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6화
제36화. 돌아온 자(3)
‘용아포가 더 강해졌어.’
집무실로 돌아온 비강은 의자에 앉아 조금 전의 일전을 떠올렸다.
미세한 차이이기는 했지만 네 번째 무공의 위력이 더 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저씨의 그 일수에 도달할 수 있겠지.’
벌컥. 쾅!
문이 열리며 약철빙이 들어서고 문이 거칠게 닫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약철빙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비강에게 버럭 화를 냈다.
“나를 속였어.”
“속인 적 없습니다.”
“무공을 숨겼잖아?”
“단주님이 묻지 않았고 내 무공을 지레짐작한 것뿐이지 않습니까.”
맞다.
비강의 무공을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무공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온통 그 무공에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여태까지 속은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또 무슨 무공이 있지?”
“없습니다. 그게 가장 강한 무공이었습니다.”
북궁도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도 당장 멱살을 잡고 따졌을 것이다.
“림주님의 호출이 있을 거야.”
“어떻게 아십니까.”
“저잣거리를 반으로 가르는 무공을 지니고 있는데 림주님이 가만히 듣고만 있겠어? 분명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할 거야. 북은각은 거절했으니 비각당이나 감찰단으로 옮겨 가라 하겠지. 그것도 부당주나 부단주의 자리로 말이야.”
흐음…….
비강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비각당은 강호 무림의 정보를 총괄하는 곳이고 감찰단은 북림의 무인들과 강호의 무인들을 감시하는 곳이었다.
특히 감찰단은 적이 아닌 아군을 감시하는 곳이라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약철빙은 생각에 잠겨 있는 비강을 사나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절대로 비강을 다른 곳으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혹시 내가 그런 자리보다 다른 것을 요구한다면 림주가 들어줄 것 같습니까?”
“무슨 요구를 할 생각인데?”
“모중악과 양당원의 죽음에 대한 조사, 청마조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금 뭐…… 라고?”
* * *
동천의 본거지는 안휘 황산을 등 뒤에 두고 있었다.
원래 그곳은 남궁세가의 터전이었으나 동천의 주인 남궁악이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검신 남궁악에게 항복한 남궁세가는 세력이 형편없이 줄었으나 가문만은 보존할 수 있었다.
원래 검신 남궁악의 선조는 허씨 성을 쓰는 유명한 화공이었다.
그의 재주를 탐낸 남궁세가에서 남궁의 성을 주고 남궁의 여인까지 아내로 삼게 해 남궁세가에서 살게 했다.
하지만 후손들의 재주는 선조를 못 따라가 노예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그것이 어릴 때 검신이 가문을 뛰쳐나간 이유였다.
“천주님, 잠자리에 드시지 않으셨다면 잠시 말씀을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들어오게.”
막 운기행공을 마친 검신 남궁악은 총관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총관 사공진이 들어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용무를 밝혔다.
“지금 성문 밖에 손님이 와 있는데 몰래 천주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중요한 손님인 모양이로군.”
이미 자시를 넘기고 있는 깊은 밤이었다.
손님의 정체가 아주 대단한 신분이 아니었다면 총관은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홍살막의 막주이자 사련의 새로운 련주 두궁천입니다.”
방문자가 너무 뜻밖이라 잠시 어이없어하던 남궁악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둠 속에 숨어 사는 쥐새끼 주제에 감히 나를 만나고 싶다? 재미있군, 들여보내게.”
“회의실로 들이겠습니다.”
총관이 방을 나가자 남궁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겉옷을 걸치고 방을 나와 회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총관은 삼십 대 중반의 사내를 데리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흐릿한 눈동자와 어울리는 지저분한 턱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무인이 아닌 술주정뱅이처럼 보였다.
“사련의 련주 두궁천이 동천의 주인께 인사 올립니다.”
사내는 회의실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남궁악은 무심하게 사내를 내려다볼 뿐 말이 없었다.
“사련의 주인 두궁천이 천주께 목숨을 맡기고자 하옵니다.”
남궁악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는 두궁천의 목소리는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 갔다.
“사파의 자식이…… 정파의 협객을 꿈꿨습니다. 할아버님께서 백리혈의 손에 죽임을 당할 때도 기녀들의 치마폭에 누워 제 자신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수하들이 목숨 바쳐 벌어 온 은자로 정파의 협객을 꿈꾸며 세월을 탕진하고 있었습니다.”
격정 가득했던 두궁천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는 품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단검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앞에 내려놓았다.
“사련의 련주지령을 천주님께 바칩니다.”
그제야 남궁악은 조금 관심이 생기는지 손가락으로 황금 단검을 가리켰다.
스으으…….
바닥에 놓여 있던 황금 단검은 그대로 공중을 날아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백리혈을 죽이게 해 주십시오.”
지금 사련은 멸망 직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북림과 서패를 공격했기에 사패의 순찰단은 눈에 불을 켜고 이들을 쫓고 있었다.
두궁천은 남궁악에게 방패막이가 되어 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우습구나. 아무리 내가 련주지령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너의 수하들이 내 명령을 들을 것 같으냐?”
“천주님을 뵈러 오기 전에 육십이 명의 수하를 베어 뒤를 깨끗이 했습니다. 또한 안휘에 숨어 있는 백건적의 소굴 한 곳을 알고 있으니 천주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호오…….
흥미가 동한 남궁악은 질문을 이어 나갔다.
“하나 인신매매와 강도, 청부살인을 일삼던 것들이 조용히 지내리라 보는 것이냐?”
“만약 수하들이 또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제가 직접 죽여 없애겠습니다.”
남궁악과 동천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아니, 두궁천을 휘하에 둔다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그동안 머리를 썩였던 사파를 없앨 수 있고, 두 번째는 동천의 힘을 불릴 수 있게 되었으며, 세 번째는 백건적을 잡아 추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삼패의 주인들이었다.
‘나를 의심할 것이냐, 아니면 웃어넘길 것이냐.’
이런 일은 처음부터 밝혀 의심을 피하는 것이 좋다.
“남아 있는 수하들은 얼마나 있느냐?”
“삼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총관, 외부에 저들이 기거할 처소를 만들어 주게.”
쿵!
남궁악의 허락이 떨어지자 두궁천은 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천주님의 구명지은은 목숨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 * *
림주 풍천양은 총관이 가져온 전진 장문인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격전을 치렀으나 검신의 날이 여전한 것을 보니 과연 장문인이 지니고 다닐 만한 명검이었다.
“자네는 이 장문지령을 어찌 보는가?”
“명검 중의 명검입니다. 전진의 장문인이 장문지령으로 삼을 만하다고 보입니다.”
삼십 대 초반의 사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이 검은 장문지령이 아닐세. 원래 전진파는 이 검과 다른 모양의 도를 장문지령으로 삼았었지. 하나 전대 장문인이 강호 무림에 나갔다가 장문지령을 깊은 강물 속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말았다네. 그 후로 전진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명검 중에 하나를 골라 장문지령으로 삼았네.”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소신의 식견이 얕음을 꾸짖어 주십시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풍천양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그것을 반대편에 있는 탁자 끝으로 던졌다.
검은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가 탁자 끝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순찰단주 약철빙이 부관 연비강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라.”
문이 열리며 약철빙과 비강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순찰단주 약철빙이 림주님을 뵙습니다.”
약철빙의 인사에 이어 비강은 두 손을 감싸 쥐며 고개만 숙였다.
“앉아.”
비강과 약철빙은 긴 탁자 끝에 놓인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전진 장문인의 검이 놓여 있었다.
풍천양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비강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보통 녀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새외에서 전쟁터의 악마로 불렸고 왕의 총애를 받았다는 비각당의 보고도 받았다.
그러나 새외의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점은 남선의 도운패가 이놈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남쪽의 도운패가 직접 전서를 보내왔었다.
사신으로 온 연비강이라는 젊은 녀석이 아주 마음에 드니 아예 남선의 사람으로 달라는 내용이었다.
벗 중에 가장 엉뚱하면서도 마음이 넓고 정이 많은 사람이 바로 도운패였다.
전서의 내용은 반쯤 진실이 섞여 있을 테지만, 벗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연비강이라는 젊은 고수를 신중하게 살펴보라는 뜻일 게다.
“총관, 연 부관이 공을 세웠으니 그에 합당한 직책과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나?”
풍천양의 눈은 비강을 향하고 있었지만 질문은 총관에게 하고 있었다.
“비각당이나 감찰단으로 불러들여 몇 달간 일을 배우게 한 후 직책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림주님. 그것이 마땅치 않으시다면 저나 부림주 밑에서 일을 배우게 한 후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면 될 것입니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
질문을 받은 비강은 담담한 눈빛으로 풍천양을 주시하며 되물었다.
“굳이 공에 어울리는 직책과 보상을 내리시겠다면 제가 요구를 해도 되겠습니까?”
비강의 말에 총관 벽하원은 많이 놀란 눈치였으나 풍천양은 희미하게 기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아라.”
“얼마 전에 제가 몸담고 있던 흑견조의 조원들이 암습을 받아 죽었습니다. 그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 일은 이미 순찰단에서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지 않소?”
총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는 순찰단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이자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벽하원은 지금 비강의 요구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군에 대한 조사는 의심스런 정황 증거나 증인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감찰단이라고 해도 함부로 행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일은 그의 여동생인 벽사군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비록 의심스런 구석이 없지는 않으나 여태까지 그런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 여동생을 믿고 싶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그는 연비강이 청마조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연 소협.”
그러나 크게 당황한 벽하원과는 달리 풍천양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총관. 흑견조가 암습을 받아 죽게 된 경위를 말해 보게.”
“예. 흑견조는 흥덕에서 백건적에 대한 순찰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흑견조가 흥덕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조원인 모중악과 양당원은 술을 마시러 외출을 했다가 암습을 당했습니다.”
벽하원의 보고를 받은 풍천양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묻겠다. 만약 청마조가 이번 일에 관련이 있다면 어찌할 생각이냐?”
“죽일 겁니다. 범인은 물론이고 조장까지 죽어야 할 겁니다.”
비강의 대답은 확고했다.
“조사해 봐. 너에게 그 사건의 조사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마.”
“림주님, 아군에 대한 조사는 감찰단의 고유 권한이라…….”
풍천양은 처음으로 자신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벽하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불안한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럼, 문제 될 것이 없지 않나.”
“죄송합니다.”
벽하원이 머리를 조아리자 풍천양은 두 사람에게 퇴실을 명했다.
“그만 나가 봐. 전진 장문인의 검은 포상으로 너에게 내릴 터이니 가져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