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0화
제30화. 추격전
“얼굴은 사십 대 중반쯤에 키가 크고 몸은 돼지처럼 뚱뚱해.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고. 나도 보지는 못했지만 인상착의가 그렇다고 하더라고.”
북궁도가 말한 혈저귀를 찾아 아무리 원평을 둘러보았지만 의심이 가는 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간혹 뚱뚱한 강호인을 발견해 몰래 미행을 했지만 흉수가 아니었다.
밤늦게 객잔으로 들어와 때늦은 저녁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방 하나를 잡아 몸을 뉘었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가 봐야겠어. 내일은 상원이라는 큰 마을을 수색해 보자.”
침상에 누워 있던 비강은 북궁도의 말을 듣고는 행랑에서 지도를 꺼냈다.
“뭐 하는 거냐?”
“그놈이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짐작해 보려고.”
“그게 가능해?”
“어차피 운에 맡길 거라면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봐야지.”
비강과 북궁도는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살폈다.
“상원으로 가려면 배를 타는 게 가장 빨라. 하지만 포구에 사람들이 많으니 남쪽으로 돌아 움직였을 거야.”
“반드시 상원으로 향했다는 보장도 없어.”
“그렇다면 상원을 먼저 살펴보고 이곳 하포로 가 보자.”
북궁도는 비강이 손으로 가리킨 하포라는 마을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하포를 수색하고 그다음에 상원으로 가 보자. 하포가 상원보다 훨씬 더 큰 마을이거든.”
“좋아.”
의견을 모은 두 사람은 다시 침상에 누웠다.
“그런데 지도는 어디서 구했냐?”
“은자만 쥐여 주면 이런 지도야 흔하게 구할 수 있지.”
“흔하게 구할 만한 지도가 아니야. 그런 지도를 가지고 있는 곳은 황실이나 군, 그리고 사패밖에 없어. 아, 또 있지, 하오문. 하지만 하오문에서 그런 지도를 구하려면 엄청난 값을 부를 거야. 최소한 은자 이천 냥은 넘을걸?”
지도가 꽤 고가일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비쌀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대가로 황금으로 된 단검을 내줬어. 나는 지리를 전혀 몰랐으니까.”
비강은 지도를 하오문에서 구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숨겨 봐야 북궁도는 이미 짐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네 병기를 좀 보여 줄 수 있냐?”
북궁도의 말에 비강은 선선히 옆에 놓여 있는 검과 철봉을 내주었다.
“가히 신병이라 불릴 만해.”
찬찬히 검과 봉을 살피던 북궁도는 옆에 놓여 있는 자신의 도를 건넸다.
비강도 침상에 누운 채로 그의 도를 살펴보았다.
방 안을 밝힌 촛불에 비친 붉은 도신은 유려함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을 섞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사부님의 선물이야. 용혈(龍血)이라고 지으려다가 홍련(紅蓮)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붉은 연꽃이란 이름의 도를 살피던 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를 되돌려 주었다.
“백파.”
“좋은 이름이다.”
“홍련이라는 이름도 좋아.”
* * *
점심때가 되기 전에 하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거닐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마을을 다 둘러보기 힘들겠어.”
“마을이 이 정도로 크다면 하오문 지부가 있을 거다. 그곳으로 가 알아보는 게 빨라.”
북궁도도 마땅한 방법이 없는지 말없이 비강의 말을 따랐다.
“문제는 하오문이 어디에 처박혀 있느냐는 것이겠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천천히 찾아도 되지만 그놈이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니 우린 지금 시간이 촉박해.”
“그거야 뭐, 흑도 패거리들을 조지면 되겠지.”
길이 정해지자 북궁도의 움직임은 빨랐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마을의 중심부로 들어가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성질 더러워 보이는 놈들만 찾으면 돼.”
마침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내 세 명이 객잔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북궁도는 급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말 좀 묻지. 두목은 어디에 있나?”
술에 취한 가운데에도 흑도 무리는 대번에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두목이라니요? 우리는 농사나 짓는 농사꾼일 뿐입니다.”
“농사꾼 좋아하네. 만약 품속을 뒤져 단검이라도 나온다면 너희들은 바로 외팔이가 될 거야. 각오는 돼 있겠지?”
북궁도는 능숙하게 흑도 무리를 을러댔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흑도 무리가 애원을 하며 매달렸다.
“협사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장터를 돌아다니며 자릿세로 푼돈이나 걷어 연명하는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니 두목에게 안내하라니까.”
애원이 통하지 않자 흑도 무리는 풀이 죽었는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앞장서 걸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시늉에 불과했다.
“튀어!”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들어서자 세 명의 흑도 무리는 일시에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저럴지 알았지.”
북궁도는 거리 맞은편 건물 위로 시선을 들었다.
어느새 비강은 지붕 위에 올라가 도망치고 있는 흑도 무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 마음이 잘 맞는단 말이야.’
오랜 시간을 같이한 조원들보다 오히려 비강이 장단을 더 잘 맞춰 주고 있었다.
지붕 위에 서 있던 비강이 동쪽을 가리키자 북궁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동쪽으로 계속 지붕을 날아 건너뛴 비강은 쭈그리고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흑도 무리가 으슥한 골목 안에 모여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개놈의 새끼들.”
“다음에 만나면 온몸에 칼침을 놔 주자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흑도 무리는 길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터벅터벅…….
흑도 무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북궁도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냐?”
쾅!
고개를 끄덕인 비강은 지붕 위에서 내려서더니 바로 발로 목문을 걷어차 부숴 버렸다.
방 안쪽에서 노름을 즐기고 있던 흑도인 세 명이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금 도망쳐 들어왔던 흑도들도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가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들이 감히……!”
“나, 북궁도야.”
쨍그랑!
뒤따라 들어선 북궁도의 말에 칼을 빼 들던 흑도인들은 바로 바닥에 칼을 내던졌다.
하하, 하하하…….
“남협(南俠)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하셨는지……?”
흑도 무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짓다가 엉거주춤 바닥에 엎드렸다.
“하오문 지부는 어디에 있나?”
“저…… 저희들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흑도 무리가 딱 잡아떼며 대답을 하지 않자 북궁도의 옆에 서 있던 비강이 발을 들었다.
퍽! 쿠당탕!
꺼억! 끄으윽…… 끄윽…….
안면을 강타당한 흑도인 한 명이 뒤로 날아가 처박히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하오문은 어디에 있나?”
얼음장보다 차가운 비강의 목소리에 흑도 무리가 겁을 집어먹었는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군.”
스릉―
북궁도는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빼 들었다.
“정말…… 정말 모릅니다. 아니, 알아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대답을 하면 우리는 바로 죽습니다.”
“그래? 그럼 혈저귀가 어디에 있는지 너희들이 발로 뛰며 찾아내라. 딱 두 시진 주마.”
* * *
두 사람은 흑도 무리의 본거지에 앉아 소식이 날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기…… 소문을 들으니 혈저귀라는 흉수가 대단한 고수라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이 혹시라도 그자에게…… 목숨을 잃을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흑도의 두목은 볼모로 잡혀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러게 왜 없는 사람들 등을 쳐 먹어.”
“우…… 리도 건실하게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써 주는 데가 있어야지요…….”
“누가 너희 같은 놈들을 써먹나? 조금만 힘들어도 행패를 부릴 놈들을. 차라리 낭인을 해.”
“그, 그럴까요?”
흑도의 두목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왜? 그건 또 싫지? 강호 무림에서 죽기는 겁나니까.”
“겁난다기보다도 워낙 무공이 삼류라…….”
“겁나는 거 맞네. 그럼 평생 이런 짓 하다가 나중에 늙어 힘없어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당하며 살아. 가끔 두들겨 맞기도 하고.”
북궁도는 마른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훈계 아닌 훈계를 했다.
두 시진 가까이 시간이 지나고 흑도 무리들은 하나둘씩 안으로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없습니다.”
“애들을 풀어 아무리 살펴도 혈저귀가 이곳에 들어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답니다.”
“젠장.”
결국 허탕을 친 두 사람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행패가 심하다면 또 찾아올 거다. 그땐 말로 끝나지 않을 거야.”
비강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북궁도는 탁자 위에 놓인 육포를 한 움큼 품속에 쑤셔 넣고는 뒤를 쫓아 나갔다.
“이제 상원으로 가야 하나?”
“그래야겠지.”
골목을 나온 두 사람은 상원이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오던 비강은 문득 사람들과 섞여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사십 대 중반에 돼지처럼 뚱뚱하면서도 심후한 내공을 가진 사내.
북궁도도 그 사내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갔다.
―비강아, 내게 맡겨 줘.
―그렇게 해. 나는 퇴로를 막고 있을게.
비강은 선선히 북궁도의 요구를 승낙했다.
사내도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북궁도를 발견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 장의 거리를 격하고 북궁도가 사내의 걸음을 멈췄다.
“혈저귀?”
“남들이 그러더군.”
“북쪽의 손님인가?”
“맞아.”
“나와 함께 가 줘야겠어.”
“실력이 될까?”
사내가 검파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북궁도도 허리에 차고 있는 직배도를 뽑아 들었다.
스릉!
사내는 허리에서 뽑혀 나온 것은 폭이 다섯 치가 넘어가는 아주 크고 무겁게 생긴 검이었다.
푹!
스아아…….
커다란 중검이 땅을 파고 들어가자마자 강대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허억!
꺄아악!
검에서 퍼져 나간 살기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붐비던 거리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짧은 순간에 크고 넓은 공간으로 변해 갔다.
“이제 싸울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군. 사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짜증이 치솟던 중이었어.”
사내도 북궁도가 보통이 아님을 눈치채고 있었는지 공격에 신중함을 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궁도의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
팍!
땅에 박혀 있던 검날이 흙과 함께 튀어 오르며 눈부신 검광을 흩뿌렸다.
깡! 까강! 깡깡……!
사내의 기습적인 선공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거리 한가운데서 어지럽게 어우러졌다.
은백색의 중검은 휘황한 빛을 뿌리고, 홍련은 자신의 이름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공중에 붉은 꽃을 만들어 냈다.
깡!
강한 충돌음과 함께 사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북궁도는 바로 사내를 따라붙으며 어깨를 갈라 갔다.
퉁!
마치 팽팽한 공이 튀어 오르듯 사내의 뚱뚱한 몸이 공중을 날아 연거푸 몸을 뒤집었다.
겉모습은 비대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움직임은 빛살과 같은 빠르기를 보이고 있었다.
까강! 깡……!
북궁도도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십여 줄기의 검광을 뿌려 댔다.
전신 요혈을 노리며 날아드는 십여 줄기의 기운과 사내의 중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기운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까가가가강! 쿵!
중검으로 북궁도의 홍련과 격렬하게 부딪쳤던 사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추락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사내는 일도양단으로 찍어 오는 북궁도의 홍련을 막아 내려다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뒤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의 눈앞으로 파도가 넘실거리듯 철봉이 날아들었다.
헙! 깡!
헛바람을 집어삼킨 사내는 급히 검을 쳐올려 철봉을 막았다.
뒤로 밀려난 사내는 눈앞에 서 있는 비강을 노려보다가 급히 좌측으로 튀어 나갔다.
“가까이 오지 마.”
멀리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아낙네의 목 앞에 사내의 검이 놓였다.
허어.
비강과 북궁도는 이 황망한 상황이 몹시 곤혹스러웠다.
설마 저만한 고수가 양민을 볼모로 잡고 도망치려 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낙네의 허리를 왼팔로 끌어안은 사내는 사람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골목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서걱.
마치 경고라도 하듯 골목에서 도망을 치는 양민의 목을 그대로 베어 버린 사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생포는 포기해야겠어.”
북궁도의 눈에 살기가 어리고 비강의 눈빛도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