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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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화
제23화. 서쪽으로
운기행공은 연무로 이어졌다.
후휙! 휙……!
비강은 홀로 공터를 누비며 검법을 펼치고 있는 약철빙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호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야.’
허식이 없는 실전적인 검법이었다.
빠르고 강하며 날카로운 검법을 펼치던 그녀는 비강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한번 어울려 주겠어?”
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서자 바로 약철빙의 검이 날아들었다.
땅!
그의 검과 그녀의 검이 중간에 맞부딪쳤다.
따당! 땅! 땅……!
찌르고 베고 휘감아 들어오는 약철빙의 검과 그 검을 막아 내는 비강의 검으로 인해 공터는 맑은 쇳소리로 가득했다.
‘저 검법,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아.’
처음 구경하는 검법이었다.
그런데 비강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이 검법 안에 들어 있었다.
따다당……!
후우!
비강과 격하게 부딪치던 약철빙이 뒤로 물러서며 긴 숨을 토해 냈다.
“내게 이 검법을 전수해 주신 분이 이르길, 이 검법에 살기를 많이 죽였대. 그게 조금 아쉬워. 본래의 검법을 익혔으면 좋았을 것을.”
“충분히 훌륭한 검법입니다.”
비강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환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검을 집어넣고는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또다시 중년 여인들이 물이 가득 들어 있는 통을 들고 나타났다.
* * *
부림주가 보낸 무인으로부터 서류 한 장을 건네받은 약철빙은 미간을 찌푸렸다.
“연 호위, 안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피던 그녀는 밖에다 대고 비강을 불러들였다.
“읽어 봐.”
비강이 안으로 들어오자 약철빙은 자신이 읽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중경에서 서패의 순찰조와 북림의 순찰조가 마찰이 생겼으니 그걸 해결하고 오라?’
“관할 구역을 두고 사패 간에 다툼이 잦아. 이번에 나까지 보내는 것을 보면 경계를 확실히 하고 오라는 뜻이겠지. 아마 서패에서도 순찰단주가 직접 나올 거야.”
“순찰조를 이끌고 가실 생각입니까?”
“아니. 이런 일은 조용히 갔다 오는 게 상책이니 연 호위와 이 호위만 대동하고 갈 거야. 이 호위에게 말을 준비하라고 일러. 오늘 밤에 출발할 거야.”
“예.”
밖으로 나온 비강은 이 호위에게 사정을 말하고 길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밖으로 나오자 이 호위가 안으로 들어가 짐을 꾸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까지 챙겨 먹은 세 사람은 말에 올라 어둠을 뚫고 성문을 나섰다.
밤새 말을 달린 그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말을 멈추고 객잔 안으로 들어가 몸을 쉬었다.
오후에 일어나 끼니를 챙겨 먹은 세 사람은 다시 말을 달렸다.
이윽고 늦은 저녁때가 되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객잔을 찾던 그들의 눈에 낡은 깃발이 걸린 허름한 객잔 하나가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말을 맡은 점소이들은 아이들이 아닌 나이깨나 먹은 청년들이었다.
객잔 안은 장사꾼과 강호인, 행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어서 오십시오. 세 분이십니까. 마침 저 안쪽에 빈자리가 있으니 들어가십시오.”
객잔 주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손님들을 일일이 살폈다.
“혹시 이 객잔을 전에도 이용한 적이 있습니까?”
비강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부터 했다.
“아니, 없어.”
단주의 대답에 이어 이 호위도 고개를 저었다.
곧 주문한 식사가 나오자 단주와 이 호위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단주와 이 호위의 귀로 비강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이에 흠칫 놀란 단주와 이 호위는 손을 멈추고 비강을 쳐다보았다.
우물우물…….
‘향신료가 너무 강해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어.’
볶은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맛을 본 비강은 입가에 하얀 미소를 그려 냈다.
돼지고기 안에 들어 있는 독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점소이의 무감정한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저 점소이는 객잔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스각―!
비강의 허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점소이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툭, 털썩.
순간 객잔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왜…… 왜들 이러십니까?”
객잔 주인이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돼지고기에 무엇을 넣었나?”
“무엇을…… 넣다니요?”
객잔 주인은 정말 영문을 모르는지 두려움이 가득한 눈을 하며 되물었다.
“이 손님 많은 객잔에 마침 우리들이 앉을 자리가 비어 있다니. 그것도 도망칠 곳 없는 안쪽에 말이야.”
크크크크…….
두려움에 몸을 떨던 객잔 주인이 천천히 허리를 펴며 살소를 피워 냈다.
동시에 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도 전부 자리에서 일어서며 병기를 뽑아 들었다.
강호인으로 위장한 자들은 검과 도를 빼 들었고 상인과 행인으로 위장한 자들은 짐과 식탁 밑에서 병기를 꺼냈다.
“백건적이냐?”
비강의 질문에 객잔 주인으로 위장한 자가 고개를 저었다.
“알아맞혀 봐.”
“그러지.”
비강은 거침없이 적들 속으로 신형을 날리며 파고들었다.
크윽! 끄악! 아악……!
적의 가슴이 사선으로 베이고 팔다리와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걱! 콰쾅! 쾅……!
휘황한 빛이 번쩍이며 나무 벽이 갈라지고 적들이 벽과 함께 튕겨져 날아갔다.
스각!
꽈드드드…….
대들보를 받치고 있던 기둥이 사선으로 잘리자 지붕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곧 객잔 안에 있는 적들을 덮쳤다.
순간 비강은 이 호위와 약철빙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뒤쪽의 나무 벽을 발로 차 부숴 버렸다.
쾅!
“피해!”
콰쾅! 쾅……!
나무껍질로 이은 지붕이 폭삭 주저앉은 가운데 단주와 이 호위를 양옆에 끌어안은 비강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한…….”
낭패한 모습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객잔 주인은 비강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끄어어…… 끄억…….
으으으…… 으어…….
지붕 밑에서 적들의 신음 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스악―
어느새 객잔 주인의 등 뒤를 점한 비강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툭.
검을 쥐고 있던 객잔 주인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허벅지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끄아…… 아악!
바닥에 쓰러진 객잔 주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누구지?”
비강은 무감정한 눈으로 객잔 주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끅끅…… 끅끅끅…….
객잔 주인은 입으로 침을 흘리며 괴롭게 웃었다.
“제, 기랄……. 어쩐지, 의뢰비가 더럽게 후하더라니…….”
의뢰비?
비강은 의뢰비라는 말에 이들이 백건적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네…… 네놈은 누구냐?”
객잔 주인은 오히려 비강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연비강.”
끅끅끅끅…….
“북산대마를…… 죽였다는 그…… 연비강인가. 우리가…… 사약을 마셨군그래. 하지만 너도 곧 죽을 거다. 우리는…… 포기를 모르니까.”
“홍살막(紅殺幕)이로군. 그렇지?”
비강과 객잔 주인을 말없이 지켜보던 약철빙이 앞으로 나섰다.
“맞아, 이곳을 지나는…… 이남일녀의 강호인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지. 자…… 이제 죽여라.”
퍽!
비강은 바로 적의 목을 밟아 숨을 끊었다.
“홍살막은 또 뭡니까?”
마구간으로 향하는 비강의 질문에 이 호위가 뒤를 따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 사파의 무리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득세를 할 때 복건에서 무련(武聯)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사파였소. 그런데 사패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금세 세력을 불렸다가 사패의 강호평정이 끝나자 또다시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소. 지금은 복건 땅조차 잃고 어둠 속에 숨어 살며 무력을 팔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소.”
“제법 심지가 굳센 자들이던데…….”
“원래 사파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배신을 용납하지 않소.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고, 설사 부모를 죽이라고 해도 죽일 자들이오.”
“콩가루 모임이로군.”
마구간에서 말을 끌어낸 비강은 말 위에 오르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동선이 적에게 새어 나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빠른 관도보다는 조금 거리가 멀더라도 우회에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적들이 언제 기습을 해 올지 모르니 앞으로는 매사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만약에 내가 적이라면 우리들뿐 아니라 서패의 순찰단주도 함께 노렸을 거야.”
말에 오른 약철빙이 비강의 말을 받더니 말 머리를 돌려 방향을 잡았다.
“헛걸음이 될 공산이 크겠군요.”
“그렇겠지.”
* * *
밤새 일백여 리를 더 달린 세 사람은 목장에 들러 말을 맡겼다.
길을 우회해 가려면 거친 산길을 통해야 하기에 말이 지나가기에는 힘들었다.
근처 객잔에서 아침을 먹고 건포를 열 근이나 구입한 그들은 좁은 산길을 통해 중경으로 향했다.
그렇게 이틀을 달린 그들은 중경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서패와의 접경에 도착하려면 아직 이틀은 더 가야 했다.
큰 마을에 도착해 식사를 하던 세 사람은 마침 사천으로 향하는 표국을 발견했다.
“양하현까지 태워 주시면 고맙겠소. 가는 동안 표물을 지켜 드리리다.”
중경에서 이름난 표국인 대화 표국은 표두와 표사들만 해도 삼십 명이 넘었다.
거기에 사십여 대의 수레와 오십여 명의 일꾼까지 더해지니 표국의 행렬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표국의 주인인 최생로는 약철빙이 자신의 정체까지 밝히자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북림의 순찰단주님께서 어인 일로 양하현에 가시는지요?”
“그곳에 볼일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당연히 비밀을 지켜 드려야지요. 말을 내드릴까요?”
“아니에요. 그냥 수레에 빈 공간이 있으면 그곳에 앉아 가겠어요.”
“불편하실 텐데…….”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표국의 수레를 얻어 타게 된 세 사람은 편안하게 양하현으로 향했다.
걱정과는 달리 양하현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어서 오십시오, 단주님.”
세 사람을 맞이한 자들은 철우조(鐵牛組)의 조장 우노해와 조원들이었다.
“서패의 순찰단주 관적심이 어제 도착해 화화루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그곳에는 이미 서패의 순찰단주가 도착해 있었다.
“안내해 주세요.”
“예.”
주변에 꽃이 만발해 화화루라 이름 지은 요리점은 양하현 정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지역에서 가장 요리를 잘한다고 정평이 난 곳이었다.
조장 우노해와 조원들은 약철빙 일행을 화화루로 안내해 데려갔다.
화화루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패의 녹양조가 북림의 철우조를 막아섰다.
“단주님과 호위들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소.”
“그렇게 해요.”
순순히 서패의 뜻을 받아들인 약철빙은 비강, 이 호위와 함께 요리점 안으로 들어갔다.
곧 안내되어 들어간 방 안에는 세 명의 호위와 함께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아이고, 약 단주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째 갈수록 아름다워지십니다.”
서패의 순찰단주 관적심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약철빙을 맞이했다.
관적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약철빙은 절대로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다.
얼굴도 둥글게 복스럽지 않았고 여인치고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으며, 무엇보다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것이 사나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는 없는 말도 지어내야 했다.
“오랜만이네요, 관 단주님.”
“어서 앉으시지요. 뭐 하고 있나, 어서 요리를 들이라 하게.”
관적심이 자리에 앉으며 호위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니에요. 일을 먼저 끝내고 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듣자 하니 양하현의 동쪽 산을 자주 침범한다고 하시던데, 우리 영역을 넘보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겠지요.”
약철빙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약 단주.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영역인 계곡까지 순찰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