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4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47화
제47화. 암습(2)
이글거리는 눈에 입과 턱을 뒤덮은 검은 수염은 이야기로 전해 듣던 촉나라의 장비를 연상케 했다.
“어떤 자도 이 악규의 손에서 천마지병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느니라!”
우렁우렁한 외침 소리를 발하는 악규의 뒤로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다가와 도열했다.
그들은 모두 부림주 약추완의 명령을 받고 나온 북림의 무인들이었다.
천마지병을 얻은 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회운창임을 알아본 강호인들은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러서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원래의 주인이었던 천마가 죽었으니 그 물건은 주인이 사라진 셈이오!”
강호인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대들은 함부로 욕심을 부리지 마라! 우리 북림이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강호의 값진 보물들은 전부 사패가 주인이라 하는 것이오? 너무하지 않소!”
“강호의 보물은 강자의 손에 있어야 빛이 발하는 법! 그대들이 이 보물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강호의 법칙인 적자생존에 들어맞는 악규의 노기 띤 외침이었다.
하지만 강호인들은 쉽게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이미 북림은 고절한 무공과 고수들이 즐비하지 않소이까. 강호를 위해 보물 하나쯤은 양보해 줄 수도 있지 않겠소.”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라! 천마지병은 북림의 소유가 될 것이다!”
‘미련한…… 아니, 미련한 게 아니라 욕심 많은 여우야.’
마냥 아둔한 자였다면 백건적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천마지병을 손에 넣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했으나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나설 수밖에 없다.
“저는 연비강이라 합니다.”
악규를 멀리서 둘러싸고 있는 강호인들 앞으로 비강이 걸어 나왔다.
“젠장, 북림의 백리혈까지 나타나다니…….”
“백리혈까지 나타났으니 천마지병을 차지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군.”
“눈빛 한번 더럽게 살벌하네.”
강호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백리혈이 모습을 드러내자 몹시 당황해 웅성거렸다.
비강의 소개에 악규는 이채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었네.”
아들이 저 연비강이라는 젊은 고수에게 형편없이 패했다고 들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몹시 화가 나는 일이었으나 남들의 이목 때문에 억지로 분기를 삼켜야 했다.
“제가 보기에 그 천마지병은 가짜가 분명합니다. 백건적의 흉계에 이용되고 있는 병기이니 강호인들이 보는 앞에서 부숴 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뭐……?”
그렇지 않아도 그간 비강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악규였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것이 진짜 천마지병이든 가짜 천마지병이든 상관이 없네. 이것을 내가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부림주께 바칠 것일세.”
“림주가 아니라 부림주입니까?”
비강의 물음에 악규는 순간 당황하더니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부…… 부림주께서 어련히 알아서 처리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자네는 이 일에서 손을 떼게.”
비강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저는 손을 떼지요.”
어차피 천마지병은 북림에 도착하기 전에 부수면 그만이었다.
지금 이 자리엔 그보다 더 급히 부숴 버려야 할 놈들이 있었다.
악규는 뒤로 물러서는 비강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뒤에 도열해 있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전부 죽여라!”
“존명.”
삼십여 명의 북림 무인은 악규를 중심으로 앞으로 치고 나왔다.
멀찍이 둘러섰던 강호인들은 악규와 무인들의 기세에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저기다!”
“천마지병을 내놔라!”
바로 그때, 또 다른 수십 명의 강호인이 몰려들자 군중 중에 누군가가 격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천마지병이 북림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오! 저 보물은 우리 강호인의 것이오!”
그 외침 소리에 힘을 얻은 강호인들은 일제히 악규와 북림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길을 뚫어라!”
따당! 땅! 땅……!
크아악……! 아악……!
북림 무인들과 강호인들 사이에 격한 난전이 펼쳐지고 들판은 죽음이 내려앉았다.
크아악……!
장창을 휘둘러 길을 뚫고 있는 악규의 용맹은 어느 누구도 막아 내지 못할 정도로 발군이었다.
“부림주는 저 가품을 진품으로 믿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 영악해 빠진 자가 그럴 리가 있겠소. 그자도 저것이 가짜임을 알고 있을 거요. 하지만 혹시나 하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뒤로 물러나 강호인과 북림 무인들 간의 싸움을 지켜보던 비강은 싸움터에서 벗어나는 자들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멀리 숲을 돌아가는 비강의 뒤로 장경주가 기척을 죽이며 따라왔다.
* * *
“누구냐?”
숲을 돌아 앞을 가로막은 비강을 향해 강호인들이 서늘한 살기를 발산했다.
“연비강.”
비강은 검을 뽑아 들고 있는 네 명의 강호인 앞으로 나섰다.
“백리혈…….”
젊은 강호인들이 비강을 알아본 것처럼 비강도 젊은 강호인들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백건적. 그렇지 않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백건적이라니요?”
“강호인 사이에 숨어 그들이 주저할 때마다 부추겨 결국 북림과의 싸움을 이끌어 내더군.”
젊은 강호인들은 정체가 발각이 되자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타앗!
선두에 서 있던 자가 짧게 외침을 발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스악……!
허리를 베어 오는 검은 빈 공간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고 그 자리에 몸을 잃은 머리 하나가 떨어졌다.
찰나에 적의 목을 베어 낸 비강을 향해 세 방향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서걱…….
끄으으……!
비강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며 검은 적의 허리를 갈랐다.
스악…… 퍽!
뒤이어 살아남은 적의 뒤를 점한 비강이 뒷목을 치고 또 다른 적의 팔 하나를 잘랐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네 명의 적을 베어 낸 비강은 무심한 얼굴로 팔이 잘린 적을 향해 다가섰다.
펄떡 펄떡…….
검을 쥔 채 잘려 나간 젊은 강호인의 팔은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으아아아…….
“네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지?”
“모른다! 죽여라!”
젊은 강호인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비강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악에 바쳐 소리를 질렀다.
“좋아. 그럼 너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 중 어디에 속해 있나? 자신의 가문이나 무문까지 숨길 생각이냐?”
“나, 나는 전진…… 전진의 제자다!”
“지금 전진은 누가 이끌고 있나?”
“네놈에게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쥐새끼로군. 자신들을 이끌고 있는 자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면.”
으아아아악!
팔이 잘린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비강의 비웃음 때문인지 몰라도 젊은 강호인은 하늘을 향해 마구 악을 써 댔다.
“너는 살려 주마. 사람이 아닌 쥐새끼이니.”
“오…… 오진권…… 오진권 장문인이시다.”
“나이는?”
“서른둘.”
“젊군.”
장문인치고는 너무 젊었다.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비강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까지 숲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장경주는 말없이 뒤를 좇았다.
* * *
마을로 돌아와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한 비강은 장경주에게 작별을 말했다.
“가짜 천마지병이 악규의 손에 넘어갔으니 내 임무는 실패했소. 이제 그만 여기서 헤어집시다.”
장경주는 비강을 대할 면목이 없는지 머리를 푹 숙였다.
“제 잘못이에요, 연 소협. 조금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는데…….”
“장 소저의 잘못이 아니오. 저들이 일부러 악규의 손에 천마지병을 넘긴 것이라 일찍 알았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거요. 그만 마차에 오르시오.”
장경주는 내키지 않는 대로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비강과 같이한 며칠은 정말 꿈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서안까지 함께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서안에서 뵈어요.”
“잘 가시오.”
다그닥…… 다그닥…….
멀어져 가는 마차를 하염없이 지켜보던 비강은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 있던 백건적을 베었으니, 이번엔 악규의 손에서 천마지병을 빼돌려 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회운창이 천마지병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가?”
“들었네. 벌써 창덕을 떠났다고 하던데?”
그러나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악규가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비강은 바로 마을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올라갔다.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강호인들로 인해 악규는 관도를 타고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관도가 아닌 산허리와 들로 난 샛길이었다.
탐욕스럽기는 하지만 영리한 자이니 강호인들이 수시로 오가는 관도보다는 샛길로 이동할 것이다.
‘북림에 도착하기 전에 기회가 오면 좋으련만.’
행랑에서 지도를 꺼내 샛길을 확인한 비강은 위치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지도는 샛길을 알려 주기는 하지만 그 길을 찾으려면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한참을 뛰어다닌 끝에 산속으로 난 작은 길을 찾아낸 비강은 급하게 신형을 날렸다.
‘환장하겠군.’
샛길을 찾아 한참을 달리던 비강은 샛길에 즐비한 시신들을 발견했다.
아마도 악규를 추적하던 강호인들일 것이다.
우우……!
주변은 점점 어둠이 깔리고 피 냄새를 맡은 들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대로 시신들을 지나친 비강은 산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비강은 십여 구의 시신을 뜯어 먹고 있는 늑대 무리를 발견했다.
크르르르…….
시신을 뜯어 먹던 늑대들도 비강을 향해 시퍼런 안광을 쏟아 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순간 비강의 눈에서 푸른 안광과 함께 살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깨갱! 깽……!
살기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 늑대들은 꼬리를 말더니 숲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비강은 피 냄새가 가득한 그곳을 지나쳤다.
* * *
“협객님들께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늙은 촌장은 마을 중앙의 공터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무인들을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공터를 메우고 앉아 있는 무인들은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내놓은 밥과 떡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소.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북림이 아니니까.”
식사를 하던 무인 중 하나가 전낭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촌장 앞에 던졌다.
“밥값이오.”
“가…… 감사합니다.”
늙은 촌장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은자를 주워 챙겼다.
“모자라오? 여기 한 냥 더 있소.”
또 다른 무인 하나가 자신의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촌장 앞에 던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인들은 허리를 굽히고 있는 촌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번에 큰 공을 세우셨으니 부림주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주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 연비강 그놈의 말처럼 이것이 가품일 가능성도 있어. 만약 이 천마지병이 진품이라면 너희들에게도 큰 상을 내릴 것이야.”
“저희들은 오직 가주님을 위해 살고 죽을 것입니다.”
악규는 가인들의 대답이 몹시 흡족했다.
원래 악규의 아버지 악전은 황곡에서 고수들이 뛰쳐나왔을 때, 사패와 맞서 싸우며 기존 강호 세력과 명운을 함께하려 했었다.
하지만 전쟁 초반에 황곡 고수들의 강함을 알아챈 악규는 가주인 아버지의 뜻과 달리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는 황곡 고수들에 의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가문의 일을 맡겨 주십시오.’
처음에는 악전의 반대가 심했으나 결국 전쟁이 악규의 짐작대로 흘러가자 고집을 꺾어야 했다.
그 후로 가문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 악규는 사천존의 앞잡이가 된 약추완을 찾아가 충성을 맹세했다.
다행히 악규의 영민함을 좋게 본 약추완은 자신의 딸까지 내주었다.
거기에 더해 황곡의 고수들을 도와 공까지 세우자 풍천양은 고절한 무공비급까지 하사했다.
‘만약 이것이 진정 천마의 도라면 천하제일의 무공이 숨어 있을 터인데.’
악규는 보자기로 감싼 천마의 도를 내려다보며 깊은 고심에 잠겼다.
“가주님, 오늘 밤은 추격자들이 없을 것이니 이 마을에서 쉬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