러 주세요, 손님.”
* * *
경공으로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수레를 얻어 타며 호북으로 향했다.
품속에 넣고 한 장 한 장 꺼내 보던 강호의 지도가 거의 대부분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오문이 건네준 지도에는 관도와 강줄기는 물론이고 지름길까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호북에 도착한 비강은 무한으로 향하다가 한 무리의 낭인들을 만났다.
앞서 걸어가던 비강이 낭인으로 보였는지 뒤에서 바쁘게 걷고 있던 낭인 하나가 소리쳐 불렀다.
“이보시오!”
비강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다섯 명의 낭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불렀소?”
“그렇소. 보아하니 은운곡을 찾아가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떻소?”
“그럽시다.”
은운곡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이들이 강도라면 그저 두드려 패면 될 뿐.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사내로 구성이 된 낭인들은 길을 가면서 쉼 없이 떠들어 댔다.
보통 이 정도로 가볍게 입을 놀리는 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은운곡에서 낭인 생활을 하셨던 형님을 한 분 알고 있는데,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중급 낭인은 한 달에 은자 다섯 냥까지 받을 수 있다더군. 사오 년을 그렇게 모으다 보면 고향에 내려가 번듯한 집에 논까지 두어 마지기 정도는 살 수 있다네.”
“나도 소문은 들었어. 가끔 눈먼 은자까지 들어온다며? 어떤 낭인은 전투에서 전사한 자의 품을 뒤졌더니 패물이 나왔다지 아마.”
“어디 패물뿐이겠는가. 운이 좋으면 무공 비급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네. 괜찮은 무공 비급이라도 하나 찾아내면 은운곡에서 수십 냥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더군.”
“중급은 고사하고 하급에만 들어도 좋겠네 그려. 나는 작년에 은운곡에 들려 했지만 시무석(試武石)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네. 올해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텐데.”
조용히 낭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걷고 있던 비강은 시무석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시무석이 뭐요?”
“허어, 은운곡에 들어가려 하면서 시무석도 알아보지 않다니, 실력에 꽤나 자신 있나 보구려? 시무석은 첫 번째 시험 종목이오. 천 근 정도 되는 바윗돌을 들어 올리는 시험이지. 이런 무력 시험들을 통과하면 부곡주와 면담을 가져 입곡의 가부를 결정하게 되오.”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 아닌가.’
낭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 비강은 은운곡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사람을 뽑는 데 무공만이 아닌 성정까지 보는 곳이었다.
아마도 은운곡의 주인은 무공에 관한 식견뿐 아니라 심지도 매우 깊은 사람일 것이다.
“하루만 더 바쁘게 걸어가면 은운곡이 나타날 거요.”
낭인들이 앞장을 서고 비강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걸어서 하루 거리라면 경공으로 한 시진이 채 걸리지 않을 터이나 알아볼 것이 있어 계속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앞쪽에 객잔은 없소? 내가 밥과 술을 사고 싶은데.”
“없긴 왜 없겠소? 어서 갑시다. 반 시진만 걷다 보면 객잔이 나타날 거요. 어서 갑시다.”
비강의 제안에 낭인들이 반색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낭인들의 말대로 반 시진 정도 길을 걷다 보니 깃발이 걸린 작은 객잔이 나타났다.
다섯 명의 낭인과 비강은 객잔 안으로 들어가 밥과 술을 주문했다.
곧 밥과 술이 나오고 낭인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며 술을 마셔 댔다.
말없이 밥만 먹고 있던 비강은 낭인들이 어지간히 취했을 때쯤 지나가듯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약추완 대협에 대해 알고 있소?”
하하!
비강의 질문에 술을 들이켜던 낭인 중 한 명이 호탕하게 대답해 왔다.
“약추완 대협! 아주아주 대단하신 분이시지. 내 그분에 대해 말해 줄 터이니 잘 듣도록 하게. 그분은 지금 북림의 부림주이자, 과거 사무성(四武星) 중 한 분이셨다네. 무력과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사에 공명정대한 자세로 임하시기에 모든 강호인의 존경을 받고 있지!”
그새 친해졌다고 생각을 했는지 낭인의 말투는 무척이나 가벼웠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낭인이 이야기를 끝내자 바로 우측에 있던 낭인이 그 뒤를 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약추완 대협의 집안사람들도 대단하지. 그분의 아우 되시는 약추명 대협은 북림의 감찰단주로 계실 정도로 명성을 쌓으셨고, 사위 되는 악규 대협은 강호에서 회운창(回雲槍)이라 불리신다지. 그러니 그 누가 감히 약추완 대협에게 덤빌 수 있겠는가.”
낭인들의 입이 쉬지 않고 약추완 대협과 그 집안에 대해 떠들어 댔다.
하하…….
자신의 사위를 죽이고 손자마저 끊으려 했던 인간이 존경을 받고 있다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비강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를 죽인 그자들은 아직도 강호 무림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이 아닌가.
꽉 쥔 두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