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화
제19화. 함정과 죽음(1)
“북산대마가 평요 서쪽의 천야평에 나타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옥돈조, 녹양조, 은계조가 지금 추격 중에 있습니다.”
“적룡조는 평요 동쪽으로 이동하는 수상한 무리를 뒤쫓고 있습니다.”
산서성 평요 지부를 임시 본부로 정한 약철빙은 급박하게 올라오고 있는 보고를 받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자를 사로잡아야 해요. 천야평 부근에 그자를 포위할 만한 장소가 어디 없나요?”
북산대마와 수상한 무리는 서로 반대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중요한 쪽은 북산대마였다.
약철빙의 질문에 북산대마의 살수에서 살아남은 평요 지부의 무인 하나가 지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천야평에서 오른쪽으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 세 방향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호로곡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북산대마를 몰아넣는다면 넉넉하게 사로잡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그럼 청룡대는 천야평 우측, 현무대는 좌측에서부터 북산대마를 호로곡으로 몰아넣으세요.”
“알겠소.”
“훌륭한 계책이오.”
가슴과 등에 푸른색과 검은색의 가죽을 덧댄 무복을 입고 있는 청룡대와 현무대의 대주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이 보기에도 약철빙의 판단은 자못 옳았다.
무력대의 대주들은 순찰단주와 직책에 차이가 없었으나 이번 일의 책임자가 약철빙이라 순순히 명령을 받아든 것이다.
무력대가 평요 지부를 떠나고 난 후 약철빙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렸다.
호위를 위해 방 안에서 서 있던 비강은 지부의 무인이 지적한 호로곡을 살폈다.
‘만약 북산대마가 이쪽의 움직임을 예측해 천야평에 모습을 드러낸 거라면 저 호로곡은 그자를 잡는 곳이 아니라 북림의 무인들이 죽을 장소야.’
“아무래도 불안해.”
약철빙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비강과 함께하고 있던 온조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북산대마를 호로곡으로 몰아넣기만 한다면 무력대가 충분히 그자를 생포하거나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이 너무 쉽게 풀리고 있어요.”
“직접 호로곡으로 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도로 보는 것보다 직접 호로곡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약철빙의 걱정에 비강이 넌지시 권유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온 조장, 준비해요.”
“예.”
밖으로 나간 온조는 지부에서 쉬고 있는 조원들을 불러내 말과 수레를 끌고 오게 했다.
“길잡이가 없군.”
하지만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호로곡으로 안내할 무인이 없었다.
평요 지부에서 살아남은 무인들은 대부분 무력대와 순찰조의 연락과 길잡이를 위해 나갔고 지부에 남아 있는 무인들은 두 명밖에 없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지부를 비워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정보가 들어오면 연락을 할 무인은 남겨 놓아야 했다.
“제가 이쪽 지리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마침 흑견조의 조원인 양당원이 아는 체를 하며 나섰다.
“좋아, 양 조원이 말을 타고 앞장서.”
온조는 자신의 말을 양당원에게 양보했다.
양당원이 먼저 말을 몰아 달리고 약철빙과 비강이 달려갔다.
마지막은 조장과 조원들을 태운 수레가 약철빙과 비강의 뒤를 따랐다.
* * *
타닥, 타닥……!
평요의 저자를 벗어나 산길을 한참이나 달리던 양당원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양당원의 대답이 기가 막혔지만 길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수레에서 내린 조원들은 길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연 조원도 얼른 길을 찾아봐.”
약철빙의 말에 비강도 길을 찾기 위해 산길을 따라 말을 달렸다.
조원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그는 말안장에 걸어 놓은 봇짐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하오문에서 받아 온 지도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십여 장을 넘기자 산서성을 그려 놓은 지도가 나타났다.
‘호로곡이라…… 호로곡…… 이런.’
지도에 호로곡은 표기가 되어 있었으나 평요 지부에서 확인한 지도처럼 길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봇짐에 지도를 집어넣은 비강은 눈을 감고 기감을 넓혀 인기척을 찾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저 멀리서 괭이질 소리가 들려왔다.
비강은 빠르게 말을 몰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화전민으로 보이는 노인이 밭에서 흙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장, 길 좀 물읍시다. 호로곡이 어느 쪽에 있습니까?”
노인은 비강이 말을 달려온 길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쭉 나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가는 길과 왼쪽으로 가는 길이 나타날 거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 칠팔 리쯤 가다 보면 소나무 십여 그루가 옹기종기 몰려 있는 곳이 나타날 것이고. 그 길을 따라 다시 십 리쯤 가 보시오.”
“고맙습니다.”
비강은 말을 재촉해 단주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길을 찾았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약철빙에게 보고한 비강은 조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먼저 온조를 시작으로 조원들이 차례로 돌아왔다.
조원들이 모두 도착하자마자 비강이 선두로 나섰다.
노인이 말한 대로 말을 달리다 보니 정말 소나무 십여 그루가 서 있는 사잇길이 나타났다.
비강은 말 머리를 왼쪽으로 돌렸다.
* * *
크하하하하…….
허연 백발을 휘날리는 장대한 체구의 노인이 광소를 토해 내며 긴 철봉을 마구 휘둘렀다.
크악! 아아악!
철봉에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서진 무인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기화이초들이 자잘하게 깔려 있는 호로곡의 땅바닥에는 이미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가슴과 등에 푸른 가죽을 덧댄 청룡대의 무인들, 검은 가죽을 덧댄 현무대의 무인들, 그리고 검은 무복과 비단 무복의 순찰조원들과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백건적이었다.
“포위망을 뚫어라!”
청룡대의 대주 양호는 하얀 파도처럼 밀려오는 백건적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소리쳤다.
“대주를 따르라!”
일백 명의 청룡대 대원 중 살아남은 육십여 명의 대원들이 대주의 양옆과 뒤로 따라붙어 두텁게 에워싼 포위망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악! 아악……!
검과 도에 베이고 창에 찔린 백건적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러 대며 풀밭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청룡대의 대원들도 사방에서 파고드는 병기에 베이고 찔려 하나둘씩 바닥에 몸을 뉘었다.
“양 대주! 뒤!”
앞을 가로막은 백건적들을 베어 내던 양호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현무대주 무석손의 외침 소리에 황급히 신형을 비틀었다.
깡!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북산대마의 철봉과 양호의 검이 강하게 충돌했다.
크하하하…….
“백도 정파의 변절자들을 모두 죽여라!”
크흡!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주르륵 밀려난 양호의 눈에 조원 하나가 철봉에 머리가 깨져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북산대마는 오 년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돌아왔다.
오 년 전 저자를 잡기 위해 출동했던 양호는 북산대마의 무공이 훨씬 더 고강해졌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철저하게 속았어.’
계책대로 순찰조들과 함께 북산대마를 호로곡으로 몰아넣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북산대마를 절벽으로 조금씩 포위해 가는 순간 백건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 사십여 명이었으나 어느새 호로곡의 입구를 가득 메우며 백건적들이 몰려들었다.
“대주! 우리가 포위망을 뚫겠습니다!”
옥돈조의 공손황이 살아남은 조원들과 함께 포위망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악!
공손황의 검에 백건적들이 연이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에 힘을 얻은 양호도 청룡대의 대원들 속에서 미친 호랑이처럼 날뛰고 있는 북산대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북산대마!”
무인들의 머리를 부수고 복부를 꿰뚫던 북산대마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양호를 향해 마주 신형을 날렸다.
* * *
멀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적입니다.”
비강이 먼저 말의 배를 차며 달려가고 그 뒤를 약철빙과 흑견조가 급하게 따라붙었다.
‘역시, 함정이었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순찰단과 무력대가 북산대마를 호로곡으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 그자가 유인을 한 것이다.
들려오는 소리로 볼 때 적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말을 몰아 호로곡 입구에 도착한 비강은 수백 명이 어울려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싸움터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들어가자.”
다그닥, 다그닥.
비강은 말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을 몰아 싸움터 안으로 들어갔다.
풀밭을 나뒹굴고 있는 시신들이 하나둘씩 눈 안으로 들어온다.
“빌어먹을!”
뒤늦게 호로곡 입구에 도착한 약철빙과 흑견조도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싸움터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저들을 구해야 해. 구해 내지 못하면 전멸이야.”
단번에 싸움의 상황을 파악한 약철빙은 온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러나 온조 또한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적들은 대충 어림잡아도 사백 명이 넘어 보였고 아군은 채 일백오십 명도 남지 않았다.
특히 아군 속에서 날뛰고 있는 허연 백발의 북산대마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온조가 대답이 없자 약철빙은 말에서 내려 검을 빼 들었다.
자신 혼자만이라도 저들을 구하리라.
그분에게 배운 무공으로 저들을 구하리라.
막 경공을 펼쳐 싸움터로 달려가려던 그녀는 말에서 내리고 있는 비강을 발견했다.
“연 조원!”
약철빙은 비강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무공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 *
비강은 풀밭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안아 들고 있었다.
“염 소저…….”
복부가 뚫려 있는 염화영을 안아 들은 비강은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파르르 힘겹게 눈을 뜬 염화영이 비강을 알아보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올 줄 알았어.”
“조금만 참으시오. 내가 얼른 의원에게 데려가겠소.”
“틀…… 렸어. 북산대마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더라고.”
“남들 앞에 나서지 말라고 하더니 본인이 먼저 앞서 나가면 어쩌자는 거요. 내가 앞으로는 누님이라 부를 테니 조금만 참으시오.”
염화영은 미소를 지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비강은 얼굴을 손으로 가져다 댔다.
피 묻은 그녀의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너 같은…… 동생이…… 있었어. 그놈이 죽어 가며…… 나보고 오래 살라고…… 했는데.”
“염 소저는 오래 살 거요.”
비강의 뺨을 어루만지던 염화영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를…….”
비강이 귀를 입가에 가져다 대자 그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 운곡을…… 믿지 마.”
“……그리하겠소, 소저.”
“다행…… 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비강은 염화영의 얼굴을 품에 안았다.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눠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신과 가장 친했던 사람이었다.
길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경공으로 달려왔더라면, 그렇게 했다면 염화영은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잘 가시오.”
비강은 품에 안고 있던 염화영을 천천히 풀밭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왼쪽 어깨를 잡아 뜯었다.
부욱!
목에서부터 소매에 이르는 무복이 뜯겨 나갔다.
헝겊을 손에 쥔 비강은 그것으로 말의 눈을 가렸다.
“무서워하지 마.”
말 위에 오른 비강의 모습을 약철빙과 조원들이 지켜보았다.
“어떻게 하려고?”
“나의 전쟁이니 끼어들지 마시오.”
그 말을 남긴 비강은 말의 배를 발로 찼다.
“연 조원!”
“가자!”
히히히힝!
다닥, 다닥, 다닥!
눈이 가려진 말은 요란한 울음소리와 함께 싸움터를 향해 맹렬하게 달렸다.
말발굽이 땅을 찰 때마다 풀과 흙이 튀어 올랐다.
차창! 끼릭!
검과 철봉이 합쳐지고 긴 창이 오른손에 쥐였다.
비강을 태운 말은 무력대와 순찰조를 몰아붙이고 있는 백건적의 포위망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스걱! 스걱!
백건적들의 머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