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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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화
제18화. 북산대마(2)
허허, 허허허, 허허…….
하도 어이가 없어 실없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악추산을 단번에 제압한 고수가 전음을 모른단 말인가?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예. 아저씨가 전음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저씨는 또 누군가?”
“있습니다. 그런 아저씨가.”
“전음은 내공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무공의 일종으로 전음입밀이라고 하네. 하나 내공이 약한 자는 전음을 시전할 수 없고 내공이 충만한 자라 하더라도 전음을 시전하기는 매우 어렵다네. 전음 중에는 천리전성이라는 아주 대단한 무공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자는 아직까지 만나 보지 못했네.”
“천리전성은 천 리까지 전음을 보내는 겁니까?”
“아닐세. 그냥 아주 멀리까지 전음을 보낼 수 있을 것이나 정확한 것은 나도 모른다네. 그 외에 육합전성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 또한 내가 알지 못하네.”
‘전음이라…… 전음…….’
전음은 반드시 필요한 무공은 아니지만 알아 두면 사용할 때가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전음을 시전하지는 못하나 구결은 알고 있네. 괜찮다면 그 구결이라도 들려주고 싶네만.”
고민을 하고 있는 비강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온조가 뜻밖의 호의를 보였다.
“아, 들려주십시오.”
“무공구결이라는 것은 숨은 뜻을 잘 파악해야 하네. 나 또한 그 풀이가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니 구결만 들려주겠네. 일수(一水)는 대수(大水)가 되고 대수는 십수(十水)로 나뉘며 십수는 만수(萬水)가 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구결을 전해 들은 비강은 의미를 마음속으로 음미했다.
“잘해 보게.”
온조는 그 자리를 떠났지만 비강은 그가 자리를 떠나는지도 몰랐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구결을 음미하던 비강의 얼굴이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그게 그렇게 이어지는 거였어.”
* * *
“출동 준비해라.”
오후가 되자 부단주에게 불려 갔던 온조가 돌아와 길 떠날 채비를 준비시켰다.
“이번에 무슨 일입니까?”
“산서에 북산대마가 출현했다는 소식이야.”
온조의 대답에 서둘러 채비를 하던 조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지금…… 북산대마라 하셨습니까?”
부조장 왕준도 무척 놀랐는지 재차 물었다.
“산서성 평요 지부가 북산대마로 보이는 자의 손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어왔어.”
대답을 하는 온조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북산대마라니…… 그자는 우리 순찰조가 어떻게 할 만한 인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자를 추격하다가 목숨만 잃을 겁니다.”
“명령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조는 단주님의 호위를 맡기로 했어.”
“아니. 단주님도 나가시는 겁니까? 게다가 우리가 호위 임무를 맡다니, 단주님의 호위들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쟁쟁한 고수들이 포진해 있는 순찰조들도 많고요.”
온조는 대답을 대신해 턱짓으로 짐을 꾸리고 있는 비강을 가리켰다.
아…….
왕준과 조원들은 대번에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비강은 악추산과의 비무로 인해 은연중에 이미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아니, 석아산의 일이 있은 후로부터 조원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흑견조와 함께하고 있으나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
지금 비강은 바로 그런 위치에 있었다.
“바로 출발하는 겁니까?”
“아니야. 은계조와 적룡조, 옥돈조, 녹양조가 먼저 출발하고 무력대가 그 뒤를 따라 움직일 예정이야. 우리는 내일 아침에 단주님과 함께 출발한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부조장 왕준에게 지시를 내린 온조는 비강에게 다가와 물었다.
“연 조원, 말을 탈 줄 아나?”
말뿐만 아니라 낙타까지 탈 줄 안다.
“예.”
“잘됐군. 자네는 내일 나와 함께 단주님을 양옆에서 호위하게 될 것일세.”
온조는 비강의 불룩한 봇짐을 흘깃 쳐다보았다.
“무겁게 짐을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그것들을 전표로 바꾸게. 그래야 움직이기 편할 테니. 모 조원이 연 조원과 함께 전장을 다녀오게.”
“예. 가시죠, 연 소협.”
비강은 모중악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 * *
순찰단의 숙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던 비강은 십여 명의 호위무사를 대동한 채 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 위로 작은 금관을 쓰고 있는 풍채 좋은 노인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요?”
“아마도 약추완 부림주님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모중악도 노인의 정체는 확실하게 모르는 모양이었다.
‘약추완이 맞겠군.’
노인의 눈은 악추산의 눈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베고, 손주인 자신마저 끊으려 했다.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너의 목을 따 주마.’
* * *
푸르릉, 푸릉―
적갈색의 윤기가 흐르는 털이 뒤덮인 말이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해 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비강은 자신에게 배정받은 말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마치 친구처럼 대하는군.”
단주 약철빙이 하얀 백마를 몰아오며 말했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조원들은 일제히 두 손을 모아 단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온조와 비강은 말을 몰아 단주의 양옆으로 붙어 서고 조원들은 수레에 올랐다.
성을 빠져나온 흑견조는 산서로 향하는 길을 잡아 빠르게 달렸다.
* * *
한참 동안 빠르게 말을 달리던 단주가 속도를 늦추자 양옆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온조와 비강도 속도를 늦췄다.
“말을 아주 잘 다루는군.”
“제가 말을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이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겁니다.”
비강의 대꾸에 단주의 눈빛은 이채를 띠었다.
“보기보다 낭만적이군. 연 조원은 내가 굳이 산서로 향하는 이유를 알고 있나?”
짐작은 해 보았다.
북산대마를 추격해 제거하는 일이라면 순찰조와 무력대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에 부단주도 아니고 단주가 직접 나섰다.
석아산 백건적의 우두머리는 남궁세가의 잔당이었고 북산대마는 소림의 장경각주라고 했다.
“산서에 북산대마뿐만 아니라 백건적도 출현했을 겁니다. 아니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또 다른 잔당들이 출현했거나.”
약철빙은 진정으로 놀랐다.
이 낭인은 무공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머리도 굉장히 잘 돌아간다.
온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입니까? 단주님.”
“백건적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잔당으로 보이는 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심각한 상황이로군요.”
“근래에 들어 가장 심각한 일일지도 몰라요. 해서 상부에서 그 내막을 알고 싶어 해요.”
약철빙은 늦췄던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녀의 양옆으로 온조와 비강이 따라붙고 그 뒤를 조원들을 태운 수레가 달렸다.
드르륵, 드륵…… 덜컹, 덜컹…….
말들과 수레바퀴의 요란한 소리가 한 시진이나 이어진 끝에 흑견조는 관도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객잔 앞에 멈춰 섰다.
“어서 옵쇼!”
활기찬 목소리의 점소이들이 말을 끌고 가고 흑견조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면을 주문한 그들은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상인들과 행인들, 그리고 병기를 휴대한 강호인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며 요리와 술을 즐기고 있었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악가의 악추산 소협이 이름 없는 낭인에게 일방적으로 깨졌다고 하더군.”
“뭐야? 그게 정말인가?”
“확실한 건 나도 모르지만 서안에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네.”
강호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약철빙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필이면 악추산 소협이라니. 그 낭인도 참 앞날이 답답하게 생겼군.”
“그러게나 말일세. 악추산 소협은 약추완 대협이 애지중지하는 외손자가 아닌가.”
약철빙은 담담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는 비강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걱정해야 할 거야. 부림주는 보기보다 속이 좁거든.”
‘정말 콩가루야.’
비강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흉을 보고 있는 약철빙이 참으로 우스웠다.
* * *
탁!
“아, 이놈의 모기 새끼들.”
무더운 날씨임에도 조원들은 불가에 모여 앉아 모기를 쫓았다.
“쑥을 좀 더 넣어 봐.”
모기들이 달려들지 않게 불을 피워 놓았지만 한여름 밤의 극성스런 모기들을 쫓아내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그런데 연 조원은 어디에 갔나?”
모중악이 높게 자란 쑥을 베어 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온조가 물었다.
“아까 전에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자리를 자주 비우는군.”
“속이 안 좋은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온조가 비강을 찾으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약철빙이 따라 일어서며 손을 저었다.
“내가 가 볼게요.”
그녀는 비강이 들어간 숲길을 따라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짙은 어둠 속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빛을 내는 반딧불이 날아다닌다.
어둠 속을 걸어 들어가던 약철빙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는 두 개의 광채를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섬뜩해 그녀는 황급히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잡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지만 곧 번뜩이던 광채가 사라지고 비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 조원을 찾으러 나왔어. 여기서 뭐 해?”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쉰 약철빙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비강은 물가에 자리 잡고 있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다가가 조금 떨어져 앉은 그녀도 달빛을 받아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았다.
“작년인가 순찰단에 묘한 정보 하나가 들어왔었어. 서장에서 활동을 하던 서장검괴라는 노괴와 제자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정보였었지.”
약철빙은 비강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상단과 연결이 되더군. 상인들의 얘기로는 원래 군인이었던 젊은 낭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낭인의 등과 허리에는 철봉과 검을 차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 낭인은 아마도 연 조원이었겠지?”
“맞습니다.”
“그래. 그럴 거라 확신했어. 하나만 묻지. 우리 북림에 들어온 이유가 뭐지?”
천하제일인.
아저씨는 이왕 무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면 천하제일인이 되어 보라고 했다.
천하제일인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은 조금 바뀌게 되었다.
천하제일인이 되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싶었다.
보아라. 너희들이 죽이려 했던 내가 이제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그런 후에 그들에게 죽음을 내릴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은운곡에 들어갔더니 북림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사실 강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라 어디로 가든 상관은 없었습니다.”
비강의 대답은 조금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좋아. 그럼 앞으로 내 옆에 있어. 부림주는 정말 잔인한 사람이야. 계약이 끝나고 다른 삼패에 적을 두지 않는 한 어떻게든 보복을 하려 들 거야.”
“그런데 왜 제게 이런 호의를 보이시는 겁니까?”
약철빙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처음 연비강을 보는 순간 그분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했었다.
혹시나 연비강이 그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여 고심을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분은 이곳에 연고가 단 하나도 없었다.
또한 그분과 어린 조카는 지독한 독에 중독이 되어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기적이 아니고서는 살아 있을 수가 없겠지. 빌어먹을 년.’
그 빌어먹을 약하림이 지아비와 아들에게 독을 먹였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따뜻함을 전해 주던 그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죽어 갔다.
후우!
긴 한숨으로 마음을 다잡은 약철빙은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그만 일어나시지요. 잠을 자야 내일 일찍 출발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왼쪽 팔뚝에 큰 점이 하나 있나?”
“없습니다.”
비강은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 주었다.
검상이 가로지르는 팔뚝에는 작은 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