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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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7화
제27화. 신창 풍천양
“순찰단주와 연비강 소협이 도착했습니다.”
“들라 이르라.”
두 사람이 검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십여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긴 탁자와 많은 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긴 탁자의 끝에는 오십 대 초반의 풍채 좋은 사내가 앉아 있었고 앞쪽 양옆으로는 부림주와 삼십 대 초반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순찰단주 약철빙이 림주님을 뵙습니다.”
약철빙이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자 비강은 말없이 두 손을 모아 고개만 숙였다.
껄껄껄…….
“너는 갈수록 씩씩해지는구나.”
묵직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방 안을 울렸다.
“감사합니다, 림주님.”
“이번에 고생이 많았다지?”
“연 호위 덕분에 무사히 일을 끝마쳤습니다.”
“그래, 네가 연비강이로구나.”
림주 풍천양은 깊은 눈으로 비강을 주시했다.
비강도 고개를 들어 풍천양과 눈을 마주 보았다.
이자가 바로 무신으로 불리는 사천존 중에 한 명이었다.
‘저자를 꺾으면 천하제일인이 되는 건가.’
온몸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알리며 솜털을 곤두세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수없이 밀려드는 적을 앞에 두고서도 이렇게 답답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싸워 보고 싶었다.
설사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저자와 부딪쳐 보고 싶었다.
흔들림 없는 비강의 눈을 주시하던 풍천양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패기가 넘치는 놈이로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풍천양은 부림주 약추완에게 시선을 돌렸다.
“추산이가 패할 만했소이다.”
“송구합니다.”
껄껄껄…….
기분 좋게 웃어 젖힌 풍천양은 조금은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듣자 하니 저 녀석을 순찰단의 부관으로 쓰고 싶다고?”
“예, 제게 반드시 필요한 인재입니다.”
“순찰단주가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 아닙니다.”
약철빙의 대답에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은 풍천양은 삼십 대 초반의 사내에게 물었다.
“무력대에서도 저 녀석을 차출해 달라고 야단이라지?”
“예, 이번 무양산의 일이 알려지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벌써 일부는 소문을 들었는지 계속 저를 찾아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내 생각에는 순찰단이나 무력대보다 북은각(北隱閣)이 더 적합할 것 같은데.”
“림주님께서 그러하시다면 북은각으로 보내는 것이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풍천양은 다시 비강을 주시하며 물었다.
“어떠냐? 북은각으로 한번 가 보겠느냐?”
‘북은각은 또 뭐지?’
북림에 자리 잡은 지 꽤 여러 날이었지만 북은각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릅니다.”
크하하하하하…….
풍천양은 정말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긴 북림 안에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자는 드물지. 북은각은 북림 최고 무력 집단이다.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버텨 내고도 남을 것 같은데, 어떠냐. 가 보겠느냐?”
“싫습니다.”
풍천양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지워졌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망발을 하는 것이냐!”
부림주 약추완이 노성을 발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서 엎드려 잘못을 빌지 못할까!”
“내 무릎을 꿇릴 자신이 있으면 한번 해 보시오.”
“뭐…… 뭐라?”
약추완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사패가 강호를 제패하고 난 후 이런 일은 없었다.
약추완은 당황한 나머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처음 연무장 한쪽에 앉아 있는 비강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손자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놈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그놈의 얼굴이 떠올라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넘어와. 제발, 넘어와.’
비강은 지금 약추완이 아닌 신창 풍천양을 향해 도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러나 풍천양의 반응은 약추완과는 완전히 달랐다.
눈물까지 보이며 웃어 젖히던 그는 곧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락하마. 대신 그 당돌함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느니라. 남쪽에 다녀오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비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풍천양이 아닌 옆에 앉아 있는 사내가 대신했다.
“남선에서 사신이 왔기 때문이오, 연 소협. 자세한 내용은 그 사신에게 듣도록 하시오. 그 사신은 콕 집어 연 소협을 지목했소.”
강호 무림에 자신을 아는 자가 누가 있다고 지목씩이나 했단 말인가.
비강은 얼른 사신의 정체를 물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검은 반지를 볼 수 있겠느냐?”
비강이 손가락에서 두터운 반지를 빼내자 약철빙은 그 반지를 받아 풍천양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어디서 이 반지를 얻었느냐?”
“새외의 전쟁터입니다. 전리품이었습니다.”
풍천양은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악마의 얼굴이 새겨진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가져가.”
약철빙은 풍천양이 내민 반지를 받아 비강에게 건넸다.
“그만 나가 봐.”
풍천양의 입에서 축객령이 내려지자 약철빙은 얼른 예를 표했다.
“순찰단주 약철빙이 물러갑니다.”
약철빙과 비강은 예를 표하고 방을 나갔다.
두 사람이 방을 나간 후 풍천양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총관, 순찰단의 부관 자리를 마련해 주게. 호위들도 원하는 자들로 붙여 주고. 그리고 부단주에게 명해 은운곡에 사례금을 가져다주라 하게. 낭인들도 더 데려와야 할 게 아닌가.”
“사례금은 얼마나 생각하고 계신지요?”
“은자 오천 냥 정도가 적당하겠군.”
약추완과 사내는 깜짝 놀랐다.
은자 오천 냥은 지금까지 은운곡에 보낸 사례금 중 가장 높은 액수였다.
보통 많아 봐야 은자 일천 냥이고 대부분은 그것도 안 되었다.
그만큼 림주가 연비강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 * *
약철빙과 함께 부림주가 기거하고 있는 전각으로 내려온 비강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했다.
“여어! 백리혈.”
북궁도가 비강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비강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백리혈이란 별호는 또 언제 주워들었단 말인가.
“너였냐? 남선의 사신이라는 자가?”
“그럼 나 말고 누가 이곳까지 오겠냐? 아이고, 반갑습니다, 순찰단주님. 갈수록 순찰단주님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약철빙에게 인사를 한 북궁도는 얼른 비강의 팔짱을 끼었다.
“가자.”
“어디로?”
“술 마시러.”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멀거니 구경하던 약철빙이 한마디 했다.
“북궁 소협과 연 부관의 사이가 아주 좋군요. 언제 그렇게 친해졌나요?”
“저번에 석아산의 일로 마주쳤었습니다. 이 녀석의 성격이 얼마나 까칠한지 사귀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군요. 연 부관은 자리부터 정리하고 나가 보도록 해.”
“아직 부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곧 발령이 떨어질 거야. 림주님이 허락했으니.”
비강은 약철빙과 함께 순찰단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을 북궁도가 뒤에서 졸졸 따라왔다.
집무실에 도착한 약철빙은 먼저 비강이 앉을 자리부터 정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서 일을 보도록 해.”
“앞으로 방구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냐? 나는 죽어도 답답해서 그 짓은 못 해.”
단주의 집무실까지 따라온 북궁도가 시끄럽게 떠벌렸다.
“여기는 외인이 출입을 하면 안 되는 곳이에요, 북궁 소협. 그러니 나가 주세요.”
“아, 정말 너무하시네. 빨리 나와라.”
북궁도가 밖으로 나가고 나자 약철빙은 방문 하나를 열어 보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기거하도록 해. 짐도 이곳에 옮겨 놓고.”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비강은 북궁도를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전에 사용하던 방으로 들어간 그는 자신의 침상에 누워 있는 북궁도를 발견했다.
“여기가 네 침상이지? 냄새부터 좋더라.”
‘아…… 저 진상.’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선반에 놓인 물건들과 무복을 모두 챙긴 비강은 다시 집무실로 들어갔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약철빙은 두광생의 애병을 들어 보였다.
“이것도 가져가야지.”
“그건 단주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내가 가져도 돼?”
“네.”
약철빙은 대도를 만지작거리다가 한쪽에 세워 놓았다.
북림 안에는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대장간도 자리하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북은각에 대해 물으려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북은각은 황곡에서 사천존과 함께 강호로 나왔던 고수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각이라기보다는 마을이라 보는 게 옳아. 남선과 동천, 서패에도 각각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하지만 인원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사천존밖에 없어. 우리 순찰단과는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은 출입 금지 구역이야.”
북림의 진정한 고수들을 따로 모아 놓은 곳이 바로 북은각이었다.
그들은 오직 림주의 명만 받들었고 자신들끼리 모여 살았다.
간혹 대단한 고수가 북은각에 들기도 하지만 그곳을 나오는 자들은 없었다.
“예전에 북산대마가 출현해 혈사를 일으켰을 때 북은각의 고수들이 나온 적이 있어. 둘이 나와 모두 죽기는 했지만, 그들 때문에 북산대마가 다시 모습을 감췄다고 짐작하고 있었어. 북림이나 강호에서는 금지로 통하고 북은각이라는 말조차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왜 북은각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나조차 모르는 상황이고.”
북은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비강은 밖으로 나왔다.
비강을 기다리다가 심심했는지 북궁도가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자.”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잖아.”
* * *
“기루에 가자.”
“초저녁부터 무슨 기루야? 요리점에 들어가 식사부터 하지.”
“안 돼. 나는 기루가 아니면 밥을 안 먹을 거야.”
북궁도는 북림을 나설 때부터 기루로 가자고 졸라 대는 중이었다.
“술이 목적이냐, 아니면 기녀가 목적이냐?”
“둘 다. 얼른 가자.”
하…….
한숨을 길게 내쉰 비강은 전에 갔었던 백월루로 향했다.
그가 아는 기루라고는 백월루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멀리서 찾아왔으니까 기루에 들어가면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야 해. 알았지?”
“싫다.”
“그럼 시늉이라도 해 줘. 제발 부탁이야.”
팔까지 잡고 늘어지는 북궁도가 짜증이 난 비강은 결국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연 소협께서 오셨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백월루 입구에 도착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기루의 총관이 반색을 하며 두 사람을 맞이해 안으로 들였다.
“너, 단골이구나? 저 여자가 너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것을 보면.”
“한 번 왔었다, 한 번.”
북궁도와 함께 있다 보면 이상하게 말이 많아졌다.
“요리와 술부터 내오시오.”
“안 돼. 나는 기녀들과 함께 식사할 거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억눌러 참은 비강은 고개를 끄덕여 기녀들도 함께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너 혼자 온 거냐?”
“급한 일은 혼자 다니는 게 빠르고 편해.”
“그럼, 이제 네가 사신으로 온 이유를 말해 봐.”
장난기가 가득했던 북궁도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안색이 변하자 북궁도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은은한 기세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 달 전에 대단한 마인 하나를 쫓아 북림의 고수 하나가 남쪽으로 넘어왔었어.”
“그래서?”
“……그런데 그 고수는 마인을 제거하고도 북림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내가 남선을 나서기 며칠 전에 우리 고수들 십여 명이 의문의 고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
“그렇다면 남선에서는 그 범인을 북림의 고수라 여기고 있는 거냐?”
“거의 확실해.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한 선주님이 북림에 청해 증인을 불러오도록 한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그럼 언제 출발하지?”
“내일 아침에.”
북궁도의 이야기가 끝을 맺을 무렵 요리가 가득한 술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던 북궁도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기녀는 언제 와?”
어휴!
“여자를 밝혀도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리, 젊을 때 마음껏 즐겨야지.”
“잠시만 요리를 즐기시면서 기다리십시오. 아이들이 준비를 하느라 조금 늦습니다.”
요리를 내온 사내의 말에 북궁도가 희죽 웃으며 대답했다.
“대충 하고 얼른 나오라 전하시오. 어차피 나중에는 다 벗어야 할 텐데, 뭘.”
비강은 기가 막힌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다.
“집에서는 네가 이렇게 다니는 걸 알기나 하냐?”
“집에서는 이미 포기했어. 사부님이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시지만.”
“사부님이 누구신데?”
“도신.”
“뭐?”
“도신 도운패가 내 사부님이시라고.”
잠시 북궁도를 주시하던 비강의 입이 열렸다.
“그거 비밀 아니야? 막 말해도 되는 거야?”
“너만 알고 있어.”
북궁도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비강은 고개를 흔들며 젓가락을 잡았다.
“안 돼. 기녀들이 오면 같이 먹을 거란 말이야.”
“네 마음대로 해라.”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은 비강은 기녀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단장을 한 기녀 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비강은 방으로 들어오는 기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몹시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