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4화
제34화. 돌아온 자(1)
포목점에서 무복 몇 벌과 속옷, 가죽신을 구입한 비강은 북림으로 향했다.
북림에 도착해 순찰단주의 집무실로 올라가 보니 새로운 호위 둘이 인사를 하며 맞이했다.
“연 부관을 뵙습니다. 이번에 단주님의 호위를 맡은 동평지라고 합니다.”
“광이재입니다.”
동평지는 여 호위였고 광이재는 남 호위였는데, 두 사람 모두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두 사람은 나이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동평지는 허리에 도와 함께 비도를 다섯 자루나 차고 있었고 광이재는 손에 긴 창을 쥐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반갑소.”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선 비강은 자리에 앉아 있는 약철빙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일을 끝냈네?”
약철빙은 비강과 눈을 마주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선에서 이것을 림주님께 보여 드리라 하였습니다.”
비강은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는 대검을 풀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수고했어. 내가 부림주에게 전해 줄게.”
“호위 둘이 새로 왔더군요.”
“아, 내가 특별히 요청한 인물들이야. 원래 부림주의 직속 수하로 있을 정도로 무공이 대단히 뛰어났는데 항명을 하는 바람에 수비대의 평조원으로 좌천되었어. 무력대에서도 크게 욕심을 냈던 인물들이었지만 부림주 때문에 차출해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호위로 오게 되었어. 두 사람이 합공을 펼치면 연 부관도 꽤나 애를 먹을걸?”
단주가 호언장담을 하는 것으로 보아 무공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비강은 단주의 말을 흘려들으며 의자에 앉았다.
“먼저 서류들을 훑어봐. 그래야 순찰단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을 테니. 아, 그리고 흑견조의 모중악, 양당원과 많이 친했었나?”
“약간의 친분은 있었습니다.”
“그래? 이번에 하남으로 순찰을 나갔다가 암습을 당해 죽었어.”
“그렇게…… 되었군요.”
비강은 뜻밖의 죽음을 전해 들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모중악은 강호에서 처음으로 비무를 했던 자였다.
그 후로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 주었고 언제나 밝은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아니, 야밤에 두 사람이 따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가 암습을 당해 죽어 누가 범인인지 찾아내지 못했어.”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까?”
“있기는 있었는데 확실하게 목격한 사람은 없어. 지금 흑견조와 청마조가 범인을 찾고 있는 중이야.”
‘청마조가 왜?’
비강은 문득 청마조가 마음에 걸렸다.
“청마조가 왜 흑견조와 함께하고 있는 겁니까?”
“근처에서 순찰을 하고 있었어. 하남 흥덕 지부에서 올라온 서류들이 있으니 직접 살펴봐.”
비강은 책상 위에 놓인 여러 서류를 살피다가 하남 흥덕 지부에서 보내온 서류 몇 장을 찾아냈다.
‘범인은 키가 큰 사내였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흉기는 검이었다. 이게 전부로군.’
뒷장을 뒤적여 근래에 도착한 서신을 살펴보던 비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모중악과 양당원을 쓰러뜨린 후 두 눈에 검을 꽂았다? 하면 원한의 의한 살인이라는 건가?’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은 아주 적었다.
두 사람 다 한꺼번에 죽였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 공통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백건적인가? 아니야. 그자들이라면 굳이 죽이고 난 후에 눈까지 찌르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부림주에게 다녀올게.”
“그렇게 하십시오.”
상념에 잠겨 있던 비강은 약철빙이 도를 들고 밖으로 나간 후 들고 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 다른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사흘이 지나고 흥덕에서 흑견조와 청마조가 복귀했다.
흑견조는 조장이 직접 단주의 집무실로 와 보고를 했지만 청마조는 부조장이 다녀갔다.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흥덕을 샅샅이 수색해 보았으나 백건적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조장 온조도 범인을 백건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돌아가 쉬어요.”
“예.”
온조가 보고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비강의 목소리가 그를 잡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흥덕에 먼저 도착한 조는 청마조였소, 아니면 흑견조였소?”
“청마조가 하루 먼저 도착하고 우리 흑견조가 뒤에 흥덕에 들어갔소.”
이제는 비강이 흑견조의 조원이 아닌 순찰단의 부관이라 서로 예의를 갖췄다.
“그렇다면 청마조와 그곳에서 마주친 적이 있소?”
“거리에서 한 번 마주쳤었는데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었소.”
“잘 알겠소.”
온조가 집무실을 나가고 난 후 약철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청마조를 의심하고 있는 거야?”
“충분히 의심할 만합니다.”
“과한 의심이야. 지금까지 청마조는 불미스러운 일을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어. 림주님 또한 그들에 관해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고.”
“그렇습니까.”
비강은 약철빙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이에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함부로 순찰단의 순찰조를 의심하면 뒷감당이 힘들어져.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그들을 의심하지 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저들의 본성은 여전할 것이다.
다만 저들이 참고 있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한번 따뜻한 햇볕을 경험한 자는 다시 차가운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려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뿐, 언제든 어둠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낸 비강은 깨끗한 속옷과 무복을 챙겨 순찰단주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두 번째 무공인 이원삼천(移源芟穿)은 세 번째 무공인 삼하귀상(芟河晷喪)보다 위력이 약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더 난해한 무공이었다.
즉 언제든 두 번째 무공이 세 번째 무공만큼 강해지거나 오히려 더 높아질 수도 있었다.
스아악……!
비강의 검은 순식간에 공간을 조각조각 갈랐다.
‘원을 그리면 속도와 위력이 떨어져. 그렇다면 내공으로 원을 그리는 수밖에 없어.’
네 번째 용아포는 강력한 내공을 바탕으로 무지막지한 기운을 쏟아내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무공은 자연스러움에 그 바탕을 둔다.
우웅…….
검이 떨리고, 검광은 번쩍이며 원을 만들어 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무공에 대해 생각하고 검을 들어 직접 연마도 해 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만약 이 두 번째 무공의 변형을 완성해 낸다면 네 번째 무공은 더욱더 강력한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공을 연마하던 비강은 별빛이 뚜렷해지자 손을 멈추고 운기행공에 빠져들었다.
* * *
운기행공을 마치고 아래쪽 냇가로 내려가 몸을 씻은 그는 새 속옷과 무복으로 갈아입고는 단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옆에 놓인 광주리에 무복과 속옷을 넣어 놓고 방으로 들어가니 약철빙은 불을 켜 놓은 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저 먼저 들어갑니다.”
“밖에 나가 술이나 한잔할까?”
약철빙이 눈을 뜨며 비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닙니다. 오늘은 그냥 자고 싶습니다.”
“소문을 들으니 기루에 자주 드나든다며? 보기보다 엄청 음흉해.”
“벗을 위해 함께한 것뿐입니다.”
“남협이 진상이기는 하지.”
“좋은 녀석입니다.”
방으로 들어온 비강은 침상에 몸을 뉘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모중악과 양당원을 죽인 자가 청마조의 조원이 맞는 걸까?’
* * *
축 처진 하얀 눈썹이 깊고 주름진 눈을 반쯤 가린 백발의 노인이 막 서안으로 들어섰다.
백색 무복을 입고 있는 노인은 머리에 검은 비단으로 만든 작은 관을 쓰고 있었는데, 관에는 울긋불긋한 색으로 비상하는 금시조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노인의 양옆으로 허리에 장검을 찬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사내 둘이 호종하고 있었다.
허어…….
“근 이십 년 만이로구나.”
서안의 입구에 들어서던 노인은 수많은 건물과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북림보다는 본문이 자리 잡고 있었던 서패가 더 낫지 않겠는지요, 사부님.”
“나도 그러고 싶다만 변절자 중에 내 얼굴을 아는 자들이 있어 저들의 눈과 귀가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구나. 어차피 마지막 길이니 북림은 어떻고 서패 또한 어떠하겠느냐. 다 거기서 거기이니라.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여라.”
중년 사내들은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저희들은 마지막까지 사부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어허, 너희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 전진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두 제자보다 훨씬 더 영명한 사제가 남아 있어 괜찮습니다.”
노인은 애틋한 눈으로 제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너희들의 뜻이 그렇다면 허락하마. 끝까지 장렬함을 보여야 하느니라. 장렬한 죽음으로 우리 전진이 여전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우치게 해야 하느니라.”
“그럴 것이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옵니다.”
“좋다. 어서 가자꾸나.”
노인과 중년 사내 둘은 북림이 자리 잡고 있는 서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마차, 수레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던 그들은 가까운 객잔으로 들어가 요리를 주문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라 그런지 요리가 나왔음에도 배가 고픈지 몰랐다.
노인과 중년 사내 둘은 푸짐한 요리는 몇 점 먹지도 않고 조용히 술만 마셨다.
그렇게 술을 세 병쯤 비웠을 때 노인이 먼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중년 사내들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 그것을 통째로 객잔 주인에게 건넸다.
“아이고, 이건 너무 많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음식과 술값만 제하고 돌려드릴…….”
“아니오, 주인장. 이제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 없으니 다 가져가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하하…….
“곧 알게 될 것이오.”
슬픔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어 보인 사내들은 노인과 함께 객잔을 나섰다.
* * *
길을 걷던 그들은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거리 한복판에 걸음을 멈췄다.
히히히히힝…….
마침 달려오던 마차의 말들이 무엇에 놀랐는지 급히 발을 멈추며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이보시오!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어쩌자는……?”
마부가 성질을 부리다가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을 느끼고는 급히 입을 닫았다.
“이랴! 이랴!”
마부는 말머리를 돌려 세 사람을 피해 마차를 이끌고 지나쳐 갔다.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뭐야?”
“강호인들이야. 북림의 무인들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수군거리는 가운데 저잣거리를 순찰하고 있던 황서조(黃鼠組)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오?”
황서조의 조장 기동헌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북림의 림주 풍천양에게 생사결을 신청하노라!”
중년 사내 하나가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 무슨……?”
조원들과 조장 기동헌은 당황한 나머지 잠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린 그들은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었다.
차창! 창……!
황서조가 모두 병기를 뽑아 들자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정체를 밝혀라!”
허허허허…….
노인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더니 곧 강렬한 안광을 뿜어냈다.
“풍천양에게 전진의 장문인이 돌아왔다고 전하라!”
“허, 헛소리하지 마라! 전진은 이미 멸문했다!”
스걱.
언제 어떻게 검이 뽑혔는지 모르나 조장 기동헌의 목에 혈선이 그어지고 곧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전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느니라.”
기동헌의 목을 쳐 낸 노인은 검을 집어넣으며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시신의 수습을 허락하마.”
“쳐, 쳐라!”
조원들은 일제히 노인과 중년 사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따땅! 컥! 커억……!
하지만 중년 사내들의 검이 먼저 그들의 목과 가슴을 베어 냈다.
따다당!
“어서 지원을…… 커억!”
중년 사내의 검을 막아 내던 조원 하나가 지원을 요청하며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