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화
제17화. 북산대마(1)
“원래 북산대마는 소림의 장경각주였어요. 소림은 사패에게 항복을 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강호를 떠돌며 저항을 이어 가고 있는 인물이에요.”
“…….”
“소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혔던 고수라 무공도 대단하지요. 오 년 전에 산서 북산에서 처음 모습을 보였는데 북림 태원 지부의 고수 오십여 명을 홀로 몰살시켰어요. 거기다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북림의 고수 오십여 명을 더 죽였고요. 죽은 자들 중에는 림주의 직속 수하들까지 둘이나 섞여 있어 북림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대단한 고수인 모양이구려.”
말은 그렇게 받았지만 비강은 강호 고수들의 무공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 눈에 찰 정도로 대단한 고수를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금 눈에 띄는 사람을 꼽으라면 은운곡의 초로인과 부곡주 정도였다.
“아마도 북림에서는 무력대까지 동원할 거예요. 제 예상으로는 청룡대가 가장 유력하지만 현무대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번에는 확실하게 북산대마를 잡아야 하니까요.”
“나쁘지 않은 정보군. 하나 나는 그런 일에 크게 관심이 없소.”
하아…….
백화는 비강의 대꾸에 허탈함을 느꼈다.
보통 강호의 고수들이라면 응당 다른 고수들이나 적들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여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른 강호의 고수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름이 뭐요?”
“네?”
“원래 이름이 뭐냐고 물었소.”
“경주, 장경주라고 해요.”
비강은 장경주에게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루에 들어와 처음 짓는 미소였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하오문은 자신에게 필요한 조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하오문의 정보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주 즐겁게 술을 마셨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봅시다.”
“지금 나가시려고요?”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비강의 모습에 장경주는 몹시 당황해했다.
“그럼, 장 소저와 밤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요?”
“그런 건 아니지만…….”
피식 미소를 지은 비강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그녀는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녀는 아니지만 저런 사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비강이 방을 나가고 난 후 장경주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내였다.
‘목적도 모르겠고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드르륵…….
그때, 방문이 열리며 조장 온조가 안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온 온조는 장경주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하오문의 북림 지부장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되었어요. 앉아요.”
자리에 앉은 온조는 비강이 비운 술잔에 술을 채웠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내였습니다. 다만 지부장님 말씀대로 대단한 고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네, 그렇지요.”
후우!
온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오문은 무공이 있음에도 떳떳하게 무공을 익힐 수 없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몰락할 당시 수많은 제자와 가인들은 문파와 가문의 무공비급을 지닌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무공비급 중에 상당수가 하오문으로 흘러들어 왔다.
하지만 사패는 자신들의 허락 없이 누구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하오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개방의 무공을 익힌 고수들을 강호에 내보내 작은 문파를 세웠었다.
멸문.
개방의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 세운 문파는 동천에 의해 멸문을 맞이했다.
“하오문이 떳떳하게 세상에 나가려면 사패의 주인과 자웅을 겨룰 무신이 곁에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뿐이에요.”
* * *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들어 간 비강은 염화영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마주했다.
“어제저녁에 기루에 갔었다며?”
“소문 한번 빠르군. 그 소문은 또 언제 들었소?”
“어젯밤에 너 보러 흑견조 숙소에 찾아갔는데 조원 하나가 자신을 빼놓고 갔다고 입을 삐죽이더라.”
“내가 기루에 찾아가든 말든 그게 염 소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오?”
염화영은 식탁 너머로 몸을 기울인 채 비강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다 동생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그런 곳에 자주 드나들면 화류병에 걸려 거시기가 썩어.”
‘정말 대단한 여자야.’
비강은 무덤덤하게 그녀의 말을 받아넘겼다.
“술만 마시고 왔소.”
“와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네. 그 말을 나보고 지금 믿으라는 거야?”
“믿기 싫으면 말고. 저리 가시오, 식사해야 하니까.”
염화영은 아예 비강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석아산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며? 소문을 들으니 홀로 팔십여 명을 휩쓸었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식당 안의 다른 순찰조들도 식사를 하며 비강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불쌍해 나선 것뿐이오.”
“앞으로 조심해. 너무 눈에 띄면 북림에서 집요하게 달라붙을 거야.”
“그럽디다.”
하하하하…….
염화영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비강은 식당 문 쪽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악추산이 조원들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미라 부르기도 싫은 약하림의 다른 아들, 바로 그놈이었다.
조원들과 웃고 떠들며 안으로 들어서던 악추산은 조원 하나가 턱짓으로 비강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자, 고개를 돌리곤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흑견조에 대단한 고수가 들어왔다고 하더니 과연 용모부터 범상치 않군그래.”
비강은 시선을 돌려 식사를 이어 나갔다.
‘저렇게 표정에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놈은 오랜만이야.’
이에 악추산은 짙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비강이 앉아 있는 식탁을 향해 다가왔다.
“이름이 연비강이라고?”
비강은 대답 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작은 공을 세웠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제야 비강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이놈은 왜 처음 보는 자신에게 이런 도발을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시기와 질투이리라.
미미한 살기까지 흘리는 악추산을 마주하던 비강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상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 준다.
그리고 그것은 은근히 바라고 있던 바이기도 했다.
원수의 핏줄을 통해 명성을 높이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 짧아. 상대방을 존중해 줘야 너도 그만한 대우를 받는 거야.”
탕! 와장창……!
“하찮은 낭인 따위가 감히!”
악추산은 식탁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식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고 탕국물과 요리가 쏟아졌다.
이자가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하찮은 낭인 따위.
“이 새끼가 밥 먹는데 왜 지랄이야!”
하찮은 낭인이라는 악추산의 말에 식사를 하고 있던 염화영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뭐야? 이 계집은.”
분위기가 삽시간에 험악하게 변해 가자 식당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만하게, 악 소협. 같은 순찰단 식구끼리 무슨 짓인가.”
그때, 온조가 조원들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싸움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치솟아 있던 악추산은 온조의 만류도 무시해 버렸다.
“어디 낭인들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 나와라.”
그 말을 끝으로 악추산은 등을 돌려 식당을 나갔다.
“저 새끼가…….”
“그만하시오. 저놈이 노리는 건 나니까 내가 상대하겠소.”
비강은 염화영의 어깨를 잡으며 막아섰다.
“……알았어, 꼭 이겨.”
염화영은 비강의 얼굴 앞으로 주먹을 불끈 쥐여 보였다.
―악추산은 발검이 대단히 빠르고 날카롭소. 조심하시오.
응?
막 식당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비강은 귓속으로 들려오는 모깃소리 같은 목소리를 듣고는 발을 멈췄다.
‘이건 또 뭐지?’
식당 안을 둘러보니 구석에 앉아 있는 공손황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한 수법이군. 저 멀리서 내 귓속으로 말을 전하다니.’
비강은 전음을 처음 접해 보았다.
“뭐 해? 나가지 않고. 설마 겁나서 그러는 거야? 내가 할까?”
영문을 모르는 염화영의 재촉에 비강은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게 전음이구나. 대단한 고수들이 아니면 시전할 수 없다는 무공.’
바꿔 말하면 공손황은 전음을 시전할 만큼 대단한 고수라는 뜻이었다.
은운곡의 무공비급에도 전음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으나 구결 같은 것은 없었다.
“염 소저, 혹시 전음을 할 수 있소?”
“갑자기 무슨 전음 타령이야? 나도 그런 건 조금 어려워.”
* * *
소문은 바람보다 빨랐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조원들이 발 빠르게 말을 옮기자 순찰단 대부분이 연무장으로 몰려들었다.
‘더 몰려와라, 더.’
연무장 한가운데 비강과 마주하고 있는 악추산은 조원들이 더욱더 몰려들기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대단한 무공을 선보이고 상대방을 망신 주기 위함이었다.
“뭐 하나? 빨리 시작하지 않고.”
하하하하…….
악추산은 예의 그 낭랑한 웃음으로 비강의 말을 받았다.
“이렇게 연비강 소협과 비무를 하게 되어 영광이오.”
하하…….
비강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악추산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를 꺾고 싶은가 보군. 좋아, 조금 더 기다려 주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놈을 죽여 복수를 시작해도 되지만 사천존의 무공을 확인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했다.
멀리 순찰단주와 부단주의 모습을 발견한 악추산의 눈에 기광이 일었다.
‘이제 모일 사람들은 다 모였군.’
“연 소협은 나와 우리 금호조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소. 하여 이렇게 비무를 청하는 바이오.”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는 악추산의 모습에 비강은 피식 비웃음을 지어냈다.
“좋을 대로.”
‘오냐, 지금은 기고만장하지만 곧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살심까지 품은 악추산은 이 장 정도 거리를 벌렸다.
이 정도가 발검과 동시에 적을 베어 내기 가장 좋은 거리였다.
“먼저 병기를 뽑으시오.”
“괜찮으니 어서 시작해.”
“……좋소, 후회하지 마시오.”
자세를 잡고 비강을 노려보던 악추산이 왼손 엄지 첫째 마디로 검을 검집에서 슬며시 밀어냈다.
팍!
찰나의 순간, 그가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느새 뽑았는지 그의 검첨이 오른쪽 어깨를 노리며 쏘아져 들어왔다.
과연, 공손황의 말처럼 악추산의 검은 대단히 빨랐다.
푹―
검첨이 분명하게 어깨를 찌르고 들어가는 순간, 비강의 신형이 악추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뭣……!”
컥! 철퍼덕.
악추산의 목줄을 움켜잡은 비강이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커억! 컥!
땅바닥을 구른 악추산은 허연 물을 토해 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벌떡 몸을 일으켜 또다시 날아들었다.
“놈!”
검이 분열을 하며 비강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쾌(快)로 안 될 것 같으니 환(幻)의 묘리로 덤빈 것이다.
그러나 비강의 눈은 오직 실체만을 좇고 있었다.
퍽!
끄어어…….
단단한 주먹이 악추산의 복부를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갔다.
크크크…….
‘살려는 주마.’
털썩.
악추산은 그대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았다.
터벅터벅…….
비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악추산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치켜올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비강의 귀로 짓눌린 악추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 *
설마 악추산의 무릎을 꿇릴 줄이야.
숙소로 돌아와 앉아 있는 비강에게 조원들은 아무도 말을 건네지 못했다.
악추산의 비무는 조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강은 심지어 병기조차 꺼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지 않았던가.
“따라오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조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비강을 밖으로 불러냈다.
조장은 그를 숙소 근처에 있는 숲으로 이끌었다.
“자네의 무공이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악 소협까지 한 번에 제압할 줄은 몰랐네. 하지만 꼭 그렇게 수치스런 패배를 안겨 줘야 했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우!
“자네는 병기조차 뽑지 않았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내가 자네였다면 병기로 적당히 상대를 해 주다가 어렵게 승리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네. 이제 악추산은 자네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걸세.”
“두렵지 않습니다.”
온조는 비강이 답답하기만 했다.
악추산은 북림이가의 일가인 약가의 혈족이자 부림주의 외손자였다.
“부림주와 약가, 악가가 자네에게 앙심을 품을 것일세.”
“한번 보고 싶군요, 그 부림주라는 자를.”
“이 사람아…….”
온조는 비강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몸조심하게.”
다시 숙소로 걸음을 옮기는 온조의 귓속으로 비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전음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