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9화
제39화. 강호에 부는 바람
“너희들 모두 강호 활동에 손을 떼고 어릴 때 무공 수련을 하였던 곳으로 들어가라.”
“하면 저는 조원들을 이끌고 들어가겠습니다.”
벽사군은 아직도 청마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참으로 영리해 다른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사부가 되어 제자가 스스로 깨우칠 때를 기다려야 하지만 이 아이는 아무래도 힘들 듯했다.
“너는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네가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사부님…….”
벽사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림주님께 보고합니다. 연비강 소협이 약철빙 단주와 함께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마조의 조원들 일부가 연무장에서 연비강 소협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또 다른 젊은 무인이 올라와 보고를 올렸다.
“놔두어라.”
“존명.”
젊은 무인이 물러가고 난 후 풍천양은 스스로 잔에 술을 채웠다.
“보았느냐. 네가 이룬 모든 것들이 하루도 안 되어 전부 사라지게 생겼구나. 그자들은 협의를 위해 너를 따른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협의를 가장한 것뿐이다.”
* * *
―천하제일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느니라.
오늘만큼 아저씨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잘 참았어. 어찌 되었든 연 부관이 이 싸움에서 이긴 거야.”
비강의 뒤에서 끝까지 함께하고 있던 약철빙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정도 기다려 보고 그래도 벽사군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림주를 찾아갈 겁니다.”
아아…….
약철빙은 눈앞이 아득해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림주가 약속한 일이니 막을 수도 없었다.
산을 돌아 순찰단의 집무실로 향하던 비강은 아래쪽 연무장에 모여 있는 청마조의 조원들을 발견했다.
크크크…….
어리석은 자들이다.
자신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모른 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들이었다.
약철빙도 청마조의 조원들을 발견했는지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내가 먼저 내려가 볼게.”
“그러지 마십시오. 저들은 북림이나 강호를 위해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벽사군을 위해 죽으려는 겁니다.”
약철빙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을 막고 싶었다.
북림이 생겨난 이래로, 아니 사패가 생겨난 이래로 본거지에서 아군이 아군들을 학살한 예는 없었다.
무림에 이 소문이 퍼져 나간다면 북림의 위상에 큰 흠이 될 것이었다.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순찰단에 남아 있는 조원들이 밖으로 나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강보다 앞서 연무장으로 급히 뛰어 내려온 약철빙이 청마조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만 처소로 돌아가.”
“그럴 수는 없소. 아무리 순찰단의 부관이라 하지만 그자는 함부로 우리 청마조의 조원을 죽이고 조장의 명예를 더럽혔소.”
“먼저 검을 뽑은 쪽은 청마조의 조원이었어.”
“너무 화가 나 얼떨결에 뽑은 것이오.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소. 물러나시오!”
청마조의 완강한 저항에 약철빙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뒤로 물러섰다.
저들은 위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죽여 벽사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비강이 비웃음을 지으며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비강! 너는 우리 조원을 함부로 죽이고 벽 조장의 명예를 더럽혔다!”
“너희들의 부조장은 너희들 조장의 그 잘난 명예 때문에 흑견조와 황서조의 조원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죄 없는 양민까지 죽였어. 벽사군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고.”
“거짓말하지 마라! 조장님과 부조장은 그런 분이 아니다!”
비강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뭐 하고 있나? 어서 오지 않고.”
비강의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청마조의 조원들은 병장기를 뽑으며 달려들었다.
“죽여!”
휘이이…….
비강이 오른발을 떼어 놓자 바람이 일며 신형이 사라졌다.
서걱……!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 신형은 선두에 선 자를 지나쳐 그 뒤에서 달려오는 자들의 가운데로 빠져나갔다가 돌아섰다.
투툭. 툭.
선두에서 달려오던 자를 시작으로 그 뒤에서 달려오던 자들의 목이 연달아 떨어졌다.
퍽! 퍼퍽!
끄아악! 아악……!
비명성이 연무장에 가득한 가운데, 머리와 가슴이 터져 나가고 팔다리가 잘려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열 명을 죽여 없앤 비강은 살아남은 세 명을 향해 왼손에 쥐고 있는 철봉을 들어 올렸다.
“어서.”
으아아아!
청마조의 조원들은 발악과 같은 함성을 발하며 비강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살아남은 세 명은 조원 중에서도 강한 고수들이었으나 비강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아악! 크아악!……!
차례로 가슴이 갈라지고 뚫리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한바탕 살풀이가 끝이 나자 비강은 검과 철봉을 죽어 널브러진 청마조 조원의 옷에 문질러 닦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흑견조의 조장 온조가 천천히 다가왔다.
“고맙소, 연 부관.”
조장 온조는 비강이 이런 짓을 벌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비강은 모중악과 양당원의 복수를 위해 홀로 청마조와 맞섰던 것이다.
“시신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 올라가 쉬시오.”
“부탁하겠소.”
* * *
은운곡의 곡주 단우문은 휘어진 칼 앞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전진의 장문인이 죽었다.
그것도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은운곡의 낭인이었던 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만하세요.”
뒤에 앉아 있던 구모 구한량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단우문은 눈물을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하아…….
“우리가 사문을 떠나온 지 벌써 사십 년이 넘었군요.”
깊은 한숨을 내쉬는 구모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때는 참으로 젊었는데…….”
구모는 젊은 날 사문을 떠나와 강호를 떠돌다가 은운곡에 자리 잡았다.
은운곡에 자리를 잡고 지내다 보니 사문의 멸문을 듣게 되었고, 강호가 바뀌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곤륜의 미래를 위해 너를 죽은 제자로 처리할 것이다.’
감히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장문인께 불려 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사문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곤륜의 미래라니? 그 누가 감히 곤륜을 위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강호로 나와 전진의 단우문을 만나게 되자 비로소 자신이 막중한 책임을 떠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전진의 장문인과 곤륜의 장문인이 미리 약속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흐르고, 사문의 멸문을 들었을 때 앞날을 내다보는 장문인들의 혜안에 탄복을 금치 못했었다.
“우리가 보낸 세월이 그저 허황된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래도 곡주께서는 장문지보를 받으셨으니 다행이라 하겠지요. 나의 곤륜은 장문지보조차 남기지 못했어요.”
저벅저벅…….
멀리서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곡주는 급히 휘어진 도를 안쪽에 감췄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곧 문이 열리고 초로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찾아왔는데, 곡주님께 받을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내가 그리 말하던가?”
“예.”
“어서, 어서 데려오게.”
곡주는 몹시 흥분했는지 목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사문에서 찾아왔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초조한 모습으로 방 안을 서성이는 곡주를 지켜보는 구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초로의 사내가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사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곡주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이유로 나를 보자고 하였는가?”
“사부님께서 제게 이르시길 오래전 사조님이 사숙께 물건을 하나 맡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사숙이라…… 사부님의 함자가 어찌 되시는가?”
“성은 황이요, 이름은 석의가 되십니다.”
아아아…….
곡주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는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전진의 제자 오진권이 사숙을 뵈옵니다.”
* * *
“림주님을 뵙습니다.”
“앉아라.”
이미 비강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호위들은 앞을 막지 않았다.
“벽사군을 림주님께서 데리고 있었군요.”
비강의 짐작에 풍천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이 녀석은 지나치게 감이 좋았다.
“그래, 벽사군을 죽이려 왔느냐?”
“림주께서 제 앞을 막지 않으신다면.”
껄껄껄…….
풍천양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 당돌한 젊은 녀석이 사군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다.
무릇 강호에선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법.
그러나 사부로서 마지막 한 번의 기회는 주고 싶었다.
“다음에 그 아이를 만나면 네 마음대로 해라. 죽음까지 허락하마.”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풍천양이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벽사군을 빼돌려 놓고 이제는 죽음을 허락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제 다시 그 여자를 볼 수 있는 겁니까?”
“글쎄다. 마음 같아서는 십 년 동안은 다시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 아이에게 그 정도의 인내심은 없을 것 같구나.”
“역시, 그 여자는 림주님의 제자였군요.”
풍천양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영리하고 패기 넘치는 녀석을 상대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은운곡에 은자 오천 냥을 보낼 것이 아니라 오만 냥을 보냈어야 했어.’
보면 볼수록 새롭고, 대하면 대할수록 탐이 나는 녀석이었다.
“범인을 그렇게 빨리 찾아낸 것을 보면 하오문의 도움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가슴까지 철렁할 풍천양의 말에 비강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찌 아셨습니까?”
“다른 정보가 있었다면 순찰단에서 벌써 범인을 찾아냈을 게다. 철빙이도 그리 만만한 아이가 아니지. 아마도 그 정보는 백월루에서 들었을 테고.”
껄껄껄…….
비강의 안색을 살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풍천양은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
“네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조금 커졌어. 그래도 나름 스스로를 숨길 줄 아는구나.”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 풍천양은 말을 이었다.
“하오문을 이용하는 것은 좋다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하진 말거라.”
풍천양은 비강의 짐작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일을 짐작하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답답해.’
비강은 도신 도운패와의 일전에서 패했을 때의 막막함을 풍천양으로부터 다시 느끼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림주님.”
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풍천양의 얼굴에서 푸근했던 미소는 말끔하게 걷혔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총관 벽하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비강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가 풍천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동천에서 림주께 전서를 전해 왔습니다.”
흐음…….
풍천양은 총관이 바쳐 올린 전서를 살펴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만 나가 보아라. 총관도 나가 보고.”
비강이 먼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풍천양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회의실 안에 홀로 앉아 있는 풍천양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려고 이러는 것이냐, 남궁악.”
벗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천의 남궁악은 벗 중에서도 가장 큰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 * *
전진 장문인의 죽음은 강호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전진의 장문인이 제자들과 함께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강호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일을 떠들어 댔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비강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북림의 백리혈이 검으로 서안을 반쪽으로 갈라놓았다더라.”
전진 장문인과의 일전에서 사용한 무공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눈덩이처럼 부풀려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