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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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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화

제15화. 마고(2)

 

 

 

짐작대로 소리 나는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무인들이 산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후발대로 산을 올라오는 무인들은 삼십여 명쯤 되었는데 전부 깨끗한 하얀 무복 차림이었다.

‘면사 여인?’

산을 오르는 무인들의 중앙에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 여인이 저들의 우두머리구나.’

잠시 후 조원들도 여인을 알아보고는 저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강호제일미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저 여인은 누굽니까?”

비강이 정체를 묻자 모중악이 호들갑을 떨며 대답했다.

“아니, 연 소협은 벽사군 소저조차 모른단 말이오? 그 아름다움이 천하를 진동한다 하여 강호제일미라 불리는 대단한 미인이외다. 게다가 북림이가(北林二家) 중 일가인 하남 벽가의 영애가 되시는 분이오.”

모중악의 설명에 비강은 하오문에서 전해 들은 북림이가를 떠올렸다.

북림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개의 가문이 있다고 했다.

한 곳은 부림주 약추완의 가문인 약가이고, 또 한 곳은 하남의 벽가였다.

그중 벽가의 딸이 북림의 천존 풍천양의 제자로 들어가 청마조 조장을 맡고 있다 했는데, 그게 바로 눈앞의 벽사군인 듯싶었다.

옆에 있던 모중악은 강호제일미라는 말에도 덤덤한 비강의 모습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미모도 미모지만 그 마음씨 또한 천하를 떨쳐 울린다 하여 마고(麻姑)라는 별호가 붙었소이다.”

“마고? 마고는 또 뭐요?”

조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강을 향해 돌려졌다.

그러나 이미 뛰어난 무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조원들은 은근히 비강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고는 이산노모(梨山老母)와 함께 신선이 되신 분입니다. 가진 것 없고 억울한 자들을 위해 애쓰시다가 이산노모께서 그분을 선계로 인도하여 신선이 되셨습니다.”

“그렇군.”

비강은 이어지는 설명을 흘려들으며 조용히 벽사군을 지켜보았다.

 

* * *

 

“반가워요, 조장님. 흑견조가 큰일을 해냈군요.”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벽 조장.”

산채의 마당으로 들어선 벽사군은 먼저 조장 온조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호제일미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아주 맑고 감미로웠다.

온조와의 인사가 끝이 나자 선발대로 왔던 무인 하나가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했다.

무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으나 조금 먼 거리에 있는 비강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내 얘기를 하고 있군.’

이야기를 전부 전해 들은 벽사군은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걷어 올렸다.

와아…….

그녀가 얼굴을 드러내자 조원들은 일제히 나직한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비강은 전혀 아니었다.

‘보름달?’

비강이 짐작하고 있던 벽사군의 얼굴은 강호제일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피부는 분이 묻어날 듯 하얗고 깨끗했으나, 얼굴의 볼살이 통통한 것이 꼭 보름달을 연상케 했다.

‘내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건가?’

얼굴로만 따지자면 차라리 염화영이 벽사군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 분이 연비강 소협이신가요?”

“연비강입니다.”

비강은 조원들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렸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벽사군이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아아…….

주변까지 밝히는 그녀의 눈부신 미소에 조원들의 입에서 의미 모를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 소협처럼 뛰어난 분을 여태까지 몰라뵈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부탁드릴게요.”

“임무에 충실한 것뿐입니다.”

담백한 눈으로 자신을 대하는 비강의 모습이 남달랐는지 벽사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제법 심지가 굳센 사내야. 내 얼굴을 보고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다니.’

여전한 미소로 비강과 마주하던 벽사군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를 내렸다.

“저자가 포로인가요?”

누구에게 하는 질문인지 몰랐으나, 조원 중에 모중악이 냉큼 뛰어나가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이십여 명의 고수 중 한 명입니다.”

벽사군은 기둥에 묶여 있는 포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가 산채에 나타날 때부터 애타게 지켜보고 있던 젊은 포로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 제 사부가 시킨 일입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지은 죄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죽인다고 해서 이미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지는 못하겠지요.”

“소저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비강은 면사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흐릿한 미소를 확인했다.

“당신이 속죄를 하고 싶다면 당신이 죽인 사람들보다 열 배의 사람들을 살려야 할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좋아요.”

벽사군은 기둥에 묶여 있는 젊은 고수를 직접 풀어 주었다.

“이자는 제가 직접 순찰단으로 데려가지요. 그리고 납치되었던 아이들도 우리가 직접 마을에 돌려보내도록 할게요.”

“그렇게 하십시오.”

일방적인 벽사군의 결정이었지만 조장 온조는 순순히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고마워요.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만 내려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이곳을 수색해 보고 내려갈 테니 먼저 하산하십시오.”

남은 무인들은 산채를 수색하기 시작했고, 청마조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산을 내려가려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비강이 입을 열었다.

“벽 조장은 그자의 말을 믿으십니까?”

막 산 아래로 걸음을 옮기던 벽사군이 신형을 돌리며 비강을 쳐다보았다.

예기치 못한 비강의 발언에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곧 그녀 주위의 조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큰소리로 야단치기 시작했다.

“감히!”

“한낱 조원 따위가 조장께서 하시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인가?”

그중에는 비강의 발언에 살기마저 드러내는 무인까지 있었지만 비강은 덤덤히 그녀에게만 시선을 건넸다.

“괜찮아요.”

벽사군은 조용히 조원들을 만류하곤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비강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믿지 않아요. 하지만 믿게 될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자신을 넘어 확신에 찬 그녀의 대답.

그때, 조장 온조가 둘 사이에 급하게 끼어들어 상황을 중재해 왔다.

“소저, 연 조원이 경험이 없어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니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앞으로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연 소협.”

온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벽사군은 그 말을 끝으로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 * *

 

“우리도 그만 내려가지.”

흑견조도 청마조의 뒤를 좇아 며칠간 머물렀던 석아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벽사군의 정체가 뭡니까?”

하하―

비강의 질문에 온조는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찰단에서 인원이 가장 많은 조가 바로 청마조일세. 그리고 벽 소저는 그 청마조의 조장이지. 게다가 저들 중 반 이상은 흉적이나 마인이었다가 벽 소저에게 감복해 항복한 고수들. 그러니…… 그녀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걸세.”

비강은 멀리 앞서 내려가고 있는 청마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벽사군을 에워싸듯 보호하며 내려가고 있는 저들 중에 반수가 항복한 자들이라고 한다.

‘재미없는 일이야.’

힘없고 죄 없는 양민을 약탈하고 죽였던 자들을 믿을 수 있을까?

비강은 저들을 믿지 않았다.

천성이란 절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청마조와 흑견조는 백건적에게 약탈을 당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빠!”

“엄마!”

납치되었던 아이 몇 명이 몰려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울며 달려갔다.

“아이고, 내 새끼.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온 자식들을 끌어안았다.

그런데 젊은 포로의 얼굴을 살피던 마을 사람 하나가 갑자기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이놈! 이 찢어 죽일 놈! 내 아내를 살려 내라!”

“멈추시오!”

청마조의 조원들이 달려드는 사내를 막아섰다.

“이미 이자는 우리에게 항복했소. 그러니 그만 물러나시오.”

병기를 든 청마조가 앞을 막아서자 사내는 물론이고 몰려들었던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그저 붉게 물든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젊은 포로를 죽일 듯 노려볼 뿐이었다.

“이자는 북림에서 응분의 죗값을 치를 거예요. 여러분의 억울함과 분노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만 지난날을 잊고 살아가세요.”

벽사군은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위로하고는 손을 들어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지시에 청마조의 조원들은 전낭에서 은자를 꺼내 마을 사람들에게 서너 냥씩 나눠 주었다.

“북림 청마조의 벽사군 소저께서 조금이나마 당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드리는 것이오.”

울분을 삼키던 마을 사람들은 청마조가 나눠 준 은자를 받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둘 마을 사람들이 흩어지고 청마조는 남은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을 벗어났다.

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강은 젊은 포로에게 달려들던 사내의 뒤를 쫓아 걸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한 초옥에 도착한 비강의 눈에 마당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 두 명이 들어왔다.

사내는 마당에 들어선 비강을 발견하곤 머리를 조아리며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저희 집에 들르셨는지요?”

비강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분하지 않으십니까?”

복수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그럴 만한 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속마음은 알고 싶었다.

으헝…… 헝헝…….

사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그럼 어찌합니까? 제게는, 제게는 저 아이들이 있는데…….”

으헝…… 헝…….

아버지가 목 놓아 울자 마당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들도 울며 달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왜 울어?”

“아버지, 울지 마.”

말없이 사내를 내려다보던 비강은 봇짐에서 은붙이 하나를 꺼내 사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얼마 동안만이라도 넉넉하게 먹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위해 꿋꿋하게 사십시오.”

 

* * *

 

악양 지부에 들러 보고를 끝낸 흑견조는 수레를 타고 북림으로 향했다.

“매번 이번 임무 정도만 되면 금방 부자가 될 텐데 말이야.”

“그렇지. 연 조원,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그 무슨 되먹지 못한 소리인가! 자네들은 억울하게 당한 마을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는가!”

희희낙락하는 조원들을 크게 나무란 온조는 수레에 실려 있는 검 하나를 부조장 왕준에게 내밀었다.

“자네 몫일세.”

그 검은 백건적의 우두머리였던 남궁진이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다.

“감사합니다, 조장.”

그렇지 않아도 조원들의 전리품을 부러워하고 있던 왕준은 좋은 검을 얻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내게 고마워할 건 없네. 연 조원이 사양을 해 자네에게 돌아간 것이니.”

“고맙소, 연 조원.”

어차피 자신에겐 백파가 있으니 다른 병기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비강은 왕준의 인사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레에 기대 눈을 감았다.

‘조그마한 공을 세웠으니 풍천양의 귀에도 내 이름이 알려지려나.’

조원들을 태운 수레는 며칠간에 걸쳐 관도를 달린 끝에 북림에 들어섰다.

 

* * *

 

북림으로 들어온 조원들은 숙소에 들어가 몸을 쉬었지만 조장은 그렇지 못했다.

“부단주께서 찾으십니다.”

조장 온조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부단주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려 했습니다.”

“보고는 자네가 직접 단주님께 전해 올리도록 하게. 같이 가세.”

자리에 앉아 있던 부단주 엄숭하는 몸을 일으켜 온조와 함께 단주의 거처로 향했다.

“흑견조의 조장이 도착했다고 안에 전해 주시게.”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전각에 도착한 부단주는 먼저 안에 전갈을 넣었다.

“들어가십시오, 부단주.”

전각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부단주와 조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곧, 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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