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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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5화
제25화. 돌아가는 길(1)
으으으…….
바위를 붉게 물들이며 엎어진 시신들과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시신들, 그리고 나무에 깔린 채 아직 미약한 신음 소리를 내는 적들도 눈에 보였다.
자신들이 내려가고 있는 길은 올라올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한차례 거센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폐허가 된 상태였다.
“벌써…… 적들의 시신이 일백 구를…… 넘어섰습니다.”
앞서가던 철우조의 조장 우노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어 냈다.
순찰조에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으나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북산대마를 죽이고 싸움터를 종횡무진으로 누볐다는 연비강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실제로 보니 그 소문은 오히려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이 광경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십리혈(十里血). 아니, 백리혈(百里血)이라 해도 오히려 부족하겠군.”
관적심도 우노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움푹 들어간 평지에 도착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겹겹이 쌓여 있는 시신들과 냇물을 이루고 있는 피였다.
“가까운 지부에 따로 연락해 이 시신들을 수습해야겠어요.”
“그렇게 해야겠지요.”
“위험!”
피피픽……!
시신들 사이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목격한 약철빙은 급히 소리를 치며 신형을 움직였다.
팅!
그 소리에 황급히 검을 빼든 이 호위가 날아오는 암기를 쳐 냈다.
컥!
하지만 암기는 하나가 아닌 세 발이었다.
목에 암기를 맞은 이 호위와 뒤에 서 있던 녹양조의 조원 하나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호위!”
“장욱!”
“제…… 기랄…….”
“이놈!”
우노해가 노성을 발하며 암기를 쏘아 보낸 자에게 달려들어 목을 베었다.
그가 죽인 자의 손에는 작고 동그란 철통 하나가 쥐여 있었다.
“철뢰침(鐵雷鍼)입니다.”
관적심은 우노해가 들고 온 작은 철통을 바라보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커억! 컥……! 컥!
이 호위와 녹양조의 조원은 괴롭게 몸을 뒤틀며 땅바닥을 굴렀다.
철뢰침은 원래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침에 독을 묻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호위!”
“장 조원! 정신 차려!”
약철빙과 조원들은 안타깝게 이 호위와 장욱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지금은 어떻게 할 형편이 못 되었다.
“제가 업고 내려가겠습니다.”
철우조의 조원과 녹양조의 조원이 급히 자리에 앉아 등을 내주었다.
이 호위와 장 조원을 등에 업은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곳곳에 널브러진 적들의 시신들 속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자들도 있어 경계를 늦추기 힘들었다.
커억! 컥!
거품이 흘러나오던 이 호위와 장 조원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 * *
“어떻게 된 겁니까?”
산을 내려가는 그들을 막아서며 비강이 급하게 물었다.
“이 호위와 장 조원이 암습에 당했어.”
“제가 업겠습니다.”
이 호위와 장 조원을 억지로 넘겨받은 비강은 양하현을 향해 급하게 달렸다.
사람 둘을 양옆에 끼고 달리는 비강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쫓기에는 너무 빨랐다.
급하게 양하현의 저잣거리로 들어온 비강은 지나가는 사람을 물어 의원을 찾았다.
“저 골목을 들어가 보시오.”
행인의 대답에 급히 골목으로 달려 들어간 비강은 의원을 불러냈다.
“독에 당한 것 같습니다. 치료를 부탁합니다.”
“얼른 저쪽으로 가 눕히시오.”
의원의 지시에 비강은 급히 그가 가리킨 곳에 달려가 이 호위와 장 조원을 침상에 눕혔다.
의원은 이 호위와 장 조원의 눈과 입을 뒤집어 보고 손목을 만져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시신들을 안고 오셨구려.”
후우!
비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이 호위와 장 조원을 안고 달릴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던 그들의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부터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잠시 후 따라 들어온 약철빙의 물음에 비강은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개를 푹 숙인 관적심은 침상에 누워 있는 장욱을 향해 다가가더니 부릅뜨고 있는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약철빙도 이 호위에게 다가가 그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수레를 구해 이 호위의 시신을 북림으로 옮기고 가까운 지부에 연락해 무양산의 시신들을 수습하라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연 호위의 잘못이 아니야. 그대가 지켜 준 덕에 우리는 목숨을 건졌네.”
“맞습니다, 연 소협!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소협.”
비강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 *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연 소협.”
관적심은 비강에게 정중하게 머리까지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길에 적들의 기습을 조심하십시오.”
“물론입니다. 해서 지부에 연락해 경계를 강화하고 호위를 늘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강과 인사를 나눈 관적심은 약철빙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도 또 웃는 얼굴로 뵈었으면 합니다, 약 단주.”
“네. 또 뵈어요, 관 단주.”
녹양조의 조원들도 비강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비강도 그들에게 살짝 머리를 숙여 답례하는 것으로 모든 작별 인사가 끝이 났다.
“이제 돌아가야지.”
“이번에는 관도를 통해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래. 연 호위에게 맡길게.”
비강과 약철빙은 나란히 서서 관도를 걸었다.
“새로 호위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해야지. 마침 적당한 인물들이 있어.”
“이번에 호위를 보강하는 겁니까?”
“아니. 호위 둘을 새로 뽑고 연 호위는 내 부관으로 앉힐 생각이야.”
걸음을 옮기던 비강이 발을 멈췄다.
“그런 자리도 있습니까? 부단주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만들면 돼. 그리고 부관이라는 자리는 내 일을 도와주는 자리라 순찰단의 내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부단주와는 업무가 달라.”
멈췄던 비강이 발이 다시 움직였다.
“아, 그리고 이번에 연 호위의 별호가 생길 것 같아.”
“뭡니까?”
“백리혈. 관 단주가 그렇게 불렀으니 아마도 백리혈이라는 별호가 강호에 퍼져 나갈 거야.”
“그리 좋은 별호는 아니군요. 말을 구해 타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연 호위가 좋을 대로.”
말값이 비싸기는 했지만 말을 맡겨 둔 목장에 되팔 수 있으니 큰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비강은 행인들에게 말을 기르고 있는 목장을 물었다.
* * *
은자 이십 냥.
그냥저냥 쓸 만한 말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말 한 마리당 은자 이십 냥이었다.
약철빙이 타고 갈 말까지 구했으니 총 사십 냥이 들어간 셈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에 날이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말이 지쳐 속도가 느려졌다.
“저기서 노숙을 하는 게 좋겠어.”
약철빙이 가리키는 곳은 뒤로 큰 개울이 흐르는 곳이었다.
비강과 약철빙은 공터로 말을 몰아갔다.
풀어놓은 말들이 먼저 개울로 다가가 흐르는 물에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두 사람도 개울물로 목을 축이고 남은 건포로 배를 채웠다.
모기들을 쫓아내기 위해 불을 피우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먼저 약철빙이 기묘한 침묵을 깨뜨리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강호는 조금 시끄러워질 거야. 백건적과 사파의 무리들이 자주 출몰할 것이니 순찰단도 바빠지겠지.”
“적들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겁니다. 짐작보다 긴 싸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결국은 다시 안정을 찾을 거야. 아무리 적들이 준비를 많이 했어도 사패를 넘보기는 힘드니까.”
“적들도 그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도발을 감행한다면 뭔가 다른 쪽을 노린다고 봐야 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약철빙은 비강의 의견이 회의적이었다.
강호 무림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정복한 사패였다.
그런 막강한 사패를 패잔병들이 마찬가지인 저들이 무슨 수로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연 호위라면 어떻게 사패를 무너뜨릴 거야?”
“저라면 네 세력 간에 상쟁을 시키고 기회를 노리겠습니다.”
약철빙은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힘들어. 사패 간에 다툼이 잦기는 하지만, 사천존은 사이가 좋으니까. 내가 알기로 그분들은 형제처럼 지낸 사이로 알고 있어.”
“권력을 위해서는 부모 자식도 죽이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 말은 맞다.
그 권력을 위해 그년과 그 인간이 그분을 죽였으니까.
어두워졌던 약철빙은 다시 밝은 안색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뒤에 개울이 있으니 좀 씻어야겠어.”
비강도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공터 뒤쪽으로 걸어간 비강은 개울과 등을 지고 앉았다.
무복을 벗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그녀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 호위도 씻어야지. 듣기로는 아주 깔끔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나중에 씻겠습니다.”
개울을 등지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비강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약철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쉿!
비강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개울 앞을 막아섰다.
“나와라.”
그러나 사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풀벌레들이 너의 살기에 숨까지 죽이고 있지 않나. 나와라.”
“역시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로구나.”
검불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자는 부련주 두광생이었다.
“포기를 모르는구나.”
“이끌고 온 수하들 태반이 죽었는데 우두머리가 되어 포기를 하면 누가 나를 따르겠느냐.”
어떻게 이런 자가 사파의 부련주가 되었을까.
이자는 한 팔이 없음에도 무공이 강했고, 우두머리로서도 꽤 괜찮은 자였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부련주의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끈질기게 단주님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이 원하니까. 그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순찰조는 강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조직이 아니더냐. 그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정파의 후예들이 목숨을 잃었겠느냐. 사기를 위해서라도 순찰단주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두광생, 그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느니라. 사패는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보다 더욱 지독한 놈들이 아니더냐.”
그래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세상에서는 숨이나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사패가 무림을 장악하고 나서부터는 복건이라는 땅조차 빼앗겨 버렸다.
팍!
땅을 박차며 신형을 비튼 두광생은 비강이 아닌 물속에 있는 약철빙을 노렸다.
깡!
하지만 비강의 철봉에 부딪쳐 되돌아 내려서야 했다.
스악.
두광생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번뜩이는 섬광이 그의 허리를 가르며 다가왔다.
팍!
비강의 일검을 피하기 위해 두광생은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잔영과 함께 잡목과 풀들이 검에 의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우측을 점한 두광생의 대도가 비강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까깡! 깡!
병기와 병기가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까깡! 깡! 깡……!
연달아 비강의 검과 철봉을 막아 내던 두광생이 뒤로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나 비강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물러난 만큼 따라붙으며 검과 철봉을 비 오듯 쏟아부었다.
까깡!
칼과 도가 얽히는 찰나, 비강의 철봉이 사선으로 내려 찍혔다.
퍽―!
“큽!”
두광생의 허벅지의 살이 뭉텅이로 떨어져 날아가고, 가슴에는 긴 혈선이 그어졌다.
‘……오른 다리에 감각이 없다.’
장기전으론 비강을 이길 수 없다.
다리가 망가져 퇴각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돌파할 수밖에.
계산을 마친 두광생은 마지막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대도를 치켜들었다.
스아아아……!
강력한 기운을 동반한 두광생의 대도가 공간을 찢어발기며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렸다.
까가가강……!
그 순간, 비강의 철봉에서 다시 한번 삼하귀상의 무공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