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4화
제24화. 백리혈
“그 계곡도 우리 영역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니외다. 이곳에서 동쪽 산 너머인 무양골까지 일직선으로 선을 그으면 그 계곡은 분명 우리 영역에 포함이 됩니다.”
사패 간에 영역을 나눌 때 지도를 중심으로 대충 선을 그었던 것이 탈이었다. 때문에 지도와 맞지 않은 지역에서 자주 다툼이 발생했다.
약철빙은 북림에서 가져온 지도를 꺼냈다.
분명 지도에는 양하현과 무양골 사이에 있는 산은 북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좋아요. 그럼 그 무양산에 올라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만약 관 단주님의 말씀이 맞다면 바로 영역을 인정해 드리지요.”
하하하…….
“역시 약 단주께서는 시원시원하십니다. 먼저 식사부터 하고 올라가도록 하지요.”
호탕한 웃음을 지은 관적심은 뒤에 서 있는 호위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의 의미를 알아들은 호의 하나가 밖으로 나가 요리를 주문했다.
“잠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 순찰조원들도 함께 식사를 했으면 해요.”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뭣들 하느냐? 어서 우리 조원들과 북림의 철우조를 안으로 들여오도록 하라.”
또 다른 호위가 밖으로 나가 북림의 철우조와 서패의 녹양조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요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단주와 호위들은 나란히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번에 북림 흑견조의 대단한 낭인이 북산대마까지 죽였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지요?”
기묘한 침묵이 껄끄러웠는지 조용히 식사를 이어 가던 관적심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네.”
하하하…….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듣기로 아주 젊은 고수라고 하던데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앞에 앉아 있으니 실컷 보세요.”
“네?”
잠시 약철빙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관적심은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놀라 이 호위와 비강을 주시했다.
“어느 분이…….”
“연비강입니다.”
비강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관적심의 좌우에 앉아 식사를 하던 호위들도 잠시 손을 멈추고 비강을 주시했다.
강호의 소문처럼 부질없는 것도 없었다.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몇 사람만 거쳐 지나가면 부풀릴 대로 부풀려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적심이 들은 것은 소문이 아니라 첩보였고 상대는 북산대마였다.
“몰라봐서 미안하오, 연 소협.”
관적심은 정중한 말로 사과를 하고는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적을 많이 만들면 안 된다.
반드시 그 때문만이 아니라도 강호에서 강자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했다.
* * *
식사가 끝나고 북림과 서패는 함께 무양산을 올랐다.
밑에서 보기에는 그리 험한 산이 아니었으나 오르면 오를수록 험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산이었다.
약철빙의 앞에서 산을 오르던 비강은 땔감을 해 가지고 내려오는 중년인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강호인들이 두려운지 눈치를 살피며 멀찍이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좋지 않아.’
중년인이 등에 지고 내려오는 땔감을 살펴보던 비강은 문득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땔감의 잘린 부위가 너무나 깨끗했다.
작은 산봉우리를 지나 뒤쪽에 서 있는 큰 산봉우리에 오른 약철빙은 철우조의 조장을 불렀다.
“우 조장, 무양골이 어디쯤에 있나요?”
“저기 움푹 들어간 곳이 바로 무양골입니다.”
우노해가 동쪽의 그늘진 곳을 가리켰다.
약철빙은 산 정상에 서서 무양골과 양하현을 일직선으로 그려 보았다.
‘관 단주의 말이 맞아. 엄밀하게 따지자면 오히려 이 산 전체가 남서쪽으로 치우쳐 있어.’
“좋아요. 이 산의 중앙으로 나 있는 계곡을 중심으로 영역을 나누도록 하지요.”
관적심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품에서 두 개의 봉서를 꺼냈다.
하하하…….
“그러실 줄 알고 제가 미리 확약서를 준비했습니다. 한번 살펴보시지요.”
두 개의 봉서에는 똑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무양산 계곡을 중심으로 영역을 나눈다는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약철빙은 곧 북림 순찰단주의 인장을 꺼냈다.
관적심도 서패 순찰단주의 인장을 꺼내 문서에 번갈아 가며 찍었다.
두 순찰단주가 확약서를 살펴보고 있는 동안 비강은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만약 우리가 올라온 길목에 적들이 매복해 있다면, 이들을 보호하며 도망칠 만한 곳은 북서쪽이야. 저곳으로 가면 양하현으로 내려갈 수 있어 적들이 우리를 포위하기 힘들 거야. 하지만 저쪽 길목에도 적들이 매복하고 있다면 도망칠 만한 곳은 산으로 다시 올라와 무양골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어.’
혼자라면 아무리 많은 적들도 두렵지 않았으나 자신은 약철빙을 보호해야 했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그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우조와 서패의 무인들까지 함께 있었다.
적들과의 싸움에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되도록 이들을 살리고 싶었다.
“자, 이제 내려갑시다.”
서로 문서 한 장씩 나눠 가진 두 순찰단주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을 명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비강이 먼저 선두로 나서려 하자 관적심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하하하…….
“말씀만이라도 고맙소, 연 소협. 하지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뿐인데 무슨 위험이 있겠소이까. 우리 녹양조가 앞장을 서도록 하겠소.”
관적심의 말대로 서패의 녹양조가 앞장을 섰다.
‘정말 좋지 않아. 한둘이 아니야.’
산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벌레가 지나가듯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멈추시오.”
“왜 그러시오? 연 소협.”
관적심이 의아해하며 비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활을 빌릴 수 있겠소? 우 조장.”
비강의 요청에 우노해 또한 의아해하면서도 조원이 차고 있던 활과 화살을 선뜻 빌려주었다.
팅! 팅!
활시위의 탄력을 확인한 비강은 활대에 화살을 얹었다.
오랜만에 잡아 보는 활이었다.
전쟁터에서 활을 잡아 본 적은 없지만 가끔 중요한 정찰을 나갈 때 활을 사용해 본 적은 있었다.
쐐애액!
화살은 산 아래를 향해 직선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크윽……!
화살이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흐릿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그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삽시간에 안색이 굳어졌다.
“정찰을 하러 나온 적들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저 아래쪽에 적들이 숨어 있을 겁니다.”
“하면…… 어찌해야 좋겠소?”
관적심이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산 정상에서 살펴보니 북서쪽을 통해 내려가는 길이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적의 입장이라면 그곳에도 매복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무양골로 넘어가는 방법밖에 없단 말이오?”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아 관적심도 꽤나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순찰단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겠지만.
“적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겁니다. 무양골로 들어가면 길을 막고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는 말인데…… 도대체 저들의 정체가 뭐요? 혹시 백건적이오?”
“홍살막, 저들은 홍살막이에요.”
약철빙이 비강을 대신해 대답했다.
“뚫고 내려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패 녹양조의 조장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한둘이 아닙니다.”
비강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산 아래쪽에서 적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뜻언뜻 숲 사이로 드러나는 자들만 해도 수십 명이 넘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약철빙은 비강에게 대책을 물었다.
“일단 다시 올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를 당하게 될 터인데…….”
관적심의 걱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올라가요.”
약철빙이 먼저 서둘러 산 정상으로 신형을 돌려 빠르게 올라갔다.
철우조가 급히 뒤를 따르고 관적심과 녹양조도 대책이 없는지 어쩔 수 없이 좇아 올라갔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연 소협.”
산 정상으로 다시 오르며 관적심이 급하게 물었다.
“그곳에는 잠시나마 적들을 막을 만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 후에는 어찌하려 그러시오?”
“제가 산을 내려가면 천천히 그 뒤를 따라 내려오십시오.”
산 정상에 이른 비강은 바위들이 늘어선 곳을 가리켰다.
남동쪽은 경사가 급해 적들이 올라오기 쉽지 않고 다른 삼면은 바위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그곳이라면 뒤쪽은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삼면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저곳이라면 적들이 포위해 올라와도 잠시나마 막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각 후에 천천히 산을 내려오십시오.”
“어떻게 하려고?”
약철빙의 얼굴에 걱정이 엿보였다.
“퇴각로를 개척해 놓겠습니다.”
* * *
크아악! 아악……!
쏴아아아……!
대여섯 명의 적을 쓰러뜨리자마자 화살비가 쏟아졌다.
따다다다당……!
검과 봉을 휘둘러 화살비를 막아 낸 비강은 재빨리 시위에 화살을 얹고 있는 적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스걱! 스걱! 퍽!
꽈드드드…… 쿠쿵!
적들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머리와 가슴이 터져 날아갔다.
아악…… 악……!
검이 스치고 지나간 나무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적들을 덮치고 비명 소리와 굉음을 만들어 냈다.
“죽여라!”
“적은 단 한 놈이다!”
촤아악!
적들의 몸에서 튀어 오른 피는 잡목들을 붉게 물들였다.
적들은 아직도 많았다.
콰지지지직…… 쿠쿵! 쿵!
아악!
“피해라!”
비강이 연달아 베어 낸 거목들은 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적들을 덮쳤다.
타탁!
적들을 덮친 거목을 발로 차며 날아오른 비강은 산 아래 쏘아져 내려가며 검과 봉을 빠르게 그어 냈다.
휘황한 빛과 함께 적들의 몸이 갈라지고 터져 나갔다.
“네놈이 연비강이로구나!”
움푹 들어간 평지에 도착한 비강은 수십 명의 적들과 나란히 서 있는 노인과 마주했다.
“누구지?”
“사련의 부련주 두광생이니라!”
허연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노인의 오른손에는 자루가 긴 대도가 들려 있었고 왼팔은 어깨부터 내려온 무복이 헐렁했다.
‘사파가 위축되다 못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니만.’
아무리 수십 명의 수하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고 하지만 이런 자리는 부련주라는 자가 직접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백건적의 개가 된 것이냐?”
크하하하하…….
“잠시 그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을 뿐이다!”
“뜻을 같이해 네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들은 우리가 관리할 영역을 인정해 주기로 했느니라.”
‘과연,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니 이렇게 전멸까지 각오하고 달려드는 것이로구나.’
비강은 사파의 암울한 상황을 선뜻 이해했다.
“너도 낭인이라 들었다. 우리와 함께한다면 부련주의 자리를 너에게 양보해 주마.”
“필요 없어.”
맹주이니, 림주이니, 련주이니 하는 말은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호에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쳐라!”
와아!
“죽여라!”
부련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사라락.
스걱! 스걱! 퍼퍽! 스걱!
사방으로 분열되듯 불어난 비강은 적들의 가슴을 가르고 머리를 부쉈다.
쾅!
비강이 지나간 자리에 부련주의 대도가 떨어져 내렸다.
까깡!
크아악…… 아악……!
부련주의 대도와 비강의 철봉이 부딪쳤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적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 * *
이각쯤 흘렀을 때 약철빙이 먼저 바위로 둘러싸인 곳을 빠져나왔다.
“우 조장, 선두에서 길을 잡아요.”
“예.”
“녹양조는 후미를 맡게.”
“예.”
관적심의 명령에 서패의 녹양조는 뒤를 맡았다.
두 명의 순찰단주를 보호하며 그들은 그렇게 산을 천천히 내려갔다.
채 일각도 걷지 않아 목 없는 시신들과 가슴이 갈라진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더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시신들의 숫자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