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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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32화
제32화. 도신 도운패(2)
비강은 긴 탁자 끝에 놓여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이것이 혈저귀의 애병입니다.”
그리고 북궁도는 도운패의 앞으로 다가가 대검을 그 앞에 올려놓았다.
“기수동이었구나. 그놈이 혈저귀였어.”
도운패는 검을 뽑아 보지도 않고 혈저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남긴 말은 없었느냐?”
“옛날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인 도운패는 대검을 뽑아 검신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이 검은 원래 기수동의 것이 아니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패악질에 맞서다가 황곡으로 들어온 어느 늙은 고수의 애병이었다.
그 고수가 귀여워한 먹성 좋은 소년의 이름이 바로 기수동이었다.
“망월(忘月)이라 하였었지.”
망월을 검집에 집어넣은 도운패는 그것을 북궁도에게 넘겼다.
“북림의 사자에게 가져다주어라.”
검을 건네받은 북궁도는 비강의 앞에 그 검을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림주에게 전해 주게.”
“그리하겠습니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운패는 긴 탁자 끝에 앉아 있는 연비강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멀고 먼 남쪽까지 와 고생을 했는데 내가 해 줄 만한 것이 없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게. 어지간한 일은 들어줄 테니.”
뜻밖의 호의였다.
하아…….
비강은 마음을 다스리려 가늘게 심호흡까지 해야 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선주님과 비무를 한번 하고 싶습니다.”
“뭐야? 너, 미쳤구나?”
비강의 말에 화들짝 놀란 사람은 도운패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북궁도였다.
“너, 맞아 죽어.”
“이놈, 닥치지 못하겠느냐!”
도운패는 버럭 역정을 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럴 만한 자격을 보여 주게.”
스으으…….
도운패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강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대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중을 날아오른 대검은 일 장 정도 앞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심후한 내공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능공섭물(綾空攝物)의 경지.
“아…… 씨. 나도 간신히 하는 건데.”
옆에 앉아 있는 북궁도는 그런 식으로 감탄의 말을 입에 올렸다.
“그럼, 어디 백리혈이라는 젊은 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도신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비강과 북궁도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세 사람은 전각과 목조 건물이 가득한 곳을 지나 멀리 숲이 우거진 작은 산으로 향했다.
“어디서 무공을 익혔는가?”
“멀리 새외에서 지내며 무공을 갈고 다듬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라바나의 명성이 전해진 것이로군.”
도운패의 입에서 라바나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북궁도는 깜짝 놀랐다.
“어? 어디서 그 얘기를 들으셨어요? 그 얘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인데.”
“못난 놈, 모르긴 몰라도 사패의 주인들은 이미 라바나라는 이름을 전부 들어 알고 있을 게다.”
“에이, 좋다 말았네.”
숲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평평하고 넓은 평지 앞에서 멈춰 섰다.
평지 한쪽에는 작은 초옥이 한 채 서 있었고 부엌까지 딸려 있었다.
“여긴 아직 그대로네.”
히죽 미소를 보인 북궁도는 초옥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보았다.
이곳은 어린 날 사부와 함께 지내던 곳이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겨웠는데 지나고 나니 그리움으로 남았다.
“바로 시작해 볼까.”
도운패와 비강은 연무장 한가운데 삼 장을 격하고 마주 섰다.
“감사합니다.”
“나를 죽여야 할 걸세. 아니면 자네가 죽네.”
“진짜 죽어. 그러니 처음부터 아주 끝장을 낸다는 심정으로 해야 해.”
북궁도가 옆에서 촐랑거리며 끼어들었다.
“시끄럽다, 이놈! 썩 꺼지지 못할까!”
“알았습니다.”
초옥으로 물러난 북궁도를 뒤로하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 * *
스악!
땅을 박찬 비강의 허리에서 빛이 번쩍이며 사선으로 공간이 베어졌다.
무엇이든 갈라 버릴 것 같은 날카롭고 막강한 기운이 삼 장이라는 거리를 넘어 도운패의 허리를 갈랐다.
그러나 이미 도운패는 삼 장의 거리를 건너뛰어 비강의 목을 베어 오고 있었다.
까깡! 깡! 깡……! 까가가강……!
무지막지한 힘이 비강의 목, 어깨, 가슴, 등, 허리, 허벅지를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분신술이라도 쓰는지 도운패는 사면에서 동시에 비강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끄으으…….
비강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도운패의 도를 막아 내며 이를 악물었다.
검을 쥐고 있는 손바닥은 찢어져 나갈 것같이 아프고 온몸은 충격에 뒤흔들렸다.
까가가가강!
“실망일세.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자네는 정말로 죽네.”
쉴 새 없이 도를 휘두르던 도운패가 물러나며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은근히 감탄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도를 이만큼이나 막아 내는 자가 강호 무림에 얼마나 될까.
“한번 받아 보게.”
도운패는 손에 들고 있던 도를 그대로 비강을 향해 날려 보냈다.
까깡!
도운패의 도와 비강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비강의 어깨를 향해 날아간 도는 검에 의해 튕겨 날아갔다가 그대로 도운패의 손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또 가네.”
피…… 잉!
도운패의 손을 떠난 도는 수평으로 회전을 하며 순식간에 비강의 목을 잘라 버리듯 날아들었다.
까가가…… 강!
‘이런 무공이라니.’
검과 부딪친 도는 목 뒤로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무신이 맞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정도로 높고 깊은 무공은 비강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맞설 만한 무공이 있었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잡은 비강은 도운패를 향해 검을 그대로 뻗어 냈다.
전쟁터에서 단 한 번 선보였던 네 번째 무공이었다.
적들은 이 무공을 악마가 만들어 낸 폭풍이라며 두려워했다.
휘이이이이…….
뻗어 가는 검신을 따라 강력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그 기운은 주변의 공기까지 빨아들였다.
용아포(龍牙砲).
전쟁터에서 처음 발현했던 바로 그 무공이 도운패를 상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쿠아아아…….
검신을 타고 휘도는 둥그런 원통의 막강한 기운이 그대로 도운패를 휩쓸었다.
전신을 휩쓸듯 날아오는 거대한 원형의 기운은 천하의 도운패도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젊은 나이에 이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자가 존재했던가.
감탄의 순간은 짧고도 짧았다.
도운패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향해 도를 들이밀었다.
도신을 타고 흐르던 미세한 기운은 순식간에 덩치를 키우며 순식간에 소용돌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콰앙!
소용돌이 속에서 솟아난 날카로운 빛들은 막강했던 기운을 전부 찢고 비강을 덮쳐 왔다.
까가가가강……!
전신을 찢어 놓을 것 같은 날카로운 기운들을 막아 낸 비강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끄으으…….
그러나 이미 비강의 온몸은 날카로운 기운에 의해 피로 목욕을 한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강했다.
너무도 강했다.
도운패는 감히 무신으로 불려도 충분하리만치 강한 존재였다.
“용아포 천멸후(龍牙砲 天滅吼)!”
비강의 입에서 발악과도 같은 외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무공은 용아포의 변형이었으며 도적들을 휩쓸어 버릴 때 사용했었다.
검신을 타고 다시 소용돌이 같은 기운들이 몰려들며 여러 개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콰콰콰쾅!
“만벽세(萬霹歲)!”
도운패의 입에서도 벼락같은 무공명 하나가 터져 나왔다.
거대한 소용돌이들은 사나운 아가리를 벌리며 도운패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까지 덮쳤다.
꽈드드드드…… 쿠쿵! 쿵!
소용돌이에 휩쓸린 나무들이 연이어 숲과 연무장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곧이어 소용돌이를 갈라 버리는 날카로운 섬광들이 비강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쾅!
끄아아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바위 같은 강력한 기운을 막아 낸 비강의 몸은 순식간에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졌어.’
도운패가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면 자신은 용아포조차 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땅속으로 허벅지까지 묻힌 비강은 온몸에 피를 흘리며 고개를 늘어뜨렸다.
연무장에는 조용한 침묵이 찾아왔다.
허허…….
넉넉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도운패도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단정했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고 무복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피까지 비치고 있었다.
도운패는 고개를 늘어뜨린 채 기절해 있는 비강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비록 비강은 기절한 상태였지만 손에서는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아니, 큰 부상을 당할 뻔했다.
“도야, 보았느냐?”
“예. 사부님.”
북궁도도 무거운 얼굴로 비강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음흉한 구석이 많은 친구인 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경악스러운 무공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강호에서 너에 견줄 만한 젊은 고수들은 손에 꼽을 것이나, 이제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고수가 출현했구나.”
일찍이 이 정도로 젊은 나이에 이만한 경지에 오른 고수는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그는 바로 자신들의 사형이었다.
“제자가 좀 더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니. 너와 벗이라고 했더냐?”
“예. 자랑스러운 제 벗입니다.”
헤죽헤죽 웃어 대는 북궁도를 지그시 바라보던 도운패가 혀를 찼다.
쯧쯧…….
“한심한 녀석. 여기서 며칠 지내야 할 것 같으니 술과 먹을거리를 구해 오너라.”
* * *
마지막 무공에 모든 내공을 대부분 소진했다.
그런데도 도운패를 이기지 못했다.
‘오만했어.’
눈을 뜬 비강은 허름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들었냐?”
방문이 열리며 밝은 얼굴의 북궁도가 안으로 들어왔다.
으으…….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던 비강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몸은 헝겊으로 둘둘 말려 있는 상태였다.
“무리하지 마.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선주님은?”
“바깥에 있는 부엌에서 술을 마시고 계셔.”
비강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북궁도는 행랑 안에 들어 있던 무복을 꺼냈다.
행랑과 망월이라는 검은 맹에 두고 왔기에 아마도 북궁도가 그곳에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네가 입고 있던 무복은 걸레 조각이 되었으니까 새 무복을 입어.”
약철빙이 선물한 무복 중에 한 벌이 도신과의 비무로 걸레짝이 되었다.
비강은 대충 무복을 걸치고는 북궁도의 부축에 의지해 밖으로 나갔다.
부엌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는 여러 요리가 차려져 있고 도신은 그 앞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앉게.”
비강과 북궁도는 맞은편에 가 앉았다.
“북림에는 이미 전서를 보냈으니 조금 늦더라도 이해를 할 걸세.”
도운패는 잔을 내오게 해 비강과 북궁도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한 아저씨에게 배웠는데 그분의 존함조차 모릅니다. 팔 년 전에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가? 짐작하기에 그분은 천하의 기인이사이셨을 것이네.”
술잔을 비운 도운패는 질문을 이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강호에 나왔는가?”
아.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비강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천하제일인이 되고자 합니다.”
껄껄껄…….
도운패는 웃음을 터뜨리고 북궁도는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런 말은 내게 안 했잖아? 왜 사부님께 먼저 하는 건데?”
“이놈!”
웃음을 짓던 도운패는 갑자기 노기를 드러냈다.
“이미 알아요. 제가 사부님의 제자라는 걸.”
“에이, 한심한 놈. 저렇게 한심한 놈이라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어디 가서 내 이름에 먹칠이나 하지 마라, 이놈아.”
“걱정 마세요. 비강이밖에 몰라요.”
쯧쯧…….
도운패는 북궁도를 한심스런 눈으로 쳐다보다가 속이 타는지 연신 술잔을 비웠다.
모르긴 뭘 모른단 말인가?
사패의 주인들은 물론이고 중요한 일을 보는 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선주님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어찌하여 강호 무림은 네 곳으로 나뉘게 되었습니까? 하나로 통일한다면 관리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비강의 질문에 술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도운패가 되물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욕심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욕심보다도 자존심 때문이었지. 우리들은 서로 아주 친했지만 경쟁자이기도 했네. 한 우리에 맹수 넷이 같이 들어가 살 수 있겠는가. 어찌어찌 같이 있게 되었다 치더라도 결국은 싸움이 일어났을 것일세.”
비강과 북궁도는 도운패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사천존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강호 무림을 넷으로 나눈 것이다.
“하면 앞으로도 계속 강호 무림은 넷으로 나뉘어 있겠군요.”
도운패는 이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용히 술잔만 비우던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구운 닭 한 마리를 잡아 셋으로 쪼갰다.
“하나씩 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