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9화
제69화. 접촉
“이야! 보물 창고네, 보물 창고야.”
북궁도는 곡주의 방과 붙어 있는 창고를 뒤지며 돌아다녔다.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
“가긴 어딜 가? 이곳만큼 폐관수련하기 좋은 곳이 어디에 있다고. 은자와 보물들은 많은데 무공비급은 한 권도 없네.”
이미 비강도 곡주의 창고를 살펴보았었다.
북궁도의 말처럼 창고 안에는 은자와 병장기만 있을 뿐 무공비급은 없었다.
“그럼, 여기서 살 거냐?”
“당분간.”
북궁도는 보물 창고를 뒤지는 일이 지쳤는지 침상으로 가 벌렁 드러누웠다.
“다른 방 있어.”
“여기가 편해.”
“폐관수련 한다며?”
“자다가 일어나서 할 거야.”
이 진상을 어찌하면 좋을까.
후우!
비강은 옆쪽에 나 있는 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이연이 사용하던 방이었다.
곡주의 전각은 방 두 개와 창고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곡주의 전각과 조금 떨어진 위쪽에는 또 다른 전각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은 탁자와 의자들만 있을 뿐,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드르렁…….
어느새 북궁도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코까지 골고 있었다.
* * *
‘근 십 년 만이로구나.’
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지만 얼굴을 오히려 그때보다 더 젊어 보였다.
긴 탁자 끝에 앉아 손님의 방문조차 아랑곳없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자가 바로 그자였다.
무공을 전해 주고 자금까지 지원해 준 자였으며 백도정파를 함락시킨 사천존의 사형이었다.
“전진의 오진권이 은인을 뵙습니다.”
“나를 보고 싶어 했다지?”
사내는 오진권에게 흥미가 없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내 약속이 필요했던가?”
사내는 이미 오진권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내 시천세가 별말 없이 붓만 움직이자 오진권은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어찌하여 저희들을 살려 두시는 겁니까?”
하하하하…….
시천세는 크게 한번 웃고는 붓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붓으로 작성한 글을 네 통의 봉서에 넣었다.
“홀로 왕인 놈도 있다더냐.”
결국 저 말은 자신들을 신하로 거두기 위해 살려 두었다는 뜻이었다.
“신하가 왕을 죽인 역사는 고금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크하하하하…….
오진권은 시천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치욕스러웠다.
웃음을 그치고 난 시천세는 깊고 어두운 눈으로 오진권을 주시했다.
오진권은 시천세의 깊고 어두운 눈빛과 마주하자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무저갱과 같은 어둡고 깊은 눈빛은 그의 정신마저 삼켜 버릴 것 같은 공포로 다가왔다.
전에도 이자는 그 막강한 무공으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을 압도했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따라잡았다고 자신했으나 원수들의 사형, 아니 원수는 그 자신감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고, 저도 모르게 무릎이 굽어질 정도였다.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나를 죽일 자신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오너라.”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일까.
이자는 어떻게 천마의 무공을 얻어 완성했을까.
이십여 년 전 백도정파의 짐작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황곡의 강함은 그들의 짐작을 훨씬 넘어섰기에 백도정파가 패망한 것이다.
“우리는…… 강호 무림에 새로운 백도정파를 세울 것입니다.”
“허락하마.”
“사패에 빌붙어 지내던 자들 또한 모조리 도륙할 것입니다.”
“그 또한 허락하마.”
“그렇다면 이제 약속의 징표를 보여 주십시오.”
“역시 그 무리들 중에 네가 제일 낫구나.”
시천세는 오진권의 당당함이 몹시 기꺼웠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이 찾아왔을 때 눈앞의 이놈도 같이 있었다.
제법 근골과 자질이 뛰어나 보여 아껴 두었던 무공비급 한 권을 선물로 내렸었다.
이제 그놈이 그 무리의 대표가 되어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사제들과 회포는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
“좋습니다. 기다리지요.”
“이것을 사패의 주인들에게 전해 주어라.”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네 통의 봉서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봉서는 긴 탁자 끝에 서 있는 오진권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시천세는 턱을 괴고 오진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느 신하가 왕의 명령을 이런 식으로 받더냐.”
굴욕이자 치욕이었다.
특히 저 입가에 띤 비웃음은 자신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진권은 시천세를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존명.”
* * *
북궁도가 은운곡으로 들어온 지 닷새가 지나갔다.
“나가자.”
비강은 곤히 자고 있는 북궁도를 흔들어 깨웠다.
새벽 공기를 음미하며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한쪽에 만들어 놓은 공터로 가 무공 연마를 시작했다.
언제나 즐겁게 떠들어 대던 북궁도였지만 무공 연마를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중했다.
북궁도와 달리 비강은 마음대로 손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거칠게 움직여도 상처가 터져 피가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쯤 무공 연마를 이어 가던 비강은 검을 내렸다.
잠시 후 북궁도도 도를 내리며 투덜거렸다.
“이건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났는데. 한두 놈이 접촉할 줄 알았더니 떼로 몰려왔어.”
“저놈들도 은운곡의 변고를 눈치챈 거겠지.”
“괜찮겠냐?”
북궁도의 걱정에 비강은 밝은 미소를 보였다.
“죽기 싫으면 움직여야지. 안 그래?”
낄낄낄낄…….
“맞아. 죽기 싫으면 움직여야지.”
얼마 안 있어 은운곡은 강호인들의 피로 붉게 물들 것이다.
그 피가 자신의 피가 될지 아니면 적들의 피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온다.”
북궁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강호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중앙에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들이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네 명의 중년 사내와 두 명의 중년 여인.
중년 여인 중 한 명은 등에 활과 화살통까지 메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세와 여유는 저들이 평범한 고수들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연 누님은 어디로 갔느냐?”
중앙에 서 있는 대머리 중년인의 질문에 비강과 북궁도는 황급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저들 여섯 명은 단순한 백건적이 아니었다.
저들은 금지에서 나온 고수들이었다.
―도망치다가 각개격파를 하는 게 낫겠는데?
먼저 북궁도가 비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부딪쳐 보고.
비강은 침중한 얼굴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몸이 온전하다면 어울려 싸울 수 있겠으나 아직은 마음 놓고 무공을 펼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저들 뒤에 있는 백건적의 수는 어림잡아도 일백을 넘기고 있었다.
“이연이 누구지?”
비강이 오히려 되물었다.
“이상하군. 분명히 이연 누님인 줄 알았는데.”
대머리 중년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육강, 네놈은 대가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옆에 서 있던 왜소한 중년 사내의 비웃음에 대머리 중년 사내가 불끈해 노려보았다.
“뒈지고 싶어? 이 새끼야.”
흥!
“저놈이 너를 놀린 거다, 이 돌대가리 새끼야. 저놈이 연비강이고 저놈은…… 아마도 남선의 북궁도라는 놈일 거다.”
“뭐야?”
왜소한 사내를 향했던 대머리 사내의 시선이 비강을 향해 돌려졌다.
쏴아아…….
무지막지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어린 풀과 나무들이 고개를 숙였다.
우우웅.
동시에 비강의 검과 북궁도의 도가 그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홍련폭(紅蓮爆)!”
북궁도의 도는 붉고 환한 거대한 기운이 쏟아지며 공간을 세 쪽으로 갈라놓았다.
콰콰콰쾅……!
비강의 검에서도 네 마리의 거대한 용과 한 마리의 작은 용이 뛰어나며 전방을 휩쓸었다.
허업!
여유로웠던 여섯 명의 중년 사내와 여인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악! 아아악……!
땅과 공간을 뒤집으며 쏟아진 비강과 북궁도의 무공은 여섯 명의 적과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백건적까지 휩쓸었다.
꽈드드드…… 콰쾅! 쾅!
커다란 나무들과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비명을 질러 대다가 땅으로 쓰러졌다.
“비…… 겁한!”
대머리 중년 사내는 뜯겨 나간 왼팔의 고통을 참아 내며 비강과 북궁도가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하니 강호에서 이름 높은 두 젊은 고수가 기습 공격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추격하라!”
백건적이 두 사람의 추격에 나서고, 대머리 중년 사내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무복이 찢어지고 낭패한 모습의 중년 사내와 허리와 어깨가 뜯겨져 피를 흘리는 중년 여인 둘이 이를 악물며 다가왔다.
“장건…….”
언제나 비웃음을 띠며 옆을 지켜 주던 왜소한 벗은 몸이 찢긴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벗인 왕호가 시신이 되어 땅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우 같은 놈들이야. 설마하니 그 순간에 먼저 기습을 해 올 줄은 몰랐어.”
“전부 핑계에 불과해.”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장에서 후회는 죽음이었다.
“반드시…… 잡아 죽인다.”
살아남은 이남이녀의 중년인들은 비강과 북궁도를 잡기 위해 백건적의 뒤를 쫓았다.
* * *
“이 뒤로 넘어가면 어디냐?”
“나도 몰라.”
은운곡을 넘어 산길을 달리는 북궁도의 질문에 앞서 달려가던 비강은 고개를 저었다.
산길을 달리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좌우로 흩어졌다.
우측 숲으로 숨어든 비강은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쓸었다.
가슴을 감고 있던 헝겊 사이로 배어 나온 핏물이 손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아물어 가던 상처가 터진 것이 분명했다.
스스스스…….
멀리서 적들이 숲을 헤치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스걱. 스걱.
마른 갈대풀 위로 두 개의 머리가 피를 뿌리며 굴러떨어졌다.
까깡!
적들의 목을 베어 내자마자 공기의 파동을 느낀 비강이 검을 휘둘렀다.
화살촉과 검신이 부딪치며 귀를 찢는 쇳소리를 만들어 냈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꺾일 정도의 강력한 힘을 동반한 화살이었다.
“이놈!”
한 팔을 잃은 대머리 사내가 수풀 속에서 날아올라 비강의 머리를 쪼개 왔다.
쐐액, 까깡!
파공성이 들리자마자 비강은 몸을 비틀며 또다시 날아오는 화살과 대머리 사내의 대검을 비껴 막았다.
스아악…….
땅으로 내려선 대머리 사내는 손목을 비틀며 비강의 허리를 갈랐다.
후두두두…….
주변을 뒤덮고 있는 마른 갈대들의 허리가 일제히 수평으로 갈라졌다.
깡!
공중으로 날아오른 비강은 허리를 파고드는 화살을 쳐 내며 대머리 사내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쾅!
우웅…….
대검과 창이 부딪치고 울림과 진동을 일으켰다.
끄으.
대검을 잡은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손아귀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검을 쥐고 있는 팔이 떨림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왼팔만 온전했어도…….’
대머리 사내는 원래 두 손을 사용하는 검법을 연마했다.
때문에 다른 대도보다 검파의 길이가 조금 더 길었다.
후아압!
대검은 검광을 번뜩이며 비강의 몸을 좌우 사선으로 연달아 베어 냈다.
꽈드드드…… 쿠쿵!
희뿌연 기운이 닿은 오 장 너머의 커다란 나무들은 양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땅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대머리 사내는 공간을 건너뛰듯 크게 다가오는 빛 한 줄기를 보게 되었다.
퍽!
이마에서 붉은 핏물이 흐르고 대머리 사내는 힘없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까깡!
대머리 사내 육강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과 화살촉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강이 화살을 쏘아 보내는 여인을 향해 신형을 움직이려는 순간 날카로운 검첨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근처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백건적의 검이었다.
땅! 퍽!
비강이 백건적의 검을 쳐 내고 목을 베어 냈다.
그리고 그때 백건적의 가슴에서 화살이 튀어나와 비강의 왼쪽 팔뚝을 뚫었다.
중년 여인이 쏘아 보낸 화살은 백건적의 등을 관통해 가슴으로 빠져나와 비강의 팔뚝까지 뚫은 것이다.
뚝!
비강은 급히 또 다른 화살을 피해 신형을 날리며 팔뚝 깊숙이 박힌 화살대를 부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