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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4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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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48화

제48화. 암습(3)

 

 

 

밤늦게 마을 입구에 들어선 비강은 공터에서 불을 밝힌 채 바삐 움직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발견했다.

마을 사람들은 공터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혹시 북림의 무인들이 이 마을을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기척도 없이 다가온 비강의 질문에 마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고, 촌장은 서둘러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묵을 곳을 찾기에 마을 안쪽에 있는 이 늙은이의 집과 옆에 붙어 있는 서너 채의 집을 비워 드렸습니다.”

비강은 촌장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멀리 어둠 속을 쳐다보았다.

곧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두 명의 젊은 무인이 불이 밝혀진 공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 소협, 혹시 우리들을 쫓아온 거요?”

“아니오. 나도 북림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소.”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무인들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경계심이 가득했다.

비강은 그들의 경계심을 무시하며 촌장에게 말을 걸었다.

“하룻밤 묵어가게 헛간이라도 있으면 내주십시오.”

“허…… 헛간이라니요? 헛간은 무림의 협객님께서 쉬실 만한 곳이…….”

“괜찮습니다. 헛간으로도 충분합니다.”

촌장은 몹시 당혹스러웠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강호인에게, 그것도 강호의 지배자인 북림의 무인에게 방이 아닌 헛간을 내주어도 되는지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연 소협이 원하니 저기 마을 입구에 있는 헛간 한 채를 내주시오, 촌장.”

“아…… 예.”

먼저 도착한 무인들은 인원수도 많고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거칠어 두렵기 그지없었다.

섬뜩한 인상을 한 무인의 말에 촌장은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비강을 마을 입구에 있는 헛간으로 안내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고맙습니다.”

악가의 가인들은 촌장의 안내를 받아 헛간으로 향하는 비강을 주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가세, 얼른 가주님께 보고를 올려야 하니.”

 

* * *

 

지푸라기와 농기구가 널려 있는 헛간 한쪽에 자리를 잡은 비강은 짚 무덤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이미 강호에는 천마지병이 악규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때문에 천마지병을 용케 빼내 온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강호인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것을 파괴해야 했다.

“저…… 협객님. 당장 구할 수 있는 밥과 찬이 이것밖에 없어 송구스럽습니다.”

늙은 촌장은 손수 밥과 국을 소반에 내와 조심스럽게 비강 앞에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진수성찬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주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한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건넸다.

“이, 렇게나 많이…… 고…… 고맙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실 테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촌장은 비강의 말에 우물쭈물하다가 머리를 한 번 조아리고는 헛간을 나갔다.

후룩…….

거친 밥과 국이었지만 시장했던 탓인지 맛이 좋았다.

더군다나 식은 밥과 국이 아닌 데워 온 밥과 국이었기에 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밥과 국을 깨끗하게 비운 비강은 소반을 헛간 밖에 내놓고는 짚 무덤에 몸을 뉘었다.

‘기회가 와야 할 텐데.’

 

* * *

 

그 시각, 악규는 비강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마을로 돌아온 참이었다.

비강이 헛간에 누워 있는 동안 악규는 눈치 빠른 가인 둘을 불러 놓고 흉계를 꾸몄다.

불러온 가인들은 가문에서 골라 뽑은 자들로 악규가 직접 무공을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어쩌면 오늘 밤이 백리혈을 죽이기에는 다시없을 기회인지도 모르겠어.”

“하나 백리혈은 무공이 대단해 쉽게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가주.”

“알고 있다. 전진의 장문인까지 꺾어 버린 자를 어느 누가 무시하겠느냐.”

말을 그러했지만 연비강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악가는 예전의 악가가 아니었고 자신 또한 예전의 악규가 아니었다.

북은각을 제외하면 북림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싸움에 있어서는 언제나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가주.”

눈치 빠른 가인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계책을 올렸다.

“아침에 촌장으로 하여금 백리혈에게 독을 탄 식사를 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독에 중독된다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그자를 제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이 좋아 그자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극독에 중독되었으니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독이 있느냐?”

악규는 기대에 찬 눈으로 가인을 쳐다보았다.

“예. 이런 일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귀한 독이라 어지간해서는 독을 먹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잘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은 너희들에게 맡기마. 이제야 아들 녀석의 원수를 갚게 되었구나.”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 악규는 가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나 백리혈을 죽인다면 림주의 화가 우리 악가에 미칠 것입니다.”

크하하하……!

“강호는 언제나 죽음이 있게 마련이다. 그놈이 우리 손에 죽었는지 어느 누가 알겠느냐? 그놈을 죽인 후에 시신은 산속에 가져다 버려라.”

“존명.”

 

* * *

 

새벽에 일어난 비강은 운기행공과 간단한 무공 수련으로 몸을 풀었다.

개울의 물로 몸을 씻고 행랑의 소금으로 이를 닦은 후에 헛간으로 돌아와 보니 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주무시는 데 춥지는 않으셨는지요?”

“덕분에 잘 잤습니다. 촌장께서도 잘 주무셨습니까.”

“예. 아침밥을 준비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소반을 받은 비강은 그것을 헛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북림의 무인들은 어찌하고 있습니까?”

“벌써 식사를 끝내고 뒷산을 통해 마을을 빠져나갔습니다.”

악규와 가인들이 먼저 빠져나갔다는 촌장의 대답에도 비강은 여유롭기만 했다.

저들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으니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식사가 끝이 나고 바로 떠날 것이니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촌장이 가져온 소반에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 그리고 삶을 닭 반 마리까지 놓여 있었다.

밥을 먹고 국을 떠 입에 넣은 비강은 혀끝으로 전해 오는 알싸한 맛을 느꼈다.

향신료와는 다른 미묘한 맛이었다.

‘독인가?’

비강의 예민한 감각은 이 음식에 독이 들어 있다고 경고를 보내왔다.

‘마을 사람들은 아닐 터이고…… 악규인가?’

그러고 보니 음식을 가져오던 촌장의 눈이 떨렸었다.

필시 협박을 받았을 터.

비강은 땅을 파 음식을 묻어 버리곤 빈 그릇을 밖으로 내놓았다.

‘설마, 이전 비무에서 자기 아들을 팼다 하여 독까지 쓴 건가. 같잖은 놈이군.’

행랑을 짊어지고 마을을 나온 그는 북쪽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자 과연 사방에서 미미한 살기가 느껴져 왔다.

한 명이 아닌 집단의 살기. 게다가 악가는 북림의 내로라할 무문이었다.

필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비강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비강은 일부러 안색을 어둡게 만들며 걸어가다가 나무 한 그루를 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크흐흐흐…….

사방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며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악규가 장창을 잡고 서 있었다.

“악…… 대협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비강의 의문은 커다란 비웃음으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을 보니 소문과 다르게 아주 아둔한 놈이로구나.”

“그게 무슨…….”

크하하하……!

“너는 독에 중독되었느니라.”

악규는 대소를 터뜨렸다.

무공은 강할지 모르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었다.

“내 혈족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안겨 준 놈을 용서할 줄 알았더냐. 네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큭큭큭…… 크하하하……!

비강은 갑자기 미친 듯 웃어 젖혔다.

“그래, 결국 같은 연놈들이기 마련이지. 암! 당연히 이래야지. 그 여자를 받아들인 사내가 멀쩡할 놈일 리가.”

비강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인 꼴이 된 악규.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 아예 그 목을 베어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악규와 악가의 가인들은 멀쩡한 얼굴로 웃어 대는 비강을 의문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리를 속인 것이냐?”

악규가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우문이군.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스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강의 허리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쩌억!

가인 하나가 얼굴이 반쪽으로 잘리며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비강을 에워싸듯 포위하고 있던 악가의 가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죽여!”

끄아악……!

창과 검을 쥔 팔이 피를 뿌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까가강……! 까강!

서늘한 살기를 뿌리는 병장기들과 비강의 검이 맞부딪치고 하늘 위에서는 악규의 창이 떨어져 내렸다.

콰…… 쾅!

창을 감고 휘도는 희뿌연 기운은 비강의 몸을 산산이 갈라내며 땅거죽을 뒤집어 놓았다.

아아악!…… 아악!

까강! 깡!……!

“연비강!”

악규는 자신의 창을 피해 가인들을 하나씩 난도질하고 있는 비강의 모습에 극한의 분노를 발산했다.

비강은 신형은 동시에 십여 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가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가인들의 목이 떨어지고 가슴이 갈라졌다.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사방을 헤집고 있는 비강을 향해 악규의 창이 갈라지듯 쏘아져 날아갔다.

창을 감싸고 돌던 희뿌연 기운이 더욱 환하게 타올랐다.

콰콰쾅!

창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비강의 눈이 깊어졌다.

분명히 다 막아 냈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어깨 어름의 무복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살을 에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면 어깨가 아닌 심장에 창이 박혔을 것이다.

기세를 잡은 악규는 물이 흐르듯 연이어 창법을 펼쳤다.

후압!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창날은 창이 아닌 빛에 휩싸인 거대한 도끼였다.

콰쾅……!

창을 휘감고 도는 막강한 기운은 비강의 검은 물론이고 몸까지 뒤로 튕겨 보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비강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가인의 머리를 쪼개며 날아갔다.

타압!

산을 울리는 기합성과 함께 거대한 창날이 공간을 뭉개듯 가르며 날아들었다.

순간 비강의 검에서도 노한 용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용아포 천멸후(龍牙砲 天滅吼)!

한 마리의 노한 용은 곧 넷으로 나뉘어 거센 폭풍이 되어 적들에게 쏘아졌다.

콰르…… 릉!

크아악!…… 아악……!

막강한 기운을 품은 회오리가 적들의 몸을 찢어발기며 거대한 창날과 부딪쳤다.

콰콰쾅!

끄으으…….

본모습으로 돌아온 창을 잡고 있는 악규의 입에서 가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찢겨지고 터져 나가 걸레가 된 푸른 무복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가주!”

“백리혈!”

살아남은 가인들은 경악과 분노에 찬 외침을 발했다.

악규의 목을 베어 가던 비강의 앞을 창을 든 가인들이 가로막았다.

“목숨으로 가주님을 지켜라!”

비록 흉계를 꾸며 비강을 함정에 빠뜨리기는 했지만 가주에 대한 충성심만은 대단했다.

서걱. 스악……!

비강은 여전한 눈으로 적들을 죽여 나갔다.

머리 위로 적들의 창날이 지나갈 때 검은 적의 허리를 베고 뒷목을 쳐 냈다.

따당! 땅!

악가의 가인들은 평범한 고수들이 아니었다.

창법과 검법이 모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실전 감각도 발군이었다.

단지, 비강이 압도적으로 강했을 뿐.

따당! 컥!

목에 검을 쑤셔 박은 비강의 입가에 하얀 미소가 맺혔다.

이제야 악규의 무공이 대강 이해가 되었다.

가인들의 창법을 통해 그의 창법을 대강이나마 알아본 것이다.

‘강렬한 기운 때문에 그 밑에 숨어 있는 음습한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했어.’

따당! 땅……!

왼쪽에서 날아오는 창을 튕겨 내고 오른쪽 가인의 목을 베어 낸 비강의 신형이 흩어졌다.

아아악!

또 다른 적의 팔을 자르고 가슴을 베어 낸 비강은 낭패의 탄식을 내뱉었다.

“아쉽군.”

방금 전까지 보이던 악규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비강의 검이 공간을 완전하게 장악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꺼억! 컥! 끄아아……!

세 번째 무공인 삼하귀상을 연이어 펼치자 남은 적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바닥을 힘없이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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