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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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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화

제11화. 백건적(1)

 

 

 

새벽에 잠을 깬 비강은 무복을 갈아입고 병기를 챙겼다.

조원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밖으로 나온 그는 실개천을 건너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을 감고 단전을 열자 웅혼한 기운이 온몸을 휘돌아 퍼져 나가고 근처의 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운기행공을 시작한 지 채 반각도 되지 않아 비강의 몸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스으으…….

잔잔하게 비강의 몸을 감싸고 돌던 하얀 안개는 코와 정수리로 스며들어 갔다.

서서히 눈을 뜬 그는 옆에 놓아둔 병기를 챙겨 일어섰다.

흐르는 물에 세안을 하고 머리까지 단정하게 묶고 나니 사람들의 인기척 소리가 산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역시, 강호의 무인들은 군인들과 많이 다르구나.’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숙소 아래의 넓은 연무장 안에는 대여섯 명의 무인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인 중에는 염화영의 얼굴도 보였다.

쉬익― 쉭― 쉭―

공간을 가르는 염화영의 검은 그녀와 일심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그리고 좌우를 치고 들어갈 때도 한 점 흔들림이 없는 검법이었다.

흐아암…….

잠시 염화영의 검법을 구경하던 비강은 숙소에서 들려오는 기지개 소리에 신형을 돌렸다.

이제야 조원들이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 * *

 

덜컹덜컹.

조원들을 태운 네 마리의 말이 관도를 달렸다.

“조장, 백건적의 세력이 어느 정도랍니까?”

“나도 몰라. 자세한 사항은 악양 지부에 도착하면 알게 될 거라고 하더군.”

“백건적 수괴의 정체조차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그럼, 도대체 조장이 아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없어. 아무것도 없어.”

어휴!

부조장 왕준이 한숨을 푹 내쉬자 수레에 앉아 있던 조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 조장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니고. 문제는 저것들인데.’

비강은 곁눈질로 자신의 검과 봉을 살피는 자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유원이라는 사내와 위수련이라는 여인이 흠칫 놀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

‘아주 애가 닳았군.’

 

조원들을 태운 수레는 호북을 지나 호남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저 객잔에서 묵고 내일 일찍 출발하도록 하지.”

조장의 지시에 모중악은 깃발이 보이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객잔에 도착해 말먹이 풀을 부탁한 조장은 조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와 함께 가볍게 술 한 잔씩 하도록 하지. 여기, 밥과 탕을 내오고 술도 세 병만 가져다주게.”

비강은 조장이 주문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물었다.

“경비는 어떻게 정산을 보는 것입니까?”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은자가 정해져 있어 그 안에서만 사용하면 되네. 조원들이 부상을 당해 들어가는 은자나 일을 위해 들어가는 은자는 나중에 따로 보고서를 올리면 되고.”

“꽤 합리적인 방법이군요.”

하하하…….

조장은 연비강의 대꾸에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그렇게 보이나? 연 조원이 내 입장이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못할걸?”

“항상 경비를 부족하게 지급하나 봅니다.”

“자네, 눈치가 귀신같구먼.”

조장은 새삼스런 눈으로 비강을 주시했다.

“유 조원, 위 조원과 함께 정찰을 맡아 보겠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강은 조장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유원과 위수련이 어떻게 나올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반주를 곁들인 식사가 끝이 난 조원들은 잠을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가구 하나 없이 넓은 침상만 놓여 있는 제법 큰 방이기는 했으나 열한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니 오히려 비좁아 보였다.

비강은 봇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뒤채 앞마당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비강의 눈에 잡혔다.

조장이었다.

밖으로 조장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연 조원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군.”

“습관이 되어 그렇습니다. 한데 조장님은 왜 나왔습니까?”

“방이 너무 좁아 답답해서 나왔어.”

하하하.

재미없는 대답이었지만 비강은 전에 없이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도 웃을 줄 아는군.”

싱그러운 비강의 웃음을 바라보던 조장은 맞은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무림초출인 것 같은데 전엔 뭐 했나?”

“군에 있었습니다.”

“그런가. 낭인 중에는 군에 있던 자들도 제법 섞여 있기는 하지.”

비강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조장은 잠시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십시오.”

“그러지. 내가 왜 자네에게 정찰을 맡긴 것 같은가?”

조장은 비강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비강의 대답에 조장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같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로군.”

대하면 대할수록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진 청년이었다.

‘과연, 북림 지부장님이 옳게 보았어. 라바나라는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면 곧 크게 두각을 드러낼 거야.’

 

* * *

 

북림 악양 지부 역시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레를 멈추자마자 악양 지부의 일꾼들이 달려 나와 말들을 마구간으로 이끌고 갔다.

“어서들 오시게.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또 뵙게 되었습니다, 지부장님.”

조장 온조와 인사를 나누는 지부장은 나이가 지긋한 오십 대 초반의 인물이었다.

무인답지 않은 넉넉한 뱃살과 축 처진 볼살이 인상적인 지부장은 조장을 환대하며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비강과 조원들은 따로 방으로 안내되어 갔는데 객잔의 비좁은 방보다는 훨씬 더 넓고 깨끗한 곳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이곳에서 지내야 하나……?”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있어야 할 거야. 그러니 이곳이 내 집이라 생각해야지.”

“그럼, 밖에 나가서 맛있는 요리점부터 찾아보자고.”

짐을 대충 정리한 조원들은 조장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몰려 나갔다.

“연 조원, 얼른 따라오지 않고 뭐 해?”

“연 소협, 같이 나갑시다.”

“저는 이따 나가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부조장과 모중악의 호의를 거절한 비강은 조원들이 모두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방을 나섰다.

 

* * *

 

지부를 나와 마을로 들어선 비강은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허름한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이런 일에는 번잡한 거리보다 한적한 장소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비강이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늙은 노인이 맞이했다.

“술과 소채볶음으로 부탁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손님.”

주문을 받은 노인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소채를 볶아 술과 함께 내왔다.

“홀로 잔을 비우기가 뭐 하니 같이 마십시다.”

허허허.

“손님, 저는 저녁 장사를 해야 합니다.”

노인은 술을 사양하면서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럼, 한 잔만 받으십시오.”

“예. 그럼 한 잔만 받겠습니다.”

술잔을 받아 비운 노인은 비강의 잔에 술을 채웠다.

“보아하니 강호인이신 것 같은데 이 늙은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예. 저는 북림에서 나왔습니다. 백건적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에휴…….

노인은 대답에 앞서 긴 한숨부터 쉬었다.

“강호의 일이라 아는 것이 있겠습니까만…… 그처럼 끔찍한 도적들은 없을 것이라 들었습니다. 작은 마을을 습격해 식량과 재물을 약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잡아간다고 합디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섰다가 죽임을 당하고요.”

“그자들이 출몰하는 지역이 어느 곳입니까?”

“워낙 신출귀몰하는 자들이라 이곳 악양은 물론이고 장사와 상단, 이양까지 출몰한다고 합니다.”

비강은 하오문에서 받은 지도를 꺼내 식탁 위에 펼쳤다.

길이나 알아 두자는 생각에서 지도를 구한 것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습격당한 마을들이 있는 산이 어느 산입니까?”

“와우산, 백악산, 토룡봉, 흑양곡…….”

눈으로 선을 그어 겹쳐지는 지역을 확인한 비강은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걸 이 늙은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나, 들리는 소문에는 일백이 넘을 거라고 하더군요.”

비강은 인사와 함께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 * *

 

“이곳에서부터 백건적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니 유 조원과 위 조원, 연 조원이 먼저 전방을 정찰하게. 적들을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고.”

“알겠습니다, 조장.”

조장의 명령을 받든 유원이 먼저 전방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위수련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연 조원, 얼른 따라오지 않고 뭐 하나?”

“가고 있소.”

비강은 유원과 위수련의 뒤를 좇아 숲으로 들어갔다.

 

좁은 산길을 통해 사방을 살피며 나아가던 유원과 위수련은 깊은 골짜기가 눈앞에 보이자 묘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이봐, 여기서부터는 자네가 앞장을 서. 자네도 경험을 쌓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럽시다.”

비강은 선선히 유원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가 앞장을 서고 유원과 위수련이 좌우를 살피며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바위들이 해를 가리는 곳으로 들어섰을 즈음 유원의 큰 칼이 비강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스악!

허리를 숙이며 신형을 회전한 비강이 유원의 허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마치 유원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예측했다는 듯한 일검이었다.

컥!

허리가 갈라진 유원이 단말마의 신음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자 위수련의 검이 비강의 등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이놈……!”

순간 위수련은 확연하게 보이던 비강의 등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서걱!

비강의 등을 찔러 들던 위수련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그녀의 신형이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또르르…….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던 핏방울이 검첨에 모여 땅으로 떨어졌다.

슥슥―

죽은 자의 무복에 검신을 닦아 검집에 집어넣은 비강은 골짜기를 빠져나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반 시진쯤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던 그는 앞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원들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조장 온조가 담담한 기색으로 비강의 눈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건가? 연 조원, 유 조원과 위 조원은 어디 있기에 혼자 오는가?”

“세 방향으로 나뉘어 정찰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군. 이리 늦는 걸 보니 감이 좋지 않구먼. 연 조원, 그들이 간 방향으로 길을 잡아 주게.”

비강은 조장의 명령대로 돌아온 길을 다시 되짚어 걸어갔다.

 

흑견조는 두 명씩 인원을 나눠 유원과 위수련을 찾아,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쉬이익…….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소리 나는 화살이 골짜기 위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을 찾아냈다는 신호였다.

빠르게 모여든 조원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원들은 착잡한 감정을 담은 눈길로 시신들을 내려다보았다.

“근처에 적들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습이나 특별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조원들이 둘이나 죽었는데 특별한 흔적이 없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조장은 부조장 왕준을 향해 버럭 역정을 쏟아 냈다.

“시신들을 수습해 묻어 주고 빠르게 돌아간다.”

조원들은 조장의 명령에 시신들을 양지바른 곳으로 옮겼다.

적들의 기습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땅을 파는 대신 돌을 주워 무덤을 만든 그들은 악양 지부로 되돌아갔다.

 

* * *

 

“연 조원, 잠깐 나 좀 보지.”

지부장을 만나 보고를 올린 조장은 방 안에 앉아 있던 비강을 불러냈다.

비강을 불러낸 조장은 저잣거리로 나와 작은 객잔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악양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들르는 객잔이네. 다른 객잔보다 술맛이 특별히 좋지.”

조용한 방을 청해 자리를 잡고 앉은 조장 온조는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조장은 술과 안주가 나오자 비강의 잔에 술부터 채워 주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을 죽여 버렸더군.”

“내게 병기를 들이미는 자는 살려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처음 볼 때부터 자네의 성정은 대충이나마 짐작했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뛰어나다 자부하니까.”

조장이 비강을 관찰하고 있었듯 비강도 조장과 조원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조장은 음흉함과 단호함을 조금 헐렁해 보이는 겉모습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조장이 되어 조원들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한 이유가 뭡니까?”

크으.

조장은 대답에 앞서 술잔을 먼저 비웠다.

“눈앞의 적들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전에 있던 조원 하나도 그 두 사람의 손에 죽었어, 같이 정찰을 나갔다가.”

툭.

품속에서 전낭 하나를 꺼낸 조장은 그것을 비강 앞으로 던졌다.

“금덩이로군요.”

전낭 안에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더 큰 금덩이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죽었어, 전에 있던 조원이.”

“그렇습니까.”

“이제 이건 연 조원의 것이네. 그들 둘을 죽였으니까.”

자신을 노리는 배신자를 처리한 데다 금까지 얻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전낭을 집어 품에 넣은 비강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백건적은 석아산과 오불산 어디쯤에 있을 겁니다.”

“자네가……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조장 온조의 눈이 심유한 빛을 발했다.

“그냥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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