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6화
제26화. 돌아가는 길(2)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두광생은 숲을 구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끄윽…….
하지만 오른쪽 다리가 박살이 났기에 대도로 땅을 짚어 몸을 지탱해야 했다.
대도를 튕겨 내며 눈앞에 서 있는 비강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던 두광생은 몸이 솟구치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커억!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가슴에서도 피가 튀고 있었다.
철봉이 슬쩍 움직였다가 다시 내려졌다.
단번에 두광생의 목숨을 끊어 주려던 비강은 머리맡에 서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굳이 내게 죽으려는 이유가 뭐냐?”
쿨럭! 컥……!
“네…… 놈이 강하니까. 크, 크크크…… 나의 죽음으로…… 사련은 홍살막…… 이라는 이름을 벗어 버리게 될 거다. 사련의 부흥이…….”
두광생은 대답조차 끝내지 못한 채 고개를 늘어뜨렸다.
어느새 물 밖으로 나와 옷까지 걸친 약철빙은 비강의 뒤로 다가왔다.
“두광생은 사련의 부련주가 아니라 련주였던 자야. 무양산에 이자도 있었던 모양이지?”
‘부련주가 아니라 련주라…….’
그렇다면 다른 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었다는 소리였다.
“수하들과 함께 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살아남은 이들을 이끌고 퇴각했습니다.”
“그랬군.”
한쪽 무릎을 꿇고 두광생의 시신을 이리저리 살피던 비강은 헐렁한 왼팔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이 잘린 부분을 보건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홍살막의 막주가 외팔이라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었으니까. 만약 이자의 팔이 온전했다면 연 호위도 상대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거야. 그 정도로 무공이 고강한 자였어.”
비강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은 무공을 전부 다 내보이지 않았다.
염화영이 죽어 분노가 들끓는 상황에서도 북산대마의 무공에 걸맞은 무공만 드러냈다.
‘도대체 아저씨의 정체가 뭐지?’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은 능히 짐작하고 있었으나 강호 무림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비강은 의문을 접고 주변에서 돌을 구해 두광생의 시신 주변으로 쌓았다.
잠시 후 돌무덤이 완성되고 나니 남은 것은 그가 사용하던 대도 한 자루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들이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그렇게 해.”
두광생의 대도를 챙긴 비강은 피워 놓은 모깃불을 꺼 버리고 말 위에 올랐다.
따그닥…… 따그닥…….
두 필의 말이 공터를 벗어난 후 그 자리에는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참이 지난 후에 상인으로 보이는 자 대여섯이 공터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깃불에 아직 온기기 식지 않은 것을 보니 조금 전까지 이곳에 누군가 있었어. 주변을 살펴봐.”
모깃불을 살피던 상인의 지시에 다른 상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기 돌무덤이 있습니다.”
“얼른 파헤쳐.”
돌을 걷어 낸 상인들은 바닥에 누워 있는 두광생의 시신을 발견했다.
아아아…….
“부련주님…….”
상인들은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빨리…… 빨리 관을 구해 와라. 오늘 밤 안으로 부련주님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운반해야 한다.”
* * *
목장에 도착해 맡겨 둔 말을 되찾고, 타고 온 말을 팔아넘긴 두 사람은 북림을 향해 말을 몰았다.
한나절을 달려 객잔에 도착한 그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묵고 갈 것이니 방 두 개와 저녁 식사로 양구이를 부탁하오.”
주문을 마친 비강은 객잔 안을 둘러보다가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노인은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언뜻 조손지간으로 보였다.
“이제 북림까지 하루 거리가 남은 건가?”
“네, 내일 저녁때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사건 사고가 많은 순찰행이었어. 연 호위가 없었다면 이번 일을 무사히 끝내지 못했을 거야.”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주문했던 양구이와 탕, 그리고 밥이 나오자 약철빙은 술 한 병을 시켰다.
“마지막 날이니 한잔해야지.”
“원래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잖습니까.”
“예전에는 술과 무공으로 나날을 보낸 적도 있었어.”
술이 나오고 약철빙과 비강은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잔을 비운 비강은 누군가 계속 자신을 주시하는 느낌을 받아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바로 그 노인이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이까? 노인장.”
신경이 쓰인 비강의 물음에 노인은 미소를 짓더니 머리를 숙였다.
“아니올시다. 무례를 범했다면 죄송합니다.”
‘수상한 노인이로군.’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린 비강은 태연을 유지하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식사가 끝이 나고 방으로 들어간 그는 정좌를 하고 앉아 운기행공에 빠져들어 갔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말에 올라 서안으로 향했다.
잠시 말을 몰아가던 비강의 눈앞에 어제저녁에 보았던 두 조손이 앞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말발굽 소리에 길을 비켜선 노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건넸다.
“이 늙은이의 다리가 불편해서 그러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말을 얻어 탈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실례가 되는 요청이었다.
‘암습을 시도하려는 것인가? 그것도 좋겠지.’
그러나 비강은 노인을 떠보기 위해 선뜻 말에서 내렸다.
“단주님께선 뒤쪽에서 따라오십시오.”
비강의 의중을 헤아린 약철빙은 아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참으로 감사합니다.”
노인이 말에 오르고 비강과 여인은 양옆으로 가 섰다.
멈췄던 말이 다시 출발했다.
“한데 두 분께서 주고받는 말씀을 들어 보니 북림의 무인분들인 것 같습니다만.”
“맞소. 북림에서 나왔소.”
“그러시군요. 저는 담노라 합니다. 이 아이는 제 손녀이고요.”
“그렇소?”
비강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자 담노라는 노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소협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연비강이오.”
“아…… 원래 연 소협이셨군요. 하면 혹시 요즘 강호에서 명성이 자자한 그분이 아니신지요?”
“명성이 자자한지는 모르겠소.”
허허허…….
“자자하고말고요. 그 대단하다는 북산대마를 죽이고, 또 어제저녁에 들으니 양하현에서도 홍살막의 무인들을 상대로 대단한 일을 벌이셨다고 하더군요.”
노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강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떠들어 댔다.
“나를 죽이려 했기에 맞선 것뿐이오.”
“그렇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요. 잘하셨습니다.”
‘이 노인은 정체가 뭐지?’
홍살막이라 짐작했던 노인의 정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짐작이 틀렸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혹시 연 소협의 가문이 어찌 되시는지요?”
“그런 것 없소.”
“하면 부친의 존함조차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아버지의 이름은 연서문이라 들었다.
하지만 굳이 아버지에 대해 밝힐 필요도 없었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약철빙도 듣고 있었다.
서안을 향해 나아가던 비강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길을 서둘렀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소나기가 올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쉴 만한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 * *
쏴아아…….
비강은 낡은 사당 안에 앉아 쏟아지는 소낙비를 내다보았다.
“하면 연 소협께서는 지금까지 누구와 함께 지내셨습니까?”
“초면에 내게 관심이 너무 많은 것 같소, 노인장.”
허허허…….
“강호의 영웅을 뵈었으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강은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무례한 이 노인이 싫지 않았다.
노인의 눈과 목소리는 따뜻한 온기까지 머금고 있었다.
“혹시 옆에 앉아 있는 여협께서는 북림의 순찰단주님이 아니신지요?”
“맞아요.”
그러나 약철빙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은 어느샌가 온기는 사라지고 무미건조함만이 남아 있었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약가는 협의의 가문이라더군요.”
“그런가요?”
말을 받는 약철빙의 입가에는 언뜻 싸늘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할아버님, 진지 드세요.”
여인이 행낭에서 구운 떡 하나를 꺼내 노인에게 내밀었다.
“오냐. 너도 먹고 저분들도 드시도록 해라.”
“예.”
여인은 행낭에서 구운 떡 두 덩이를 더 꺼내더니 비강과 약철빙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떡을 건네받은 약철빙은 지그시 비강을 바라보았다.
비강이 먼저 떡을 먹어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군요.”
그제야 약철빙은 떡을 입에 넣었고 노인은 희미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안에 도착하면 제가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는지요?”
“그럴 필요 없소이다. 그럴 시간도 없고.”
“이것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소협 같은 영웅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비는 오래도록 내렸다.
결국 늦은 밤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지만, 이미 밤이 깊어 길을 나서기는 어려웠다.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세 사람을 지켜보던 비강은 정좌한 채 눈을 감았다.
솨아아…….
가까운 곳의 풀벌레 우는 소리부터 멀리서 울고 있는 새소리까지 비강의 귀로 스며들어 왔다.
눈을 뜨고 바깥으로 손을 뻗자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뒹굴고 있던 돌멩이 하나가 손으로 날아 들어와 잡혔다.
‘무공이 점점 더 깊어지는구나. 과연 무신이라는 사천존들은 무공이 어느 정도일까.’
“잠이 오지 않으시는 겝니까? 연 소협.”
비강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이 노인이 조금 귀찮다.
오후가 지나 서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비강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또 뵈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강녕하십시오.”
“노인장도 잘 가시오.”
조손과 헤어진 비강과 약철빙은 말을 타고 천천히 저잣거리를 통과했다.
“의심스런 자들이었어.”
“악의는 없어 보였습니다. 홍살막이나 백건적은 아닙니다.”
“그래.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아.”
말을 몰아 저잣거리를 통과하던 비강은 자신을 주시하는 눈길을 느끼고는 슬쩍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강과 눈을 마주친 젊은 여인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누구지?”
약철빙도 그 모습을 보았는지 턱짓을 하며 물었다.
“기녀입니다.”
“기녀?”
“예. 전에 흑견조의 조장과 들렸던 기루의 기녀입니다.”
“은자가 많은가 봐? 기루에서 술도 마시고.”
서늘한 약철빙의 말에 비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를 떠보기 위해 흑견조 조장을 시켜 기루에 데려간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
그제야 약철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지?”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 * *
저잣거리를 지나 북림으로 들어온 약철빙은 바로 집무실로 들어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따라와.”
그러고는 비강과 함께 산을 돌아 정상 어름에 있는 커다란 전각 앞에 도착한 그녀는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을 지키고 있는 네 명은 한쪽에 앉아 있는 비강을 힐끔거렸다.
잠시 후 약철빙은 작은 금관을 쓰고 있는 노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로 부림주 약추완이었다.
약추완은 연무장 한쪽 바위에 앉아 있는 연비강을 흘깃 쳐다보더니 전각을 돌아 위쪽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몰라. 잠시 기다리래.”
그녀의 말대로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위쪽에서 무인 한 사람이 날듯 달려 내려왔다.
“오르시랍니다.”
무인의 전언에 약철빙은 크게 놀랐다.
오르라는 말은 림주가 자신을 직접 보겠다는 뜻이었다.
북림에서 일을 시작한 지 십여 년이 넘었으나 지금까지 림주를 만나 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올라가 보십시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분이 다 함께 올라오시라고 하셨습니다.”
흐음…….
‘신창 풍천양이 나를 보고 싶어 한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