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8화
제68화. 은운곡에 머물다
“연 부관은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빈틈없던 비파샤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사실 그녀의 걱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라버니와 약속한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돌아가면 내년에나 날을 잡아 사신으로 와야 한다.
하지만 사신행은 많은 재물을 필요로 했고, 황제를 만나는 일 역시 피곤하고 곤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재물들이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다시 방문을 한다고 해도 반드시 만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바람처럼 서신만 달랑 남겨 놓고 인사조차 없이 떠난 사내였다.
그 사내는 서신에 자신을 찾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는 그 말만 남겨 놓았었다.
비파샤는 비강이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기다리겠어요. 절대로 그분을 남겨 두고 떠나지 않겠어요.”
하아…….
“벽창호가 따로 없군.”
약철빙은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작은 목소리로 독백을 하듯 중얼거렸다.
순간 비파샤는 아름다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뭐지? 이 여자.’
통역관조차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통역을 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공주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은가.
약철빙은 놀란 내심을 숨기며 얼른 다른 말을 주워섬겼다.
“제가 연 부관이 있는 곳을 따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 약철빙조차 비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파샤는 크게 반색을 했다.
“고마워요.”
“그럼, 또 찾아뵙겠습니다.”
약철빙이 예를 올리고 뒤돌아서 방을 나갈 때 비파샤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혹시 비강에게 관심이 있나요?”
“아, 닙니다.”
비파샤는 약철빙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식재료입니다.”
총관 마태관은 직접 식재료를 몇 개의 자루에 담아 곡주의 처소로 가져왔다.
그를 맞이한 사람은 비강이 아니라 이연이었다.
마태관은 이연의 정체를 몰랐으나 묻고 싶지도 않았다.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흐릿한 눈동자와 왠지 모를 서늘함은 산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럼, 가 보겠습니다.”
말없이 총관을 내려보낸 이연은 자루에 든 음식 재료들을 부엌으로 가져갔다.
부엌은 곡주의 전각과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몸이 불편한 비강이 절룩거리며 부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해.”
이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부엌일을 비강에게 떠넘겼다.
그녀가 부엌을 나가고 난 후 비강은 자루를 열어 보았다.
‘어쩐지 비린내가 심하더라니.’
자루 안에는 소금에 절인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다른 자루에는 채소들과 구운 양고기가 들어 있었다.
비강은 잉어를 손질해 물에 씻었다.
요리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못하지도 않았다.
‘몸이 불편하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도 힘들구나.’
쌀과 잉어를 앉혀 놓고 나니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비강은 구운 양고기의 다리 하나를 떼어 아궁이 옆에 걸어 놓았다.
이연이 잉어찜을 먹지 않는다면 그것이라도 내어놓기 위함이었다.
밥과 찜이 되기를 기다려 부엌을 나온 비강은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아 나뭇가지에 솟아나는 새싹들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하더니 오늘은 손가락만큼 자랐구나.’
초록빛을 띠어 가는 산천을 넋 놓고 바라보던 비강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갔다.
“여어! 무림 공적이 팔자 좋구나?”
밝고 명랑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비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도대체 저놈은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찾아온 것일까?
참으로 귀신이 울고 갈 놈이었다.
비강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북궁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왔냐?”
“뭐야? 그 몰상식한 행동은. 오랜만에 친한 벗을 봤으면 당장 달려와 내 손이라도 잡아 줘야 할 거 아니야.”
북궁도의 너스레는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상단전을 열었냐?”
으으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비강을 향해 다가서던 북궁도는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치를 떨었다.
“네 말이 맞았어. 그동안 사부의 거짓말에 속고 있었어. 상단전을 열다가 조상님들을 만나 뵙고 왔지 뭐야.”
북궁도는 상단전을 열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 모양이었다.
하하…….
조금은 음울했던 비강의 기분은 북궁도를 만나자마자 깊숙한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냄새 좋은데? 뭐 만들고 있었냐?”
“잉어찜.”
크크크크…….
“역시, 하나밖에 없는 내 벗이야.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그런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니.”
“너 줄 거 아니다.”
에잉.
“야박한 놈.”
입을 비죽 내민 북궁도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은운곡이 백건적과 연관이 있었던 거냐?”
“그래. 곡주와 부곡주가 짐작보다 더한 고수였어.”
“대단한 양반들이네. 여태까지 그 사실을 들키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부엌으로 들어가던 비강의 안색이 문득 굳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 줄 알았냐?”
“어. 그게 말이야. 내가 폐관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바깥의 소식은 듣고 있었거든. 그런데 너에 관한 소식을 들었지 뭐야. 그래서 몰래 빠져나오려고 하다가 사부에게 딱 걸렸지.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지금도 삭신이 쑤셔. 너도 알다시피 사부의 손이 보통 매운 게 아니잖아. 사부가 정말 인정사정없이 패 대는데…….”
북궁도의 설명은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요점만 간단히.”
“아, 사부가 알려 줬어. 네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도운패가 짐작하고 있었다면 나머지 천존도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과연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풍천양은 어디까지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풍천양과 대면했을 때, 그와 삼천존들 사이의 거리감을 느꼈었다.
오오오…….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북궁도의 괴이한 탄성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구릉 위에는 이연이 나와 흐릿한 눈으로 북궁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연상에 끌리는구나? 내가 진즉에 알아봤지. 순찰단주와 잘 지내는 것만 봐도 그렇고 말이야.”
“헛소리 그만해.”
비강이 칼같이 자르자 북궁도는 무안한 표정을 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왜 갑자기 성질을 부리고 그래.”
비강은 이연을 여인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었다.
‘저 여인이 내 어머니였다면…….’
“제 벗입니다. 곧 식사를 차릴 터이니 들어와 기다리십시오.”
이연은 아무 말 없이 부엌 한쪽에 놓여 있는 식탁에 가 앉았다.
“저는 비강의 제일 친한 벗이자 하나밖에 없는 벗인 북궁도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북궁도는 넉살 좋게 이연 앞으로 다가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녀는 북궁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쩝…….
무안해진 북궁도는 입맛을 다시더니 비강을 흘깃 돌아보았다.
그러나 비강은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사를 차려 내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강이 밥을 푸고 잉어찜과 양 다리를 커다란 소반에 내오자 북궁도는 수저를 찾아 세 사람이 앉을 자리에 차렸다.
“드십시오.”
비강은 먼저 잉어찜의 살을 발라 이연 앞에 내놓았다.
북궁도는 그런 비강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려는 듯 젓가락도 집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맛이 없어.”
이연의 말에 비강은 하는 수 없이 양구이를 담은 소반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식사가 시작되었지만 북궁도는 비강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는?”
“손 없냐?”
“에이, 매정한 놈.”
이연은 밥과 양구이로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내고 막 젓가락을 내려놓던 그녀는 잉어찜의 살을 다시 한번 입에 가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비강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가야 해.”
젓가락을 내려놓은 이연은 갑작스레 작별을 통보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엌을 나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다음에 또 뵙고 싶습니다.”
급하게 따라 나온 비강의 말에 이연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비강을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되돌려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이야.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았어.”
북궁도의 말에 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래도 좋은 분이야.”
“그 좋은 분의 존함은 어떻게 되는데?”
“이연.”
비강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던 북궁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아! 협녀. 저분이 협녀였냐?”
“그래.”
“그럼 진즉에 말해 줬어야지. 내가 얼마나 존경하는 분인데. 아…… 저분이 지금까지 살아 계셨구나.”
넋을 놓고 중얼거리던 북궁도는 식탁에 앉아 식사를 이어 나갔다.
“북은각이지?”
“맞아.”
“그런데 말이야. 시무석을 시험하는 고수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던데. 예민한 자들은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번에 알아볼 거다.”
“나도 그게 걱정이야. 그전에 놈들이 이곳을 찾아오면 좋으련만.”
* * *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하오문 서안 지부장이 북림 순찰단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약철빙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로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앉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매우 위압적이었다.
그러나 장경주는 불쾌하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북림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오문의 지부쯤은 며칠 만에 찾아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순찰단주가 찾는다는 말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의외야. 하오문 서안 지부장이 젊은 여자라는 생각은 못 했었는데.”
말은 그러했지만 약철빙은 전혀 놀라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몇 년 전부터 하오문의 서안 지부장이 젊은 여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로 비천한 여인을 찾으셨는지요?”
약철빙은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한 번 더 그녀의 기를 죽였다.
“얼굴을 보고 싶으니 면사는 치우지 그래.”
장경주는 하는 수 없이 얼굴의 면사를 걷어 냈다.
면사를 걷어 내자 그녀의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 드러났다.
장경주의 얼굴을 응시하던 약철빙은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 여인의 얼굴을 언젠가 한 번 보았었다.
그때 분명 비강은 이 여인을 기녀라고 했었다.
“전부터 연 부관을 알고 있었나?”
“강호의 정보를 듣기 위해 몇 번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연 부관은 지금 어디에 있지?”
장경주는 약철빙을 만나러 올 때 이미 이 질문이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비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양양에서는 목격이 되었지만 그 후의 행적은 묘연했다.
“오십 대 초반쯤 되는 여인과 양양에 같이 있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정도는 약철빙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여인의 정체는?”
“그 또한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여인은 보통 사람과는 아주 달랐다고 합니다. 하오문에 들어온 정보로는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보였답니다.”
이 또한 옥돈조 공손황의 보고로 알고 있었다.
그 여인이 비강에게 서신을 전했으며 어디론가 함께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그 일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림주의 명을 받아 북은각에서 나온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림주를 찾아갔으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약철빙은 속이 답답한 나머지 찬물을 들이켰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으면 말해 봐.”
“저는 정보를 취합해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한 함부로 짐작은 하지 않습니다.”
대답은 그러했지만 이미 들어온 정보가 있었다.
은운곡에서 시무석을 시험하던 고수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정보였다.
약철빙을 만나러 오기 바로 직전에 받은 정보라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장경주는 비강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