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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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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화

제1화. 악마 라바나

 

 

 

나는 네게 무공의 기본만 가르칠 것이다.

형(形)과 법(法), 공(功)을 익히되 그것들에 구애받지 마라.

네 안의 기운은 살아 움직이는 괴물과 같아서 언젠가는 신(身)을 속박하고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굳은 의지로 괴물을 제압해 그 괴물을 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하느니라.

 

슈슉. 파팡!

빈 공간을 때리는 아이의 손과 발에 제법 힘이 실리고 있었다.

“비강아, 일권, 일퇴, 일각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느니라. 다음을 생각해 힘을 남기지 마라.”

젊은 사내의 깨우침에 아이는 빈 공간을 가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고 긴 머리카락은 얼굴을 반쯤 덮고 있었으나 각진 턱과 우뚝 선 코, 큰 눈으로 보아 사내의 인상이 아주 남자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오고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젊은 사내는 그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 또한 수련을 그칠 생각이 없는지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도 움직임을 그치지 않았다.

허억.

어느 순간 아이가 외마디 신음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젊은 사내는 아이의 안아 그늘에 눕히고는 온몸을 주물렀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젊은 사내는 불을 피우곤 정체 모를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예, 아저씨.”

아이는 젊은 사내를 향해 쪼르르 달려가더니 불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젊은 사내는 불에 올려놓은 기다란 고기를 뜯어 절반은 아이에게 주고, 남은 절반을 자신에 입에 넣었다.

고기를 씹던 사내가 문득 몸을 일으키자 아이도 따라 일어섰다.

사내는 한참이나 숲을 걸어가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자리를 골라 앉았다.

아이도 사내가 가리킨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며 옆에 붙어 앉았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산 아래쪽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말아 두른 노인이 커다란 뱀과 대치하고 있었다.

쉬익, 쉭―

몸을 바짝 세운 커다란 뱀은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노인의 허벅지와 다리를 노렸다.

그러나 노인은 뱀의 공격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뱀의 이빨이 다가오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피했다.

“저 노인은 무공을 접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라. 하나 수많은 경험에 의해 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어 저러한 공격을 피해 내고 있느니라.”

퍽.

뱀의 공격을 피해 내던 노인이 나무 작대기로 뱀의 머리를 후려쳤다.

“무공의 초식도 저와 다름이 없으나, 그 초식이 절대적이 아님을 명심하여라.”

뱀을 잡은 노인은 꼬리를 쥐고 몇 번이나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산을 내려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몸을 일으키자 아이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더 서쪽으로 움직여 볼까?”

“예, 아저씨.”

 

* * *

 

다섯 살쯤 되었던 아이는 이제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소년은 지금 둥글게 휘어진 커다란 칼을 들고 있는 강도와 대치하고 있었다.

쉬익, 쉭―

사내의 큰 칼이 소년의 몸을 베어 내려 빠르게 날아들었다.

큰 칼을 피해 내는 소년의 움직임은 마치 회오리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과 같았다.

쩍! 컥!

큰 칼을 피해 내던 소년의 주먹이 상대의 턱에 가 꽂히자 강도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르륵, 끄륵…….

바닥에 널브러진 강도의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퍽!

소년은 발을 들어 강도의 목을 짓뭉개 숨을 끊어 버리고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큰 짐승을 가리켰다.

“낙타가 생겼어요, 아저씨.”

소년은 자신이 사람을 죽여 낙타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소년을 크게 꾸짖어야 하지만 젊은 사내는 달랐다.

“잘했다. 앞으로도 너를 죽이려 하는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마라. 또한 무력이 강한 자보다 흉심을 품고 있는 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무력이 강하고 머리도 뛰어난 자를 더욱 조심하란 말씀이군요.”

“그렇지. 너의 생각을 상대방이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젊은 사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둥글고 큰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큰 칼이 십여 장을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제법 쓸 만한 병기이니라. 나중에 네가 마음에 드는 병기를 얻거나 이 칼이 부러지기 전까지 가지고 다니도록 해라.”

“저는 검법 배운 적이…… 아닙니다, 아저씨.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이미 너에게 모든 무공의 기본을 가르쳤으니 스스로 무공을 만들어 보도록 해라.”

잠시 소년을 내려다보던 젊은 사내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제 너와 헤어져야 할 때인 것 같구나.”

소년은 사내의 말에 놀라 눈을 부릅떴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저를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년은 당당하게 젊은 사내와 마주하려 했으나 눈빛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외로움의 발로였다.

“묻겠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나는 네가 굳이 무인이 아니더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구나.”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동안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다.

상인도 있었고 농부도 있었고 물고기를 잡아 삶을 연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이 부러워하는 삶은 어떠한 위험과 어려움에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는 무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무인의 표본은 바로 아저씨였다.

“무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무인으로 살아라. 이왕 무인이 되고자 한다면 천하제일인이 되어 보거라.”

천하제일인.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었다.

“천하제일인이 되면 무엇이 좋고 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천하제일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느니라. 하나 천하제일인이 되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

소년은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자신은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언젠가 너의 귓속으로 괴이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느니. 네가 그 마(魔)를 이겨 내면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서게 될 것이니라.”

마(魔).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소년에게 다가간 사내는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네 과거를 말해 줘야 할 것 같구나. 원래 너의 이름은 월(月)이었다. 연월, 너의 부친은 나와 의형제 사이였으며 같은 고향 사람으로 중원인이 아니었느니. 그래서 강호에서는 너의 부친을 이협(夷俠)이라 불렀었다.”

“제, 제 아버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강호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강호에 나가면 네가 직접 알아보도록 해라. 단, 강호에 나가거든 되도록 네 정체를 숨겨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한데 나중에 제가 어떻게 아저씨를 찾아가야 합니까?”

“찾지 못할 게다.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사내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가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스으으.

사내의 손을 따라 공간이 갈라지고 그 안으로 짙은 어둠이 보였다.

그 어둠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년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무인이 되고자 한다면 방금 이 일섬을 기억해 두어라.”

휘이이이―

소년의 대답이 끝나자 젊은 사내의 주변으로 바람이 휘돌았다.

그리고 바람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년 연비강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손에 쥐여 있는 큰 칼을 들어 올렸다.

“아저씨,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항상 옆에서 자신을 지켜 주던 단 한 사람이 떠나갔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유일한 가족이었다.

 

* * *

 

수백 마리의 낙타 떼가 누런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맞은편에서도 수백 마리의 낙타들이 마주 달려왔다.

낙타를 타고 달리던 하산 캉그루는 크고 날카로운 창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와아!

천지를 울리는 함성과 함께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낙타들이 마주쳐 달려오는 낙타들과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푸륵, 푸륵.

따땅! 땅! 땅!

크악! 커억!

낙타들의 거친 숨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먼지구름 속에서 튀어나왔다.

목이 갈라지고 몸이 베인 병사들이 비명과 함께 낙타 등에서 연이어 굴러떨어졌다.

낙타를 탄 기병들의 싸움에 이어 양 진영의 보병이 부딪치자 전쟁터는 점점 시산혈해로 변해 갔다.

퍽!

창으로 적의 목을 꿰어 떨어뜨린 하산은 좌측에서 달려드는 적의 목을 꿰뚫었다.

스걱. 끄어엉! 끄엉!

연이어 적들을 죽여 나가던 그의 몸이 낙타의 고통스런 울부짖음과 함께 땅으로 굴러떨어져 처박혔다.

다리가 잘려 나간 낙타가 울음소리를 토해 내며 버둥거렸고, 땅으로 굴러떨어진 하산의 눈앞으로 적의 창끝이 날아들었다.

퍽!

그러나 낙타 위에서 창을 내지르던 적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며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군, 일어나십시오!”

“비강!”

죽음에서 살아난 하산은 급히 몸을 일으켜 주인 없는 낙타 위로 뛰어올랐다.

그사이 비강의 대도가 현란하게 춤을 추며 하산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의 머리를 연달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낙타에 올라 창을 잡은 하산은 적들의 중앙으로 뛰어들어 대도를 휘두르고 있는 비강의 등을 좇으며 소리쳤다.

“라바나의 뒤를 따르라!”

라바나, 신화에 나오는 잔악한 악마들의 왕.

비강을 두려워하는 적들이 그에게 붙여 준 별칭이었다.

하산을 태운 낙타가 라바나를 쫓아가고 수십 기의 낙타들이 그 뒤를 이었다.

대쪽을 가르듯 적의 진영을 반으로 가르며 달리는 라바나를 막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좌우로 연달아 후려치는 비강의 대도에 적들의 머리와 목이 연달아 갈라지고 떨어졌다.

“라바나!”

비강은 적진에서 낙타를 몰아 달려오는 적장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낙타와 낙타가 스쳐 지나가고 긴 창과 대도가 엇갈렸다.

퍽!

갑옷과 함께 가슴이 갈라진 적장이 낙타 위에서 굴러떨어지더니 널브러졌다.

“아락샨이 죽었다!”

비강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기를 잃은 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아군의 기세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죽여라!”

“추격하라!”

적들의 등을 좇아 추격을 거듭하던 비강의 눈앞에 적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망을 치는 적들은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비강이 바짝 그 뒤를 쫓았다.

쏴아아.

성벽에 늘어선 궁수들의 화살이 비 오듯 비강을 향해 쏟아지고 그의 앞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비강이 대도를 휘둘러 수많은 화살을 쳐 내면서 불꽃이 튀는 것이다.

하산은 그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수하로 있는 비강을 알지 못했다.

거듭된 전투로 인해 비강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가 일으키는 기적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여도 비강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적들의 주검만 늘어날 뿐이었다.

어느덧 비강을 태운 낙타는 성 안으로 날듯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성문이 열렸다!”

비강이 성문을 차지했으니 이제 저 성을 함락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아군의 기병과 보병이 물밀듯 밀려들어 가고, 비강은 성벽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성을 차지한 그날 밤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

병사는 병사대로 술을 마시고 장군은 장군대로 따로 모여 전투의 승리를 자축했다.

“하산 장군께서 찾으십니다.”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술잔을 기울이던 비강은 병사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성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산의 처소로 안내된 비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비강, 어서 와라.”

비강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머리를 숙였다.

군중에서 비강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산만이 비강이라 불렀고 다른 이들은 모두 라바나라 칭했다.

“장군을 뵙습니다.”

비강의 정중한 인사에 활짝 미소를 지은 하산은 그를 의자에 앉게 하고는 술을 내왔다.

“너와 술이나 한잔하고 싶어 불렀다.”

금으로 된 술잔에 술을 채운 하산은 비강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술잔을 비운 하산은 앳된 얼굴의 비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채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청년은 그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비강은 도무지 전공에 대한 보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여전히 병사로 남고 싶은 거냐? 네가 원한다면 장군으로 진급시키고 항상 내 옆에 두고 싶은데.”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어차피 저는 떠날 사람입니다. 장군이란 직책을 받게 되면 밑에 수하들을 둬야 하고 그렇게 되면 쉽게 몸을 뺄 수 없게 됩니다.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무심한 녀석.”

하산이 비강을 좋아하면서도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자들 같으면 뛰어난 능력 때문에 아무리 충성심이 강한 수하라 하더라도 의심을 해야 했겠지만, 비강은 권력욕이 전혀 없었다.

그런 비강의 성정 덕분에 한편으론 의심을 않게 되어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비강이 언젠가 아무 미련 없이 떠날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후우…….

아쉬움에 긴 한숨을 내쉬던 하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한쪽에 놓여 있는 긴 창을 내왔다.

창날은 사 척에 가까웠고 헝겊에 싸인 창대 또한 육 척이나 되는 장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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