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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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8화
제28화. 남쪽으로
기녀 둘이 다소곳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저쪽.”
북궁도가 가리킨 기녀는 바로 금을 안고 있는 장경주였다.
“어…… 안 돼.”
당황한 비강은 손까지 저었다.
“왜 안 돼? 너를 생각해 못생긴 여자를 골랐는데.”
북궁도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장경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에 북궁도는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밥상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속닥거렸다.
“너, 저 기녀와 뭔가 있구나? 알았어. 내가 양보할게. 대신 나는 둘을 붙여 줘.”
하아…….
도무지 감당 못 할 인간이었다.
북궁도와 친분을 맺은 것이 이렇게 후회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북궁도의 양옆으로 기녀 둘이 붙어 앉았다.
하하하…….
“이제 식사를 듭시다.”
자리가 마련이 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북궁도는 기녀들의 밥 위에 이것저것 요리를 얹어 주었다.
“이것이 맛있소. 어서 들어 보시오. 아이고, 이것도 맛있네. 확실히 북쪽에는 먹을 게 많아.”
장경주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비강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남쪽에는 물고기와 쌀이 많잖아.”
“말도 마라. 물고기와 쌀이 많으면 뭐 하냐? 풍토병 심하지, 전염병 창궐하지, 툭하면 홍수가 나 강까지 넘치는데, 내가 아주 환장하겠어.”
“나는 너를 보고 있으면 환장할 것 같아.”
응?
크하하하하하…….
바닥을 구르며 웃어 대던 북궁도는 비강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너도 그렇게 딱딱한 놈만은 아니었어. 내가 벌써부터 알아봤지. 확실히 나는 대단해. 우리 사부님도 처음에는 엄청 근엄하시더니 지금은 나만 보면 소리를 질러. 으…… 음, 역시 나는 대단해.”
기녀들도 북궁도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어 댔다.
기녀들뿐 아니라 비강도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북궁도는 비록 진상에 짜증을 일으키는 놈이기는 했지만 속이 깊은 놈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밝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술잔이 오가자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자리에서 일어선 북궁도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너도 따라 춰 봐. 얼마나 기분이 후련해지는지 몰라. 아름다운 미녀분들께서도 어서 일어나 춤을 추시오.”
북궁도의 양옆에 붙어 있는 기녀들이 일어나 춤을 추었지만 비강은 그 자리에 앉아 술잔만 기울였다.
“어서 일어나 보라니까.”
억지로 비강의 몸을 일으킨 북궁도는 장경주까지 일어서게 하고는 같이 춤을 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지로 추는 춤이라 잘 추어질 리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차라리 둘이 꼭 끌어안고서 몸을 흔들어.”
“됐어. 나는 그만할래.”
“벗이 멀리서 너를 찾아 날아왔는데 정말 이럴 거야? 기루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약속했잖아.”
약속.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북궁도는 장경주를 억지로 비강의 품에 안겼다.
또한 자신은 양팔로 기녀들을 끌어안았다.
“저는 괜찮아요, 연 소협.”
장경주는 비강의 귀에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한바탕 춤판이 끝나자 북궁도는 자리에 앉아 술을 비워 댔다.
마주 술잔을 비우며 장단을 맞추던 비강은 문득 홍살막의 부련주가 떠올랐다.
“혹시 홍살막의 두광생이라고 알고 있냐?”
“에이, 술맛 떨어지게 왜 그놈 얘기를 꺼내고 그래?”
“며칠 전에 만났어.”
“어?”
취기가 잔뜩 올라 흐릿했던 북궁도의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두광생은 사련의 련주였어. 원래 사파가 하는 짓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놈은 특히 더 지독했지. 은자를 모으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했어.”
북궁도가 속이 쓰리다는 듯 다시 술잔을 비웠다.
“인신매매, 염왕채, 해적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해. 죄 없는 사람들도 숱하게 죽였고. 때문에 예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에 쫓겨 복건성으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는 복건성까지 쫓아 들어가 놈을 죽이진 않았어.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그놈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에 뇌물을 바쳤다고 하더군. 하여간에 조금 덜 지독하게 지내다가 사패로 인한 전쟁이 터졌지. 그 기회를 노려 반짝하고 세력을 일으켰다가 오히려 전쟁이 끝나고 개박살이 났지.”
기녀들의 잔에 술을 채우고 비강의 잔에도 술을 채운 북궁도가 넌지시 물었다.
“너를 만났다면 죽었겠구나?”
“그래. 그런데 놈이 그러더라고, 자신은 련주가 아니라 부련주라고.”
“이야! 이래서 기루를 통해 강호의 모든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거야. 여기 있는 미녀들이 소문을 퍼뜨리면 강호에 쫘 하고 퍼지는 거지.”
“어머, 우리는 안 그래요, 서방님.”
기녀들이 아양을 떨며 북궁도의 말을 부정했다.
“괜찮소. 어차피 세상에 퍼져 나갈 이야기라오. 거기다가 이미 그대들은 이 녀석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않소? 중경 무양산에서 벌어진 일도 벌써 들어 알고 있었을 테고.”
얼굴에 미소가 떠나가지 않던 기녀들조차도 선뜻 북궁도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놈이 련주가 아니라 부련주라고 했다면 련주를 다른 자에게 넘긴 것이겠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자는 그놈의 손자야. 얼핏 듣기로 무공에 대한 재능은 대단히 뛰어났는데 마음이 유약하고 놀기를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지금쯤이면 삼십 대 초반이나 중반이 되었을 거야.”
“그자의 부모는?”
“어미는 그놈을 낳다가 죽었고 아비는 까불다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손에 죽었어.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큰 거지. 아무리 사파의 우두머리라 하지만 제 손자는 끔찍이 아꼈다고 하더라고.”
“그자의 이름이 뭐지?”
“두…… 뭐라 했는데. 아, 맞다. 두궁천.”
* * *
방에 마주 앉은 비강과 장경주는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기녀들과 장경주가 있음에도 두광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기루가 의심스러워서였다.
만약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간다면 이 기루는 하오문과 관련이 없거나 적을 것이나 소문이 늦게 퍼져 나간다면 이 기루 또한 하오문이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돌아가 보시오.”
“연 소협이 반드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해 보시오.”
“혹시 얼굴에 검상이 가득한 노인과 같이 다니는 젊은 여인을 만나신 적이 있나요?”
비강은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조손을 떠올렸다.
“있소.”
“그 둘이 하오문을 찾아와 연 소협에 대해 묻고 갔어요.”
“무엇을 물었소?”
“연 소협의 가문과 본명을 물었어요. 하지만 우리도 알지 못해 답을 하지 못했어요.”
확실히 수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적은 또 아닌 것 같았다.
“혹시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소?”
“동천에서 협행을 하며 기인이사와 여제자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얼굴에 검상이 가득한 노인과 젊은 여인이라고 했으니 그 둘이 분명해요.”
‘협행을 하는 기인이사와 손녀라…….’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지나가듯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나와 술을 마신 벗에 대해 알고 있었소?”
“연 소협과 친하다면 남선의 북궁 소협이겠지요.”
장경주는 대답하고 나자마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연 소협과 북궁 소협이 친분을 맺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문데.’
장경주는 슬며시 비강의 눈치를 살폈다.
짐작대로 그의 입가에는 한 줄기 미소가 엿보였다.
‘너무 예민한 사람이야.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어.’
비록 정체가 탄로 났을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비강이 입 밖으로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비강은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장경주의 짐작대로 비강은 단번에 간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양반도 확실히 대단한 양반이야.’
* * *
“그만 가자.”
기루에서 아침 밥상까지 받은 두 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문을 나섰다.
“기녀 두 명과 밤을 보냈더니 다리가 다 후들거려.”
“잘났다.”
“남쪽으로 가면 내가 기루에서 여러 번 살게. 아니, 매일 밤 기루에서 저녁을 먹자. 남쪽 기루에는 머리카락이 금발인 기녀들도 있대. 아직까지 그런 기녀들이 있는 기루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별다른 거 없어.”
“어? 넌 또 언제 가 봤어? 이제 봤더니 나보다 더한 색마 놈일세. 도대체 언제 어디로 몇 번이나 가 본 거야?”
“새외에서 장군들이랑 몇 번.”
“좋았겠다.”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비강을 쳐다보던 북궁도는 머리를 흔들더니 얼른 다른 말을 꺼냈다.
“새외에서 지냈던 이야기나 해 봐.”
“그냥 매일이 똑같았어. 자고 일어나면 전쟁이었으니까. 전쟁터를 떠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적들이 나를 라바나라 부르고 있더라.”
라바나.
남선의 순찰단주도 비강이 새외의 라바나라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비밀 아니었냐?”
“너만 알고 있어.”
크하하하하…….
북궁도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그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얼마 동안 이 진상이랑 지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하구나.’
순찰단으로 돌아온 비강은 약철빙에게 북궁도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보고하고 길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조심해서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작은 행랑 하나를 등에 메고 나온 비강은 그녀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약철빙은 비강이 문을 닫고 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멍하니 그 문만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한지 모르겠어.’
그녀는 책장 위에 놓인 누런 잎을 말아 불을 붙였다.
* * *
북림의 정문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북궁도가 손을 흔들었다.
“빨리 와.”
“걸어가는 거냐?”
“달려가는 거지. 그나저나 부림주 전각에 들렸더니 거기 호위들이 어젯밤에 어디 나갔었냐고 묻더라. 그래서 비강이 너와 함께 끝내주는 기루에서 밤을 보내고 왔다고 말해 줬지.”
출발하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비강과 북궁도는 양옆에 나란히 서서 경공을 시전했다.
양쪽 귀를 통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보이던 풍광이 빠르게 다가오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전에 왜 흑견조의 조장을 조심하라 그랬냐?”
“아, 그거? 전에 우연히 흑견조와 경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조장이 저잣거리에서 남들 눈을 피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 그래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한참을 숨어 지켜봤지.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 알아봤더니 북림 흑견조의 조원들이 다른 삼패의 조원들보다 유독 많이 죽어 나가더라고.”
“그래서 조장의 정체가 뭐라 생각하는데?”
“아직 몰라. 같은 조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자신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너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귀띔을 해 준 거야.”
북궁도는 경공으로 달리며 고개를 돌려 비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조장의 정체를 알아냈으니까 그런 말을 꺼낸 거 아냐. 어서 말해 봐.”
이놈은 감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장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하오문의 간자라고 하지만 악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해 전음의 구결을 알려 주는 호의까지 보였었다.
“감찰대. 북림에 숨어든 간자를 찾아내는 감찰대 소속이었어.”
“정말이야? 뭔가 찜찜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믿기 싫으면 말고.”
“에이, 조금 더 큰 게 나올 줄 알았는데.”
경공으로 달리던 두 사람은 멀리 호화로운 마차가 보이기 시작하자 속도를 늦췄다.
말을 탄 호위들을 삼십여 명이나 대동하고 있는 마차는 금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작은 창문을 가리는 휘장은 백색 비단이었다.
두 사람은 관도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마차와 호위들을 피해 길옆으로 비켜섰다.
마차가 두 사람을 지나쳐 가는 순간 휘장 사이로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사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은 피부가 몹시 고왔다.
지나쳐 가는 비강의 눈과 여인이 눈이 잠시 마주쳤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여인은 멈칫 놀라는 눈치였다.
‘뭐지? 저 여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