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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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46화
246화
우문조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쓸 만하기는 한데, 수하로 부리려면 애 좀 먹을 것 같습니다.”
우문적태의 주름진 입술이 씰룩였다.
“명심해라. 애먹이는 수하는 없는 게 낫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명심하겠습니다.”
우문적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흐음, 어쨌든 시작부터 피해를 너무 많이 봤어.”
“어차피 결정은 이곳에서 보실 생각이었잖습니까?”
“그래도 놈들의 수를 줄였으면 훨씬 수월했을 거다. 병신 같은 놈들. 그딴 버러지들에게 당하다니. 그 동안 너무 풀어놓았어.”
“심려 마십시오, 조부님. 아무리 저들이 날뛰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문적태는 따뜻한 눈빛으로 손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6
이무환이 제갈신걸 등과 강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묵운방 무사들이 모두 후퇴한 후였다.
뜻밖의 상황.
이무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천태도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적들의 배가 갑자기 모두 침몰해 버렸다.”
“그래요?”
이무환은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었던 조약생의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대만족했다.
‘캬아, 정말 멋지게 처리했군.’
이무환이 뭔가 아는 듯하자 천태도장이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
이무환은 간단하게 조약생과 황두영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호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하지만 서쪽에서 벌어진 일을 말하자 이마를 좁혔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도착하지 않았단 말이냐?”
“예, 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늦는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일단 적의 허리를 끊어놓고 이곳으로 달려와서 아직 자세한 상황을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황두영이란 양반이 사람들을 부려서 연락을 취했을 테니, 곧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름한 옷을 입은 장한이 다가왔다.
정천무림맹의 무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장한이 소리쳤다.
“황 단주님께서 이무환이라는 분을 만나라 하셨습니다!”
이무환이 손을 들고 그를 들어오게 했다.
“이리 오쇼!”
장한은 다급히 달려와서 이무환에게 몇 마디를 전했다.
“황 단주님께서, 박석(朴席)에 가시면 찾는 분들을 만나실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요.”
“흠, 안내해 줄 수 있겠소?”
“물론입죠. 따라오십시오.”
박석까지는 이십 리 정도 되었다.
호연청과 황보광을 비롯한 일백 고수는 그곳의 갈대숲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일백고수 중 일곱이 죽고, 스물두 명이 제법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물론 적을 이백여 명이나 죽였으니 손해라 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손가락 다친 것이 남의 손 끊어진 것보다 아픈 법. 모두들 침중한 표정이었다.
이무환은 그들과 갈대밭 한가운데에서 마주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무환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투덜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정천무림맹에선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죠?”
호연청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말하면 광룡이 미친 짓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눈치도 없는 소천득이 불쑥 말했다.
“천강문을 치고 바로 합류한다고 했네만…….”
이무환의 눈썹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뭐요? 천강문을 쳤다고요?”
“그럴 거라고 했네.”
“어쩐지 놈들이 미리 알고 대비하더라 했더니! 이 양반들이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황보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무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말이 심하다고요? 여기서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요? 만일 내가 미리 손을 써서 저들의 움직임을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기나 해요? 아마 반은 죽었을 걸요?”
황보광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호연청은 입을 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고 계속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눈치코치 없는 소천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도와준 것은 고맙네만, 정천무림맹이 천강문을 친 것과 이곳의 싸움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황보광을 비롯한 몇 사람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호연청은 왠지 불안함 마음이 들어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가 있어. 그러니까 저 자식이 저렇게 열을 내지.’
아니나 다를까, 이무환이 침을 튀기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콕 찌르며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천강문을 치면 놈들이 분명 전서구로 연락을 할 테고, 그럼 놈들 중 우리의 계획을 눈치 챌 놈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절대 천강문을 치지 말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 깊은 뜻이!
결국 소천득도 꿀을 한 단지나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이무환은 더욱 기세등등해졌고.
“그랬으면 전력도 그대로 보존되었을 거고요! 그런데, 멍청하게 그곳을 쳐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내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자신 덕분에 당신들이 살았다!
그 말을 계속 강조하는 이무환이다.
그럼에도 호연청을 비롯한 밀천회와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천강문에 대한 일처리를 소홀히 한 것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착잡했다.
그때 이무환이 콧소리를 내며 딱딱 끊어 말했다.
“킁! 좌우간! 앞으로 계획대로 하지 않을 거면 지금 이곳을 떠나쇼!”
이제 와서 나 몰라라 떠나면 무슨 욕을 얻어먹으라고?
‘끄응, 빌어먹을 놈, 기회를 놓치지 않는군.’
호연청은 아니꼽고 얄미웠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꾹 참았다.
“험, 일단 계획이 있으면 말해보게.”
“약속부터 하시죠. 제 계획대로 할 거죠?”
“그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한 일 아닌가? 험!”
이무환의 눈이 황보광을 향했다.
황보광도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계속 그래 왔네.”
소천득은 쳐다보기 전에 미리 말했다.
“찬성.”
7
원화도장과 명종자가 이끄는 정천무림맹의 사백 무사가 박석에 도착했다. 계획보다 한 시진이나 늦게.
그나마도 황두영의 정보원들이 제때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곧장 양주로 들어갈 뻔했다.
그들이 오자 호연청을 비롯한 밀천회의 고수들과 소주에서 온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이 마중했다.
예상보다 적은 숫자다. 게다가 지친 표정에 무사들 중 반은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제길, 시키지 않은 짓을 하더니, 전력만 확 줄었군.’
이무환은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밀천회의 사람들만 노려보았다.
원화도장과 명종자를 비롯한 정천무림맹의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던 호연청은 뒤통수가 가려워서 왈칵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다 보니 원화도장에게 묻는 목소리조차 날이 섰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원화도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강문이 예상보다 강해서 그만 때를 맞추지 못했네. 피해도 예상보다 많았고 말이야.”
“그러게 왜 천강문을 치신 겁니까? 놈들이 천강문의 연락을 받고 저희들의 앞을 막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잖습니까?”
“미처 일이 그렇게 될 줄 몰랐네.”
“더구나 전력에 차질마저 생겼으니……. 하아, 그러게 천강문을 놔두고 그냥 서진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황보광과 소천득이 원화도장을 다그치는 호연청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영락없이 광룡 같군.’
‘오랫동안 함께 지내더니, 물들었나?’
원화도장이 입을 꾹 다문 채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명종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섰다.
“그래도 천강문을 무너뜨렸으니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그 정도면 우리도 최선을 다한 걸세.”
그 말에 이무환이 중얼거렸다.
“총단만 무너뜨리면 저절로 무너질 곳에서 제자들을 몽땅 죽이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나 보군.”
홱, 고개를 돌린 명종자가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어느 문파의 제자인데 그리 경우가 없는 것이더냐?”
이무환도 마주 째려보았다.
“알아서 뭐 하게요?”
“뭐야!”
명종자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전숙에서 온 정천무림맹의 간부들 대부분도 분노가 담긴 눈으로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허어,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정말 건방진 아이가 아닌가?”
호연청과 황보광 등 밀천회의 간부들은 그 말을 듣고도 이무환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았다.
한번 당해보라는 듯. 자신들의 심정을 느껴보라는 듯.
백혜대사와 제갈도가 끼어들 사이도 없이, 명종자가 이무환에게 다가가며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네놈의 사부가 누구더냐?!”
“천광노요.”
명종자의 이마에 주름이 겹겹으로 그어졌다.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가 누군지 몰라도 제자 하나는 잘못 가르쳤군.”
“미친 노인네가 그렇죠, 뭐.”
명종자의 이마에 주름이 몇 개 더 늘었다. 눈빛도 더욱 싸늘해졌다. 그도 제자를 둔 사람이기에 분노가 일었다.
“사부를 미친 노인네라 부르다니, 진정 혼이 나도 싼 놈이로구나!”
성질 급한 명종자가 우수를 들더니 이무환을 향해 흔들었다.
그가 곧바로 손을 쓸 줄은 몰랐던 터라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다섯 개의 수영이 매화처럼 피어나는가 싶더니, 곧장 이무환을 향해 밀려갔다.
이무환은 명종자의 매화장력이 코앞에 닥치자, 매화 문양의 손 그림자 중앙을 향해 냅다 주먹을 뻗었다.
쿵!
둔중한 굉음이 일며 두 사람 사이에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으음…….”
명종자가 악문 이 사이로 신음을 흘리며 세 걸음을 물러섰다. 그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네놈이…….”
“욕은 하지 마쇼. 듣는 놈 기분 나쁘니까.”
“뭐, 뭐라고?”
이무환은 명종자가 발작할 틈도 주지 않고 냉랭한 목소리로 몰아붙였다.
“제가 뭐 잘못 말한 거 있습니까? 저와 몇 사람은 직접 이곳까지 와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짰습니다. ‘무조건’이라는 단서를 달고 계획대로 시행하라고 한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안 해보셨죠? 그냥 광룡이라는 놈의 말을 왜 우리가 들어야 하냐, 하셨죠?”
“그건…….”
명종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화도장은 물론, 그와 함께 온 정천무림맹의 무사들도 노기 띤 표정이 경악과 당황으로 바뀌었다.
이무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명종자를 일 장에 물리친 청년이 광룡이란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것이다.
이무환은 그들의 표정 변화야 어떻든 계속 명종자를 몰아붙였다.
“묵운방의 총단만 무너지면 천강문은 콧방귀만 뀌어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당신들이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수많은 제자들이 그곳에서 죽었단 말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 죽었고요. 이제 뭘 잘못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명종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잇새로 씹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그 이유를 말했으면…….”
하지만 이무환은 그의 말을 싹둑 자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몇 푼 나가지도 않는 자존심이 동료들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떠나십시오.”
웅성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자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설마 이무환이 그렇게까지 말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자 천태도장이 나섰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묵운방을 치기 위해 온 상황이다. 진정하고 대화로 해결하도록 해라.”
“저도 그러고 싶다고요. 하지만 또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없는 게 낫단 말입니다.”
“이제 저 사람들도 네 뜻을 이해했을 게다. 그러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이무환은 할 수 없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후우우……. 알겠습니다. 마음 약한 제가 참죠.”
밀천회와 광룡단 사람들은, 마음이 약하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듣고도 이제는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면역이 된 듯했다.
그 사이 고개 숙인 이무환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 정도면 앞으로 딴소리 못하겠지. 크크크.’
그는 내심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들고 호연청과 황보광을 바라보았다.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힌 채.
호연청은 고집 센 명종자의 굴욕을 즐겁게 지켜보다 말고, 재빨리 원화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맹주, 잠깐 저 좀 보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8
소문이 양주를 뒤흔들었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장강을 건넜다!
―장강에서 여덟 척의 배가 침몰하며 수백 명이 죽었다!
누군가는 삼십여 리 떨어진 갈대숲에 이백여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다는 말도 했다.
곧 강호인들 간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돌며 긴장감이 양주를 짓눌렀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양주성주와 도지휘사는 군병들을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강호 세력의 전쟁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자신들과 양민들에게 큰 피해만 없다면, 누가 이겨도 상관없었다. 비록 십오형제장에게 얻어먹은 것이 많지만, 그들은 염상 조직을 끼고 있는 강호 세력일 뿐이었다.
반면 상대는 황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천무림맹. 공연히 관여해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소주에서 넌지시 들린 소문으로는, 소천장의 일을 무마하는 대가로 엄청난 돈이 오갔다고 했다.
잘하면 거금이 품에 들어올지도 모르거늘, 멍청하게 왜 끼어든단 말인가.
9
박석에서 십오형제장까지는 삼십 리.
일천의 군웅들은 부챗살처럼 펼쳐진 진형을 유지한 채 십오형제장으로 접근했다.
평탄한 지형이어서 암습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십오 리쯤 전진해서 양주성 외곽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수백의 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봐도 육칠백은 될 것 같았다.
“적이다!”
“놈들을 뚫고 곧장 십오형제장까지 가자! 쳐라!”
일천군웅은 나아가던 상황에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순간 언덕 위에 서있던 자들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