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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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49화
249화
이무환은 단약을 대충 씹어 삼키고는, 남궁산산을 향해서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마, 인마. 이 정도로는 끄떡없으니까. 내가 누구냐? 광룡 아니냐, 광룡!”
그러고는 호연청과 황보광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거, 뭐 하쇼! 내 걱정 말고 뒷정리나 좀 깔끔하게 하쇼! 아직도 다섯 마리나 남았잖수!”
짐짓 큰소리치는 이무환의 태도에 호연청과 황보광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허튼수작을……. 으으음, 지미, 드럽게 아프네…….’
그렇게 반의반 각가량이 지날 즈음, 마지막 혈포인의 머리가 호연청의 손에 터지며 싸움이 끝났다.
이무환은 내력이 반쯤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우문조현에게 다가갔다.
우문조현이 다가오는 이무환을 보며 툴툴거렸다.
“크, 크, 크……. 대체… 그게 무슨…….”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죽더라도 궁금증만은 풀어야겠다는 듯 힘겹게 입을 열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전음으로 설명해주었다.
<천광이 풍운뇌우의 극성이라는 걸 몰랐나? 우문적태가 말해주지 않던가?>
“……?”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알아둬. 풍운뇌우는 말이야, 천광문의 문지기들이 익히던 무공이라서 주인 앞에서는 힘을 못 쓰거든.>
이무환의 전음이 귀청으로 파고들자, 우문조현의 얼굴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문지기의 무공? 자신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생각했던 것이 천광문 문지기의 무공이라고?
“마, 말도… 안 돼……. 꺼억…….”
우문조현은 눈을 까뒤집으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이무환의 말에 부아가 치밀어서, 한 가닥 겨우 이어져 있던 혈맥마저 터져 버린 것이다.
이무환은 숨을 멈춘 우문조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지기의 무공이란 말은 조금 심했나? 사대수호령이나 문지기나 비슷한 거 아냐?”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릉.
제갈신걸과 사마강이 들어간 삼층 건물이 천둥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이무환은 홱 고개를 돌리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건물에서 나오는 무설강이 보였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서 머리 위에 눈이 내린 것만 같았다.
공력이 오 할 이상 회복된 상태. 이무환은 남궁산산에게 슬쩍 눈짓을 보내서 진세를 풀게 하고는 무설강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지하로 들어가는 것 보고 따라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네. 다행히 내가 그놈을 잡긴 했네만, 그놈이 함께 죽자고 기관을 움직이지 뭔가. 다행히 놈의 행동을 눈치채고 재빨리 빠져나왔지. 그런데…… 신걸과 사마강은 안 나왔나?”
3
석실을 둘러보던 제갈신걸과 사마강은 사방이 흔들리자 석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바닥이 푹 꺼졌다.
대경한 두 사람은 꺼지는 바닥을 차며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바닥만 꺼진 것이 아니었다.
쩌저적! 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이런, 제길!”
두 사람은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광! 텅!
위쪽이 완전히 막힌 데다 벽에 걸려 있던 등불마저 꺼져 버렸다.
갑자기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두 사람을 맹인으로 만들었다.
위로 올라가려다 멈칫한 상황, 떨어지는 돌덩이들이 두 사람의 몸을 때렸다.
두 사람은 호신강기를 끌어올려서 몸을 보호하고, 검막을 펼쳐서 돌덩이를 쳐냈다.
하지만 떨어지는 돌덩이 중에는 사람 몸통만 한 것조차 있었다.
검으로 돌덩이를 쳐낸다 해도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크윽!”
“헛!”
작지 않은 충격이 두 사람의 내기를 뒤흔들었다.
게다가 반동으로 인해서 떨어지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
문제는 아래쪽이 얼마나 깊은지, 뭐가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십 장을 떨어져 내린 두 사람은 몸의 중심을 잡고 벽을 향해 장력을 후려쳤다.
쿠궁!
그 반동으로 비스듬히 날아갔다.
다행히 돌덩이들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간혹 부스러기들만이 몸을 감싼 호신강기를 두드릴 뿐.
“장력으로 벽을 확인하고 검으로 찍으시오!”
제갈신걸은 다급히 소리치고는, 자신이 외친 대로 벽을 확인한 후 검으로 찍었다.
검강이 서린 검이 벽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세로로 꽂았는데도 떨어져 내리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동이 부러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떨어지는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었다.
제갈신걸은 이를 악물고 황급히 중심을 잡았다.
그때 두 다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 바닥을 알 수 없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털썩!
‘크윽!’
제갈신걸은 신음을 삼키며 황급히 손을 뻗었다.
순간이었다.
철컥!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신걸은 주위에 널린 돌덩이 사이로 바짝 엎드렸다.
순간, 화살 수백 발이 벽에서 쏘아지며 그의 몸 위로 날아갔다.
쉬쉬쉬쉬쉭!
‘크윽…….’
제갈신걸은 이를 악물었다. 몇 발의 소전(小箭)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그나마 대부분의 화살이 주위에 쌓여 있는 돌덩이에 부딪치며 튕겨져서 몸이 뚫리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그는 그 상태로 잠시 기다렸다. 그러다 더 이상 화살이 날아들지 않자 위에 대고 소리쳐 물었다.
“괜찮소?!”
사마강은 검이 부러지지 않아서 벽에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나는 괜찮소. 제갈 형은 어떠시오?”
“화살 몇 발이 등을 쓰다듬고 지나갔소만, 견딜 만하오. 크크크…….”
한 사람은 바닥에 엎드린 채, 한 사람은 벽에 매달린 채 한참 동안 기다려 봤다.
기관은 더 이상 발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창무옥이 무설강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아홉 번의 공격이 더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도 죽었을 것이고.
한참 동안 기관이 움직이지 않자, 사마강이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고수다. 비록 빛 한 점 없었지만, 안력을 집중하자 시간이 지나면서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몸은 어떻소?”
“다리뼈가 어긋난 것 같은데, 다행히 부러지진 않은 것 않소. 등도 그냥 여자의 손톱에 할퀸 정도고…….”
제갈신걸이 농담조로 말하며 벽에 몸을 기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돌덩이를 막아낼 때의 충격과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서 광인들과 싸울 때 입은 내상이 도진 것이다.
사마강 역시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도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날카롭게 부서진 돌덩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큰 것은 자신의 몸보다도 컸다.
보는 것만으로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후우…….”
사마강은 한숨을 내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오 장 위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충 높이를 짐작해 보았다.
“이십 장은 된다고 봐야겠군요.”
더 되면 더 되었지 못 되지는 않을 깊이였다.
제갈신걸은 짜증내듯이 한마디 내뱉고 신음을 흘렸다.
“제길, 단주가 우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으음…….”
문제는 그것이었다. 놈을 찾아 지하 미로를 헤매었다. 이곳이 어딘지 자신들마저 모르는 판이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릅시다, 제갈 형.”
두 사람은 몸을 추스르며 사람들이 구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한 시진이 지나도록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제갈신걸과 사마강은 능히 오신룡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고수들이다. 그럼에도 어둠 속 함정은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만일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제갈신걸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마강을 바라보았다.
많은 시간을 본 것은 아니지만 묵직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사마 형, 우리 친구하지 않겠소?”
갑작스런 제안인데도 사마강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거 좋지요. 듣자니까 나이도 같은 것 같은데, 우리 친구 합시다.”
“어둠과 함정이 맺어준 친구라……. 하하하, 이거 여기서 죽어도 외롭지 않아 다행이오.”
“죽다니요? 하하하, 내 동생이 구해줄 거요. 걱정 마시오, 제갈 형.”
절대적인 믿음의 표정.
제갈신걸은 그런 사마강이 부러웠다.
자신은 누구에게 그런 믿음을 준 적이 있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몰랐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마강에게 물었다.
“사마 형, 사랑을 해봤소?”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사마강은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고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 동안 그녀를 잊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그가 불쑥 대답했다.
“해봤지요. 아니, 지금 하고 있습니다. 후우, 그러고 보니 지금 상황을 그 사람이 알면 걱정이 태산 같을 텐데…….”
천 리 떨어진 사람이 알 리가 없다. 그런데도 갑자기 멍청해진 사람처럼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제갈신걸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항주까지 천 리 길인데, 알 리가 없지요.”
“천 리가 아니라, 천오백 리요. 남쪽 상산에 있으니까 말이오.”
그럼 더 걱정할 것도 없었다.
제갈신걸은 사마강의 엉뚱한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사마강이 허공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제갈 형, 나는 얼마 전에야 명예보다 더 중요한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오. 한 여인을 만나면서 말이오. 그녀 때문에라도 나는 반드시 여기서 살아나갈 거요. 나가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거요!”
열기가 가득한 목소리.
광룡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다. 또 다른 절실한 마음이 사마강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제갈신걸은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나는 말이오… 아주 나쁜 놈이었소. 어쩌면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오. 아버지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사랑하는 여인을 외면했으니……. 하긴 나는 그녀를 사랑할 자격도 없는 놈이오. 하지만… 만나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소. 죽더라도 그 말만은 해주고 나서 죽고 싶었는데…….”
제갈신걸은 자신의 마음을 다 털어놓자,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사마강은 아무 말 없이 그런 제갈신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고, 제갈신걸의 눈빛이 고요해진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아마 그녀도 제갈 형의 그 마음을 지금쯤은 알고 있을 거요.”
“정말 그럴까요?”
“분명 그럴 거요. 련 매도 어떤 아픔이 있는 것 같던데, 꾹 참고 모든 것을 털어내더구려.”
련 매? 아마 사마강이 사랑한다는 여인인 듯하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여인과 이름자가 같다.
제갈신걸은 자조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마음을 지녔다면 보지 않아도 알겠소. 아마 세상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일 거요.”
사마강이 팔불출처럼 빙그레 웃었다.
“맞소.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오. 특히 마음이 말이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상산에서 주루를 하는데…….”
제갈신걸이 참지 못하고 사마강의 입을 막았다.
“가만, 혹시… 성… 하루?”
“어? 제갈 형이 어떻게 아시오?”
“단주가 입에 달고 살았소. 아마 구룡성의 간부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오.”
“하하하, 환 아우도 참…….”
두 사람은 어둠의 공포를 밀어내기 위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갈신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가늘게 떨렸다.
“왜 그러시오, 제갈 형? 몸이 안 좋소?”
제갈신걸은 이를 악물고는, 잇새로 신음처럼 몇 마디 내뱉었다.
“으음……. 아무래도 내상이 도진 것 같소.”
“이런! 어디 내가 좀 봅시다.”
“아니… 일단 운기를 더 해봐야겠소.”
“그러시구려. 이거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제갈 형만 힘들어진 것 같소.”
제갈신걸은 천천히 고개를 젓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감긴 눈 사이로 물기가 보였지만, 사마강은 어둠으로 인해서 미처 그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때였다.
우르릉…….
위쪽에서 나직한 소음이 들렸다. 마치 구름 속에서 나직한 천둥이 치는 듯했다.
사마강이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아우가 왔나 보오, 제갈 형!”
4
제갈신걸과 사마강이 구출된 것은 두 시진 만이었다.
두 사람은 업힌 채 지하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무환이 어떻게 자신들을 구출했는지 알고 입을 반쯤 벌렸다.
삼 층 건물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가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 움푹 파여 있었다.
지하 통로가 무너지자, 이무환이 무식하게도 건물을 통째로 부수어서 들어낸 것이다.
이무환은 제갈신걸과 사마강을 장원의 빈 방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제갈신걸의 어긋난 발목을 비틀어 맞추었다. 아버지가 하던 대로, 사정없이!
‘끄윽!’
제갈신걸은 비명이 절로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됐군. 하하하, 역시 애처럼 굴지 않고 잘 참는군요. 조금만 있으면 부기가 가라앉을 거요. 그럼 조금 있다 봅시다.”
‘역시 비명을 지르지 않길 잘했군.’
제갈신걸은 이무환의 등을 흘겨보고는 눈을 감았다.
혼자 남은 그는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가슴도 텅 빈 듯했다.
밖으로 나간 이무환은 환비를 만나보았다.
환비는 회칠을 한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이무환을 응시했다.
“죽여라, 광룡. 왜 나를 살려둔 것이냐?”
이무환이 냉랭히 대답했다.
“나도 죽이고 싶어. 그런데 어떤 멍청한 양반이 제발 좀 살려달라고 하도 사정해서 죽이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 죽고 싶으면 네 손으로 직접 죽어.”
환비는 이무환이 말한 ‘멍청한 양반’이 누군지 알고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이무환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환비를 바라보았다.
“행여나 무공을 다시 익힐 생각이면 버려. 천광지령에 당해서 내력이 조금만 쌓여도 혈맥이 터져서 죽을 테니까.”
“이, 이…….”
이무환은 더 이상 환비를 상대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방을 나가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그 멍청한 양반도 무공을 잃었어. 너에게 당한 것 때문에. 그러니 싸우지 말고 잘 지내.”
순간, 환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