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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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5화
제65화. 은운곡으로(1)
끄아아아악……!
분노한 네 마리의 용과 작은 용 한 마리는 적들의 몸을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살아남은 자 중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린 두려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리혈…….”
하얀 미소를 지으며 적들을 노려보던 비강의 눈빛이 순간 동요를 일으키며 흔들렸다.
저들 중에 서 있는 사내를 언젠가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제…… 언제 봤더라…….’
따당! 땅……!
크악……! 악!
이연이 잔인하게 적들의 목을 베어 내는 순간에도 비강은 오직 그 사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은운곡.’
마침내 비강은 사내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 냈다.
일 년 전 은운곡에서 잠시 머물 때 저 사내를 만났었다.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으나 분명 초특급 고수라 불리던 은운곡의 낭인이었다.
―은운곡을 믿지 마.
비강은 죽기 직전 염화영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백점홍(百点紅)!”
사내를 응시하고 있던 비강을 향해 날카로운 검날의 기운들이 쏟아졌다.
꽈광!
십여 줄기의 기운들은 비강의 온몸을 관통하며 땅을 뒤집었다.
비강은 일 장 정도 떨어진 왼쪽에 신형을 드러내며 창을 내질렀다.
까강!
창을 비껴 막아 낸 적은 몸을 뒤집으며 땅바닥을 쓸 듯 하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창과 검이 교차하며 서로를 지나쳐 갔다.
퍽!
제법 고강한 무공을 드러냈던 적은 창에 목이 꿰뚫리며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지?”
비강의 질문을 받은 사내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이연의 검이 날아갔다.
까강!
비강은 이연의 검을 쳐 내며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짓이지?”
이연의 눈빛은 지독한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스악.
비강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에서 검이 파고들었다.
서걱.
하지만 비강의 허상을 가르며 지나가고 검과 검을 쥔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아악!
뒤늦게 자신의 손이 잘린 것을 확인한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당신이 왜 이곳에 있지?”
으아아아…….
“무공을…… 고절한 무공을 전수해 준다고 했어.”
“대가는?”
“어…… 없어. 그저 자신들의 일을 몇 번 도와주고 난 후에는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으아아아…….
사내는 대답을 하다 말고 손목을 움켜쥐며 바닥을 굴렀다.
“백건적이…… 백건적이 아니었어. 이들은 전부 은운곡의 낭인들이었어.”
은운곡에 비밀이 많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그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그들이 백건적과 연결이 되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퍽!
비강은 손목이 잘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사내의 목을 쳐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내를 향해 무작정 창을 내질렀다.
따당!
이연을 공격하던 사내는 급히 몸을 틀며 비강의 창을 막아 냈다.
까깡! 끄으으…….
그러나 뒤이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창은 검을 쥐고 있는 사내의 손아귀를 찢어 버리고 어깨까지 갈라놓았다.
“당신은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십 년…… 십 년이 넘었다. 구파일방의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는데 어느 누가 그 유혹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죄가 없어. 살려다오.”
“강호인들 중에 죄 없는 자들도 있던가?”
퍽!
창날로 사내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 비강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있는 적들을 둘러보았다.
정확하게 열두 명.
그들 중에 두 명은 이연이 뒤쫓고 있었고 남은 자들은 열 명이었다.
“전부 죽여 주지.”
* * *
사내의 이름은 호분이었다.
일찍이 강호를 유랑하던 사부를 만나 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강호를 동경해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했다.
나이 스물에 강호로 나왔지만 그를 알아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강호를 떠돌다 찾아 들어간 곳이 은운곡.
그곳에서 낭인 생활을 하며 제법 많은 은자를 모았지만 강호에서 그의 명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강호 무림이 알아주는 고수가 되고 싶었다.
다른 자들이 우러러보고 복종하는 절대고수가 되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생긴다고 했던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고절한 무공을 전수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대가는 이 년 동안 은운곡의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낭인의 삶은 다른 자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손을 보태는 것.
기쁘게 그 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양양 곡성으로 와서 전진의 무공을 전수받았다.
무공 교두 셋은 전진과 아미, 종남의 무공을 익인 자들이었다.
구파일방의 무공은 여느 무공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강호의 패자 중 일인이 될 꿈에 부풀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정신없이 산속을 달리는 호분의 입에서 울분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진의 무공만 익힌다면 강호의 절대고수로 불리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리혈과 부딪치자마자 꿈은 산산이 부서져 날아갔다.
같은 무공을 익히더라도 자질과 노력 여하에 따라 고수와 하수로 나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자신은 고수가 되어야 했다.
은운곡에서 초특급으로 분류될 만큼 무공에 대한 자질이 뛰어났고, 어느 누구보다 더 열심히 무공을 연마했다.
‘살아남아야 해. 상대가 너무 나빴을 뿐이야.’
백리혈은 강호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절대고수였다.
그런 자에게 도망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저 멀리 관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호분의 안색이 환해졌다.
틱.
관도를 향해 달려 내려가던 호분은 눈앞에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광경을 보았다.
퍽!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 안으로 어둡게 물들어 가는 세상이 들어왔다.
털썩.
비강은 힘없이 널브러지는 사내의 무복에 검신과 철봉을 닦았다.
“그거 다시 한번 해 봐.”
십 장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서 이연이 흐릿한 눈으로 비강의 검을 가리켰다.
“뭘 말입니까?”
“공간을 건너뛰는 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완성을 보지 못한 무공입니다. 아니, 완성을 모르는 무공입니다.”
가문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 끝을 알지 못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완성이 되면 보여 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먼저 유가부터 방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곡성 유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슨 용무로 방문을 하셨는지요?”
스걱. 털썩. 털썩.
정문을 지키는 가인 둘은 이연의 검에 의해 외마디 비명조차 질러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쩌저적…… 쿠쿵!
뒤이어 유가로 들어서는 대문도 그녀의 검에 의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누구냐!”
마당을 오가던 가인들이 검을 빼 들어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향해 겨누었다.
“연비강.”
“북, 북림의 백리혈이 어찌하여…….”
입구의 소란스런 소리를 들었는지 안쪽에서 가인들과 가주가 달려 나왔다.
가주는 먼저 대문 앞쪽에 쓰러져 있는 가인들을 확인하고는 침중한 얼굴로 두 사람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죄 없는 우리 유가에서 혈사를 일으키는 것인가? 정체부터 밝혀라!”
“헛소리하고 있네.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냐?”
“은운곡의 낭인들과 내통을 하고 있었어. 아니지. 은운곡의 곡주와 내통을 하고 있었던가?”
비강의 비웃음에 가주의 표정은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백리혈!”
크하하하…….
“이것 봐. 내 정체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잖아.”
“마을에 북림의 백리혈로 의심이 되는 강호인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끝까지 발뺌을 한다 이거지?”
큰 웃음을 지었던 비강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내려앉았다.
“죄 없는 우리 유가를 겁박한다면 강호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상관없어.”
하얀 미소를 머금고 있던 비강은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이원삼천.
검광이 번뜩이는 순간 빈 공간에 크고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졌다.
화산의 고수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자신들의 무공을 도둑맞았다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꽃무늬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봉오리였다.
크악! 아악!
비강과 오 장 정도의 거리를 격하고 있던 가인 둘의 몸이 갈기갈기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악적을 죽여……!”
허업!
가주는 미처 가인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흐릿한 눈의 여인과 마주했다.
까강! 까가강!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고 가주는 네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고수.’
크아악! 끄아아악……!
간담이 서늘한 가운데 가인들의 비명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가인들 속으로 뛰어든 연비강은 한 마리 용맹한 호랑이처럼 날뛰고 있었다.
“너는 전진의 정통 무공을 익혔구나.”
여인의 나른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주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어찌 저 여인은 단 한 번의 초식을 보고도 전진의 무공임을 알아차린단 말인가.
전진의 무공을 전수해 준 곡주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낭인들을 위해 식량과 정보를 전하는 것.
그 일을 위해 은자도 매번 넉넉하게 받았다.
인자했던 가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어떻게 일으켜 세운 가문이었던가.
보잘것없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곡성 유가는 영원할 것이다!”
가주의 검은 희뿌연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콰쾅! 쾅!……!
이연의 검과 가주의 검은 순식간에 십여 번을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까강!
여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을 향해 달려들던 가주는 급히 몸을 비틀며 철봉을 쳐 냈다.
푹.
순간 가슴에서 형언하지 못할 고통이 찾아들고, 자신의 앞에 다가온 흐릿한 눈의 여인이 보였다.
“어떻게…… 어떻게 일으켜 세운 가문…….”
가주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이연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점점 힘을 잃어 갔다.
털썩.
비강은 검과 철봉을 집어넣으며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연을 응시했다.
주변은 시신 삼십여 구가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은운곡의 곡주가 누구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연이 물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죽이고 싶어.”
“그자는 내 겁니다.”
“아니. 내 거야.”
* * *
유가의 정문 밖에는 수십 명의 마을 사람이 숨어 기웃거리고 있었다.
“북림의 백리혈이 우리 가문을 습격했소!”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의 앞에는 도망쳐 나온 가인 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천하의 악적이 우리 가문을…….”
스걱.
문밖으로 나온 비강은 울분을 토하는 가인의 목을 베어 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연과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비강과 이연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숨어 있는 곳에서 하나둘 얼굴을 드러냈다.
“세상에…… 잔인하기도 하지.”
“끔찍한 세상이구먼.”
“유가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마을 사람들은 유가의 대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르신…….”
개중에는 가주의 주검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밖으로 도망쳐 숲으로 숨어들었던 식솔들도 돌아와 그 광경을 발견하고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례를 준비할 때 북림의 순찰조인 자토조(紫兎組)가 곡성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어떤 자들이 이런 짓을 저질렀소?”
식솔들은 악에 바쳐 소리를 질렀다.
“북림의 백리혈이오! 그자는 악마와 다름이 없소!”
“그…… 럴 리가.”
자토조의 조장 원자순은 식솔들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을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원수 대하듯 노려보는 식솔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