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3화
제33화. 삼봉
비강과 북궁도는 닭구이 한 조각씩을 집어 갔다.
“도야, 만약 또 다른 자가 나타나 네 닭구이를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쩝쩝…….
닭구이를 열심히 씹어 대던 북궁도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도운패의 말을 받았다.
“그야 당연히 거절해야지요.”
“만약 상대가 너를 죽이려 한다면?”
“맞서 싸워야겠지요.”
“그가 너보다 강하다면?”
“비강이와 함께 싸우면 돼요.”
껄껄껄…….
화통한 웃음을 보인 도운패는 술잔을 비우고 다음 질문을 이었다.
“그자와 내가 한편이라면 어찌하겠느냐?”
“어? 그럼 곤란한데. 그냥 제가 양보할게요.”
쯧쯧…….
“속 편한 놈.”
혀를 찬 도운패는 자신의 몫으로 남겨진 닭구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비강은 그의 이야기 속에 함축된 많은 것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는 원래 자네 것인가?”
풍천양과 마찬가지로 도운패도 검은 반지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전리품으로 우연히 얻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반지가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런 반지를 예전에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모른다네.”
반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날 그분께서 저런 모양과 비슷한 은색의 반지를 끼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비강은 도운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반지를 본 적이 없다면 아저씨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며칠 몸을 추슬렀다가 돌아가게. 네 녀석도 이곳에서 며칠간 벗과 함께 지내거라.”
“당연하지요, 사부님.”
비강과 북궁도는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도운패는 느린 걸음으로 넓은 마당을 가로질렀다.
숲을 나와 산을 내려가던 그는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하얀 구름을 아련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분과 함께 있을 때는 정말 행복했었다.
하하하…….
호호호…….
사형과 벗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아직까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매일같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분께서는 자신들의 곁을 떠나가셨다.
그분께서 떠나시고 사형이 가장 먼저 변하기 시작했다.
사형이 변해 가자 벗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운패는 행복했던 지난날을 매일같이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날을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 * *
자리에서 일어난 지 사흘이 지나가자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마당에서 가볍게 몸을 풀던 비강은 근처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북궁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상단전은 열었냐?”
빠르게 도를 뻗어 내던 북궁도의 팔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중단전과 하단전만으로도 힘이 넘쳐 주체를 하지 못하는데 뭐 하러 상단전을 열어? 상단전을 여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고. 사부님은 상단전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안 믿어. 강호에서 상단전을 연 고수는 채 열 명도 안 될 거다. 그리고 위험하게 뭐 하러 상단전을 여냐? 잘못하다가는 머리를 다쳐 백치가 된단 말이야.”
당당한 북궁도의 대꾸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강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겁이 나서 시도를 못 했구나?”
“어떻게 알았냐?”
비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실 중단전을 열 때도 엄청 고생을 했거든. 가슴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 다행히 사부님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넘기기는 했지만. 그러는 너는 상단전을 열었냐?”
“그래. 상단전을 여느라 일 년 동안 고생했어. 몸속에 불덩이가 들어차 있는 것 같고 살심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지. 머리도 깨질 듯 아프고 누군가 계속 머릿속으로 말을 걸더라고.”
“아닌데. 사부님은 엄청 고생스럽고 힘들기는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건 상단전을 여는 것이 아니라 미친놈을 만드는 거잖아. 어…… 가만, 미친놈이나 백치나 거기서 거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던 북궁도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상단전이고 나발이고 나중에 생각하고 기루에 술 마시러 가자.”
“기녀가 그렇게 좋냐?”
“좋지. 내 소원이 뭔지 아냐? 각지의 수많은 미녀를 모아 나만의 기루를 세우는 거야.”
“장하다.”
북궁도는 비강을 끌고 가다시피 산을 내려와 남선맹을 나섰다.
배를 타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강을 끼고 있는 큰 마을로 들어갔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북궁 소협. 오늘은 동료분과 함께 오셨네요?”
큰 기루에 들어서자마자 중년의 총관이 반갑게 달려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동료가 아니라 벗이오. 내 방으로 푸짐한 술상과 함께 기녀들을 들여보내 주시오.”
얼마나 뻔질나게 기루를 드나들었는지 전용으로 사용하는 방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렴요. 얼른 들어가세요.”
북궁도는 비강과 함께 익숙한 발걸음으로 방을 찾아 들어갔다.
“어머, 서방님 오셨어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녀 하나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북궁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하하하…….
“홍매, 잘 있었소?”
“그럼요. 그동안 서방님의 발걸음이 뜸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미안하오. 내가 그동안 너무 바빠 홍매를 보러 오지 못했소.”
북궁도의 품에 안겨 있던 기녀는 비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저 공자님은…….”
“내 벗이오. 강호에서는 백리혈이라 불리고 있소.”
“어머, 유명한 분이시군요. 몰라뵈었어요. 저는 홍매라고 합니다.”
기녀는 비강을 향해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연비강이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서방님. 제가 직접 술상을 봐 올게요.”
“여기 내 벗은 얼굴이 갸름하고 금을 탈 줄 아는 여인을 좋아하니 재주가 뛰어난 여인을 데려오시오.”
“알겠어요, 서방님.”
북궁도의 품을 빠져나온 기녀는 사뿐사뿐 걸음을 걸어 방을 나갔다.
“꽤 오래 연분을 맺고 있었나 보구나?”
“어, 한 이 년쯤 됐어.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기녀가 된 여자야.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 내가 대신 빚을 갚아 줬는데도 기루를 떠나지 않고 있어. 동생들 때문이라도 계속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여자로군.”
“그렇지.”
홍매는 또 다른 기녀와 함께 술상을 차려 내왔다.
“청련이라고 해요.”
청련이라는 기명을 밝힌 기녀는 눈매가 조금 사나워 보였다.
띵디딩…… 딩딩…….
곧 금음이 울려 퍼지고 술판이 벌어졌다.
“마셔, 마셔.”
연거푸 술잔을 비운 북궁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는데 나중에는 비강도 억지로 일어나 춤을 춰야 했다.
그렇게 술자리는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 * *
비강이 남선맹을 떠나는 날 북궁도는 십 리나 배웅을 나왔다.
“하루만 더 놀다 가라, 응?”
“다음에 네가 시간을 내 놀러 와. 그땐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게.”
“정말이지? 약속이다?”
“그래.”
끈질기게 따라붙는 북궁도를 돌려보낸 비강은 북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며칠 동안 낮에는 경공으로 달리고 밤에는 객잔에서 몸을 쉬다 보니 사흘째는 벌써 호남을 넘어 호북의 경계까지 이르렀다.
‘벌써 가을이로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밤에는 날씨가 선선했다.
몸을 쉴 만한 객잔을 찾지 못해 노숙을 하게 된 비강은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숲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자는…….’
먼저 노숙을 하고 있는 선객을 알아본 비강은 정중하게 손을 모았다.
“같이 밤을 보내도 되겠소이까?”
“원시천존, 주인 없는 땅이니 제게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불을 피워 놓고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남쪽으로 내려갈 때 배에서 만난 젊은 행자였다.
비강은 행자가 앉아 있는 건너편에 불을 마주 보고 앉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젊은 행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나는 연비강이오.”
허어…….
“원시천존.”
젊은 행자는 도호를 한 번 외더니 자신의 도명을 밝혔다.
“화산에서 내려온 삼봉이라 합니다.”
서로 이름과 도명을 밝혔지만 그 뒤로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 비강은 깊은 숲으로 들어가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후우!
깊은숨을 내쉬는 것으로 운기행공을 끝낸 비강은 삼봉이 앉아 있는 불 앞으로 나왔다.
“외람된 부탁이기는 하나 저와 권각술로 비무를 한번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삼봉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불빛에 비친 삼봉의 맑은 눈을 들여다본 비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허리에 차고 있는 검과 도, 그리고 등의 봉을 빼내 내려놓은 비강은 공터 한쪽에 삼봉과 마주했다.
“선공을 하십시오.”
“그럼, 먼저 시작하겠소.”
휘익!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비강이 주먹이 날아갔다.
탁!
삼봉은 날아오는 주먹을 양손으로 휘어 감으며 관절을 꺾었다.
휘익!
관절이 꺾이려는 순간 또 다른 주먹이 날아갔다.
툭!
관절을 꺾으려던 팔을 부드럽게 밀어 친 삼봉은 날아오는 주먹을 다시 휘감았다.
‘처음 보는 무공이군.’
스악!
비강의 주먹이 빨라지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뿐만 아니라 양발까지 공기를 가르며 삼봉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올려 쳤다.
타탁! 탁……!
그때마다 삼봉은 주먹과 발을 비스듬히 비껴 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공격을 모두 막아 낸 것이다.
“훌륭한 무공이오.”
“과찬이십니다. 조금 더 과격하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럽시다.”
부아악!
바로 공기를 찢어 버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강의 양 주먹은 어지러운 권영을 만들어 내며 날아갔다.
탁! 타탁! 탁……!
삼봉이 어지럽게 날아오는 권영을 부드럽게 비껴 막았으나 발걸음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왼쪽 발로 삼봉의 무릎을 감아 찬 비강의 신형이 회전하며 오른쪽 발이 삼봉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퍽!
주륵…….
오른발을 막아 낸 삼봉은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났다.
“역시 어지간한 유(流)로는 강(强)을 막아 내기가 힘들군요. 감사합니다.”
삼봉은 양손을 공손히 모으며 비무의 끝을 알렸다.
발과 부딪친 팔이 심하게 아팠을 터인데 그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검법도 연마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왜 내보이지 않는 거요?”
비강은 턱 끝으로 땅바닥에 놓여 있는 곧게 뻗은 나무 지팡이를 가리켰다.
“검법 또한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끝이 어디인지 아직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망해 버린 도문에 이런 인재도 있었구나.’
“미흡하기는 하나 비무에 대한 답례로 저의 검을 한번 보여 드릴까 합니다. 어리석은 검이라면 마음껏 비웃어 주십시오.”
삼봉은 곧게 뻗은 지팡이를 잡더니 곧 검법을 시전해 보였다.
찌르고 베고 감아 가는 것이 아주 빠르고 간결했다.
내공만 더해진다면 꽤나 괜찮은 검법처럼 보였다.
검은 빠르게 원을 그리다가 멈췄다.
“아직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소.”
비강은 삼봉의 검에서 또 다른 무공을 떠올렸다.
그것은 새로운 무공이 아닌 두 번째 무공의 변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