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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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화
제16화. 기녀
“악양 지부에 도착해 지부장과 회의를 하는 동안 조원들은 전부 저잣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때 연 조원도 저자로 나갔는데 조원들과는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백건적의 추격하기 위해…….”
온조는 악양 지부에서 있었던 일을 시작으로 복귀할 때까지의 과정을 단 한 점도 빠짐없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차분하게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단주는 탁자 위에 놓인 누런 풀잎을 말아 향로 불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후우!
하얀 연기가 단주의 입에서 뿜어 나오고, 그 연기를 맡은 온조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 누런 풀잎은 삼마의 잎을 말린 것이다.
중독이 되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독초였다.
“백건적의 우두머리를 단 일검에 베어 죽였다고 했나요?”
“예. 그때 저는 연 조원의 움직임을 순간적이나마 놓쳤습니다.”
“강호에 신성이 출현했군요. 그 연비강이라는 조원을 보고 싶어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온조가 방을 나갔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잔당들이 힘을 규합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자들이 먼 앞날을 내다보고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찰을 조금 더 강화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각 순찰조에 명령을 하달해 놓았습니다.”
침묵이 잠시 이어지고 바깥에서 온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비강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세요.”
조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비강의 얼굴을 주시하는 단주의 눈빛이 흠칫 흔들렸다.
“흑견조의 연비강입니다.”
단주는 비강의 인사를 받고도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연 조원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단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부단주와 조장은 방을 나갔다.
“아…… 앉아요.”
침착하기만 했던 단주는 무슨 일인지 몹시 당황스런 모습을 보였다.
부단주와 조장은 그것이 이상했지만 명령이니 방을 나가야 했다.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군.’
비강은 담담한 기색을 유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순찰단의 단주는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약철빙.
외할아버지가 되는 자의 둘째 여식이며 자신의 이모가 되는 여인이었다.
잠시 당황스런 모습을 보였던 약철빙은 곧 마음을 추슬렀다.
“이름이 연비강이라고?”
“그렇습니다.”
“하면 원래 성씨가 연씨였던가?”
“아닙니다. 제 성과 이름은 저를 길러 주신 아저씨가 붙여 주셨습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누구지?”
“저도 아저씨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열네 살쯤 되었을 때 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비강의 대답에 약철빙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듣자 하니 군에 있었다지?”
“그렇습니다. 아미르 바찬 장군 밑에 있었습니다.”
아미르 바찬은 비강이 처음 군에 들어갔을 때 작은 부대를 지휘하던 장군이었다.
그리 뛰어난 장군은 아니었고, 자신이 입대한 지 얼마 후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조금도 망설임 없는 비강의 대답에 약철빙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르 바찬이라는 자는 모르지만 저렇게 자신 있게 대답을 하는 것으로 보아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공은 아저씨라는 분이 가르쳐 준 것인가?”
“무공의 기본을 그분께 배웠고 군에서 무공을 가다듬었습니다.”
“무공이 고강하다고 하던데 우리 북림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아직 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북림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림주 풍천양을 만나 보고 싶었다.
약철빙은 비강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얼굴은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그분의 모습이 저 얼굴과 많이 겹쳐졌다.
‘빌어먹을 년.’
탁자 밑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던 약철빙은 표정을 풀며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저도 정확한 나이를 모릅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아저씨와 떠돌아다녀 해가 가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래. 그만 나가 봐.”
비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크크크…….
숙소로 돌아오는 그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천하제일인이 되려면 사천존을 넘어야 한다.
사패 중 어느 누구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원수들이 있는 북림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유리했다.
그것들을 관찰해 처절한 복수의 기회를 노릴 수 있을 테니까.
* * *
“미뤄 두었던 환영식을 해야 하지 않겠소. 같이 나갑시다.”
숙소로 돌아온 비강을 부조장 왕준이 잡아끌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어허,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자니까 그러네. 내가 아주 좋은 곳으로 안내할 테니 연 조원은 따라만 오시오.”
이번 일로 크게 한몫 단단히 챙긴 왕준이 은혜를 갚고 싶다 청해 오기에 비강은 못 이기기는 척 따라나섰다.
그를 통해 북림에 대한 정보 역시 더 알아볼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어디 가십니까? 부조장.”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곁으로 모중악이 따라붙었다.
“연 조원의 술값은 내가 책임질 것이지만 자네 술값은 책임 못 져.”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부조장님과 연 소협의 술값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정말인가?”
왕준의 반색에 모중악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연 소협 덕분에 전리품까지 챙겨 팔았는데.”
그렇게 세 사람이 북림을 나서려는데 이번에는 온조의 목소리가 그들을 붙잡았다.
“나도 같이 가지. 술은 내가 사겠네.”
“이야! 오늘은 푸짐하게 먹겠구먼.”
비강은 저잣거리로 이끄는 온조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 * *
저잣거리로 들어선 왕준은 높이 솟은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저 기루의 기녀들이 아주 어여쁩니다. 저곳으로 가지요.”
“저곳보다는 백월루가 낫지 않겠나?”
“아니, 그곳은 서안에서 가장 비싼 기루가 아닙니까. 설마 그 기루에서 술을 사신단 말씀입니까?”
왕준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연 조원을 위해 술을 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곳은 엄청나게 비싼 기루인데…….”
“그래서 싫은가?”
하하하…….
“설마요, 어서 갑시다.”
온조가 조원들을 데리고 간 곳은 휘황찬란한 불을 밝히고 있는 큰 기루였다.
이 층의 큰 건물 뒤쪽으로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등불을 내건 작은 배들이 밤놀이를 나온 젊은 남녀들을 태워 노닐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조장님. 그동안 발길이 뜸하셔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후덕하게 생긴 중년 여인이 온조를 반겨 맞아 안으로 안내했다.
“아이들을 부를까요?”
“먼저 식사를 할 터이니 요리와 술을 내오게.”
“잠시만 기다리셔요. 바로 준비해 올릴게요.”
기루에 대해 잘 모르는 비강도 이곳이 꽤나 고급스러운 장소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군에 있을 때는 억지로 장군들에게 이끌려 기녀들이 있는 곳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으나 분위기는 이곳과 사뭇 달랐다.
그곳에서는 짧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입구에서부터 손님들을 유혹했으나 이곳은 그런 여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 기루는 고관대작들이나 부유한 고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요리부터 시작해 기녀들도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를 것일세.”
온조의 말처럼 여인들이 차려 내오는 요리는 십여 가지가 넘었고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 요리에서부터 산짐승들을 재료로 사용한 요리까지, 산해진미가 상 위에 펼쳐졌다.
“한 잔 받게.”
온조가 먼저 술병을 들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를 이런 곳까지 데려온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허어, 자네는 참으로 쉽지 않은 사람이로군.”
쪼로록…….
조장은 상 위에 놓인 네 개의 잔에 술을 전부 채웠다.
“이유 같은 것은 없으니 편하게 마시게.”
비강은 온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자리를 환영의 의미로 마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낭인을 위한 자리치고는 너무 과분한 처사였다.
“자, 고리타분한 말은 다음에 하고 어서 한 잔 쭉 들이켭시다.”
왕준이 잔을 들어 올리자 비강도 잔을 들어 올렸다.
술잔이 계속 채워지고 조장과 조원들은 열심히 산해진미를 즐겼다.
“아이들을 들일까요?”
“그리하게.”
어느 정도 배가 찰 때쯤 기녀 네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녀 중 한 명은 가슴에 금을 안고 있었다.
“참으로 환하구나. 세상에 이런 미녀들은 다시없을 것이야.”
왕준은 기녀들의 미모에 감탄을 하며 침까지 꿀꺽 삼켰다.
“오늘은 연 조원을 위한 자리니까 연 조원부터 골라 보시오.”
비강은 왕준의 말에 금(琴)을 안고 있는 기녀를 가리켰다.
그녀의 낯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저 여인으로 하겠소.”
으하하하하…….
비강이 금을 안고 있는 기녀를 지목하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왕준과 모중악이 대소를 터뜨렸다.
“역시, 연 조원은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소. 하필이면 저 기녀를 고르다니.”
기녀 세 명은 둥글고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금을 품고 있는 여인은 갸름한 얼굴이었다.
기녀들이 각자 짝을 정해 앉고 가슴에 금을 품고 온 여인은 자리에 앉아 금을 타기 시작했다.
띠링! 띵! 띵!
흥겨운 금음에 맞춰 조장과 조원들은 기녀가 채워 주는 술을 마구 들이켰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왕준이 먼저 옆에 앉은 기녀의 품에 손을 집어넣으며 짓궂은 장난을 쳤다.
모중악도 덩달아 장난을 치며 술잔을 비웠다.
“대협께서는 혹시 제가 마음에 차지 않으시는지요?”
금을 타던 기녀가 비강의 잔에 술을 채우며 넌지시 물었다.
“아니오. 원래 술을 자주 즐기지 않는 편이오.”
술잔을 비운 비강은 기녀의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목소리도 무척이나 익숙했다.
언젠가 한번 들어 본 목소리 같았다.
“기명이 백화라 하였소?”
“그러하옵니다, 대협.”
“나는 대협 같은 것이 아니니 그냥 연 소협이라 부르시오.”
껄껄껄…….
“우리 명월이가 채워 주는 술은 특히 맛이 좋구나.”
온조는 취기가 올랐는지 평소와는 다른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 그는 술에 취한 척하며 연신 비강을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단주는 비강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비록 무공이 고강하다고는 하지만 순찰단에도 무공이 고강한 젊은 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단주는 어째서인지 자신을 따로 불러 비강을 살피라 명했다.
‘연비강이라는 자의 성정이 어떠한지 알아봐 주세요.’
미녀와 술이 옆에 있으면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연비강은 다른 자들과 사뭇 다른 사람이었다.
‘남의 밑에서 명령을 받들 사람이 아니야.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만약 내 짐작보다 무공이 더 대단하다면 한 지역의 패주가 될 사람이야.’
“연 조원, 뭐 하고 있나? 어서 마셔야지.”
온조는 직접 비강의 잔에 술을 연거푸 채워 주며 그를 관찰했다.
* * *
조장과 조원들이 각자 기녀를 끼고 방으로 들어갔다.
백화는 비강을 위해 작은 술상을 내오고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쪼르르…….
백화가 술병을 잡기 전에 비강이 먼저 술병을 잡아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런 일도 하는 거요?”
비강의 질문에 백화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무슨 말씀이온지 소첩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소.”
백화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조차 열지 못했다.
비강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술잔을 비웠다.
“정말 연 소협은 저의 예상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분이군요. 실은 석아산의 일을 듣고 연 소협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 기녀로 위장을 했어요.”
“무엇 때문에 나를 알고 싶은 거요?”
“죄송해요. 아직은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요.”
백화라는 기녀는 전에 마차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하오문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무슨 이유에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몰라도 자신을 염탐하는 짓이 몹시 불쾌했다.
“경고하겠소. 나를 이용하려 하지 마시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연 소협을 위해 중요한 정보를 전해 줄 수 있어요. 우리가 연 소협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디, 무슨 정보인지 말해 보시오. 말과 달리 중요하지 않다면 경을 치게 될 것이오.”
“……내일이나 모레쯤 북림에 큰일이 생길 거예요.”
“큰일이라니?”
“산서에 북산대마(北山大魔)가 출현했어요.”
북산대마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나 별호에 대(大)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