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화
제22화. 무신들의 연회(2)
곡주는 친히 요리를 내와 상 위에 차렸다.
십여 가지의 요리를 내온 그는 마지막으로 술병을 들어 번갈아 가며 네 사람의 잔에 술을 채웠다.
“단 곡주도 한 잔 받으시오.”
술잔을 가져오게 한 신창은 곡주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감사합니다.”
곡주가 두 손으로 정중하게 술을 받을 받자 네 사람은 일제히 잔을 들어 올렸다.
“벗들을 위하여.”
단번에 술잔을 비워 낸 네 사람은 곧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북림(北林)의 신창 풍천양, 남선(南線)의 도신 도운패, 그리고 동천(東天)의 검신 남궁악과 서패(西覇)의 신후 당백요.
사천존이 한자리에 모였다. 감히 은운곡의 주인이라고 해서 끼어들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술잔을 비운 곡주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 * *
“풍가야, 네놈 품에 아주 괜찮은 놈이 들어왔다면서?”
신창은 요리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직까지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제법 야무진 놈이 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북산대마를 잡았다면 제법 야무진 놈 정도가 아닐 텐데. 어떠냐? 우리 동천에 그놈을 양보하는 것이.”
“내가 이미 침 발라 놨으니 헛꿈 꾸지 마라.”
“에잉, 야박한 놈.”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놈들이 꽤나 큰 세력으로 자라난 것 같은데.”
“그렇겠지. 이십 년이란 세월을 숨어 지냈으니 강호 무림에 놈들이 전부 깔려 있을 거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이어 가는 네 사람의 표정에는 털끝만 한 걱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쯧쯧…….
“어리석은 것들. 놈들은 죽어서도 미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거다. 사천에서도 당가의 잔당들이 독을 제조하다가 잡혀 죽었다며?”
“제 놈들이 죽고 싶다면 죽여 주는 수밖에 더 있겠어?”
신후가 잔을 비우자 왼쪽에 앉아 있던 신창이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풍가야, 약추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리던데 계속 부림주 자리를 그자에게 맡겨 둘 거냐?”
“가족이나 가문에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그런대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야. 머리 회전도 빠르고.”
“그자는 욕심이 너무 많아. 너 몰래 북림 안에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해 놓고 있을걸?”
끌끌끌…….
“알고 있어. 하지만 내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자이니 일단 두고 보는 중이야. 만약 이빨을 드러낸다면 한 번에 쓸어 버리면 돼.”
“무조건 네 말을 따른다면 간신이겠지. 차라리 뭐라도 깨우치게 해 주는 적이 그런 간신들보다 훨씬 나아.”
오리구이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 치운 도신은 옆에 놓인 헝겊으로 손과 입을 닦았다.
“도가야, 너는 어째 갈수록 식탐만 늘어 가냐? 네놈 제자도 너를 닮아 아주 진상이라고 하던데.”
흥!
“네놈 제자들만 하겠냐? 한 놈은 연비강이라는 낭인에게 깨지고, 또 한 년은 헛짓거리만 하고 돌아다니고, 나머지 한 놈은…… 으음…… 한조 놈은 그런대로 괜찮지.”
낄낄낄…….
끌끌끌…….
신창과 도신은 서로를 마주 보며 짓궂게 웃었다.
이윽고 식사가 끝이 나자 곡주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빈 그릇과 남은 음식을 밖으로 내갔다.
식탁이 깨끗하게 치워지고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이 놓였다.
“올해는 결정을 봐야 하지 않겠나.”
신창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화기애애했던 공기는 육중한 바위라도 떨어진 양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死).”
먼저 신후의 입이 열렸다.
“사(死).”
“사(死).”
뒤이어 검신과 도신의 입이 차례로 열렸다.
“그럼, 사형을 죽이는 것으로 결정이 난 거냐?”
신창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거운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창의 입이 다시 열렸다.
“올해도 그냥 넘겨야겠군.”
품에서 손바닥만 한 목갑을 꺼낸 신창은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검신과 도신도 신창과 마찬가지로 품에서 손바닥만 한 목갑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목갑의 크기와 모양은 모두 같았다.
“사형은 세월을 점점 역행하고 있어. 우리 짐작보다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몰라.”
참으로 무서운 의미가 담긴 신후의 말이었다.
“그럼, 올해 끝장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 벌써 이십 년을 미뤄 왔던 일이야.”
도신이 무거운 목소리로 신후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선뜻 대답을 하는 이는 세 사람 중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신창이 신후를 바라보았다.
“올해는 백요가 사형에게 다녀올 차례인가?”
“그래.”
“안부나 전해 줘.”
신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 위에 놓인 목갑들을 거둬들였다.
그녀가 목갑을 거둬 가자 바위처럼 무거웠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풀렸다.
“듣자 하니 동천에 기인 하나가 나타났다면서?”
“나도 소문만 들었어. 늙은이가 손녀와 함께 강호를 돌아다니며 협행을 한다더라. 무공이 제법이라 우리 품으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거절을 한 모양이야.”
“은거했던 기인이사가 손녀에게 강호 구경을 시켜 주려고 세상에 나왔군. 바람 따라 물 따라 돌아다니는 풍객(風客)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 * *
“내년에도 곡주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소.”
“물론입니다. 내년에도 반드시 네 분을 위해 시중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도 고마웠소.”
사천존이 사라질 때까지 늙은 곡주는 허리를 숙인 채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후우!
잠시 후 허리를 편 곡주는 긴 숨을 내쉬며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들 네 사람은 강호 무림을 사분해 차지하고 있는 주인들이었다.
신창이라 불리는 북림의 주인 풍천양.
검신으로 불리고 있는 동천의 주인 남궁악.
도신이란 별호가 붙은 남선의 무신 도운패.
그리고 신후라 불리는 서패의 여제 당백요.
저들은 일 년에 한 번 이 은운곡에 모여 연회를 열었다.
그 일은 사패가 강호를 제패한 십팔 년 전부터 이어 온 전통이자 은운곡의 의무였다.
사천존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연회를 여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곡주인 자신과 부곡주를 제외하고 사천존이 이곳에 모인다는 사실을 아는 자조차 강호 무림에 아무도 없었다.
이 비밀이 새어 나간다면 은운곡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바깥에서 귀를 기울여 방 안의 대화를 들어 보려 해도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이 네 무신과 곡주의 거리였다.
하나, 듣지 못해도 느끼는 것은 있었다.
강호 무림이 아무리 혼란스러워진다고 해도 저들은 그저 웃어넘길 것이다.
가장 강성했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세상을 뒤엎어 버린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난 모양이군요?”
부곡주가 돌계단을 따라 올라오며 물었다.
“그렇소.”
“이번에도 저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군요.”
“앞으로도 알아내지 못할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저들의 세상이 계속해 이어지겠군요.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 * *
“연비강, 순찰단주의 호위로 발령이 났다.”
북림에 도착한 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온조가 비강의 발령을 전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짐을 챙긴 비강은 숙소를 나서며 온조에게 머리를 숙였다.
“연 소협, 앞으로도 자주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다니 무척 아쉽습니다.”
조원들은 비강이 흑견조를 떠난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이처럼 든든하고 전리품을 많이 챙기게 해 주는 조원은 앞으로 다신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와 비슷한 위치가 되었으니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군. 앞으로도 자주 봅시다, 연 소협.”
온조도 많이 아쉬운지 비강의 손을 잡았다.
“그럼, 또 봅시다.”
* * *
흑견조의 숙소를 나온 비강은 산 위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순찰단주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 그는 앞을 막고 있는 호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 사람은 배씨 성의 호위였고 또 한 사람은 이씨 성의 호위였다.
호위들은 전에 비강과 인사를 나누어 안면이 있었다.
“연 소협에 관한 소문이 북림을 진동하더이다. 앞으로 단주님을 잘 부탁하오.”
“이제 호위를 그만두면 어디로 가십니까?”
하하하…….
배 호위는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북림에 널리고 널린 곳이 바로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겠소. 나는 북림의 외곽을 책임지고 있는 수호대의 조장으로 발령이 났소. 이곳보다는 훨씬 편하고 시간이 많이 남는 자리라 그동안 하지 못한 무공 연마를 본격적으로 해 볼 작정이오. 단주님. 연 호위가 도착했습니다.”
“같이 들어와.”
안쪽에서 들려온 약철빙의 목소리에 호위는 비강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배 호위. 그리고 이건 내 성의니까 받아 둬.”
약철빙은 묵직한 전낭 하나를 배 호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전낭을 받아 든 호위가 비강과 눈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연 호위가 사용할 방은 집무실 옆에 붙어 있어. 그곳에 짐을 풀면 돼.”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비강은 집무실과 바로 붙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침상 두 개가 놓여 있는 방 안은 단출하기 그지없었으나 둘이 사용하기에는 넓은 편이었다.
비어 있는 침상 머리맡의 선반 위에 무복과 속옷을 개어 올려놓은 그는 다시 밖으로 나와 집무실 앞에 섰다.
잠시 후 일보는 중년 여인 서너 명이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나무통을 들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주님께서 목욕을 하실 시간이에요.”
“아…… 네.”
여인들은 집무실 옆으로 돌아가더니 옆에 붙어 있는 건물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 받아 놨다고 전해 줘요.”
중년 여인들이 사라지고 난 후 비강은 안으로 들어가 욕통에 물을 채웠음을 알렸다.
“단주님, 목욕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어.”
밖으로 나온 약철빙은 곧 욕통이 있는 목간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연 호위가 앞으로 저 앞을 지키시오.”
이 호위의 말에 비강은 목간 앞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심심하군.”
* * *
저녁때가 되자 중년 여인들은 식사를 준비해 가지고 나타났다.
“주시오.”
이 호위는 커다란 소반을 받아 먼저 안으로 들였다.
“나머지 두 개의 소반은 우리 것이오.”
그의 말에 비강은 양손에 소반을 받쳐 안으로 들어갔다.
약철빙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이 호위와 비강은 그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소반을 올려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밥과 국물, 전, 야채 볶음으로 차려진 제법 괜찮은 식사였다.
식사가 끝이 나자 밖으로 나온 비강은 주전자의 물을 그릇에 담아 소금으로 이를 닦고 입안을 헹구었다.
“연 호위는 단주님만큼 깔끔하오.”
이 호위의 말마따나 약철빙도 그릇에 물을 담아 밖으로 나오더니 소금으로 이를 닦고 입안을 헹궈 냈다.
잠시 후 중년 여인들이 다시 나타나더니 바깥에 놓인 소반을 챙겨 돌아갔다.
“오늘 밤은 내가 축시 전까지 호위를 설 터이니 연 호위가 축시부터 호위를 서시오.”
“알겠소.”
“그럼 먼저 방으로 들어가 쉬시오.”
이 호위의 말에 비강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어디로 가는 거요?”
“목욕을 하고 싶소.”
허어…….
“정말 깔끔한 사람이로군.”
* * *
비강은 누군가 문 앞으로 다가오는 소리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 호위, 교대할 시간이오.”
“준비해 나가겠소.”
무복을 입고 병기를 챙긴 비강은 밖으로 나와 집무실 앞에 섰다.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우며 비강의 귀로 들려왔다.
스으으…….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비강은 바로 단전을 열었다.
하얀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몸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나 운기행공을 하던 비강은 하얀 안개를 갈무리하곤 눈을 떴다.
시퍼런 안광이 빛을 내뿜었다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릴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비강은 안쪽의 인기척 소리를 들었다.
‘단주가 일찍 일어났군.’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약철빙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별다른 말 한마디 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비강도 말없이 뒤를 따라 걸었다.
집무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공터에 도착한 약철빙은 풀밭에 정좌를 하고 앉아 운기행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