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화
제6화. 하오문
이튿날 아침 식사를 끝낸 상단은 길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눈으로 요리 기구들을 씻어 내고 모포를 정리해 수레에 싣자 용 단주는 상행을 알렸다.
“출발하라! 저녁에는 따뜻한 곳에서 쉴 수 있을 것이다!”
단주와 호위무사들이 선두에서 먼저 말을 박찼다.
용가 상단 뒤로 양가 상단의 사람들이 말과 수레를 몰아 멈췄던 상행을 이어 나갔다.
반 시진 가까이 말을 몰아가던 용 단주는 멀리 길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는 정체 모를 물체들을 발견했다.
호위무사들도 그것들을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뒤따라오는 말들을 멈추게 했다.
다그닥, 다그닥.
천천히 말을 몰아간 호위무사 두 사람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용 단주와 상황을 살피러 온 양 단주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두 단주의 눈에 보이는 것은 관도에 널브러져 얼어붙은 시신들이었다.
“단주님, 서장검괴입니다.”
호위무사 한 사람이 뒤집힌 시신 하나를 가리키며 정체를 밝혔다.
크흠…….
침음을 삼킨 두 단주는 말에서 내려 서장검괴의 시신을 살폈다.
“서장의 고수가 머리가 박살 난 채 얼어붙어 있다니…….”
양 단주는 서장검괴의 죽음을 좀처럼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서장검괴의 이름은 변완소였으며 드넓은 서장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서장에서 고수 스무 명을 꼽을 때 반드시 그 안에 이름을 올리는 자가 이렇게 얼어붙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이다.
이자는 원래 사천 무림에서 활동했는데, 살인과 강도 강간을 밥 먹듯 저질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친 곳이 바로 중원과 거리가 먼 서장이었다.
서장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들과 의형제를 맺고. 젊은 자들은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검법을 가르쳤다.
용 단주와 양 단주도 서장검괴와 마주친 적이 있기에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때 용 단주는 상아가 실린 수레 하나를 통째로 상납해야 했고 양 단주는 향신료가 실린 수레 두 대를 상납해야 했다.
“모두 둔기에 몸이 부서져 죽었습니다.”
‘둔기라…….’
용 단주는 단번에 비강이 등 뒤에 메고 있던 병기를 떠올렸다.
딱딱한 가죽으로 감싸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철봉이었다.
“라바나가 맞았군. 대단한 자를 호위무사로 둘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용 단주.”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답을 얼버무린 용 단주는 비강을 그대로 떠나보낸 것이 아쉽고도 아쉬웠다.
‘폭풍까지 만들어 내 적들을 찢어 버린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눈앞에 두고 놓치다니.’
하아…….
얼마나 안타깝고 아쉬움이 컸는지 그의 입에서는 한숨까지 흘러나왔다.
* * *
섬서 연안에 도착한 비강은 일부러 가장 큰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점소이들과 수많은 손님이 북적거리는 객잔 안으로 들어온 그는 용케 빈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무엇을 드릴까요? 손님.”
“우육면 하나만 가져다주게.”
수고비로 철전 하나를 점소이의 손에 쥐여 준 비강은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상인과 학사들이 여럿 보였고 강호인도 끼리끼리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우육면 나왔습니다.”
점소이가 우육면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려 하자 비강은 얼른 그의 소매를 잡으며 철전 하나를 더 건넸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손님.”
어린 점소이는 반색을 하며 비강의 말을 받았다.
“하오문이 어디에 있느냐?”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오문이 있는 곳을 물었다.”
점소이가 송구하단 표정을 지으며 비강을 바라봤다.
“손님, 촌에서 막 나오셔서 잘 모르시는 듯합니다. 하오문이 어디 있는지 알면 제가 이런 곳에서 점소이나 하고 있겠습니까요.”
“그것도 그렇구나. 여기서 하오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아쉽구나, 혹시 하오문에 대해 잘 아는 자는 없느냐.”
사실 제대로 된 대답을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하오문’을 찾고 있음을 밝히기 위한 질문일 뿐이었다.
용 단주는 분명 하오문이 암중에 숨어 쉽게 찾을 수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일단 손 닿는 대로 아무 곳이나 두드리는 수밖에.
정말 하오문이란 곳이 무림 제일의 정보 조직이라면 라바나가 자신들을 찾는다는데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새외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져 왔다.
그들이 하오문이라면 분명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 터.
그때, 맞은편에서 식사하던 사내가 비강에게 다가와 앉았다.
“젊은 형씨, 식사를 하는 중에 얼핏 들으니 하오문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
* * *
비강은 쥐 같은 인상에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쪽은 하오문이 있는 곳을 알고 있소?”
“하하, 형씨는 정말 운이 좋은 거요. 하오문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을 바로 만났으니 말이오. 식사가 끝나는 대로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주겠소.”
“고맙소.”
처음 보는 사내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 하오문에서 보낸 놈인가 하여 사내를 따라가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순 시정잡배에 불과하다면 두들겨 패면 그만이리라.
식사가 끝이 나자, 쥐 같은 인상의 사내는 길을 재촉했다.
“어서 나를 따라 나오시오, 형씨. 하오문주는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서둘러야 하오.”
“그럽시다.”
비강은 사내의 밥값과 술값까지 한꺼번에 치르고 객잔을 나섰다.
그가 객잔을 나서자마자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강호인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쪽으로…….”
밖에서 기다라고 있던 사내는 객잔을 나선 비강을 깊은 골목으로 안내했다.
골목에는 얼굴에 분을 바르고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하얀 허벅지를 슬쩍 내보이며 서 있었는데 사내는 눈에 보이는 여인들마다 뺨을 톡톡 두드리며 지나갔다.
“저곳이오.”
사내는 골목 끝에 서 있는 낡은 건물 한 채를 가리켰다.
먼저 사내가 안으로 들어가고 비강이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는데, 그 촛불에 의지해 험상궂게 생긴 사내 다섯이 탁자에 모여 앉아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가 하오문이오?”
비강의 물음에 그를 안내해 온 사내가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도 하오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그럼, 나를 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오?”
“가진 게 제법 있어 보였거든. 무복도 깨끗하고 점소이 놈에게 철전을 쥐여 줄 때 품속에 있던 전낭이 두둑해 보였어. 이봐들! 내가 촌구석에서 방금 나온 강호초출 하나를 데려왔어.”
사내는 대답과 함께 도박을 하고 있던 사내들을 향해 나무 막대기 하나를 집어 던졌다.
그러자 도박을 하고 있던 사내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한쪽에 놓여 있던 큰 칼을 집어 들었다.
“가진 것을 다 내놓고 돌아가. 가진 것이 없으면 팔 하나를 떼어 놓고 돌아가든지.”
사내들은 헤죽헤죽 웃으며 가만히 서 있는 비강을 에워쌌다.
“그냥 나가도록 하지.”
역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짜증이 난 비강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사내들의 경고는 말뿐만이 아니었다.
“병신 같은 새끼가 어디서 고수 흉내를 내고 지랄이야!”
쉬악!
비강의 등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큰 칼로 어깨를 바로 찍어 왔다.
스륵!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서며 찍어 내려오고 있는 사내의 팔을 잡아챈 비강이 사내의 손을 비틀고 목을 움켜쥐었다.
뿌각! 우둑!
사내의 팔이 부러지며 뼈가 튀어나오고 목이 꺾였다.
털썩!
비강은 바닥으로 널브러지는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꿀꺽.
순간, 주위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비강의 눈과 마주한 사내들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었다.
압도적 무위였다. 그들은 비강을 눈앞에 두고도 그가 어떻게 움직여 자신들의 동료를 죽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큰 칼을 쥐고 있던 사내의 목을 꺾어 버린 비강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여기까지 안내해 온 사내 앞에 나타났다.
컥!
사내는 비강의 손아귀에 목줄이 잡혀 대롱대롱 위로 들려졌다.
벌컥!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젊은 남녀 강호인들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왔더니…… 선객이 있었군. 그만하시오, 죗값은 충분히 치른 것 같으니.”
뚜둑! 털썩.
하지만 비강은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대로 목을 꺾어 버렸다.
이에 젊은 강호인들은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비강을 노려보았다.
“나는 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북림 옥돈조(玉豚組)의 공손황이오…… 한데 귀하는 뉘시오?”
“비강.”
공손황이라 이름을 밝힌 젊은 사내는 참으로 사내답게 잘생겼다.
짙은 눈썹에 약간은 각진 턱, 그리고 봉황 같은 눈에 큰 키까지, 여인이라면 누구나 반할 만한 모습이었다.
“혹시 북림으로 가는 길이오?”
“아니오. 그런 곳엔 관심 없소.”
자신에게 관심을 표하는 공손황과 엮이고 싶지 않은 비강이 얼른 말을 끊고 문을 나섰다.
“그렇다면, 어느 가문 출신이오?”
“그런 것 없소.”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 가는 공손황을 피해 얼른 문을 닫은 연비강은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 * *
연비강이 밖으로 나가고 난 후 그때까지 손에 큰 칼을 들고 있던 사내들은 황급히 바닥에 병기를 내던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들도 북림 옥돈조의 공손황이라는 이름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공손황은 사내들에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의 부러진 목과 팔을 살펴본 그가 입을 열었다.
“대단한 자야, 잔인하기도 하고. 단번에 팔과 목을 부러뜨렸어. 악력과 내공이 보통이 아니야.”
공손황의 말에 곁에 있던 동료 하나가 엎드려 있는 사내들에게 물었다.
“혹시 저자의 정체를 아느냐?”
“처음, 처음 보는 자입니다.”
* * *
연안을 거쳐 서안에 도착한 비강은 끝없이 늘어선 건물들과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걸었다.
길거리에는 호화로운 마차도 여러 대가 보였고 짐을 잔뜩 실은 수레도 자주 눈에 띄었다.
수많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큰 도시답게 병장기를 휴대한 강호인도 꽤 많았다.
스쳐 지나가며 대화를 들어 보니 그들이 이곳 서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북림의 무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안도 북림의 권역이었다.
비강이 거리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을 때, 호화로운 마차 한 대가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곧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세요.”
‘왔군.’
비강은 곧바로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랴.”
비강이 마차에 오르자마자 말들은 다시 움직였다.
마차 안에는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면사로 인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으나 다리가 길고 허리가 잘록한 것이 시원스런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하오문이오?”
“네. 새외에서 ‘라바나’라 불리던 분이 강호로 넘어오셨군요.”
여인은 이미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과연 새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까지 파악하고 있는 하오문의 정보력에 적잖이 감탄했다.
“무슨 일로 우리 하오문을 찾으셨나요?”
“내가 강호 무림은 처음이라 남들이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듣고자 하오.”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비강은 행낭을 열어 그 안에서 손잡이와 검집이 상아와 황금으로 된 휘어진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이것이면 되겠소?”
백파를 제외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물건이었다.
“무엇을 물으시든…… 충분할 것 같군요, 라바나.”
여인은 단검의 값어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럼 묻겠소. 강호에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요?”
“세 살 먹은 아이조차도 사패의 주인들인 사천존이 천하제일이라 알고 있어요.”
“그들보다 강한 자는 없는 것이오?”
“네.”
똑 부러지는 여인의 대답에 비강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소문을 듣기로 예전 강호 무림에는 오천왕이나 이무후, 이협 같은 고수들이 있었다고 했소. 그들과 사천존을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소?”
실제로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오천왕이나 이무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비강은 아버지인 이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에둘러 다른 자들까지 엮어 넣은 것이다.
“오천왕이나 이무후 같은 고수들은 사천존의 상대가 되지 못했어요. 이협은 그전에 죽어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오천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예요.”
“이협은 어떤 사람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