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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5화

제5화. 강호 무림으로 가는 길

 

 

 

날이 점점 선선해지자 그동안 함께했던 낙타를 상인에게 팔았다.

두터운 털옷을 구해 입고 가죽신까지 구해 신은 비강은 계속 북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북동쪽으로 향할수록 자신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마을에 들어선 비강은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에서 난을 샀다.

난은 얇은 밀가루 반죽을 구워 그 안에 속을 채운 것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길거리에 서서 난을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하던 비강은 거리에 들어서는 일단의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들과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말을 타고 있었고,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들이 수레를 몰아 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수레에는 커다란 자루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말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리 큰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은 아닌 것 같았다.

‘차로군.’

은은하게 풍겨오는 냄새를 맡은 비강은 상단이 큰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음식점을 가득 메운 상단의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시켜 놓고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비강은 상단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식탁이 가까워지자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경계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막아섰다.

“외인은 다른 자리를 찾아보시오.”

호위무사의 말에 연비강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나는 불순한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길을 열게.”

식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호위무사들은 허리를 숙이며 길을 비켰다.

중년 사내는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젊은 사내를 살폈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짙은 눈썹과 굳게 다문 입,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은 호감을 일으키게 하는 인상이었다.

상인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보아 온 그로서는 앞에 서 있는 청년이 도적 같은 무리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이나 등에 비스듬히 메고 있는 또 다른 병기는 이 청년이 무인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섬서에 있는 용가 상단의 주인인 용중연이라 하오. 한데 소협은 뉘시며 무슨 목적으로 나를 찾아오셨소?”

“저의 이름은 연비강이라 하며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단주님을 뵈려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중원으로 돌아갈 때 저도 동행을 했으면 해서 결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말투로 보아 배움이 얕은 자도 아니로군.’

오랜 경험으로 쌓은 용중연의 감각은 눈앞에 선 무인이 결코 범인이 아니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하시오, 연 소협.”

단주가 선뜻 승낙하자 호위무사들은 물론이고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일꾼들까지 의외의 시선으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단주가 어찌 외인의 동행을 저렇게 쉽게 허락한단 말인가.

단주는 정체 모를 외인을 함부로 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서 앉으시오, 연 소협. 이런 좋은 일에 술이 없어서야 어디 쓰겠소.”

연비강은 스스럼없이 단주와 마주 앉았다.

곧 술과 요리가 나오고 술잔에 술을 채워 건넨 단주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아하니 원래 집 없이 떠돌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어느 가문의 가인이시오?”

“기억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곳으로 넘어와 군에서 지냈습니다.”

“군에서? 허어.”

사람을 대하면 대충 과거사를 추측해 맞추었던 단주는 자신의 짐작이 완전하게 빗나가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면 어찌하여 중원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오?”

“이곳에서는 할 일이 없습니다. 혹시 강호에서 사람을 가장 잘 찾는 인물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인물은 모르나 단체는 알고 있소. 사패를 제외하면 하오문이 사람을 찾는 일에는 가장 뛰어날 것이오.”

사패와 하오문.

연비강도 으레 들어 보긴 했으나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사패는 무엇이고 하오문은 또 무엇입니까?”

껄껄껄…….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소협의 말이 거짓이 아니구려. 천하를 사분하는 사패를 모르다니 말이오.”

대소를 터뜨린 단주는 술잔을 비우고 사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사패는 현재 강호를 사분하고 있는 무림 조직이오. 북림, 동천, 남선, 서패. 이렇게 네 조직이 강호를 사분해 운영하고 있소이다. 그리고 하오문은 기생과 도둑, 점소이, 소매치기 같은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유서 깊은 정보 조직이라오. 그들은 항상 암중에 숨어 있어 쉽게 찾을 수가 없소이다.”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사패와 하오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연비강은 더 이상 강호의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예민한 본능은 앞에 앉아 있는 용중연이라는 상인이 굉장히 영리하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에 있었다면 혹시 ‘라바나’라는 병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소? 그 병사에 대한 소문이 워낙 무성해서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말이오. 소문으로 그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하던데…….”

역시 이 용중연이라는 상인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질문 속에는 혹시 그 라바나라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냐는 옅은 의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부대에 두어 달 정도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얼핏 얼굴만 보았을 뿐,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때에는 전투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소문을 확인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그러시군요. 많이 아쉽소이다. 몇 년 전부터 이쪽으로 상행을 올 때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단주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비웠다.

 

* * *

 

용가 상단은 차를 팔고 상아와 수많은 향신료와 약재들을 사들였다.

상아는 고관대작이 아니라면 구경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고가의 물품이라고 한다.

거래를 끝낸 상단은 서장을 향해 출발했다.

서장을 넘어 청해, 감숙, 섬서로 넘어가는 아주 길고 고단한 길이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십여 일 동안 묵묵히 말을 몰아가던 상단의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첫눈을 달포나 빨리 보게 되는군. 서두르세.”

단주의 재촉에 호위무사들과 일꾼들은 말의 속도를 높였다.

눈발이 거세지고 찬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왔지만 상행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 *

 

한 시진을 넘게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주 규모가 큰 객잔이었다.

그곳은 상행을 하는 이들을 위해 세워 놓은 객잔이었는데 나무로 지은 건물만도 열 채가 넘었다.

“어서 오세요, 용 단주님.”

열대엿 살쯤 되어 보이는 다섯 명의 점소이가 일제히 달려 나와 상단을 맞이했다.

점소이들과 일꾼들은 말과 수레를 마구간으로 끌고 가고 단주와 호위무사들은 객잔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객잔 안에는 먼저 도착한 상단의 사람 수십 명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 단주, 조금 늦으셨구려.”

“양 단주님이 먼저 도착하셨군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어디 고생 축에라도 듭니까? 앞으로가 더 걱정이지요.”

하하하.

“맞습니다. 제가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용 단주가 또 다른 상단의 단주와 인사를 나누며 그쪽으로 호위무사들과 함께 가자 비강은 홀로 남게 되었다.

홀로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점소이가 물을 가지고 다가왔다.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손님.”

“뭐를 잘하오?”

“저희 객잔은 양고기 요리를 잘합니다.”

“그럼, 그것으로 준비해 주시오. 술도 한 병 가져다주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문을 받은 점소이는 물러가지 않고 우물쭈물하며 서성거렸다.

이에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비강은 전낭에서 은 부스러기를 조금 꺼내어 점소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이고,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은 부스러기를 확인한 점소이는 머리를 바닥까지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곤 곧바로 구운 양고기와 술을 내왔다.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강호에 나가려면 은자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할 듯싶었다.

“미안하오. 반가운 사람을 만나 연 소협이 홀로 식사를 하는 줄도 몰랐구려.”

한참 식사를 이어 가는 와중에 용 단주가 다가와 살짝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마주 앉았다.

“양이 많으니 함께 드십시오. 아, 그리고 단주님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비강은 전낭을 꺼내 안에 들어 있는 금화 두 개와 은 부스러기들을 내보였다.

“이것을 이곳에서 사용할 화폐로 교환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하.

“어려운 부탁도 아니구려.”

용 단주는 금화를 집어 대충 무게를 가늠하고는 자신의 전낭을 꺼내 은자 십여 냥과 철전 십여 푼을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용 단주는 고마움을 표하는 비강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슬쩍 그의 허리와 등에 메고 있는 병기를 살폈다.

양 단주와 대화를 나누며 라바나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검과 창, 그리고 봉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했다.

때로는 기병으로, 때로는 보병으로 전투에 임하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시산혈해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단다.

‘검과 봉은 확인했는데 창이 없군. 창만 있다면 연 소협이 라바나가 확실해 보이는데 말이야.’

상인으로서 천부적인 안목을 가진 용 단주는 눈앞의 연비강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꿰뚫어 보았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분명 최근까지 하산의 밑에서 전장을 휩쓸었던 라바나 정도이리라.

하나, 용 단주는 물론이고 양 단주까지 라바나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검은 반지에 대한 소문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상념에 잠겨 있던 용 단주는 얼른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니오. 자, 듭시다.”

용 단주가 술잔을 들어 올리자 비강도 같이 술잔을 들었다.

이미 용 단주가 양 단주라는 사람에게 라바나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자신이 라바나였다는 사실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

 

* * *

 

밤새 내리던 눈이 그치고, 길을 나선 상행은 짙은 어둠이 깔릴 때쯤이 되어서야 적당한 장소를 찾아 노숙을 준비했다.

일꾼들은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불을 피우고 요리를 시작했다.

양가 상단은 용가 상단과 가는 방향이 같아 동행을 하고 있었고 같은 장소에서 노숙을 준비 중이었다.

늦은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사람들은 불 주변으로 모여 앉아 술을 마셨다.

술로 몸을 데워 추운 밤을 보내려는 것이다.

추운 밤이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일꾼들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단주들도 그런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비강은 불과 조금 떨어진 곳에 정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조용히 기감을 퍼뜨리며 내면을 관조하던 비강은 곧 기감을 거둬들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찌 일어나셨소?”

그때까지 조용히 비강을 지켜보고 있던 용 단주가 다가와 물었다.

“잠깐 산책을 다녀오려 합니다.”

“멀리는 가지 마시오. 상행을 노리는 강도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 자칫 흉한 일을 당할 수 있소.”

“멀리 가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상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곳을 나온 비강은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들과 산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용 단주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라바나가 확실하다면 호위무사로 초빙하려 할 것이다.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며 길을 걷던 비강은 바람에 실려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곤 걸음을 멈췄다.

기감에 걸려드는 인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한 삼십 명이 넘는다.

잠시 길 한가운데 서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서너 개의 횃불이 보이고, 병기를 휴대한 삼십여 명의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삼십여 명 중에는 젊은 여인과 나이 든 여인이 다섯이나 섞여 있었는데 횃불에 비치는 그녀들의 눈빛에 흉한 살기가 번들거렸다.

좌우에서 호위를 받으며 선두에서 걸어오고 있는 자는 머리카락이 허연 늙은이로 얼굴에는 긴 검상이 있었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었다.

노인은 길 한가운데에 비강이 서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자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치워라.”

“존명.”

노인의 명령을 받은 좌우의 사내들이 바로 검을 빼 들곤 비강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로군.’

아저씨와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저런 자들을 숱하게 만나 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전에 만났던 자들은 죽기 싫으면 가진 것을 전부 내놓으라는 말이라도 건넸었다.

스으으―

검첨 두 개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비강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움직였다.

꽈득!

검첨은 뺨과 허리를 스쳐 지나가고 비강의 양손은 두 사내의 목뼈를 단숨에 꺾어 놓았다.

털썩.

한순간이었다.

목을 꺾어 버린 비강은 양손을 풀며 감정 없는 눈으로 노인을 주시했다.

노인은 긴장을 했는지 가만히 있는데, 뒤쪽에 서 있던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일 놈! 감히 사형들을 죽이다니!”

“갈가리 찢어 죽여!”

달려드는 여섯 명의 젊은 남녀와 마주한 비강은 등에 메고 있던 철봉을 뽑아 들었다.

쩌억! 쩍!

여섯으로 늘어난 비강의 신형과 철봉이 젊은 남녀들의 머리를 깨부수고 하나로 합쳐졌다.

털썩. 털썩.

머리가 박살이 난 자들이 차례로 쓰러졌지만 노인과 수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꿀꺽.

적들이 침 넘기는 소리가 비강의 귀로 들려온다.

“……노부는 ‘서장검괴’라고 하네. 내 제자들이 실수를 범했으니 정중히 사과를 함세.”

자신을 서장검괴라 밝힌 노인은 두 손을 모으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비강은 이쯤에서 멈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자신에게 이빨을 보인 자들을 비강은 단 한 번도 살려 둔 적이 없었다.

철봉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신형은 쏜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슈아아―!

칠팔 장 너머에 있던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놀라 부릅뜬 그의 눈이 보인다.

화들짝 놀란 서장검괴는 찰나의 순간에 검을 뽑아 사선으로 쳐올렸다.

쩌억!

끄악! 꺼억!

비강의 신형이 서장검괴를 빠르게 스치며 하나의 철봉이 서너 갈래로 나뉘어졌다.

일폭섬(一爆纖).

나이 열여섯에 시험 삼아 처음으로 만들어 본 무공이었다.

각고의 고심과 수련의 결과로 탄생한 첫 번째 무공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모자람이 많은 무공이었다.

서장검괴의 뒤통수를 치며 지나간 철봉은 적들의 얼굴을 박살 내고 목뼈를 부쉈다.

목과 가슴을 파고드는 검들을 피해 바닥으로 깔듯 지나쳐 간 비강은 적들의 다리를 부수고 큰 칼을 치켜드는 중년 여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끄어……!

쩌억!

여인이 채 비명도 지르기 전에 관자놀이를 후려치고 또 다른 적의 팔을 부쉈다.

휘리리―

세찬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적진을 휩쓸고 나온 비강은 신형을 회전시키며 살아남은 적들을 향해 쏘아 갔다.

빠악! 쩍! 크악! 아악!

적들은 비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옷깃 한 번 베어 보지 못한 채 속절없이 머리가 깨지고 가슴이 박살 나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었다.

“살려……!”

쩌억! 퍽!

철봉은 공포에 질린 적들을 부수고 짓이겼다.

이윽고 삼십여 명의 적이 전부 쓰러지자 미쳐 날뛰던 철봉도 움직임을 멈췄다.

쌓여 있는 눈에 철봉을 비벼 피를 닦아 낸 비강은 적들의 품을 뒤졌다.

적들의 품마다 전낭이 나오고 그 안에는 제법 많은 은자가 들어 있었다.

은자를 모두 챙긴 비강은 상단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었다.

 

* * *

 

상단이 노숙을 하고 있는 곳에 도착해 보니 대부분의 상단 사람들은 가운데 피워 놓은 모닥불을 주변으로 모포를 뒤집어쓴 채 잠에 빠져 있었다.

호위무사 두 명이 불 주변에 앉아 있다가 안쪽으로 들어서는 비강을 흘깃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비강은 수레 한쪽에 보관하고 있었던 자신의 짐을 찾아 바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로 가려는 것이오?”

용 단주가 뒤따라오며 묻자 비강은 신형을 돌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되어 또 뵙게 된다면 이 은혜를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떠나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용 단주는 서장검괴와 제자들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챌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꽤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서장에서 찾아볼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다음에라도 꼭 우리 용가 상단을 방문해 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용 단주와 작별 인사를 나눈 비강은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용 단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상단으로 몸을 돌렸다.

“참으로 신기한 청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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