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4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46화
제46화. 암습(1)
“조금 전에 도착했어. 동문이는 그만 나가 봐.”
“알겠소. 저녁때 같이 술 한잔합시다.”
“그럴 시간 없어. 바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렇게나 빨리 돌아가야 한단 말이오?”
젊은 사내가 아쉬워하자 장경주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는 하오문주와 마주 앉았다.
“나가 보아라.”
장경주를 흘깃거리던 젊은 사내는 얼굴 가득 아쉬움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단 말이더냐?”
사내가 방을 나가고 난 후 하오문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 소협에게 동문이가 숨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때문에 연 소협은 우리 하오문에 경계심만 가지게 되었어요.”
“나도 그 일을 마음에 걸려 하던 중이었다. 하나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찌하겠느냐.”
하아……!
하오문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보낸 서신에 쓰여 있던 대로 아주 예민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내더구나. 말을 섞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네. 그 사람은 흔한 말 한마디에서 많은 사실을 유추해 내는 섬세함이 있어요. 강호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보았지만 그만한 사람은…… 아니, 그 비슷한 사람조차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어요.”
하오문주는 자신의 딸이 조금 낯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딸은 사람들의 평가에 있어 많이 박한 편이라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는 일이 없었다.
“혹시 백리혈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오문주를 바라보던 장경주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설마 제가 그럴 리 있겠어요?”
흐음…….
“매사에 조심하도록 해라. 내가 파악한 연비강이라는 사내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자는 아니었느니.”
“저도…… 알고 있어요.”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은근슬쩍 하오문주의 눈을 외면한 장경주는 다른 일을 물었다.
“천마지병이 몇 자루가 만들어졌는지 아버님을 알고 계시죠?”
“내가 듣기로는 다섯 자루였다.”
“그럼, 한 자루는 강호의 이목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군요.”
“아마도 네 짐작이 맞을 게다.”
“그럼, 저는 이만 서안으로 돌아가 볼게요.”
하오문주는 자신의 핏줄이 반나절도 안 되어 자리를 차고 일어났으나 애써 붙잡지 않았다.
“자주 들르도록 해라.”
“네.”
* * *
“아무래도 천마지병이 더 남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미안하다, 비강아. 술은 다음에 마셔야겠다.”
흑산도를 나온 북궁도가 먼저 작별을 알렸다.
놀기 좋아하는 그였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보다 철저했다.
“네 말이 옳아. 당장 급한 것은 나머지 천마지병을 찾는 일이니까. 다음에 또 보자.”
비강도 북궁도와 뜻을 같이하며 작별을 고했다.
“조심하고.”
“너도.”
“다음에 만날 때는 네 취향인 추녀들만 있는 기루에 데려갈게!”
“허, 말이라도 고맙구나!”
북궁도와 헤어진 비강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머지 천마지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북림으로 복귀하여 가짜 천마지병을 수소문해야 했다.
형양을 벗어나 관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던 비강은 길 한쪽에 멈춰 있는 마차를 발견했다.
마부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늙은 마부를 지나쳐 걸음을 옮기려던 비강은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발을 멈췄다.
“장 소저?”
“오랜만이에요, 연 소협.”
채 의문을 품기도 전에 마차의 문이 열리며 장경주가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장 소저는 이곳에 웬일이오?”
“일이 있어 남쪽에 내려왔다가 서안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타세요.”
당황스러움도 잠시 비강은 바로 마차에 올랐다.
“이랴.”
비강이 마차에 오르자마자 마부는 말을 움직였다.
“하오문에 볼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네. 문주님을 뵈러 왔다가 연 소협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쫓아왔어요.”
장경주는 하오문주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숨겨 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고 의심만 더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닥…….
두 필의 말은 빠르게 관도를 달렸다.
“혹시 천마지병의 행방을 알고 있소?”
“한 자루는 호남에서 북쪽으로 향하고 있고, 또 한 자루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요.”
“여러 자루의 천마지병이 만들어졌다는 하오문주의 말이 맞았군.”
심하게 흔들리는 마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어 장경주를 쳐다보았다.
“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도 천마지병은 총 다섯 자루가 만들어졌을 거요. 한 자루는 강호 무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사용되었고, 나머지 네 자루는 지금 사패를 향하고 있겠지.”
반짝이는 비강의 눈빛과 마주한 장경주의 눈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이미 가짜 천마지병이 모두 다섯 자루라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비강의 추측에 놀란 것이다.
‘이 사람은 정말…….’
놀란 내심을 숨기며 비강과 마주하고 있는 장경주는 마차가 멈추자 곧 시선을 피했다.
움찔.
마차가 멈추자마자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검을 쥐고 있는 비강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동그랗게 말린 서신이 마차의 창문을 가린 휘장 안으로 떨어졌다.
다그닥…… 다그닥…….
멈췄던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에 앉아 안으로 들어온 서신을 펼쳐 읽은 장경주의 입이 열렸다.
“연 소협의 말씀이 맞았어요. 나머지 두 자루도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군요. 거기에 그것들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네 자루의 천마지병은 모두 진짜이며 병기마다 각기 다른 천마의 무공이 들어 있다고 해요.”
하하…….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문이야.”
허황된 소문이지만 강호인들은 그 소문을 진실이라 믿을 것이다.
아니, 진실이라 믿고 싶을 것이다.
“강호가 네 자루의 천마지병으로 인해 진동을 하고 있어요. 우리 하오문도들조차 그것들을 진짜라 믿고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장경주의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백건적은 네 자루의 가짜 천마지병으로 강호를 뒤흔들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가짜 천마지병의 마지막 주인은 강호에서 가장 힘이 강한 사패가 되겠군. 그렇지 않소? 장 소저.”
“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겠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강호인들로부터 엄청난 항의와 욕을 들어야 할 거예요.”
“그렇겠지. 원래 주인이 없는 것이니.”
백건적이 천마지병을 이용해 사패와 강호인들의 분열을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사패의 힘이 강성하다 하더라도 강호인들이 등을 돌리면 사패의 강호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에 반해 백건적은 강호 활동이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저의 힘은 그리 크지 않지만 북림으로 향하는 천마지병을 찾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뜻밖이자 그리 반갑지 않은 장경주의 호의였다.
세상의 모든 호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장경주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 일을 빌미로 내게 무엇을 요구할 거요?”
“없어요. 저 또한 강호의 혼란을 원치 않으니까요.”
“믿지 않소. 이렇게 합시다. 하오문이 아닌 장 소저에게 빚을 갚겠소.”
“그렇게 해서 연 소협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받아들이죠.”
비강과 거래가 이루어지자 장경주는 바쁘게 움직였다.
* * *
늦은 밤 호남 이양에 도착한 마차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객잔 앞에 멈춰 섰다.
술손님들로 북적이는 객잔 안에 들어선 장경주는 주인을 불러냈다.
“사해에서 잡아 올린 귀한 물고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어디에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는지요?”
객잔 주인은 평범한 손님을 맞이하듯 가볍게 말을 받았다.
“이철괴가 일러 주고 갔어요.”
이철괴는 팔선(八仙)에 속해 있는 신선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비강은 장경주와 함께 객잔의 깊숙한 방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우리 객잔에서 가장 잘하는 요리로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객잔 주인이 방을 나가고 난 후 비강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하오문이 접선하는 광경을 보여 주어도 되는 거요?”
“상관없어요. 암어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연 소협이라 해도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요.”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장경주의 대답에 비강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객잔 주인과의 대화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잠시 후, 큼직한 초어찜과 밥을 내온 객잔 주인은 종이쪽지 하나를 몰래 건네고 방을 나갔다.
종이를 펼쳐 읽은 장경주는 곧 그것을 촛불에 태워 없애 버렸다.
“창덕에 천마지병이 나타났어요.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니 이틀 후에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천마지병을 지니고 있는 자는 삼십 대 중반의 사내로 무공이 고강해 아무도 그에게서 보물을 빼앗지 못하고 목숨만 잃고 있다고 해요.”
* * *
창덕에 도착한 비강은 장경주와 함께 수많은 강호인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걸었다.
검은색 비단 무복을 걸치고 허리에 검까지 찬 장경주의 모습은 귀한 가문의 가인처럼 보였다.
“칠살도(七殺刀)가 천마지병을 얻었다고 하던데.”
쯧쯧…….
“자네는 소식이 한참이나 늦군. 칠살도는 오늘 아침에 명륜삭(命綸削)에 의해 목숨을 잃고 천마지병을 빼앗겼다네.”
“강호인들의 대화를 들어 보니 아직까지 천마지병은 창덕을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아요.”
장경주의 표정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강이 마차에 오르고 난 후부터 줄곧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헛소문이 많이 흘러 다니는군요. 정보에 의하면 아직까지 천마지병의 주인은 바뀐 적이 없어요.”
장경주는 창덕의 포목점으로 들어가 나오더니 새로운 정보를 전해 주었다.
“목표가 우두평으로 이동 중이에요.”
“고맙소, 장 소저,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씀이죠?”
화사했던 장경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강호인들이 몰려드는 곳에 장 소저와 함께할 수는 없소.”
“저도 엄연한 강호인이에요. 제 한 몸을 지킬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소.”
비강은 곧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우두평의 위치를 물었다.
“북쪽 십여 리에 우두평이 있습지요.”
행인의 대답을 들을 비강은 북쪽을 향해 달렸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벗어나 들판에 도착한 비강은 경공을 시전했다.
휘리리…….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비강의 옆으로 장경주가 바짝 따라붙었다.
‘경공은 그런대로 괜찮군.’
마른 잡초와 벌거벗은 작은 나무들이 무성한 들판을 달리는 사람들은 둘만이 아니었다.
휘이익…….
휘익……!
여기저기서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무공이 강한 고수들이 계속해서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경주가 빠르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하오문의 정보는 누군가에게 듣고 전해 주는 것이기에 이미 소문은 은밀하게 여러 곳으로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소머리 바위예요.”
한참을 달린 두 사람의 눈앞으로 소머리 형상을 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다가왔다.
비강과 장경주는 마른 풀이 우거진 우두평을 지나쳐 북쪽을 향해 달렸다.
이미 천마지병의 행방을 알아차린 강호인들이 우두평 북쪽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형성해 조여들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천마지병은 북림의 손에 들어…… 끄아악!”
크아아악……! 아악!
“이놈들! 내가 바로 회운창 악규이니라!”
장경주와 함께 비명 소리와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하는 곳으로 향하던 비강은 발을 멈췄다.
“천마지병이 북림 회운창의 손으로 들어갔군요.”
“그런 것 같…….”
꽈직…… 후두둑…….
끄아아악……!
비강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숲 안쪽에서 마른 나무들과 풀들이 쓰러지며 강호인들이 튀어나와 나뒹굴었다.
“내가 바로 회운창이다!”
숲 안쪽에서 긴 철창을 손에 쥔 덩치가 우람한 중년의 사내가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저자가 바로 그자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