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7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0화
제70화. 어느 사형제들(1)
쿠쿠쿵! 쿵!
산 너머에서 폭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북궁도도 적들을 맞아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촤르르, 퍼퍽!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돌아가는 비강의 머리 위로 화살이 지나가며 나뭇가지들을 훑었다.
퍽. 끄으으…….
창끝이 번뜩이고 우거진 수풀 사이로 백건적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는 백건적들도 문제였지만 멀리서 화살만 쏘아 보내고 있는 적은 더욱 큰 문제였다.
한 발 한 발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고 정확했다.
‘귀궁(鬼弓)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겠어.’
비강은 모르고 있었지만 실제로 화살을 쏘아 보내고 있는 중년 여인은 동료들로부터 귀궁이라 불리고 있었다.
신법과 궁술이 남달라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와의 싸움에서 그녀의 활에 수많은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비강은 나무숲을 돌아 비죽비죽 칼처럼 늘어서 있는 바위들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멀리서 화살을 날리던 중년 여인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컥.
바위들 속으로 접근하던 백건적들의 가는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살점이 움푹 뜯겨 나간 허리의 고통이 그녀의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백리혈을 처치하고 상처를 치료해야 하건만 표적은 여우보다 영리한 놈이었다.
여인은 칼 같은 바위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바위를 찾아 신형을 옮겼다.
십 척 정도의 커다랗고 웅장한 바위 위에 올라선 그녀는 비강이 숨어든 바위들을 주시했다.
백건적 하나가 바위들이 들어찬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백건적들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난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횡포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저들은 죽여야 할 원수들이었다.
그럼에도 저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유는 두고두고 앙갚음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데?’
바위들 틈으로 들어간 백건적을 살피던 여인은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쯤이면 저 백건적이 죽어야 하건만 아직도 멀쩡하게 백리혈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카락들이 곤두설 정도로 놀란 그녀는 급히 몸을 돌리며 시위를 당겼다.
아아악!
몸을 돌리자마자 종아리로 싸한 고통이 전해지며 여인의 몸은 십 척 높이의 바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쐐애액…….
손을 떠난 화살은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고 여인의 눈앞으로 무심한 표정의 비강이 다가왔다.
“조금 힘들었어.”
조금 힘든 정도가 아니었다.
아물어 가던 상처들이 다 터졌고 새로 화살까지 맞아 왼쪽 팔은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퍽.
여인의 목을 쳐 버린 비강은 사방을 포위해 조여 오고 있는 적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내가 왔다!”
나무들 사이에서 솟구쳐 오른 북궁도는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며 적들을 휩쓸었다.
휘황한 도광은 저녁노을보다 장엄했고, 흐르는 피는 초록빛을 붉게 물들였다.
끄억! 끄으으…….
애간장을 쥐어짜는 비명과 함께 십여 명의 적이 붉게 물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후퇴.”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의 입에서 침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아남은 백건적 삼십여 명은 비강과 북궁도를 노려보며 천천히 뒤로 빠져나갔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우리가 네놈들을 그냥 이대로 돌려보낼 것 같으냐?”
“나를 생포하지 않는 이상 이들에게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다. 연비강, 북궁도.”
백건적들을 지휘하고 있는 젊은 사내는 여느 고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는 기세는 금지의 고수들에 비견될 정도였다.
“그럼, 네놈을 잡으면 되겠군.”
그러나 두 사람과 젊은 사내와의 거리는 족히 삼십 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남궁세가의 휘.”
언제나 육대세가의 수좌를 차지하던 남궁세가의 후예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의 본거지는 청해에 있다. 하지만 너희들은 평생이 걸려도 그곳을 찾아내지 못해. 연비강, 북궁도.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밀려오는 파도는 막지 못할 거다.”
남궁휘의 목소리는 추측을 넘어 확신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확신이 나올 수 있을까.
“지랄하네.”
비강이 이죽거리자 굳어 있던 북궁도의 안색도 활짝 펴졌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남궁휘를 향해 뻗어 나갔다.
남궁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북궁도를 피해 산등성이 아래로 멀어져갔다.
“오진권에게 안부 전해라!”
비강은 멀어져 가는 남궁휘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 * *
“도대체 지금 이 은운곡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은운곡의 총관 마태관은 자신을 찾아와 항의하는 낭인들로 인해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우리가 바본 줄 아십니까? 총관. 곡주님이 계시는 금지에서 불이 나고 그곳에서 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도 모른 척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리에 하얀 띠까지 두른 백건적들이 산을 타고 올라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 보십시오.”
“잠시 기다려 보게. 내가 곡주님을 만나 뵙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볼 터이니.”
“곡주님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매일같이 얼굴을 보이던 구모께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끄응.
총관은 낭인들의 닦달에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사실 그는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 은운곡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일이 힘든 만큼 들어오는 것들이 제법 짭짤했다.
생필품과 식량을 정기적으로 조달해 주는 곳에서 항상 뇌물을 바쳤고 낭인들도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며 은자를 쥐여 주기도 했다.
‘적당히 받아 챙겨.’
구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감아 주었기에 뒷일에 대한 걱정조차 없었다.
그런데 곡주와 구모가 죽고 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은 더욱 늘어났고 걱정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밥을 먹어도 소화조차 안 될 지경이었다.
“혹시 백건적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은자에 의해 움직이는 낭인들일 뿐입니다.”
낭인들의 걱정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럴 일은……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네. 내가 보장함세.”
확신은 없었지만 우선 낭인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바로 그때 시무석을 지키고 있던 낭인이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북림 무한 지부의 무인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어서,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라 하게.”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서 북림 무한 지부의 방문은 총관에게는 구명줄과 같았다.
“총관께서 직접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총관은 방 안에 모여 있는 낭인들을 헤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막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북림의 무인들은 어림잡아도 일백 명이 넘었다.
“은운곡 총관이 북림의 영웅들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총관.”
총관과 무한 지부의 무인들을 이끌고 온 지부장과는 제법 친분을 맺고 있었다.
북림 무한 지부장의 이름은 모중보로 깔끔한 일 처리와 더불어 철편의 고수로 이름 높은 중년 사내였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닙니다. 백건적들이 이곳으로 움직였다는 제보를 받아 확인을 위해 방문한 것입니다. 또한 무림 공적 백리혈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니 조사해 보라는 영을 받았습니다.”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은운곡이 사패에게서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강호에서 지워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총관의 마음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곡주와 부곡주가 백건적과 한패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주인처럼 모시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려면 그들이 백건적과 한패였다는 사실도 털어놓아야 한다.
“백건적들과 백리혈이…… 이곳에서 싸움을 벌인 것 같습니다. 대략 두 시진 전쯤부터 저쪽 금지가 소란스러워져 저와 낭인들도 지금 크게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총관.”
지부장의 목소리와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그렇습니다. 조금의 거짓도 없습니다.”
“구모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곡주와 부곡주께서는 백리혈의 손에 의해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총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지부장은 데리고 온 무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은운곡을 샅샅이 수색하라!”
곡주와 부곡주가 죽었다면 더 이상 이곳을 수색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었다.
영을 받은 무인들이 빠르게 산 위로 흩어져 올라갔다.
그러나 수하들이 백리혈이나 백건적을 잡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이름깨나 높은 고수라 은운곡의 적막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무한 지부장은 총관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응시했다.
곡주와 부곡주가 죽었다면 이제 은운곡도 문을 닫아야 한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시지요.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총관은 낭인들을 전부 되돌려 보내고 지부장을 안으로 들였다.
* * *
방 안에 지부장과 마주 앉은 총관은 그동안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부장은 은운곡의 곡주와 부곡주가 백건적과 한패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부장은 멍하니 총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 말씀이…… 정말 사실입니까?”
“예. 연 소협이 말하기를 이곳의 곡주와 부곡주, 그리고 시무석을 지키던 송충은 백건적과 한패라 하였습니다.”
흐음…….
“그리된 것이로군. 그렇게 된 것이었어.”
놀람도 잠시, 무한 지부장은 양양 곡성의 혈사를 떠올렸다.
‘백리혈이 죄 없는 가문을 멸한 일을 찜찜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분명 그들도 백건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야. 양양 지부장에게 전서를 보내 조금 더 정확하게 사건을 파헤쳐 보라고 해야겠군.’
백리혈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지부장은 백리혈을 신임하고 있는 림주를 믿고 있었다.
북림의 무인 중에 림주를 직접 대면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부장은 운 좋게도 림주와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있었다.
―그대의 꿈은 무엇인가?
―제 꿈은 고향인 무한에서 협과 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그 일이 있은 후 고향인 무한에서 십 년을 넘게 지부장을 맡아 일을 처리해 왔다.
“곡주의 거처를 볼 수 있겠습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총관을 따라 곡주의 거처로 올라간 지부장은 그곳에서 피 묻은 무복 두 벌을 발견했다.
‘여기서 무복을 갈아입었군. 피가 아직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 * *
“제기랄.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짐을 가득 끌어안은 채 산길을 걷던 북궁도는 묵묵히 걸음만 옮기고 있는 비강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괜찮냐? 무복 아래로 피가 흘러내리는데.”
지금 비강의 다리 아래쪽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나저나 우리가 머물 만한 곳이 있을까?”
“별걱정을 다하네. 은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일단 큰 마을로 들어가 네 상처부터 치료하고 그다음에 머물 곳을 찾아보자. 되도록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북궁도가 품에 안고 있는 짐 안에는 은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산을 타고 내려온 두 사람은 멀리 황학루가 눈에 보이는 무한으로 들어섰다.
북궁도는 먼저 지나가던 노인을 붙잡고 의원의 위치를 물었다.
“조용한 의원을 찾고 있고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늙은 노인은 멀뚱히 북궁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고명한 의원을 묻는 질문은 여러 번 받았으나 조용한 의원을 찾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인 것 같소이다.”
“저도 이런 질문은 처음 해 봅니다.”
“저쪽으로 가 보시오. 두어 마장쯤 가다 보면 왼쪽에 아주 허름한 집 한 채가 외로이 떨어져 있을 거요. 고집 센 늙은이가 의원으로 있는 곳인데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라오.”
“고맙습니다.”
의원의 위치를 알아낸 두 사람은 행인이 알려 준 곳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행인의 말대로 두어 마장쯤 가다 보니 왼쪽에 있는 낮은 언덕을 끼고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으음…….
의원을 발견한 북궁도는 선뜻 그곳으로 들어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 곳으로 들어갔다가는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도 시체가 되어 나올 것 같은데…….”
“괜찮아. 임시로 상처만 봉합하면 되니까.”
비강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북궁도는 꺼림칙한 대로 뒤를 따라 움직였다.
* * *
삐걱…….
기울어진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넓은 마당을 지나 흉가나 다름없어 보이는 집 앞에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은 허름한 집을 돌아 뒷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뒷담 너머로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노인이 밭을 일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의원이십니까?”
북궁도가 목소리를 높여 부르자 밭을 일구던 노인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말없이 괭이를 그곳에 내려놓고는 뒷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게.”
노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귀로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 벗게. 하나도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